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왕력과 관련된 『일본서기』 기사는 크게 120년 내려야 『삼국사기』 와 맞는 부분과 120년을 조정할 필요가 없는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이는 『일본서기』편찬과정이 여러 단계를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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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Korean
『日本書紀』 ; 『百濟新撰』 ; 『三國史記』 ; 백제왕계 ; 무령왕 ; 곤지 ; 개로왕 ; 동성왕 ; 藤原不比等 ; Nihon shoki ; Baekje sinchan ; Samguk sagi ; King Muryeong ; Gonji ; King Gaero ; King Dongs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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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왕력과 관련된 『일본서기』 기사는 크게 120년 내려야 『삼국사기』 와 맞는 부분과 120년을 조정할 필요가 없는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이는 『일본서기』편찬과정이 여러 단계를 거...
백제왕력과 관련된 『일본서기』 기사는 크게 120년 내려야 『삼국사기』 와 맞는 부분과 120년을 조정할 필요가 없는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이는 『일본서기』편찬과정이 여러 단계를 거쳤음을 말해주며, 120년 차이가 나는 백제계 자료와 중국측 자료를 이용하여 왜국의 초기 대외관계기사 등에 사실성을 부여하고자 한 데서 비롯된다.
개로왕과 문주왕, 곤지의 관계는 모두 형제관계이다. 개로왕과 문주왕을 나타내는 ‘母弟’는 『일본서기』의 사례를 검토한 결과 ‘同母弟’임을 밝혔다. 문주가 왕으로 즉위할 수 있었던 것은 개로왕 직계의 사망과 함께 곤지의 백제 국내 부재라는 배경이 있었다. 문주의 뒤를 이은 인물은 장자인 삼근왕이다.
한편 곤지는 왜국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무령왕과 동성왕을 낳았다. 먼저 무령왕의 출자와 관련하여 『일본서기』 본문에는 개로왕의 자식으로, 분주로 인용된 『백제신찬』에는 곤지의 자식으로 나오지만, 후자가 사실일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일본서기』 본문에서 무령왕을 개로왕의 자식이라고 기록하게 된 것은 한성백제와 웅진백제 양 혈통의 정당한 계승자로서의 무령왕의 모습을 부각시키고자 백제왕씨를 비롯한 백제계 씨족(倭君씨)이 『일본서기』 편찬과정에 관여한 결과이다. 그 과정에서 당시 백제계 씨족들과 잦은 교류를 가졌던 藤原不比等의 탄생담을 모티브로 개로왕의 임신한 부인을 곤지에게 하사했다는 무령왕의 출생담이 만들어졌다고 보았다.
삼근왕의 뒤를 이은 동성왕은 무령왕의 이모제였다. 동성왕은 왜국에서 태어나 자라다가 삼근왕이 사망하자 귀국하여 즉위하였다. 동성왕의 즉위과정에 대해서는 다양한 시각이 있지만, 이모형인 무령왕의 모계 문제와 국내외 세력의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판단된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e entries in Nihon shoki that relate to the chronology of Baekje’s kings can be divided into those chronologies which maybe matched with those in the Samguk sagi, only if the former 120 years are deducted from its chronicle and others which do not...
The entries in Nihon shoki that relate to the chronology of Baekje’s kings can be divided into those chronologies which maybe matched with those in the Samguk sagi, only if the former 120 years are deducted from its chronicle and others which do not require the arrangement of 120 years. This suggests that the compilation process of Nihon shoki took many steps, since the text was intended to add factuality to the initial articles of Japanese foreign relations by using data from Baekje and Chinese texts with the interval of 120 years between them.
King Gaero had sibling relationships with King Munju and Gonji. “Moje” (母弟), representing King Gaero and King Munju, was identified as “Dongmoje” (同母弟) by investigating cases included in Nihon shoki. Munju could become the king due to the death of a direct descendant of King Gaero and the absence of Gonji in Baekje. It was King Samgeun, the first born son of King Munju, who succeeded to King Munju.
Meanwhile, Gonji gave birth to King Muryeong and King Dongseong, while settling in Japan. First, King Muryeong is described as a son of King Gaero in the Nihon shoki, while he appears as a child of Gonji in Baekje sinchan. The latter case is likely to be true. Nevertheless, he was recorded as a son of King Gaero in Nihon shoki, as the Baekje descent group, including the Kudaranokonikisk, was involved in the compiling process of Nihon shoki, in order to highlight the identity of King Muryeong as a valid successor of two lineages, Hanseong and Woongjin Baekje. King Muryeong’s birth tale in which King Gaero granted his pregnant wife to Gonji seemed to have been created in the process, with the motive of the other birth tale of Fujiwara Fuhito 藤原不比等(Fujiwara Fuhito) as Fuhito often interacted with Baekje’s clans at that time.
King Dongseong, who followed King Samggeun, was Imoje of King Muryeong. He was born and raised in Japan, and then returned to Baekje and acceded to the throne when King Samgeun died. Although there are various opinions on the enthronement process of King Dongseong, his enthronement may have been possible due to problems associated with the maternal line of King Muryeong, Imohyeong,and the support of domestic and foreign forces.
목차 (Table of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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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지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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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지 인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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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1.5 | 1.5 | 1.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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