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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肅宗代 義天의 鑄錢建議上疏와 그 의미 = Proposal to mint coinage by Uicheon under the King Sukj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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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T13410525

      • 저자
      • 발행사항

        서울 : 서강대학교 대학원, 2013[2014]

      • 학위논문사항

        학위논문(석사) -- 서강대학교 대학원 , 사학과 , 2014. 2

      • 발행연도

        2014

      • 작성언어

        한국어

      • 발행국(도시)

        서울

      • 형태사항

        46 p. ; 26 cm

      • 일반주기명

        참고문헌수록

      • 소장기관
        • 서강대학교 도서관 소장기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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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Daegak-Guksa Uicheon, a Korean Buddhist monk, left behind a written proposal which highlighted necessity of the national coinage in Goryeo Dynasty. The proposal has been adopted as one of the most important research materials in the academia because of a lack of data in relation to the minting coinage policy of King Sukjong. However, there have been not enough efforts for the systematic and comprehensive analysis on the proposal itself although it has been referred to by numerous studies. One of this study's objectives, with acknowledging this problem, is to reinterpret the content of the proposal and analyze the structure of it, which could give a reasonable basis to understand the proposal systematically and comprehensively.
      We were poised to find out Uicheon’s purposes with the proposal by reviewing related historical documents, and concluded that he had three intentions which are facilitating commerce activities of buddhist temples, helping close associates of King Sukjong to consolidate their economic status, and protecting the principles of Bo and Go. It seems that the proposal of Uicheon with the three intentions had a direct impact on the minting policy of King Sukjong during his reign. It impacted Sukjong’s Gyo, the royal announcement, declaring the purpose of introducing the national coinage, and suggested idealogical basis and future direction of the policy.
      Besides, Uicheon’s assertion, in his proposal, that an official coinage should be issued as a highly-valued ones was reflected in King Sukjong’s policy as proved by Haedong-Tongbo coins. Up until now, Haedong-Tongbo coins have been found in various types and large amount, indicating that the coins were produced for a long time and used widely. For that, the supply of Haedong-Tongbo coins was thought to be continued even after the reign of King Sukjong.
      From this perspective, a variety of economic policies adopted in line with the introduction of Haedong-Tongbo were likely to be designed to facilitate national commerce through use of the national coinage as intended by Uicheon. This might be the result of political willingness of King Sukjong to let their associates obtain economic upper hand in the society. Activation of commerce through use of national coinage led to facilitation of remote business activities of buddhist temples, which were a key player of the national economy, satisfying the intention of Uicheon. In addition, Bo and Ko were maintained until the end of Goryeo Dynasty, indicating their principles were protected as Uicheon intended with the proposal.
      As a result, King Sukjong’s minting coinage policy needs to be reevaluated with a different perspective based on Uicheon’s true intention of the proposal. The policy was not a failure, but rather achieved some of the policy go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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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egak-Guksa Uicheon, a Korean Buddhist monk, left behind a written proposal which highlighted necessity of the national coinage in Goryeo Dynasty. The proposal has been adopted as one of the most important research materials in the academia because o...

