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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세기 일본의 공무역과 사무역에 대한 고찰 = A Study on the Public Trade and Private Trade of Japan in the 8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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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e 『Sok-il-bon-gi』, which records the history of the Nara era in the 8th century, shows that more exchanges were made between Silla and Japan in this period than any other era. Most of the exchanges were unilateral from Silla to Japan. The two countries had a friendly relationship with external factors for a while in the early 8th century, but since the 830s, when external factors disappeared, they had returned each other’s public delegations and showed sharp political and diplomatic confrontations. On the other hand, it was also a time when Silla people actively developed trade in Japan. Of course, it goes without saying that this was because the royal family and nobles, who were Japanese ruling leaders at that time, desperately needed Silla's exchanging trade goods.
      Therefore, the trade relations between the two countries in the 8th century (Nara era) can be summarized as follows: First, the Japanese ruling class in the Nara period recognized Silla and Balhae as countries of the prosperity. However, this was because the Japanese ruling class was caught up in the ideology of the statute law and they embellished for their benefit, so the Silla ruling class did not accept it. Rather, Taeryeom Kim's public delegation in 752 conducted diplomacy with Japan an example of a higher country than Japan.
      Second, the Silla ruling class started to develop public trade by dispatching a large-scale public delegation from the mid 730s, based on the tribute trade system, which was learned from the (China) Tang dynasty. The typical example was the 700 people-consisted public delegation visit of Silla prince, Taeryeom Kim, in 752.
      Third, it is considered that the private trade in Japan actually began from 750s, when Silla merchants crossed over to Dazaifu. An article, in which the Japanese ruling class purchased a large amount of Silla exchanging trade items by using the officials of Dazaifu, tells it well. In the 9th century, the officials and barons of Dazaihu engaged in trade activities independently with Silla merchants.
      Fourth, since the 750s, the distribution system had been formed as Silla people constantly crossed over to Dazaihu. And Silla merchants had gradually resided in Dazaihu. These 'immigrated Silla people' became core members of the huge East-Asian trade area centered on Bogo Jang in the early 9th century along with the maritime forces of the 'immigrated (China) Tang people' on the south coast of the Korean peninsula. As such, since the trade area centered on the private trade were formed around Dazaihu from the mid 8th century, such an international maritime trader as Bogo Jang appeared in the early 9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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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Sok-il-bon-gi』, which records the history of the Nara era in the 8th century, shows that more exchanges were made between Silla and Japan in this period than any other era. Most of the exchanges were unilateral from Silla to Japan. The two co...

      The 『Sok-il-bon-gi』, which records the history of the Nara era in the 8th century, shows that more exchanges were made between Silla and Japan in this period than any other era. Most of the exchanges were unilateral from Silla to Japan. The two countries had a friendly relationship with external factors for a while in the early 8th century, but since the 830s, when external factors disappeared, they had returned each other’s public delegations and showed sharp political and diplomatic confrontations. On the other hand, it was also a time when Silla people actively developed trade in Japan. Of course, it goes without saying that this was because the royal family and nobles, who were Japanese ruling leaders at that time, desperately needed Silla's exchanging trade goods.
      Therefore, the trade relations between the two countries in the 8th century (Nara era) can be summarized as follows: First, the Japanese ruling class in the Nara period recognized Silla and Balhae as countries of the prosperity. However, this was because the Japanese ruling class was caught up in the ideology of the statute law and they embellished for their benefit, so the Silla ruling class did not accept it. Rather, Taeryeom Kim's public delegation in 752 conducted diplomacy with Japan an example of a higher country than Japan.
      Second, the Silla ruling class started to develop public trade by dispatching a large-scale public delegation from the mid 730s, based on the tribute trade system, which was learned from the (China) Tang dynasty. The typical example was the 700 people-consisted public delegation visit of Silla prince, Taeryeom Kim, in 752.
      Third, it is considered that the private trade in Japan actually began from 750s, when Silla merchants crossed over to Dazaifu. An article, in which the Japanese ruling class purchased a large amount of Silla exchanging trade items by using the officials of Dazaifu, tells it well. In the 9th century, the officials and barons of Dazaihu engaged in trade activities independently with Silla merchants.
      Fourth, since the 750s, the distribution system had been formed as Silla people constantly crossed over to Dazaihu. And Silla merchants had gradually resided in Dazaihu. These 'immigrated Silla people' became core members of the huge East-Asian trade area centered on Bogo Jang in the early 9th century along with the maritime forces of the 'immigrated (China) Tang people' on the south coast of the Korean peninsula. As such, since the trade area centered on the private trade were formed around Dazaihu from the mid 8th century, such an international maritime trader as Bogo Jang appeared in the early 9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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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8세기 나라시대의 역사를 기록한 속일본기를 통해 신라와 일본 간에는 어느 시대보다 많은 교류가 이워졌다. 다만 그 교류는 대부분 신라에서 일본으로 건너가는 일방적인 형태였다. 양국은 8세기 초기에 잠시 대외적인 요인으로 우호적인 관계를 보였으나, 830년대부터 대외적인 요인이 사라지자 서로의 공적사절단을 돌려보내는 등, 정치외교적으로 첨예한 대립관계를 보였다. 그러나 그 이면에서는 일본에서 교역을 활발하게 전개한 시기이기도 하였다. 물론 여기에는 일본지배층인 황족과 귀족들이 신라의 교관물(무역품)을 절실히 필요로 했기 때문임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따라서 8세기 양국의 교역 관계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나라시대 일본지배층은 신라와 발해를 번국으로 인식하였다. 이것은 일본지배층이 율령법의 이념에 사로잡혀 관련기사를 윤색한 것이므로 신라지배층은 당연히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752년의 김태렴의 공적사절단은 일본보다 상위 국가로서의 예를 갖추어 일본과 외교를 진행하였다. 둘째, 신라지배층은 당에게 배운 조공무역을 기반으로 하여 730년대 중반부터 대규모 공적사절단을 파견하여 공무역을 전개하였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752년 700여명의 공적사절단으로 구성된 신라왕자 김태렴의 방일이다. 셋째, 일본에서의 사무역은 신라상인들이 75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다자이후에 건너오면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768년에 일본지배층이 다자이후의 관리들을 이용하여 신라 교관물(무역품)을 대량으로 구입하는 기사가 그것을 잘 말해준다. 9세기에 들어서면 이제 다자이후의 관리들과 호족들도 신라상인과 독자적으로 교역활동을 벌이게 된다. 넷째, 750년대 이후 신라인들이 다자이후로 끊임없이 건너오면서 유통시스템이 형성되었고 점차 신라상인들도 다자이후에 거주하게 되었다. 이들 '재일신라인'은 이후 '재당신라인', 그리고 한반도 남해안의 해상세력 등과 함께 9세기 초기에 장보고를 중심으로 하는 거대한 동아시아 교역권의 핵심 멤버를 이루게 된다. 이와 같이 8세기 중엽부터 사무역을 중심으로 한 교역권이 다자이후를 중심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에 9세기 초기에 장보고와 같은 국제적인 해상 무역가도 출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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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세기 나라시대의 역사를 기록한 속일본기를 통해 신라와 일본 간에는 어느 시대보다 많은 교류가 이워졌다. 다만 그 교류는 대부분 신라에서 일본으로 건너가는 일방적인 형태였다. 양국은...

