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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개소문의 출자에 관한 몇 가지 의문 = Some Questions on the Lineage of Yeongaesom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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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This study aims to speculate the lineage base of Yeongaesomun(淵蓋蘇文). Previous studies on lineage of his family focused on new forces based on Pyeongyang(平壤). However, this study found a piece of contradictory information in records in Samguksaki(三國史記) that he was from the leading family in the east(Dongbudaein 東部大人) or the leading family in the west (hereafter Seobudaein 西部大人). Moreover, the record that king Youngryu(榮留王) ordered Yeongaesomun to supervise construction of Jangsung(長城) was originated from Goguryeobongi(高句麗本紀), not a Chinese history book. Therefore, the study suggested that the record that Yeon family was from the Seobudaein is related with Yeonnobu(涓奴部), one of five districts of Goguryeo(高句麗) and a leading native force of Jolbon(卒本) area. If so, it is natural not to consider Yeon family as a new force of Pyeongyang.
      The fact that narratives involving Yeon family are scattered in Liaodong(遼東) area demonstrates that there was a connection between this area and Yeon family. In addition, Namseng(男生), the eldest son of Yeongaesomun, escaped to Guknaesung(國內城) when he was at odds with his brothers and surrendered to Tang Danasty(唐) with leaders of 13 districts around. However, if Yeon family was a new force of Pyeongyang, it is hard to believe that the leaders of Guknaesung area responded to Namseng. Therefore, there was a possibility that he escaped to Guknaesung as Yeon family was a force with a base in Guknaesung area. In such context, it is suggested that a memorial service to the founder's tomb under the reign years of king Youngryu was a political act for relations between Yeon family and leaders of Guknaes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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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study aims to speculate the lineage base of Yeongaesomun(淵蓋蘇文). Previous studies on lineage of his family focused on new forces based on Pyeongyang(平壤). However, this study found a piece of contradictory information in records in Samg...

      This study aims to speculate the lineage base of Yeongaesomun(淵蓋蘇文). Previous studies on lineage of his family focused on new forces based on Pyeongyang(平壤). However, this study found a piece of contradictory information in records in Samguksaki(三國史記) that he was from the leading family in the east(Dongbudaein 東部大人) or the leading family in the west (hereafter Seobudaein 西部大人). Moreover, the record that king Youngryu(榮留王) ordered Yeongaesomun to supervise construction of Jangsung(長城) was originated from Goguryeobongi(高句麗本紀), not a Chinese history book. Therefore, the study suggested that the record that Yeon family was from the Seobudaein is related with Yeonnobu(涓奴部), one of five districts of Goguryeo(高句麗) and a leading native force of Jolbon(卒本) area. If so, it is natural not to consider Yeon family as a new force of Pyeongyang.
      The fact that narratives involving Yeon family are scattered in Liaodong(遼東) area demonstrates that there was a connection between this area and Yeon family. In addition, Namseng(男生), the eldest son of Yeongaesomun, escaped to Guknaesung(國內城) when he was at odds with his brothers and surrendered to Tang Danasty(唐) with leaders of 13 districts around. However, if Yeon family was a new force of Pyeongyang, it is hard to believe that the leaders of Guknaesung area responded to Namseng. Therefore, there was a possibility that he escaped to Guknaesung as Yeon family was a force with a base in Guknaesung area. In such context, it is suggested that a memorial service to the founder's tomb under the reign years of king Youngryu was a political act for relations between Yeon family and leaders of Guknaes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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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본 논문은 연개소문의 출자 기반에 대하여 검토한 것이다. 연개소문 가문의 출자에 대한 그간의 연구는 그들을 평양에 기반을 둔 신진세력으로 파악하였다. 그러나 필자는 연개소문 가문의 출자를 전하는 삼국사기 기록에서 東部大人이라는 설과 西部大人이라는 상반된 정보가 혼재함을 발견하였다. 더군다나 고구려본기에 기록된 영류왕이 ‘연개소문에게 장성 축조를 감독하게 하였다’는 기록 정보는 중국의 사서에는 없는 고구려의 고유 전승으로 파악된다. 이를 토대로 연개소문 가문이 서부대인이라는 기록은 고구려 五部와 연관하여 졸본 지역의 유력 토착세력인 연노부(涓奴部)와 연결될 수 있음을 제기하였다. 그렇다면 연개소문 가문은 평양의 신진세력으로는 볼 수 없는 것이 자연스럽다.
      연개소문 가문과 관련한 설화들이 요동 지방에 산재하는 것도 이 지역과 연개소문 가문의 독특한 연결점을 제공한다. 게다가 연개소문의 장자인 남생은 형제들인 남산ㆍ남건과 불화가 생기자 국내성 지역으로 피신하였다. 그는 이후 부근의 13개 지역의 유력자와 함께 당에 투항하였다. 그런데 만약 연개소문 가문이 평양의 신진세력이라면, 아무런 연고가 없는 국내성 부근 지역의 세력들이 천남생에게 호응하였다는 것은 쉽사리 납득하기 어렵다. 따라서 남생의 국내성 피신은 연개소문 가문이 졸본을 위시한 국내성 부근에 기반한 세력이었기에 선택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한 맥락에서 영류왕대 행해진 시조묘 제사는 연개소문 가문과 연계한 국내성 세력과의 유대를 위한 정치적 행위였던 것으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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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논문은 연개소문의 출자 기반에 대하여 검토한 것이다. 연개소문 가문의 출자에 대한 그간의 연구는 그들을 평양에 기반을 둔 신진세력으로 파악하였다. 그러나 필자는 연개소문 가문의 ...

