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1950’s, planning the electric power system for South Korea involved many powerful actors such as the United States aid agencies, American technology advisory groups, Koreans electrical technical expert groups and relevant Koreangovern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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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In the 1950’s, planning the electric power system for South Korea involved many powerful actors such as the United States aid agencies, American technology advisory groups, Koreans electrical technical expert groups and relevant Koreangovernment...
In the 1950’s, planning the electric power system for South Korea involved many powerful actors such as the United States aid agencies, American technology advisory groups, Koreans electrical technical expert groups and relevant Koreangovernment agencies, and of course Korean geographical and material settings. While all the involved parties agreed on the need to secure electricity urgent, they needed a long process for negotiating their different ideas about what was economically, politically, and technologically rational for South Korea. This paper examines technopolitics that produced an agreement about the new power development plan in South Korea, by focusing on various conflicts between different parties. Above all, the U.S. aid agencies, which wanted to curb Korea's severe inflation and stabilize society, said it would be enough to quickly introduce several thermal power plants to secure a minimum power supply. However, the Korean electrical technical experts thought hydropower plants more appropriate for Korea and more economic in the long run given its geographical condition and its reliance on imported oils. These Korean electrical technical experts argued that hydroelectricity was a reasonable choice of technology, but in fact, it was a colonial heritage created based on the experience of Korea's power system growing rapidly from smallscale thermal power to largescale hydroelectric power plants. Eventually, Korean electrical engineers failed to persuade the American aid organization, but they were able to discover thermal power generation as a new technology option. Largescale thermal power plant facilities and retraining programs provided by the U.S. aid organization served as an opportunity for Korean electric engineers to recognize thermal power generation as a technology factor that further flexibility capital and resources, and soon Korean electrical technical experts were able to establish a new strategies for construction of power plants development.
국문 초록 (Abstract)
1950년대 전력체계의 재구성 과정을 추적하는 이 논문은 특히 가용 자원과 자본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과연 어떤 방식으로 재건을 이뤄야하는가를 끊임없이 질문하며 집단적 정체성을 ...
1950년대 전력체계의 재구성 과정을 추적하는 이 논문은 특히 가용 자원과 자본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과연 어떤 방식으로 재건을 이뤄야하는가를 끊임없이 질문하며 집단적 정체성을 형성한 한국의 전기기술자들과 그들이 고수한 수력발전 중심의 전력체계 구상에 주목한다. 이시기 전원개발을 둘러싼 기술정치는 무엇을 한국 전력체계의 기본 발전원으로 삼을 것인가라는 기술 선택의 문제로 집약됐다. 미국 원조기구의 담당자들은 한국의 심각한 인플레를 억제하고 사회를 안정시키기 위해 빠르게 건설할 있는 화력발전소를 도입해 최소한의 전력공급을 확보할 수 있으면 충분하다는 입장이었지만, 한국의 전기기술자들은 전력체계 구축이야말로 향후 국가 건설의 초석을 다지는 일이므로 시간이 걸리더라도 한국의 지형과 자원 배분을 고려한 중대형 수력발전소를 건설해야한다는 주장을 고수했다. 이러한 한국 전기기술자들의 주장은 합리적 기술 선택의 외향을 띠었지만, 기실 식민지 시기 한국의 전력체계가 소규모 화력에서 대규모 수력 발전으로 중심으로 전환하며 비약적으로 성장한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식민지의 유산이었다. 결국 당시 한국의 전원개발이 원조자금에 의존했던 만큼 수력중심의 전원개발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지만, 거듭된 협상 과정에서 한국의 전기기술자들은 새로운 기술 선택지로서 화력발전소를 발견할 수 있었다. 미국의 원조기구가 제공한 대규모 화력발전소 기술은 더 이상 낡은 기술이 아닌 자본과 자원을 한층 유연하게 하는 기술 요소였으며, 곧 한국의 전기기술자들은 화력발전을 포함하는 새로운 전력체계 재구성 전략을 수립할 수 있었다.
참고문헌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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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신기조, "전력 외길 57년" 자비출판 2005
10 대한전기학회, "전기학회 25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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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학기 한 권 읽기’를 활용한 학술적 글쓰기 수업 사례
1920∼30년대 한국부엌과 여성담론의 상관관계연구 - 페미니즘 시각에서 본 한국전통부엌과 근대성 -
중등 가사・가정 교과서 주생활 영역에 나타난 주거 근대화 과정에 관한 연구 - 시각 이미지의 활용과 의미를 중심으로 -
문헌을 통해 본 고혼의례 물질문화의 역사적 배경 - 여제와 수륙재의 고혼대상과 상징물이 무속에 미친 영향을 중심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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