      Daegak-Guksa Uicheon, a Korean Buddhist monk, left behind a written proposal which highlighted necessity of the national coinage in Goryeo Dynasty. The proposal has been adopted as one of the most important research materials in the academia because of a lack of data in relation to the minting coinage policy of King Sukjong. However, there have been not enough efforts for the systematic and comprehensive analysis on the proposal itself although it has been referred to by numerous studies. One of this study's objectives, with acknowledging this problem, is to reinterpret the content of the proposal and analyze the structure of it, which could give a reasonable basis to understand the proposal systematically and comprehensively.
      We were poised to find out Uicheon’s purposes with the proposal by reviewing related historical documents, and concluded that he had three intentions which are facilitating commerce activities of buddhist temples, helping close associates of King Sukjong to consolidate their economic status, and protecting the principles of Bo and Go. It seems that the proposal of Uicheon with the three intentions had a direct impact on the minting policy of King Sukjong during his reign. It impacted Sukjong’s Gyo, the royal announcement, declaring the purpose of introducing the national coinage, and suggested idealogical basis and future direction of the policy.
      Besides, Uicheon’s assertion, in his proposal, that an official coinage should be issued as a highly-valued ones was reflected in King Sukjong’s policy as proved by Haedong-Tongbo coins. Up until now, Haedong-Tongbo coins have been found in various types and large amount, indicating that the coins were produced for a long time and used widely. For that, the supply of Haedong-Tongbo coins was thought to be continued even after the reign of King Sukjong.
      From this perspective, a variety of economic policies adopted in line with the introduction of Haedong-Tongbo were likely to be designed to facilitate national commerce through use of the national coinage as intended by Uicheon. This might be the result of political willingness of King Sukjong to let their associates obtain economic upper hand in the society. Activation of commerce through use of national coinage led to facilitation of remote business activities of buddhist temples, which were a key player of the national economy, satisfying the intention of Uicheon. In addition, Bo and Ko were maintained until the end of Goryeo Dynasty, indicating their principles were protected as Uicheon intended with the proposal.
      As a result, King Sukjong’s minting coinage policy needs to be reevaluated with a different perspective based on Uicheon’s true intention of the proposal. The policy was not a failure, but rather achieved some of the policy go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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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고려 肅宗代에 大覺國師 義天은 用錢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鑄錢建議上疏를 남겼다. 숙종의 鑄錢政策과 관련해서는 문헌사료가 소략하기 때문에 의천의 주전건의상소는 절대적인 비중을 갖는 문헌사료로 채택되고 있다. 그에 따라 다양한 연구들에서 주전건의상소가 기본사료로 인용되고 있지만, 정작 지금까지 상소문의 전체 구조에 대해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분석이 이루어진 적이 없었다. 이에 본 논문에서는 이와 같은 문제의식 하에 선행연구가 그동안 간과해 온 주전건의상소 전체의 내용을 재해석하고, 상소문의 전체 구조를 분석함으로써 주전건의상소 이해에 합리적 논거를 제시하고자 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여러 관련 사료를 검토함으로써 의천이 주전을 건의한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를 밝혀내고자 하였다. 그 결과 佛敎 寺院의 상업 활성화, 국왕 측근세력의 경제기반 확보, 여러 가지 寶와 庫의 원본 보전이라는 세 가지 의도가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였다. 이와 같은 의도에 따라 상주된 주전건의상소는 숙종대의 주전정책에 매우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주전건의상소는 우선 숙종이 立錢의 대의를 처음으로 표명하는 敎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이후 고려왕조 전반에 걸쳐 주전정책의 이념적 기반과 정책이 나아갈 기본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의천은 주전건의상소에서 官錢을 도입할 경우 반드시 良貨로 발행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는데, 이 역시 숙종대의 주전정책에 그대로 반영되었다는 사실이 海東通寶 유물을 통해 입증되고 있다. 海東通寶 유물은 수십 종류에 이르는 매우 다양한 형식으로 폭넓은 범위에 걸쳐서 대량으로 발견되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해동통보가 다양한 형태로 주조되었다는 것은, 장기간에 걸쳐 주조되었으며 또한 널리 사용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해동통보의 보급은 숙종의 사망 이후에도 계속 이루어졌던 것으로 생각된다.
      숙종대 주전정책이 실시되면서 병행하여 시행된 여러 가지 상업 관련 조치들은, 用錢을 통해 상업을 활성화하고자 했던 주전건의상소의 의도를 달성하기 위한 조치들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국왕의 측근세력들에게 경제기반을 마련해주려는 숙종의 정치적 의도가 함께 작용한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 用錢을 통한 상업 활성화는 자연스레 고려에서 가장 큰 상업 활동 담당자 중 하나였던 寺院의 원격지 상업도 활성화시킴으로써 의천의 의도가 달성되었다고 생각된다. 여러 가지 寶와 庫의 원본을 보전하고자 했던 의도 역시 고려말까지 여러 寶와 庫가 기능을 계속하고 있었다는 사실로 볼 때 무난하게 달성된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주전건의상소를 새롭게 이해할 경우 숙종대의 주전정책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여지가 있다고 생각된다. 숙종대의 주전정책이 실패가 아니라 소기의 성과를 거둔 정책으로 볼 여지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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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肅宗代에 大覺國師 義天은 用錢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鑄錢建議上疏를 남겼다. 숙종의 鑄錢政策과 관련해서는 문헌사료가 소략하기 때문에 의천의 주전건의상소는 절대적인 비중을 갖...