      본 논문은 연개소문의 출자 기반에 대하여 검토한 것이다. 연개소문 가문의 출자에 대한 그간의 연구는 그들을 평양에 기반을 둔 신진세력으로 파악하였다. 그러나 필자는 연개소문 가문의 출자를 전하는 삼국사기 기록에서 東部大人이라는 설과 西部大人이라는 상반된 정보가 혼재함을 발견하였다. 더군다나 고구려본기에 기록된 영류왕이 ‘연개소문에게 장성 축조를 감독하게 하였다’는 기록 정보는 중국의 사서에는 없는 고구려의 고유 전승으로 파악된다. 이를 토대로 연개소문 가문이 서부대인이라는 기록은 고구려 五部와 연관하여 졸본 지역의 유력 토착세력인 연노부(涓奴部)와 연결될 수 있음을 제기하였다. 그렇다면 연개소문 가문은 평양의 신진세력으로는 볼 수 없는 것이 자연스럽다.
      연개소문 가문과 관련한 설화들이 요동 지방에 산재하는 것도 이 지역과 연개소문 가문의 독특한 연결점을 제공한다. 게다가 연개소문의 장자인 남생은 형제들인 남산ㆍ남건과 불화가 생기자 국내성 지역으로 피신하였다. 그는 이후 부근의 13개 지역의 유력자와 함께 당에 투항하였다. 그런데 만약 연개소문 가문이 평양의 신진세력이라면, 아무런 연고가 없는 국내성 부근 지역의 세력들이 천남생에게 호응하였다는 것은 쉽사리 납득하기 어렵다. 따라서 남생의 국내성 피신은 연개소문 가문이 졸본을 위시한 국내성 부근에 기반한 세력이었기에 선택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한 맥락에서 영류왕대 행해진 시조묘 제사는 연개소문 가문과 연계한 국내성 세력과의 유대를 위한 정치적 행위였던 것으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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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주성지, "표해록" 한길사 2004

      2 국사편찬위원회, "중국정사조선전 역주 1ㆍ2" 국사편찬위원회

      3 고구려연구재단, "중국 소재 고구려 관련 금석문 자료집 in 북방사 자료총서 4" 고구려연구재단 2005

      4 신채호, "조선상고사" 비봉출판사 2006

      5 이승수, "요동지역 고구려 관련 설화의 문헌 및 현장 조사 연구 in 고구려의 등장과 그 주변" 동북아역사재단 2009

      6 김부식, "삼국사기ⅠㆍⅡ" 한길사

      7 이강래, "삼국사기 열전의 자료 계통" 한국고대사학회 (42) : 137-190, 2006

      8 高福順, "고려기 연구" 동북아역사재단 2003

      9 최일례, "고구려인의 관념에 보이는 단군신화의 투영 맥락 -비류부의 정치적 위상을 중심으로" 한국사상문화학회 (55) : 187-224, 2010