      8세기 나라시대의 역사를 기록한 속일본기를 통해 신라와 일본 간에는 어느 시대보다 많은 교류가 이워졌다. 다만 그 교류는 대부분 신라에서 일본으로 건너가는 일방적인 형태였다. 양국은 8세기 초기에 잠시 대외적인 요인으로 우호적인 관계를 보였으나, 830년대부터 대외적인 요인이 사라지자 서로의 공적사절단을 돌려보내는 등, 정치외교적으로 첨예한 대립관계를 보였다. 그러나 그 이면에서는 일본에서 교역을 활발하게 전개한 시기이기도 하였다. 물론 여기에는 일본지배층인 황족과 귀족들이 신라의 교관물(무역품)을 절실히 필요로 했기 때문임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따라서 8세기 양국의 교역 관계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나라시대 일본지배층은 신라와 발해를 번국으로 인식하였다. 이것은 일본지배층이 율령법의 이념에 사로잡혀 관련기사를 윤색한 것이므로 신라지배층은 당연히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752년의 김태렴의 공적사절단은 일본보다 상위 국가로서의 예를 갖추어 일본과 외교를 진행하였다. 둘째, 신라지배층은 당에게 배운 조공무역을 기반으로 하여 730년대 중반부터 대규모 공적사절단을 파견하여 공무역을 전개하였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752년 700여명의 공적사절단으로 구성된 신라왕자 김태렴의 방일이다. 셋째, 일본에서의 사무역은 신라상인들이 75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다자이후에 건너오면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768년에 일본지배층이 다자이후의 관리들을 이용하여 신라 교관물(무역품)을 대량으로 구입하는 기사가 그것을 잘 말해준다. 9세기에 들어서면 이제 다자이후의 관리들과 호족들도 신라상인과 독자적으로 교역활동을 벌이게 된다. 넷째, 750년대 이후 신라인들이 다자이후로 끊임없이 건너오면서 유통시스템이 형성되었고 점차 신라상인들도 다자이후에 거주하게 되었다. 이들 '재일신라인'은 이후 '재당신라인', 그리고 한반도 남해안의 해상세력 등과 함께 9세기 초기에 장보고를 중심으로 하는 거대한 동아시아 교역권의 핵심 멤버를 이루게 된다. 이와 같이 8세기 중엽부터 사무역을 중심으로 한 교역권이 다자이후를 중심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에 9세기 초기에 장보고와 같은 국제적인 해상 무역가도 출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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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이병로, "헤안 초기의 동아시아세계의 교섭과 현황 - 장보고와 엔닌을 중심으로 -" 일본어문학회 (53) : 493-512, 2011

