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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기 초 출판업자의 계보적 확산 - 고제홍 일가를 중심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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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20세기 초에는 혈연이나 학연 등을 매개로 하여 새롭게 출판업에 진출한 사람이 많았다. 본고에서는 출판업자의 계보적 확산이라는 관점에서 이러한 현상을 이해하기 위하여 고제홍 일가의 출판 활동을 살펴보았다.<BR/> 고제홍 일가의 출판 활동은 1892년경에 고제홍이 서적 판매를 하면서 시작되었다. 1906년부터 서적업에 종사한 장남 고유상은 1907년에 회동서관을 세우면서 본격적으로 출판업에 진출하면서 큰 성공을 거두어 회동서관은 20세기 전반을 대표하는 출판사가 되었다. 그러나 1930년대에 광산업에 투자하였다가 큰 실패를 맛보면서 회동서관은 그 성세를 크게 잃고 말았다.<BR/> 차남인 고언상은 1917년 경에 잠깐 광한서림을 경영하였으나 출판업에서 그리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1918년에 김천희에게 광한서림을 넘겼다. 이후 1920년에 인쇄소인 박문관을 인수하였는데, 고유상이 박문관을 인수하고 확장하면서 이름을 바꾼 계문사 인쇄소를 경영하게 되었다. 그러나 고언상은 1930년대에 광산업에 <BR/>투자 하였다가 큰 실패를 경험하였다.<BR/> 삼남인 고경상은 1910~20년대에는 광익서관을, 1930년대에는 삼문사를 경영하면서 각종 서적을 활발하게 출판하였다. 그는 1910~20년대에 활발하게 기부 활동을 하면서 상해임시정부와 연결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유학생 단체와 문인에 대하여 지나치게 많이 후원하다가 1928년에 광익서관을 조카인 고병돈에게 넘겼다. 1940년대에는 광산업에 투자하였다가 큰 실패를 맛보고 삼문사의 문을 닫게 되었다.<BR/> 고유상의 아들인 고병교와 고병돈 또한 회동서관에서 일을 익히다가 1920년대 중반부터 출판업계에 이름을 알리게 된다. 고병교는 1927년 3월에 합자회사 신명서림의 사장이 되었으며, 같은 해 10월에는 어린이 잡지를 발행하는 새벗사의 사장이 되었다. 그리고 1920년대 후반부터는 회동서관의 경영을 맡았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고병돈은 1928년에 숙부인 고경상으로부터 광익서관을 인수하면서 본격적으로 출판업에 진출하였다. 그러나 부친 고유상의 광산업 투자 실패의 여파로 회동서관은 크게 쇠퇴하였으며, 그의 두 아들이 경영하던 출판사의 출판 활동 또한 여의치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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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기 초에는 혈연이나 학연 등을 매개로 하여 새롭게 출판업에 진출한 사람이 많았다. 본고에서는 출판업자의 계보적 확산이라는 관점에서 이러한 현상을 이해하기 위하여 고제홍 일가의 ...

      20세기 초에는 혈연이나 학연 등을 매개로 하여 새롭게 출판업에 진출한 사람이 많았다. 본고에서는 출판업자의 계보적 확산이라는 관점에서 이러한 현상을 이해하기 위하여 고제홍 일가의 출판 활동을 살펴보았다.<BR/> 고제홍 일가의 출판 활동은 1892년경에 고제홍이 서적 판매를 하면서 시작되었다. 1906년부터 서적업에 종사한 장남 고유상은 1907년에 회동서관을 세우면서 본격적으로 출판업에 진출하면서 큰 성공을 거두어 회동서관은 20세기 전반을 대표하는 출판사가 되었다. 그러나 1930년대에 광산업에 투자하였다가 큰 실패를 맛보면서 회동서관은 그 성세를 크게 잃고 말았다.<BR/> 차남인 고언상은 1917년 경에 잠깐 광한서림을 경영하였으나 출판업에서 그리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1918년에 김천희에게 광한서림을 넘겼다. 이후 1920년에 인쇄소인 박문관을 인수하였는데, 고유상이 박문관을 인수하고 확장하면서 이름을 바꾼 계문사 인쇄소를 경영하게 되었다. 그러나 고언상은 1930년대에 광산업에 <BR/>투자 하였다가 큰 실패를 경험하였다.<BR/> 삼남인 고경상은 1910~20년대에는 광익서관을, 1930년대에는 삼문사를 경영하면서 각종 서적을 활발하게 출판하였다. 그는 1910~20년대에 활발하게 기부 활동을 하면서 상해임시정부와 연결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유학생 단체와 문인에 대하여 지나치게 많이 후원하다가 1928년에 광익서관을 조카인 고병돈에게 넘겼다. 1940년대에는 광산업에 투자하였다가 큰 실패를 맛보고 삼문사의 문을 닫게 되었다.<BR/> 고유상의 아들인 고병교와 고병돈 또한 회동서관에서 일을 익히다가 1920년대 중반부터 출판업계에 이름을 알리게 된다. 고병교는 1927년 3월에 합자회사 신명서림의 사장이 되었으며, 같은 해 10월에는 어린이 잡지를 발행하는 새벗사의 사장이 되었다. 그리고 1920년대 후반부터는 회동서관의 경영을 맡았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고병돈은 1928년에 숙부인 고경상으로부터 광익서관을 인수하면서 본격적으로 출판업에 진출하였다. 그러나 부친 고유상의 광산업 투자 실패의 여파로 회동서관은 크게 쇠퇴하였으며, 그의 두 아들이 경영하던 출판사의 출판 활동 또한 여의치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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