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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高麗時代 海上交流와 ‘海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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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e maritime trade thrived between the Goryeo Dynasty and China thanks to the need of the Goryeo people who wanted to accept the advanced civilization of China and the effort of the marine commerce in China that wanted economic benefits through the tr...

      The maritime trade thrived between the Goryeo Dynasty and China thanks to the need of the Goryeo people who wanted to accept the advanced civilization of China and the effort of the marine commerce in China that wanted economic benefits through the trade. In contrast, there were also attempts to ban the free trade in the sea. Since King Taejo of Goryeo expelled the diplomat from Qidan into exile, the diplomatic relations worsened so that ships of Goryeo were banned from sailing over the sea of Qidan. Since then, King Seongjong of Goryeo banned free movement of Goryeo marine trade ships to China except for diplomats of Goryeo. In addition, the Song dynasty also banned marine commerce ships from the Goryeo over their seas because Goryeo was one of the tributary states of Qidan. However, since the war between Qidan and Goryeo broke out, Goryeo not only continued the tributary relations of Qidan but also sent diplomats to the Song Dynasty and allowed trades at limited places such as the Port of Yeseong. In addition, the Song also acquiesced to the marine trades to achieve the diplomatic policy that toppled the Qidan by uniting with Goryeo. As a result, those days were recognized as one of the most active marine trades occurred in history.
      The marine trade between Goryeo and China under the Yuan Dynasty’s interference period continued in a variety of ways while no ban on the marine trade was regulated between two nations. As if no border existed between Goryeo and China, everybody could move freely with simple document while the marine trade could also move to anywhere in the Shandong Peninsula or the Yangtze River. Merchants of both countries chose the trade route in consideration of the trade convenience and profits. As a result, a marine trade route that connected the port of Yeseong in Goryeo and Jiangsu and Zhejiang in China was in great demand.
      However, since the Ming Dynasty founded at the end of Goryeo enforced the “Policy of Ban on the Maritime Trade”, it influenced greatly on the way of trades in Goryeo. The port of Yeseong, which was the center of the marine trade with China, lost its function gradually whereas trades via the border between Goryeo and the Ming increased more and more although the trades via the border was banned in principle during the King Gongyang time. As this ban on the maritime trade as well as traded via the border continued, diplomats of Goryeo participated in the trade actively when they went to China at the time of King Wu and King Gongyang and created trade-related incidents frequently. The circumstance of the trade with China at the end of the Goryeo Dynasty was completely different from the early time of Goryeo when marine merchants of Goryeo traded freely with China and Chinese ships arrived at many places in Gory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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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머리말
      • 1. 高麗ㆍ中國 사람들의 海上交流와 相互 隣接地域 認識
      • 2. 高麗前期 海上交流와 ‘海禁’
      • 3. 高麗後期 海上交流와 明의 海禁
      • 5. 맺음말
      • 머리말
      • 1. 高麗ㆍ中國 사람들의 海上交流와 相互 隣接地域 認識
      • 2. 高麗前期 海上交流와 ‘海禁’
      • 3. 高麗後期 海上交流와 明의 海禁
      • 5. 맺음말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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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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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이현모, "羅末麗初 晋州地域의 豪族과 그 動向" 30 : 2003

      5 山內晋次, "奈良平安期日本とアジア" 吉川弘文館 2003

      6 오카모토 히로미치, "해역아시아사입문" 민속원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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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장동익, "한중일의 해양인식과 해금" 동북아역사재단 2007

      9 홍성구, "한중일의 해양인식과 해금" 동북아역사재단 2007

      10 박종기, "한국해양사 Ⅲ(고려시대)"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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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山內晋次, "奈良平安期日本とアジア" 吉川弘文館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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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1.63 1.63 1.34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1.22 1.08 1.624 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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