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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운동 기념의 역사적 전개와 독립운동 기념관 = The history in Record and Memorial of Independence Mov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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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is paper explores how the Independence Movement Memorial Hall has been constructed as a place for the celebration of the Independence Movement. The Independence Movement Memorial is a historical product of the independence movement that has continued steadily since liberation. The construction of the memorial hall, which is accompanied by the construction of monuments, is closely related to the government’s policy to promote veterans.
      In the 1960s, the social interest in the independence movement was raised once again as a government-level reward was made for independence activists. But the rewards were part of the justification for the military regime that took power as a military coup. When the 1965 Korea-Japan Agreement was signed amid unstable co-locations of authoritarian nationalism and nationalism, it was recalled once again that the tasks of the colonization had not been settled. Voices demanding proper commemorative and research on the independence movement were raised again at this time.
      Meanwhile, the 1982 Japanese history textbook scandal led to the establishment of the Independence Memorial of Korea. In the 2000s, the establishment of the Independence Movement Memorial was nationalized. With the activation of ‘Independence Movement’ the subjects of the celebration have diversified. However, it is also true that there are a variety of challenges in operation and regional re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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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paper explores how the Independence Movement Memorial Hall has been constructed as a place for the celebration of the Independence Movement. The Independence Movement Memorial is a historical product of the independence movement that has continue...

      This paper explores how the Independence Movement Memorial Hall has been constructed as a place for the celebration of the Independence Movement. The Independence Movement Memorial is a historical product of the independence movement that has continued steadily since liberation. The construction of the memorial hall, which is accompanied by the construction of monuments, is closely related to the government’s policy to promote veterans.
      In the 1960s, the social interest in the independence movement was raised once again as a government-level reward was made for independence activists. But the rewards were part of the justification for the military regime that took power as a military coup. When the 1965 Korea-Japan Agreement was signed amid unstable co-locations of authoritarian nationalism and nationalism, it was recalled once again that the tasks of the colonization had not been settled. Voices demanding proper commemorative and research on the independence movement were raised again at this time.
      Meanwhile, the 1982 Japanese history textbook scandal led to the establishment of the Independence Memorial of Korea. In the 2000s, the establishment of the Independence Movement Memorial was nationalized. With the activation of ‘Independence Movement’ the subjects of the celebration have diversified. However, it is also true that there are a variety of challenges in operation and regional re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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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본 논문은 독립운동의 공간적 기념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그리고 기념활동의 역사적 산물인 독립운동 기념관이 어떻게 건립 추진되었는지를 규명하기 위한 것이다.
      해방 직후부터 일어난 독립운동 기념활동은 한때 권위주의 정권에 의해 좌우되기도 하였다. 전쟁과 분단, 그리고 독재로 얼룩진 1950년대를 지나 1960년대 들어 독립운동가에 대한 정부 차원의 포상과 연구가 비로소 이뤄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권위적 국가주의와 민족주의의 불안한 동거 속에서 1965년 한일협정이 체결되자, 식민지해방의 과제들이 청산되지 않았음이 다시 한번 상기되었다. 역설적으로 독립운동에 대한 제대로 된 기념과 연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이때 다시 고조되었으며, 독립운동사 연구도 이런 분위기 속에서 점진적으로 진전되었다.
      1982년 일어난 일본 역사교과서 파동은 역설적으로 독립기념관의 건립으로 이어졌다. 해방 후 계속된 독립운동 기념의 성원이 비로소 독립기념관 건립으로 귀결된 것이었다. 2000년대 들어 독립운동 기념관 건립은 전국화되었다. 기념의 주체가 다양해지고, 기념의 방식도 다각화되면서 운영상 혹은 지역 현실상의 과제들도 표출되고 있다. 이제 과거를 돌아보며 기념관의 역사적 의미와 현재적 기능을 성찰할 시점에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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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논문은 독립운동의 공간적 기념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그리고 기념활동의 역사적 산물인 독립운동 기념관이 어떻게 건립 추진되었는지를 규명하기 위한 것이다. 해방 직후부터 일어난 ...

