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KCI등재

      조선 후기 궁인(弓人)과 시인(矢人) 연구 - 『의궤』의 분석을 중심으로 - = A Study on Bowyers and Arrow Makers in the Late Joseon Dynasty - With a Focus on the Analysis of Uigwe -

      한글로보기

      https://www.riss.kr/link?id=A101829106

      • 0

        상세조회
      • 0

        다운로드
      서지정보 열기
      • 내보내기
      • 내책장담기
      • 공유하기
      • 오류접수

      부가정보

      국문 초록 (Abstract)

      조선시대에 활을 만드는 궁인(弓人)과 화살을 만드는 시인(矢人)은 국가에서 우대하였다. 당시 활과 화살은 국가를 방어할 무기로서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국가에서는 두 장색의 장인들...

      조선시대에 활을 만드는 궁인(弓人)과 화살을 만드는 시인(矢人)은 국가에서 우대하였다. 당시 활과 화살은 국가를 방어할 무기로서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국가에서는 두 장색의 장인들은 다른 장인들보다 숫자도 많았다. 그러나 그동안 학계에서는 이들 장인을 주목하지 않았다. 이에 본고에서 조선후기 왕실의 의례행사 때마다 임시로 설치한 관청[都監] 217곳에서 활동한 궁인과 시인을 『의궤(儀軌)』로 분석하여 다음과 같은 내용을 처음으로 밝혔다.
      우선, 궁인과 시인은 조선 후기 국왕의 장례나 혼인할 때 설치한 임시관청[都監]에 가장 많이 동원되었다. 특히 이들은 국장도감의 1방과 3방에 분속되어 각자 역할을 수행하였다. 1방은 대행대왕이나 왕후의 시신을 옮길 가마를 만드는 제작처인데, 이곳에서 궁인은 대여의 손잡이용 나무막대[長杠]나 판자[輪臺板] 등을 강화시키고자 쇠심줄[牛筋]을 어교(魚膠)로 붙였다. 이 기술은 장인이 활을 만들 때 대나무와 뽕나무를 강화하는 세부 기술을 응용한 것이다. 3방은 무덤에 넣는 명기를 만드는 제작처인데, 궁인은 붉은 활[彤弓]을, 시인은 붉은 화살[彤矢]을 만들었다.
      다음, 장인의 명칭은 궁장(弓匠)이나 시장(矢匠)보다 궁인이나 시인 및 전장(箭匠)을 적극 사용하였고, 그들이 사용한 재료와 도구를 국가에서 마련해 주었다. 도구는 17세기에는 1가지였으나, 1724년에는 5가지로 늘어났으며, 1776년부터 10가지 이상의 것 일체를 준비하였다.
      마지막으로, 장인들의 신분은 시기마다 바뀌었다. 17세기의 장인들은 서울에 거주하였다. 그러다 1673년 이후 18세기 관공장들은 군기시(軍器寺)나 상의원(尙衣院)과 같은 상설아문이나 훈련도감이나 수어청 등 5군문에서 근무하였다. 1785년 이후 19세기 장인들은 궁궐 안에 소재하던 내궁방(內弓房)에서 근무하던 내궁인이나 내시인이거나 사영(私營) 업자로 나뉘었다. 이들 장인 중 48년 내지 57년간 활동한 장인도 있어 주목된다.

      더보기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Gungyin(bowyer) and Siyin(arrow maker) got special treatment in the Joseon Dynasty era. Bows and arrows were considered as major weapons to defend the country so that the two master craftsmen outnumbered other ones. The academic world, however, has no...

