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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시대 토광묘의 장송의례 시설과 배경 - 양광도지역을 중심으로 - = Funeral Ritual Facilities for Pit Tombs in the Goryeo Dynasty -With focus on the Yanggwang Provi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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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8813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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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본 연구에서는 고려시대 토광묘 장송의례 시설의 변화과정과 배경에 대하여 당시 통치이념인 유교사상적 관점을 통해 파악해 보았다. 묘역시설묘(I)의 경우 관인분묘와 분묘보수의 금제로 ...

      본 연구에서는 고려시대 토광묘 장송의례 시설의 변화과정과 배경에 대하여 당시 통치이념인 유교사상적 관점을 통해 파악해 보았다.
      묘역시설묘(I)의 경우 관인분묘와 분묘보수의 금제로 보아 목관(i)에 부장시설(A)과 벽사시설(B) 등 장송의례 시설이 확인되었고, 그 피장자는 품계와 경제력이 높은 계층일수록 유교사상적 장송의례를 중시하는 것을 부장품과 묘역시설 규모를 통해 확인하였다. 무묘역시설묘(II)의 경우 망자의 시신을 보호하는 사물곽(a)이 묘역시설묘(I)에 비해 낮은 점유도를 보여, 무묘역(II)의 단순토광묘(ii)를 사용하는 낮은 계층일수록 예법을 경시하는 경향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장송의례 시설과 관련된 속성을 파악한 후 총 3단계로 분류하여 유교사상적 장송의례의 보급과 변화과정을 살펴보았다. 1단계는 10C 전엽~12C 전엽으로 유교 예법을 가장 잘 따르는 것으로 이해되는 복합의례시설(C)이 1기 확인되었고, 성종6년(987) 12목 경학박사 파견, 정종 6년(1040) 방상시의례 등의 사료를 통해 유교 예법이 보급되어 토광묘에 장송의례 시설로 표현되기 시작하는 시점으로 확인되었다. 2단계는 12C 중엽~13C 중엽으로 복합의례시설(C)의 점유도와 축조량 모두 증가한 점을 확인하였고, 묘역시설(I)과 사물곽(a)이 등장하여 예종4년(1109) 국학 7재 설치, 인종13년(1135) 국자감 대사성의 장례감독 등의 사료를 통해 유교사상적 장송의례가 전문화되어 장송의례 시설에 표현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3단계는 13C 후엽~14C 후엽으로 복합의례시설(C)의 점유도와 축조량 모두 2단계보다 증가하며, IiCa식과 같은 묘역시설(I)에 사물곽(a)이 시설되거나, IIiiCb식과 같이 무묘역(II)·단순토광묘(ii)에서 복합의례시설(C)과 경제성이 낮은 부장품이 확인되어 『朱子家禮』의 보급이 전 계층에 끼친 영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유교식 상장례의 배경으로 유교 삼례서인 『周禮』,『儀禮』,『禮記』와 『朱子家禮』를 살펴보았다. 『周禮』에서는 명기를 부장하는 편방과 방상시의 사우혈 그리고 방습을 위해 시설하는 조개껍질 등 사물곽(a)의 존재를, 『儀禮』에서는 총인이 행하는 총인의례시설의 존재를, 『禮記』에서는설치와 염습에서 뿔수저와 가위의 사용을, 『朱子家禮』에서는 방상시의 사우혈과 편방의 시설, 시신을 보호하는 사물곽(a)의 사용을 확인하였다. 따라서, 고려시대 토광묘의 장송의례 시설은 유교 예서에서 그 사상적 배경을 찾을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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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is study aimed to examine the changing process of funeral rituals around pit tombs from the perspective of Confucianism as the ruling ideology of Goryeo in the Yanggwang Province. Type I of tombs with facilities along the boundary used a wooden coff...

      This study aimed to examine the changing process of funeral rituals around pit tombs from the perspective of Confucianism as the ruling ideology of Goryeo in the Yanggwang Province.
      Type I of tombs with facilities along the boundary used a wooden coffin(i) to bury the deceased, given the tombs of government officials and the prohibited cases of tomb repair. They held an exorcism ritual(B) to promote the well-being and protection of the deceased or a burial ritual(A) to bury artifacts around the main burial part. The social classes with an official rank or economic power placed importance on a funeral ritual based on Confucian ideology. Type II of tombs with facilities along no boundary recorded a lower occupancy rate of four-object outer coffins(a), which protected the bodies of the deceased in a simple pit(ii) compared with a wooden-coffin tomb(i), than Type I of tombs with facilities along the boundary. These findings confirm that the social class using a simple pit(ii) in tombs with facilities along no boundary(II) had a tendency to place importance on courtesy such as the funeral ritual based on Confucian ideology.
      The study then figured out the attributes related to the funeral rituals, classified them into three stages, and examined the spreading and changing process of a funeral ritual based on Confucian ideology. Stage 1 fell in a period between the early part of the tenth century and the early part of the 12th century. Stage containing shells for the Bangseup of the main burial part. Uirye confirmed the presence of the Chongin ritual(Sauhyeol+Yogaeng) performed by Chongins. Yegi confirmed the usage of spoons and chopsticks in the Seolchi process and that of scissors used before dressing a corpse for burial like others of the three Confucian courtesy books. Jujagarye confirmed the Sauhyeol of Bangsangsi Narye, the installation of Pyeonbang, and the usage of four-object outer coffins(a) to protect the body. Based on these findings, it is estimated that the ideological background of the funeral ritual around pit tombs in Goryeo came from the three major Confucian courtesy books and Jujagar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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