      본 논문은 독립운동의 공간적 기념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그리고 기념활동의 역사적 산물인 독립운동 기념관이 어떻게 건립 추진되었는지를 규명하기 위한 것이다.
      해방 직후부터 일어난 독립운동 기념활동은 한때 권위주의 정권에 의해 좌우되기도 하였다. 전쟁과 분단, 그리고 독재로 얼룩진 1950년대를 지나 1960년대 들어 독립운동가에 대한 정부 차원의 포상과 연구가 비로소 이뤄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권위적 국가주의와 민족주의의 불안한 동거 속에서 1965년 한일협정이 체결되자, 식민지해방의 과제들이 청산되지 않았음이 다시 한번 상기되었다. 역설적으로 독립운동에 대한 제대로 된 기념과 연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이때 다시 고조되었으며, 독립운동사 연구도 이런 분위기 속에서 점진적으로 진전되었다.
      1982년 일어난 일본 역사교과서 파동은 역설적으로 독립기념관의 건립으로 이어졌다. 해방 후 계속된 독립운동 기념의 성원이 비로소 독립기념관 건립으로 귀결된 것이었다. 2000년대 들어 독립운동 기념관 건립은 전국화되었다. 기념의 주체가 다양해지고, 기념의 방식도 다각화되면서 운영상 혹은 지역 현실상의 과제들도 표출되고 있다. 이제 과거를 돌아보며 기념관의 역사적 의미와 현재적 기능을 성찰할 시점에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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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윤선자, "해방 후 안중근 기념사업의 역사적 의의"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34) : 123-160, 2009

      2 조동걸, "한국현대사학사" 于史 趙東杰 저술전집 2010

      3 김영범, "집단적 역사경험과 그 재생의 지평-소안도 항일기념탑의 사회사" 47 : 1995

      4 박걸순, "중국 내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 건립 경과와 현황"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54) : 101-146, 2016

      5 한상도, "윤봉길 의사 현양행사의 정치적 함의와 독립운동 이미지의 원용" 한국민족운동사학회 (69) : 345-374, 2011

      6 윤선자, "영산강유역의 민족운동 사적지와 기념시설" 대구사학회 94 : 93-124, 2009

      7 전우용, "서울의 기념인물과 장소의 역사성 -가로명 및 공공부지 조형물을 중심으로-" 서울학연구소 (25) : 89-122, 2005

      8 박경석, "동아시아의 전쟁기념관과 역사 갈등 - ‘中國人民抗日戰爭紀念館’을 중심으로 -" 중국근현대사학회 (41) : 167-187, 2009

      9 독립기념관, "독립기념관 건립사"

      10 독립기념관, "독립기념관 30년사"

      1 윤선자, "해방 후 안중근 기념사업의 역사적 의의"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34) : 123-160, 2009

      2 조동걸, "한국현대사학사" 于史 趙東杰 저술전집 2010

      3 김영범, "집단적 역사경험과 그 재생의 지평-소안도 항일기념탑의 사회사" 47 : 1995

      4 박걸순, "중국 내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 건립 경과와 현황"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54) : 101-146, 2016

      5 한상도, "윤봉길 의사 현양행사의 정치적 함의와 독립운동 이미지의 원용" 한국민족운동사학회 (69) : 345-374, 2011

      6 윤선자, "영산강유역의 민족운동 사적지와 기념시설" 대구사학회 94 : 93-124, 2009

      7 전우용, "서울의 기념인물과 장소의 역사성 -가로명 및 공공부지 조형물을 중심으로-" 서울학연구소 (25) : 89-122, 2005

      8 박경석, "동아시아의 전쟁기념관과 역사 갈등 - ‘中國人民抗日戰爭紀念館’을 중심으로 -" 중국근현대사학회 (41) : 167-187, 2009

      9 독립기념관, "독립기념관 건립사"

      10 독립기념관, "독립기념관 30년사"

      11 독립기념관, "독립기념관 20년사"

      12 정근식, "기억의 문화, 기념물과 역사교육" 역사교육연구회 (97) : 277-305, 2006

      13 "국가보훈처 현충시설 정보서비스"

      14 윤선자, "광주학생독립운동 기념사업 평가와 향후 과제" 호남학연구원 1 (1): 261-298, 2008

      15 윤선자, "광복 후 애국선열 선양정책 재조명" 한국사학회 (100) : 361-398, 2010

      16 김상기, "尹奉吉의 순국과 현양사업" 한국근현대사학회 (86) : 155-182, 2018

      17 서동일, "3·1운동에 대한 연구사적 검토-2010년대의 연구경향을 중심으로"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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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5-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4-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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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5 0.62 1.675 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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