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4년, 『시대일보』 사장직을 사임한 최남선은 승려 박한영과 금강산을 필두로 전국명산기행에 나섰는데, 그의 금강산기행은 신문연재 후 『금강예찬(金剛禮讚)』이라는 단행본의 출간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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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Korean
금강산 ; 최남선 ; 고희동 ; 금강예찬 ; 금강산연작 ; 국토찬미 ; Mt. Keumgang ; Choe Nam-seon ; Go Hui-dong ; Keumgang-Yaechan ; the Mt. Keumgang series ; country pra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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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281-305(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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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시대일보』 사장직을 사임한 최남선은 승려 박한영과 금강산을 필두로 전국명산기행에 나섰는데, 그의 금강산기행은 신문연재 후 『금강예찬(金剛禮讚)』이라는 단행본의 출간되...
1924년, 『시대일보』 사장직을 사임한 최남선은 승려 박한영과 금강산을 필두로 전국명산기행에 나섰는데, 그의 금강산기행은 신문연재 후 『금강예찬(金剛禮讚)』이라는 단행본의 출간되었다. 최남선 이전에도 많은 문인들이 금강산에 올랐지만, 그의 금강산기행이 주목받는 이유는 그가 금강산을 민족주의와 결부시키며, 조선민족의 상징, 나아가 동양문화의 정수로 인식하려 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금강산기행직후 최남선은 『청춘』의 창간표지와 삽화를 제작해 준 고희동을 비롯하여 당대를 대표하는 문인 7명과 시서화(詩書畵)동인모임을 시작하는데, 이 모임 직후인 1926년 고희동은 또 하나의 최남선의 국토찬미순례집인 『심춘순례』의 표지와 장정(裝幀)을 담당하는 등 각별한 인연을 이어갔다. 그리고 다음 해 서양화에서 완전히 동양화로 전환한 고희동은 1932년부터 금강산을 주제로 한 작품제작에 몰두한다. 최초의 서양화가로서의 고희동의 존재의의만이 부각되는 가운데, 그의 금강산연작을 거의 주목을 받고 있지 못하고 있지만, 그는 금강산을 “世界에 짝이 없는 純全한 美의 덩어리”라고 언급하며, “우리 것 가운데에서 美다운 美를 畵面에 드러내놓기로 노력하면 자연히 代價도 생겨나고 훌륭한 創作”이 될 것이라고 주창하였다. 이 주장은 그가 금강산 연작을 제작하던 1934년의 것으로 최남선의 잡지와 서적을 매개체로 친밀한 교류를 하였던 고희동의 금강산을 주제로 한 작품들은 조선적인 상징으로서의 금강산을 모습을 표현하고자 하던 그의 시도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After the loss of sovereignty and force of the country, by Japan’s colonization of Korea in 1910, Westernization and modernization movement through the publication of Choe Nam-seon converted into choseonsim quest for the ideological formation underl...
After the loss of sovereignty and force of the country, by Japan’s colonization of Korea in 1910, Westernization and modernization movement through the publication of Choe Nam-seon converted into choseonsim quest for the ideological formation underlying the ethnic identity and national integration. In October 1924, country trip led by the Mt. Keumgang derive the historical reality of Korea``s ancient history through the work seeing the country to make creation myth into reality and were understood to movement enhance the self-esteem as a Koreans. But Choe Nam-seon start siseohwa meeting with literary men representative of the contemporary Western painting, etc. Go Hui-dong, and shortly after Mt. Keumgang journey, and this meeting was sufficient to effect, directly or indirectly, to each other, and Go Hui-dong’s series with the theme of the Mt. Keumgang should begin in earnest after this meeting. In addition, the transition to the oriental painting was done shortly after this meeting also. This can be interpreted as disproving the meeting gave a significant impact on the art of the Go Hui-dong. Because of having discussions about the ethnic identity of the Korea Arts and it’s move direction in members of the meeting in the nature of a meeting. Choe Nam-seon and Go Hui-dong, intimate exchange Choe Nam-seon’s magazines and books as a medium, Mt. Keumgang was one of the symbols of the Chosun. so Go Hui-dong was trying to build a his own unique art world symbolic to the Korean people, the theme by the Mt. Keumgang.
참고문헌 (Reference)
1 이광수, "六堂의 近作 尋春巡禮를 읽고"
2 최남선, "六堂崔南善全集6" 玄岩社 1973
3 박대현, "우리 책의 장정과 장정가들" 열화당 1999
4 고희동, "아직도 表現 못한 朝鮮 山野의 美"
5 김은호, "서화백년" 중앙일보사 1977
6 "高羲東先生 香氣없는 꽃은싫거던"
7 石井柏亭, "絵の旅 朝鮮支那の巻" 日本評論社出版部 1921
8 고희동, "白民" 白民文化史 1947
9 大町桂月, "満鮮遊記" 大阪屋号書店 1919
10 김예진, "東洋學" 東洋學硏究所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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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石井柏亭, "絵の旅 朝鮮支那の巻" 日本評論社出版部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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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菊池幽芳, "朝鮮金剛山探勝記" 洛陽堂 1916
12 志賀重昴, "日本風景論" 政教社 1894
13 "創刊號박든 그때 歲月도 빠르다 於焉十周"
14 徳田写真館, "万二千峰の金剛山" 徳田写真館本店 1931
15 "「朝鮮光文會告白」, 『소년』"
16 "「朝鮮光文會告白」, 『소년』"
일방적 문화편향성을 넘어 상생의 미학으로 -베누티와 베르만의 이국화 번역에 대한 논의를 중심으로
일상의 초상, 그리고 쓰레기의 정치학: <웨이스트 랜드>와 무니스의 작품을 중심으로
해방/패전 체험과 미(美,米)점령기의 "영어" 이야기-염상섭과 고지마 노부오의 소설을 중심으로
학술지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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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
2013-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201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200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2005-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
2004-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
2002-07-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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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19 | 0.19 | 0.26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24 | 0.23 | 0.629 | 0.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