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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金銅冠을 통해 본 百濟의 地方統治와 對外交流 = A Study on the Local Governance System and its exchanges with foreign countries of Baekje: Focused on Gilt Bronzed Ca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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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4887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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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In this article, I studied the Gilt Bronze Crowns intensively excavated in Baekje’s major lodgement areas in the period between 4th and 5th century and the features of the Gilt Bronze Crown owners and their relationship with the central government o...

      In this article, I studied the Gilt Bronze Crowns intensively excavated in Baekje’s major lodgement areas in the period between 4th and 5th century and the features of the Gilt Bronze Crown owners and their relationship with the central government of Baekje dynasty. Also, through this study, I considered Baekje’s Local Governance System and its exchanges with foreign countries.
      In the end of 4th century and the early 5th century, Baekje dynasty was experiencing an explosive period. Especially, in the early 5th century, Baekje needed its internal cohesion more than any time because of Goguryeo’s attempt to expand its territory toward the south. Thus, the central government of Baekje dynasty strengthened its control over the regions, keeping the close bonds with the powerful local people which had strong influence traditionally and also been located in very important areas geographically.
      In the process of expanding the territory toward the south, Baekje gradually began to secure the lodgement areas to advance both domestically and internationally. Especially, the central power of Baekje dynasty tried to reinforce the control over the local lodgement areas by giving the local heads the Prestige Goods, such as the Gilt Bronze Crowns. These Gilt Bronze Crowns are being excavated in the tombs at the Baekje’s lodgement areas such as Gong-ju Su chon-ri tombs, Naju Shinchon-ri 9th tomb, Seo-san Bujang-ri 5th tomb and so forth.
      Like this, these Gilt Bronze Crowns excavated in the regions are the good evidences showing the fact of Baekje’s Damro system (檐魯制). Considering that Baekje’s Local Governance System had evolved from Bu system (部制) to Damro system (檐魯制) and to 5 Bang system (5方制), it can be easily inferred that the gilt bronze crowns made in the period between 4th and 5th century were the fruits of Damro system.
      Especially given that these Gilt Bronze Crowns are discovered in the tombs of the regional powerful people, the term, ‘子弟宗族’ should not only mean the actual descendants, siblings and relatives based on just blood, but also cover more expanded relationships including the local heads (擬制的 子弟宗族). Also, in Baekjae dynasty, in addition to Bu or Damro system, King and Feudal Lord and Governor System existed as a system to organize powerful noble class and these Gilt Bronze Crowns can be seen as a part of the formal attire the heads of each Damro, such as King, Feudal Lord and Governor, would possibly wear.
      On the other hand, the Baekje’s style Gilt Bronze Crowns excavated in Ok-jeon 23rd tomb and Edahunayama tomb in Kushu area, (the tombs of Dae-Gaya’s heads) resulted from the process of actively exchanging with Wae, as the Baekjae's movement against Goguryeo’s pressure in 4th and 5th century and this was not just cultural exchanges, but the ones offered by Baekje intentionally for the mutual political purpo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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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본고는 최근 4∼5세기대 백제의 지방 가운데 중요 거점지역에서 집중적으로 출토되고 있는 금동관과 그것을 소지한 피장자의 성격, 중앙과의 관계 등을 살펴 백제의 지방통치체제 및 대외교...

      본고는 최근 4∼5세기대 백제의 지방 가운데 중요 거점지역에서 집중적으로 출토되고 있는 금동관과 그것을 소지한 피장자의 성격, 중앙과의 관계 등을 살펴 백제의 지방통치체제 및 대외교류에 대해 고찰하였다.
      4세기 말∼5세기 초 백제는 격정의 시기였다. 특히 5세기 초 고구려의 남진정책과 직접 대면한 백제는 내부적인 결속 필요성이 더욱 증대되었다. 이에 백제 중앙은 전통적으로 재지세력의 영향력이 강하고, 지리적으로 중요한 지역에 위치한 지방 세력과 유대관계를 긴밀하게 유지하면서 동시에 통제력도 강화해 나갔다.
      백제는 남쪽으로 영역을 확장시키는 과정에서 점차 대내외적인 진출의 거점까지 확보하기 시작했다. 백제는 특히 거점 지역의 수장층에게 금동관과 같은 최상위 위세품을 사여하여 통제력의 강화를 꾀하였다. 공주 수촌리 고분군이나 나주 신촌리 9호분, 서산 부장리 5호분 등 바로 백제 거점지역의 재지세력 무덤들에서 금동관이 출토되고 있다.
      이처럼 지방에서 발견되는 금동관은 백제 담로제의 실상을 보여주는 좋은 증거물이다. 백제의 지방통치체제가 部制에서 시작하여 檐魯制를 거쳐 5方制로 발전해 간 것으로 볼 때 4∼5세기에 제작된 금동관은 자연히 담로제의 산물로 볼 수 있다.
      무엇보다 금동관이 지방의 재지세력의 무덤에서 발견되는 것으로 볼 때 [梁書]에서 말하는 ‘子弟宗族’은 실제 혈연상의 자제와 종족 뿐 아니라 그 범위를 훨씬 더 넓혀 지방 수장층을 포함한 擬制的인 子弟宗族의 관계도 포함시켜야 한다. 그리고 백제에는 부제나 담로제 이외에 유력한 귀족들을 편제하기 위한 제도로서 왕⋅후⋅태수⋅장군과 같은 爵號制가 있었으며, 금동관은 이러한 왕⋅후호를 받은 檐魯의 長이 착용하였던 의관의 일부라고 볼 수 있다.
      한편 대가야의 수장층 무덤인 옥전 23호에서 출토된 금동관과 큐슈지역 에다후나야마[江田船山]고분에서 출토된 백제 양식의 금동관은 4~5세기대 고구려의 압박에 대응하여 백제가 가야, 왜와 적극적 교류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파생된 것이며, 단순한 문물교류차원이 아닌 상호간의 특정한 정치적 목적에서 백제가 제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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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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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이재석, "소위 왜계백제관료와 야마토 왕권" 한국고대사학회 20 :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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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3-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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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82 0.82 0.89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85 0.87 1.84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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