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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후기 서울 송동(宋洞)의 역사·문화적 의미와 장소성 = The Historical and Cultural Meaning and Placeness of Song-dong in Seoul in the Late Chosu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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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e placeness projected on a historical person or event is greatly influenced by power relations, and designation is also determined by various factors, such as natural conditions, historical events, or administrative measures or geographical percepti...

      The placeness projected on a historical person or event is greatly influenced by power relations, and designation is also determined by various factors, such as natural conditions, historical events, or administrative measures or geographical perceptions (feng shui interpretation).
      Therefore, this study focused on the location of Song-dong closely related to Uam Song Si-yeol between the names of Seoul in terms of the political and social status of historical figures projected by place names.
      Songdong in Seoul during the Joseon Dynasty has a historical and cultural place identity in two aspects. One was that Songdong was in competition with Pudong, where Yunhui lived during the time of Yesong(禮訟), and was recognized as Songdong = Song Siyeol and Pudong = Yunhui. In the end, the perception that Songdong was called “songdong” by attaching his surname, Song Si-yeol, because it was the place where he lived when he was in Seoul. In other words, Songdong was a political and social space symbolizing Song Si-yeol, who was influential politically and academically at the time. Another was a space where yangbanes felt spring and avoided the heat, and a space where they gathered, held banquets, and wrote poems.
      After Song Si-yeol’s death, memorials and worship services began. As a result, a place called Songdong and a rock with four letters inscribed with the word “jeungjubyeoglib” have been turned into a place of remembrance. The scholars who visited Songdong looked at the four letters and tried to respect and follow Song Si-yeol’s academic views.
      Songdong was a political and social space during Song Si-yeol’s lifetime, and after his death, it became a place of memorials and honor, such as Huyang-dong in Cheongju. In other words, the placeness of Songdong in Seoul during the Joseon Dynasty was changed from a place of political culture to a place of memorial and hon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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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에 투영된 장소성은 권력관계의 지대한 영향을 받고, 지명 또한 자연적 조건, 역사적 사건, 또는 행정적 조치나 지리적 인식(풍수적 해석) 등 다양한 요인들에 의해 결...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에 투영된 장소성은 권력관계의 지대한 영향을 받고, 지명 또한 자연적 조건, 역사적 사건, 또는 행정적 조치나 지리적 인식(풍수적 해석) 등 다양한 요인들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본 연구는 역사적 인물의 정치 사회적 위상이 지명에 투영되어 있다는 관점에서 서울의 지명 가운데 우암 송시열과 관련이 깊은 송동의 장소성에 주목하였다.
      조선시대 서울의 宋洞은 두 가지 측면에서 역사·문화적으로 장소성을 갖는다. 하나는 송시열의 경저가 있던 곳으로, 예송정국시기에 尹鑴가 거주하던 浦洞 과 경쟁관계에 있었으며 송동=송시열, 포동=윤휴로 인식되었고, 그의 姓을 붙여‘송동’이라고 했다는 인식이 일반화되었다. 즉 송동은 당시 산림의 종장이었던 송시열을 상징하는 정치 사회적 공간이었다. 다른 하나는 송동에 앵두꽃이 많아 賞 春과 避暑의 장소로 유명하였으며 양반 사족들의 詩會의 공간이었다. 그리고 18 세기부터 그에 대한 추숭화가 진행되면서 송동과 ‘曾朱壁立’ 네 글자가 새겨진 바위는 景慕의 공간으로 바뀌었다. 송동을 방문하는 학자들은 증주벽립 네 글자를보면서 송시열의 학문관을 견지하고자 하였다.
      또한, 당시 문인과 黨與의 인사들은 증주벽립 네 글자를 탁본하여 觀省의 자료로 삼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일례로 1786년 변성우가 증주벽립 네 글자를 탁본하여 제주도로 돌아갔는데, 이를 1856년에 橘林書院 바위에 摹刻하였다. 이로써 송동이 갖는 장소성이 서울 송동에 국한되지 않고 지역적으로 확대되었다고볼 수 있을 것이다.
      송동은 송시열 생전에는 정치·사회적 공간이었고, 사후에는 청주의 華陽洞과같이 景慕의 공간이 되어 퇴계 이황의 청량산 일대와 같은 장소성을 갖게 된 것이다. 즉 조선시대 서울 宋洞의 장소성은 ‘정치 문화의 공간에서 경모의 공간으로’ 라고 요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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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이효숙, "화서학파 인물들의 시가에 나타난 옥계구곡의 장소성" 국어국문학회 (168) : 265-296, 2014

