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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CI등재

      1960년대 중반-1980년대 한국가톨릭농민운동의 발전과 독일여성 마리아 사일러(Maria Sailer)의 역할 - 국제기독교기구의 개발 원조를 통한 관계망 구축과 확대를 중심으로 - = Development of the Korean Catholic Peasant Movement and the Role of German Woman Maria Sailer from the 1960s to the Mid-1980s: A Study Focusing on Establishment and Expansion of Network through Development Assistance by International Christian Organ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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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is study examines the development and international relations of the Korean peasant movement since the 1960s with the case of Maria Seiler, a German woman who visited Korea in 1965 and returned to Germany in 1994. Maria came to Korea in the mid-1960...

      This study examines the development and international relations of the Korean peasant movement since the 1960s with the case of Maria Seiler, a German woman who visited Korea in 1965 and returned to Germany in 1994. Maria came to Korea in the mid-1960s because of the development of the West German student movement, exchanges with Third World students in Munich, and West German Catholics' interest in the 'the Third World'.
      Her decisive visit to Korea was a meeting with a Korean miner dispatched to Germany.
      Since 1968, Maria has been active in the 'Korea Catholic Rural Youth Association' and has begun to build an international network. Her global network of connections came when she joined in 1971 as a MIJARC member of the International Catholic Rural Youth Association. The formation of a practical relationship with the 'International Catholic Rural Youth Association' began when Maria was entirely in charge of international cooperation. Following the direction of the 'International Catholic Farmers' Movement', the 'Korean Catholic Farmers Movement(KCFM)' also developed with an emphasis on human development and social development.
      After the KCFM became a MIJARC member, the international Catholic network expanded. There were International solidarities with Christian organizations such as West Germany, the Netherlands, APHD in Australia and Canada, British Christian Aid, India, the Philippines, and Vietnam.
      Development assistance in Korea was provided by West Germany, the Netherlands, APHD, and Christian Aid. West German Catholics provided most of the budget for the KCFM. Support from West Germany was handled by 'the Archdiocese of Paderborn' (KLJB) and 'Misereor' in the eastern part of West Germany. Next, it was an alliance with the Dutch CEBEMO. APHD began providing financial support in 1977. The KCFM sent detailed materials about the Korean countryside to it, and its members developed the Korean Farmers Movement by attending APHD seminars, field experiences, and events of member organizations. The last international organization to mention was 'British Christian Aid'. In 1978, the organization sent funds to Korea for local development projects of the Korean Catholic Farmers' Movement through MIJARC, mainly related to women's resource development.
      With these aids, Maria played an important role in laying the groundwork for the Korean Women's Farmers' Movement as well as establishing an international network of the Korean Catholic Farmers' Mov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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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본고는 1965년 내한해서 1994년 독일로 돌아간 독일 여성 마리아 사일러를 중심으로 1960년대 이후 한국농민운동의 발전과 국제적 관계에대해 살펴보았다. 마리아가 1960년대 중반 한국으로 온 ...

      본고는 1965년 내한해서 1994년 독일로 돌아간 독일 여성 마리아 사일러를 중심으로 1960년대 이후 한국농민운동의 발전과 국제적 관계에대해 살펴보았다.
      마리아가 1960년대 중반 한국으로 온 이유는 서독 학생운동 전개, 뮌헨의 제3세계 학생들과의 교류, 서독 가톨릭의 제3세계에 대한 관심 등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인 계기는 파독광부와의 만남이었다.
      마리아는 1968년부터 한국가톨릭농촌청년회에서 활동하면서 국제적인 관계망을 구축하기 시작하였다. 국제적인 관계망 구축은 국제가톨릭농촌청년회인 미작 회원으로 1971년에 가입함으로써 이루어졌다. 국제가톨릭농촌청년회인 미작과 실질적인 관계 형성은 마리아가 국제협력업무를 전담하기 시작하면서였다. 이후 국제가톨릭농민운동의 방향에따라 한국가톨릭농민운동도 인간개발과 사회개발에 중점을 둔 방향으로나아갔다.
      한국가톨릭농민회가 미작 회원이 된 후에 국제기독교관계망은 확대되었다. 서독, 네덜란드, 호주와 캐나다의 APHD, 영국 크리스천 에이드, 인도, 필리핀, 월남 등의 기독교기구들과 국제적으로 연대하였다. 개발원조지원은 서독, 네덜란드, APHD, 크리스천 에이드 등에 의해 이루어졌다. 서독 가톨릭은 한국가톨릭농민회의 예산액을 거의 담당하였다. 서독의 지원은 서독 동부지역 파더보른교구 KLJB와 미제레오에서 담당하였다. 그 다음으로는 네덜란드 세베모와의 연대였다. APHD는 1977년부터 재정적 지원을 시작했다.
      한국가톨릭농민회는 한국농촌에 대한 구체적인자료 등을 보냈으며, 회원들은 APHD 세미나, 현장 체험, 회원단체의 행사 등에 참석함으로써 한국농민운동을 발전시켰다. 마지막으로 들 수 있는 국제기구는 크리스천 에이드였다. 1978년 크리스천 에이드는 미작을통해 한국 가톨릭농민운동의 지역발전 프로젝트를 위한 지원금을 보냈는데 주로 여성자원개발과 관련된 것이었다.
      이와 같이 마리아는 한국가톨릭농민운동의 국제적인 관계망 구축뿐만아니라 한국여성농민운동의 토대를 마련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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