      고려 肅宗代에 大覺國師 義天은 用錢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鑄錢建議上疏를 남겼다. 숙종의 鑄錢政策과 관련해서는 문헌사료가 소략하기 때문에 의천의 주전건의상소는 절대적인 비중을 갖는 문헌사료로 채택되고 있다. 그에 따라 다양한 연구들에서 주전건의상소가 기본사료로 인용되고 있지만, 정작 지금까지 상소문의 전체 구조에 대해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분석이 이루어진 적이 없었다. 이에 본 논문에서는 이와 같은 문제의식 하에 선행연구가 그동안 간과해 온 주전건의상소 전체의 내용을 재해석하고, 상소문의 전체 구조를 분석함으로써 주전건의상소 이해에 합리적 논거를 제시하고자 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여러 관련 사료를 검토함으로써 의천이 주전을 건의한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를 밝혀내고자 하였다. 그 결과 佛敎 寺院의 상업 활성화, 국왕 측근세력의 경제기반 확보, 여러 가지 寶와 庫의 원본 보전이라는 세 가지 의도가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였다. 이와 같은 의도에 따라 상주된 주전건의상소는 숙종대의 주전정책에 매우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주전건의상소는 우선 숙종이 立錢의 대의를 처음으로 표명하는 敎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이후 고려왕조 전반에 걸쳐 주전정책의 이념적 기반과 정책이 나아갈 기본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의천은 주전건의상소에서 官錢을 도입할 경우 반드시 良貨로 발행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는데, 이 역시 숙종대의 주전정책에 그대로 반영되었다는 사실이 海東通寶 유물을 통해 입증되고 있다. 海東通寶 유물은 수십 종류에 이르는 매우 다양한 형식으로 폭넓은 범위에 걸쳐서 대량으로 발견되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해동통보가 다양한 형태로 주조되었다는 것은, 장기간에 걸쳐 주조되었으며 또한 널리 사용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해동통보의 보급은 숙종의 사망 이후에도 계속 이루어졌던 것으로 생각된다.
      숙종대 주전정책이 실시되면서 병행하여 시행된 여러 가지 상업 관련 조치들은, 用錢을 통해 상업을 활성화하고자 했던 주전건의상소의 의도를 달성하기 위한 조치들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국왕의 측근세력들에게 경제기반을 마련해주려는 숙종의 정치적 의도가 함께 작용한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 用錢을 통한 상업 활성화는 자연스레 고려에서 가장 큰 상업 활동 담당자 중 하나였던 寺院의 원격지 상업도 활성화시킴으로써 의천의 의도가 달성되었다고 생각된다. 여러 가지 寶와 庫의 원본을 보전하고자 했던 의도 역시 고려말까지 여러 寶와 庫가 기능을 계속하고 있었다는 사실로 볼 때 무난하게 달성된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주전건의상소를 새롭게 이해할 경우 숙종대의 주전정책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여지가 있다고 생각된다. 숙종대의 주전정책이 실패가 아니라 소기의 성과를 거둔 정책으로 볼 여지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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