      10 노태돈, "고구려사 연구" 사계절 1999

      1 주성지, "표해록" 한길사 2004

      2 국사편찬위원회, "중국정사조선전 역주 1ㆍ2" 국사편찬위원회

      3 고구려연구재단, "중국 소재 고구려 관련 금석문 자료집 in 북방사 자료총서 4" 고구려연구재단 2005

      4 신채호, "조선상고사" 비봉출판사 2006

      5 이승수, "요동지역 고구려 관련 설화의 문헌 및 현장 조사 연구 in 고구려의 등장과 그 주변" 동북아역사재단 2009

      6 김부식, "삼국사기ⅠㆍⅡ" 한길사

      7 이강래, "삼국사기 열전의 자료 계통" 한국고대사학회 (42) : 137-190, 2006

      8 高福順, "고려기 연구" 동북아역사재단 2003

      9 최일례, "고구려인의 관념에 보이는 단군신화의 투영 맥락 -비류부의 정치적 위상을 중심으로" 한국사상문화학회 (55) : 187-224, 2010

      10 노태돈, "고구려사 연구" 사계절 1999

      11 지배선, "고구려ㆍ백제 유민이야기" 혜안 2006

      12 임기환, "고구려 정치사 연구" 한나래 2004

      13 金基興, "고구려 淵蓋蘇文政權의 한계성" 西巖趙恒來敎授華甲紀念 韓國史學論叢 1992

      14 姜辰垣, "高句麗 始祖廟 祭祀 硏究 - 親祀의 성립과 변천을 중심으로" 54 : 2008

      15 李龍範, "韓滿交流史 硏究" 同和出版公社 1989

      16 李丙燾, "韓國古代史硏究" 博英社 2001

      17 韓國古代史硏究所, "譯註 韓國古代金石文 1" 駕洛國史蹟開發硏究院 1992

      18 박승범, "祭儀를 通해서 본 高句麗의 正體性" 고구려발해학회 (18) : 433-468, 2004

      19 田美姬, "淵蓋蘇文의 執權과 그 政權의 性格 李基白先生古稀紀念韓國史學論叢 上 - 古代篇ㆍ高麗時代篇" 1994

      20 李乃沃, "淵蓋蘇文의 執權과 道敎" 99 : 1983

      21 李弘稙, "淵蓋蘇文에 대한 若干의 存疑 in 韓國古代史의 硏究" 新丘文化社 1971

      22 盧泰敦, "淵蓋蘇文과 金春秋 in 韓國史市民講座 5" 1989

      23 이승수, "淵蓋蘇文 서사의 형성과 전승 경로 - 연개소문의 형상과 관련하여" 동아시아문화연구소 (47) : 151-196, 2010

      24 선봉조, "榮留王代政局主導權의 變化樣相과 淵氏勢力" 고구려발해학회 33 : 95-130, 2009

      25 "東史綱目, 海東繹史, 三國志, 後漢書, 周書, 舊唐書"

      26 李弘稙, "日本書紀所載 高句麗關係記事考 in 韓國古代史의 硏究" 新丘文化社 1971

      27 "新唐書, 資治通鑑, 冊府元龜, 日本書紀"

      28 田溶新, "完譯 日本書紀" 一志社 1989

      29 최진열, "唐人들이 인정한 高句麗人의 正體性 - 唐代墓誌銘에 보이는 高句麗의 別稱(朝鮮·三韓·扶餘) 分析을 중심으로" 동북아역사재단 (24) : 209-255, 2009

      30 "三國史記, 三國遺事, 東國李相國集, 漂海錄, 月汀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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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평가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KCI등재
      2008-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5-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4-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3-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 KCI등재후보
      2001-07-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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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44 0.44 0.41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38 0.38 0.811 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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