      2 "해동야언"

      3 "한국고전종합DB"

      4 윤천근, "퇴계 이황의 ‘감성철학’ ― ‘청량산’의 장소성을 중심으로" 퇴계학연구원 (141) : 39-73, 2017

      5 권선정, "지명의 사회적 구성 - 과거 懷德縣의 宋村을 사례로" 국토지리학회 38 (38): 167-182, 2004

      6 김순배, "지명과 권력" 경인문화사 2012

      7 정인숙, "조선후기 시가를 통해 본 서울의 장소성과 그 의미" 한국시가학회 34 : 119-150, 2013

      8 안대회, "조선을 사로잡은 꾼들" 한겨레출판 2010

      9 "조선왕조실록"

      10 유승희, "조선시대 서울 연구의 흐름과 과제-역사학계의 연구동향을 중심으로-" 서울역사편찬원 (100) : 85-135, 2018

      1 이효숙, "화서학파 인물들의 시가에 나타난 옥계구곡의 장소성" 국어국문학회 (168) : 265-296,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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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유승희, "조선시대 서울 연구의 흐름과 과제-역사학계의 연구동향을 중심으로-" 서울역사편찬원 (100) : 85-135, 2018

      11 이현진, "조선시대 ‘상경(上京)’을 통해 본수도 한양의 성격" 서울학연구소 (60) : 63-91, 2015

      12 이효숙, "조선 후기 서인 노론계 문인들의 구곡시와 장소성" 국제어문학회 (59) : 109-134, 2013

      13 박희용, "조선 초기 경복궁 서쪽 지역의 장소성과 세종 탄생지" 서울학연구소 (47) : 155-185, 2012

      14 이종묵, "조선 선비의 꽃구경과 운치 있는 시회" 한국한시학회 (20) : 299-335, 2012

      15 김은희, "정지상 시의 장소성에 대한 일고찰—서경을 중심으로" 반교어문학회 (36) : 227-265, 2014

      16 "정조어찰첩"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2009

      17 "음애일기"

      18 유준상, "은진송씨의 수원 만의 세거과정연구" 한국학연구소 49 : 229-257, 2018

      19 송정란, "영조대 남대문의 장소성 -권위의 공간에서 권력의 장소로-" 역사문화학회 21 (21): 259-282, 2018

      20 "연려실기술"

      21 "승정원일기"

      22 이홍식, "서산시의 장소성 연구 −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857∼?)과 연계하여 −" 온지학회 (57) : 35-60, 2018

      23 "별건곤"

      24 "대동학회월보"

      25 김은희, "담양의 장소성에 대한 일고찰 - <면앙정가>와 <성산별곡>을 중심으로" 한국시가문화학회 (35) : 85-120, 2015

      26 최상은, "고전시가의 이념과 현실, 그리고 공간과 장소 의식 탐색 -송강가사를 통한 가능성 모색-" 한국시가학회 34 : 5-34, 2013

      27 "臨齋日記"

      28 "耽羅紀年"

      29 "漢陽都城圖"

      30 "漢京識略"

      31 "海隱文集"

      32 "南陽洪氏世譜"

      33 "京城府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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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8-10-02 학술지명변경 한글명 : 서울학연구 -> 서울학연구 KCI등재
      2006-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5-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4-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FAIL ()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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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63 0.63 0.68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61 0.62 1.483 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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