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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18세기 황해도 상정법의 실시와 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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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7368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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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17세기를 전후로 하여 황해도에서는 私大同이 확산되었고 현물로 공물을 납부하는 방식이 점차 사라졌다. 여기에 전쟁 기간동안 외교 · 군사적인 필요에 의하여 공물의 作米가 공식화되었�...

      17세기를 전후로 하여 황해도에서는 私大同이 확산되었고 현물로 공물을 납부하는 방식이 점차 사라졌다. 여기에 전쟁 기간동안 외교 · 군사적인 필요에 의하여 공물의 作米가 공식화되었다. 결국 17세기 중반부터 황해도 지역의 공물은 別收米로 대체되었다. 사대동의 확산도 계속되었는데, 이때 사대동은 지방재정의 재원 마련 방안으로 활용되었다. 그러나 별수미와 사대동이 모든 공납과 지방의 지출을 포괄하는 것은 아니었다. 진상과 같은 상납 부분은 여전히 존재하였고, 사대동은 어디까지나 관례적인 조치였다. 17세기 후반부터는 전국적인 대동법 확산 분위기 속에서 황해도 역시 대동법을 실시해야한다는 논의가 시작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양전을 시행하지 않았고, 외교 비용의 부담이 크다는 이유가 반대의 의견으로 계속해서 제기되었다. 하지만 전국을 대상으로 한 ‘均役’의 흐름은 꺾지 못한 체 1708년(숙종 34) 詳定法의 시행이 결정되었다. 시행 직후에는 칙수 마련 등을 내용으로 한 ‘己丑事目’이 제정되면서 초기 상정법 시행의 토대가 되었다. 또한 상정법의 한계였던 군현별 징수액의 차이는 특정 값으로 수렴되는 양상을 보였고 1745년(영조 21) 상정가는 12두, 별수미는 3두로 통일되었다. 이것으로 상정법 시행의 의도였던 ‘균역’의 의미가 황해도 내외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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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Around the 17th century, Sa-Daedong (私大同, irregular Dedong System) spread in Hwanghae-do (黃海道), and the method of paying tribute in kind gradually disappeared. During Japanese invasions (倭亂) and Manchu aggression (胡亂), the method o...

      Around the 17th century, Sa-Daedong (私大同, irregular Dedong System) spread in Hwanghae-do (黃海道), and the method of paying tribute in kind gradually disappeared. During Japanese invasions (倭亂) and Manchu aggression (胡亂), the method of paying tribute in rice was formulated for diplomatic and military needs. As a result, in the mid-17th century, the method of paying tribute in the Hwanghae-do area was replaced by Byeolsumi (別收米). At the same time, the spread of Sa-Daedong continued, when Sa-Daedong was used as a way to raise funds for the local area. However, Byeolsumi and Sa-Daedong did not cover all tributary payments and local expenditures. The Jinsang (進上, institution of royal tribute) was still not included, and Sa-Daedong was only a customary measure. In the late 17th century, discussions began that the Dedong system (大同法) should be applied to Hwanghae-do as well as the spread of the Daedong system nationwide. There was opposition, but the implementation of the Hwanghae-do’s Sangjeong system (詳定法) was finally decided in 1708. Right after the system was enforced, the “Gichuksamok (己丑事目, regulations recognized in 1709)” was enacted, which laid the foundation for the early implementation of the Sangjeong system. And differences in regional burdens, which were the limitations of Sangjeong system, gradually converge to one value. Consequentially, in 1745, Sangjeong-ga(詳定價) was officially set at 12do(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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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요약
      • 머리말
      • Ⅰ. 17세기 초 · 중반 사대동 확산과 별수미 정립
      • Ⅱ. 17세기 후반∼18세기 초반 공납제 개혁 논의와 상정법 시행
      • Ⅲ. 18세기 초 · 중반 상정사목 제정과 상정가 통일
      • 요약
      • 머리말
      • Ⅰ. 17세기 초 · 중반 사대동 확산과 별수미 정립
      • Ⅱ. 17세기 후반∼18세기 초반 공납제 개혁 논의와 상정법 시행
      • Ⅲ. 18세기 초 · 중반 상정사목 제정과 상정가 통일
      • 맺음말
      • 참고문헌
      •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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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朴萬鼎, "해서암행일기 : 암행어사, 황해도에 출두하다" 서해문집 2015

      2 문광균, "조선후기 경상도 재정 연구" 민속원 2019

      3 최주희, "조선후기 宣惠廳의 운영과 中央財政構造의 변화 : 재정기구의 합설과 지출정비 과정을 중심으로" 고려대학교 대학원 2014

      4 "조선왕조실록"

      5 "승정원일기"

      6 "비변사등록"

      7 이정철, "대동법 : 조선 최고의 개혁" 역사비평사 2010

      8 "萬機要覽"

      9 丁若鏞, "經世遺表"

      10 李肯翊, "燃藜室記述"

      1 朴萬鼎, "해서암행일기 : 암행어사, 황해도에 출두하다" 서해문집 2015

      2 문광균, "조선후기 경상도 재정 연구" 민속원 2019

      3 최주희, "조선후기 宣惠廳의 운영과 中央財政構造의 변화 : 재정기구의 합설과 지출정비 과정을 중심으로" 고려대학교 대학원 2014

      4 "조선왕조실록"

      5 "승정원일기"

      6 "비변사등록"

      7 이정철, "대동법 : 조선 최고의 개혁" 역사비평사 2010

      8 "萬機要覽"

      9 丁若鏞, "經世遺表"

      10 李肯翊, "燃藜室記述"

      11 李濟, "海西日記"

      12 李裕元, "林下筆記"

      13 김옥근, "朝鮮王朝財政史硏究 Ⅲ" 일조각 1988

      14 김덕진, "朝鮮後期經濟史硏究" 선인 2002

      15 임성수, "朝鮮後期戶曹의 財政運營硏究: 加入·鑄錢을 중심으로" 고려대학교 2019

      16 소순규, "朝鮮初期貢納制운영과 貢案改定" 고려대학교 2017

      17 "御定洪翼靖公奏藁"

      18 "增補文獻備考"

      19 권기중, "『조선왕조 재정시스템의 재발견- 17~19세기 지방재정사연구』" 역사교육연구회 (108) : 255-262, 2008

      20 소순규, "『세종실록』 지리지 황해도 전결 수에 대한 분석: 양전 방식의 변화와 전결 수 변동을 중심으로" 규장각한국학연구원 (92) : 161-196, 2020

      21 송양섭, "18세기 조선의 공공성과 민본이념" 태학사 2015

      22 최주희, "18세기 전반 宣惠廳의 재정운영 양상 - 同春堂 後孫家 所藏 『消遣法』을 중심으로 -" 한국고문서학회 47 : 149-183, 2015

      23 이명제, "17세기 청․조선 관계 연구" 동국대학교 2021

      24 정수환, "17세기 말 황해도 지방의 동전유통-御史 朴萬鼎의《海西暗行日記》분석-" 민족문화연구소 (58) : 695-727, 2014

      25 임혜균, "17∼18세기 黃海道지역의 淸使接對문제와 「海西支勅定例」의 성립" 고려대학교 2018

      26 최주희, "16세기 말~17세기 전반 唐糧의 성격에 대한 검토" 조선시대사학회 (89) : 77-107, 2019

      27 이정수, "16세기 黃海道의 米穀生産과 商品流通- 임꺽정 난과 관련하여 -" 19 : 1995

      28 박현순, "16∼17세기 貢納制운영의 변화"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38 :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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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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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1.11 1.11 1.03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1.03 1.05 2.153 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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