      2 이병로, "장보고와 훈야노 미야다마로와의 교역에 관한 연구" 대구사학회 79 : 1-28, 2005

      3 "입당구법순례행기"

      4 이병로, "일본측 사료로 본 9세기의 한일관계- 신라인 来着기사를 중심으로 -" 일본어문학회 (25) : 455-478, 2004

      5 이병로, "신라의 ‘遣日本使’ 파견 중지에 관한 일고찰- 나라 시대 중ㆍ후기를 중심으로 -" 한국일본학회 (59) : 583-598, 2004

      6 "속일본기"

      7 "삼국유사"

      8 "삼국사기"

      9 김상기, "동방문화교류사논고" 을유문화사 3-7, 1948

      10 김상기, "고대한중관계사의 연구" 삼지원 48-52, 1987

      1 이병로, "헤안 초기의 동아시아세계의 교섭과 현황 - 장보고와 엔닌을 중심으로 -" 일본어문학회 (53) : 493-512, 2011

      2 이병로, "장보고와 훈야노 미야다마로와의 교역에 관한 연구" 대구사학회 79 : 1-28, 2005

      3 "입당구법순례행기"

      4 이병로, "일본측 사료로 본 9세기의 한일관계- 신라인 来着기사를 중심으로 -" 일본어문학회 (25) : 455-478, 2004

      5 이병로, "신라의 ‘遣日本使’ 파견 중지에 관한 일고찰- 나라 시대 중ㆍ후기를 중심으로 -" 한국일본학회 (59) : 583-598, 2004

      6 "속일본기"

      7 "삼국유사"

      8 "삼국사기"

      9 김상기, "동방문화교류사논고" 을유문화사 3-7, 1948

      10 김상기, "고대한중관계사의 연구" 삼지원 48-52, 1987

      11 이병로, "고대일본열도의 ‘신라상인’에 대한 고찰" 동국대학교 일본학연구소 15 : 1996

      12 "類聚三代格"

      13 森克己, "遣唐使" 至文堂 1985

      14 遠藤元男, "貞觀期の日羅關係について" (19) : 11-, 1975

      15 "舊唐書 卷 一四九, 「歸崇敬傳」"

      16 森克己, "續日宋貿易の硏究" 國書刊行會 180-181, 1975

      17 東野治之, "正倉院文書と木簡の硏究" 塙書房 353-355, 1977

      18 李成市, "正倉院寶物氈貼布記を通じて見た八世紀の日羅關係" (67) : 10-, 1982

      19 松本新八郞, "東アジア史上の日本と朝鮮" 築摩書房 6 : 281-284, 1961

      20 李成市, "東アジアの王權と交易-正倉院の寶物が來たもうひとつの道" 靑木書店 1997

      21 木宮泰彥, "日華文化交流史" 富山房 1987

      22 石井政敏, "日本前近代の國家と對外關係" 吉川弘文館 280-281, 1987

      23 井上秀雄, "日本と朝鮮の二千年" 太平出版社 78-, 1969

      24 浜田耕作, "新羅中下代の內政と對日外交" 21 : 1983

      25 야마다 후미토, "新羅 聖德王代의 對日關係와 ‘王城國'" 한국고대사학회 (87) : 295-333, 2017

      26 田村円澄, "大宰府探求" 吉川弘文館 1990

      27 鈴木靖民, "古代對外關係史の硏究" 吉川弘文館 230-231, 1985

      28 鈴木靖民, "古代對外關係史の硏究" 吉川弘文館 1985

      29 倉住靖彦, "古代を考えるシリズ 『大宰府』" 吉川弘文館 66-, 1987

      30 倉住靖彦, "古代の地方史 1 西海編" 朝倉書店 263-, 1977

      31 李炳魯, "九世紀初期における環シナ海貿易圈の ‘考察-張保皐と對日交易を中心として-" 8 : 1993

      32 이병로, "<속일본기>에 나타난 한국고대사상-신라·발해를 중심으로" 한국고대사학회 14 : 1998

      33 야마다후미토, "8세기 중반 羅日關係의 推移와 金泰廉 使節團의 渡日" 대구사학회 138 : 1-45, 2020

      34 이병로, "8세기 일본의 외교와 교역: 라일관계를 중심으로" 日本歷史硏究會 4 : 1996

      35 윤선태, "752년 신라의 대일교역과 ‘바이시라기모쯔게’(買新羅物解)-쇼소인(正倉院) 소장 ‘첩포기’(貼布記)의 해석을 중심으로-" 24 : 42-48, 1997

      36 이병로, "752년 신라사 김태렴의 방일 목적에 관한 연구" 일본어문학회 (34) : 525-544,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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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2-01 학술지명변경 외국어명 : JOURNAL OF INTERNATIONAL SYUDIES -> JOURNAL OF INTERNATIONAL STUDIES KCI등재
      202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KCI등재
      2020-02-10 학회명변경 영문명 : The Institute for International Studies -> The Keimyung Institute for International Studies KCI등재후보
      2019-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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