      Gungyin(bowyer) and Siyin(arrow maker) got special treatment in the Joseon Dynasty era. Bows and arrows were considered as major weapons to defend the country so that the two master craftsmen outnumbered other ones. The academic world, however, has not paid attention on bowyer and arrow maker. In this regard, this study analyzed on Uigwe(document) recording about craftsmen who worked for 217 Dogams(temporary government offices) in ritual events in the late Joseon Dynasty. The findings are as follows.
      First of all, the temporary government office mobilized bowyers and arrow makers most at the King s funeral and wedding. The craftsmen performed their roles in two different workshops. In the first workshop, palanquin made to carry Queen or King s corpse were crafted. Gungyins attached ox tendon by fish glue to the chair to strengthen wooden sticks(長杠) or board(輪臺板) for handheld use. In the second workshop, burial goods were crafted. Bowyers and arrow makers made red bow and red arrow respectively in the workshop.
      Next, bowyer and arrow maker were called “Gungyin” and “Siyin”, rather than “Gungjang”, “Sijang” and “Jeonjang”. the government supplied raw materials and tools used by the craftsmen. In the 17th century, one tool was supplied but five tools were supplied in 1724. Since 1776, more than ten tools were ready.
      Lastly, their social position was changed by time. In the 17th century, the craftsmen resided in Seoul. Since 1673, official artisans worked at government offices or at military camp. Since 1785, they worked at workshop inside the palace or ran a privately owned workshop. There were some craftsmen who worked for 48 years to 57 years.

      더보기

      목차 (Table of Contents)

      • Abstract
      • 국문초록
      • Ⅰ. 머리말
      • Ⅱ. 조선 전기 법제의 궁인(弓人)과 시인(矢人)
      • Ⅲ. 조선 후기 도감의 궁인(弓人)과 시인(矢人)
      • Abstract
      • 국문초록
      • Ⅰ. 머리말
      • Ⅱ. 조선 전기 법제의 궁인(弓人)과 시인(矢人)
      • Ⅲ. 조선 후기 도감의 궁인(弓人)과 시인(矢人)
      • Ⅳ. 조선 후기 궁인과 시인의 시기별 변천
      • Ⅴ.결 론
      • 참고문헌
      더보기

      참고문헌 (Reference)

      1 이종석, "화살(시장)" 문화재관리국 1973

      2 양재연, "한국의 궁술" 문화재관리국 1970

      3 장경희, "조선후기 흉례 ‘도감’의 장인 연구" 한국미술연구소 (8) : 181-212, 1999

      4 장경희, "조선후기 여성장인의 장색(匠色)과 직역(職役) 연구 -의궤(儀軌)의 분석을 중심으로-" 한국여성사학회 (20) : 96-138, 2014

      5 이중화, "조선의 궁술" 조선궁술연구회 1929

      6 장경희, "조선의 국가의례, 오례" 국립고궁박물관 117-214, 2015

      7 김세현, "조선시대의 궁장(弓匠)과 제작기술 연구" 한서대학교 2016

      8 김신웅, "조선시대의 경공장과 외공장의 관계" 12 (12): 279-311, 1989

      9 우다가와 다케히사, "조선시대 활의 제작과 궁재(弓材)의 확보" 육군사관학교박물관 7 : 107-138, 2000

      10 강성문, "조선시대 활의 군사적 운용" 육군사관학교박물관 7 : 59-82, 2000

      1 이종석, "화살(시장)" 문화재관리국 1973

      2 양재연, "한국의 궁술" 문화재관리국 1970

      3 장경희, "조선후기 흉례 ‘도감’의 장인 연구" 한국미술연구소 (8) : 181-212, 1999

      4 장경희, "조선후기 여성장인의 장색(匠色)과 직역(職役) 연구 -의궤(儀軌)의 분석을 중심으로-" 한국여성사학회 (20) : 96-138, 2014

      5 이중화, "조선의 궁술" 조선궁술연구회 1929

      6 장경희, "조선의 국가의례, 오례" 국립고궁박물관 117-214, 2015

      7 김세현, "조선시대의 궁장(弓匠)과 제작기술 연구" 한서대학교 2016

      8 김신웅, "조선시대의 경공장과 외공장의 관계" 12 (12): 279-311, 1989

      9 우다가와 다케히사, "조선시대 활의 제작과 궁재(弓材)의 확보" 육군사관학교박물관 7 : 107-138, 2000

      10 강성문, "조선시대 활의 군사적 운용" 육군사관학교박물관 7 : 59-82, 2000

      11 심승구, "조선시대 무과에 나타난 궁술과 그 특성" 육군사관학교박물관 7 : 83-106, 2000

      12 강신엽, "조선시대 대사례의 시행과 그 운영" 조선시대사학회 16 : 1-41, 2001

      13 박윤서, "조선시대 궁시의 발달" 육군사관학교박물관 1 : 89-101, 1989

      14 예용해, "인간문화재, 예용해전집Ⅰ" 대원사 1997

      15 예용해, "인간문화재" 어문각 1961

      16 장경희, "의궤 속 조선의 장인 1․2" 솔과학 2013

      17 유세현, "우리나라 궁장․시장에 대한 보고" 육군사관학교박물관 7 : 183-206, 2000

      18 신병주, "영조대 대사례의 실시와 대사례의례" 일지사 28 (28): 61-99, 2002

      19 김일환, "연기궁인. 서천침선장" 충청남도.충남역사문화연구원 2011

      20 이헌숙, "새롭게 읽는 조선의 궁술" 국립민속박물관 2014

      21 김종태, "궁장" 문화재관리국 1991

      22 이종석, "궁시장(시장)" 문화재관리국 1977

      23 예용해, "궁시장(시장)" 문화재관리국 1976

      24 김일환, "궁시장" 화산문화 2001

      25 신찬균, "궁시장" 문화재관리국 1996

      26 이강칠, "궁시장" 문화재관리국 1992

      27 강신엽, "국궁에 반영된 철학사상" 육군사관학교박물관 7 : 139-158, 2000

      28 "高麗史"

      29 "經國大典譯註"

      30 "經國大典"

      31 조영록, "水牛角貿易을 통해본 朝明關係" 9․10 : 53-80, 1966

      32 "朝鮮王朝實錄"

      33 張慶姬, "朝鮮王朝 王室嘉禮用 工藝品 硏究" 弘益大學校 大學院 1999

      34 金信雄, "朝鮮時代의 手工業 硏究 : 京工匠·外工匠의 分解와 企業的 手工業의 擡頭" 동국대학교 대학원 1985

      35 김동철, "朝鮮後期 水牛角貿易과 弓角契 貢人"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4 : 55-110, 1991

      36 "春官通考"

      37 "承政院日記"

      38 "大典通編"

      39 "大典續綠"

      40 "大典後續綠"

      41 "國朝喪禮補編"

      더보기

      동일학술지(권/호) 다른 논문

      동일학술지 더보기

      더보기

      분석정보

      View

      상세정보조회

      0

      Usage

      원문다운로드

      0

      대출신청

      0

      복사신청

      0

      EDDS신청

      0

      동일 주제 내 활용도 TOP

      더보기

      주제

      연도별 연구동향

      연도별 활용동향

      연관논문

      연구자 네트워크맵

      공동연구자 (7)

      유사연구자 (20) 활용도상위20명

      인용정보 인용지수 설명보기

      학술지 이력

      학술지 이력
      연월일 이력구분 이력상세 등재구분
      2027 평가예정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202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8-04-23 학회명변경 한글명 : 한국조형디자인학회 -> 사단법인 한국조형디자인협회
      영문명 : THE KOREA SOCIETY OF ART&DESIGN -> The Korea Association of Art&Design
      KCI등재
      2018-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5-03-31 학술지명변경 한글명 : 한국공예논총 -> 조형디자인연구
      외국어명 : The Korea Society of Craft -> The Journal of the Korea Society of Art&Design
      KCI등재
      2015-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KCI등재
      2013-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기타) KCI등재후보
      2012-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기타) KCI등재후보
      2011-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10-01-01 평가 신청제한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9-06-15 학회명변경 한글명 : 한국공예학회 -> 한국조형디자인학회
      영문명 : Korea Society Of Craft -> THE KOREA SOCIETY OF ART&DESIGN
      KCI등재후보
      2009-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2차) KCI등재후보
      2008-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6-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더보기

      학술지 인용정보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45 0.45 0.35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31 0.31 0.586 0.05
      더보기

      이 자료와 함께 이용한 RISS 자료

      나만을 위한 추천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