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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德壽宮 贊侍室 편찬의 『日記』 자료를 통해본 식민지시대 고종의 일상 = A study on the daily life of Grand-King of Lee ko-jong during the colonial period through the Daily Records of The office of Secretariat for Grand-King of Lee ko-jong in Duk-su pa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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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이 연구에서는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된 덕수궁 찬시실 편찬의 총 10종 96책 『日記』 자료를 검토하여 『일기』 자료의 사료적 가치와 함께 식민지시대 고종의 일상을 살펴보았다. 이 『일기』 자료는 덕수궁 찬시실이 업무를 개시한 1911년 2월 1일자부터 시작하여 이태왕 고종이 세상을 떠난 다음날인 1919년 1월 22일에 종료된다. 따라서 이 『일기』 자료는 식민지시대 8년간을 살았던 이태왕 고종의 생활 전반을 포괄하고 있다.
      식민지시대 덕수궁 찬시실은 이태왕 고종의 침전인 함녕전 가까이에 있었다. 식민지시대에는 환관들이 대거 도태되었기에 덕수궁 찬시실은 조선시대 承政院의 업무뿐만 아니라 內班院의 업무까지도 관장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덕수궁 찬시실 편찬의 『일기』 자료에는 조선시대의 『승정원일기』 보다도 더 내밀하게 이태왕 고종의 일거수일투족이 기록되었다.
      1911년 2월 1일자로 主任贊侍 김춘희, 贊侍 이필균, 贊侍 이은우 등 3명의 贊侍가 임명됨으로써 덕수궁 찬시실은 이날부터 공식적인 업무를 시작했다. 덕수궁 찬시실에서 편찬한 『일기』는 이태왕 고종의 동정을 중심으로 기록되어 있다. 기록 순서는 새벽의 就寢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시간대 별로 되어 있다. 사용된 문자는 한문이며 필사본이다. 특이한 사실은 고종의 就寢 시간부터 기록되기 시작한다는 사실이다. 보통의 경우라면 아침은 일어나는 시간이지만 고종은 親政 이후 새벽에 잠자리에 들었다가 아침 늦게 일어나는 생활습관이 들었기에 이런 결과가 나타났다.
      『일기』의 기록 순서 또는 기록 내용은 거의 정형화되었다. 이태왕 고종의 就寢에 관한 기록 다음으로는 이왕 순종의 起寢에 관한 기록이 이어졌다. 그 뒤를 이어 오전에는 보통 璿源殿 · 景孝殿 · 懿孝殿의 典祀補 省記, 청소 상황, 아침수라준비 상황, 이태왕 고종의 起寢, 이태왕 고종의 飮茶 등에 관한 내용이 기록되었다. 점심 수라에 이어서 오후에는 덕수궁 숙직자들의 명단인 省記, 손님 접견, 선원전 · 경효전 · 의효전을 관장하는 전사보들의 보고, 저녁 수라, 이왕 순종의 就寢 등에 관한 내용이 기록되었다. 이런 내용을 기본으로 하여 변동되는 사항들이 추가로 기록되곤 하였다.
      이태왕 고종의 일상은 1911년 7월 20일에 엄씨가 세상을 떠난 후 크게 변하였다. 그 이전에는 주로 永福堂의 엄씨와 함께 생활하던 이태왕 고종은 엄씨 사후 福寧堂 양씨, 光華堂 이씨, 寶賢堂 정씨, 三祝堂 김씨 등 수많은 궁녀들과 관계하면서 아들 두 명과 딸 한명을 보았다. 식미지시대의 고종은 일제의 의해 강제 유폐되다시피 한 덕수궁에서 후궁들과 어린 아이들을 보는 낙으로 하루하루를 살았다. 이런 내용들이 덕수궁 찬시실 편찬의 『일기』에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태왕 고종의 8년간 식민지 생활이 기록된 『일기』는 이태왕 고종의 동정을 장악한 贊侍들이 기록하였기에 식민지시대 이태왕 고종의 일상을 그 어떤 자료보다도 더욱 정확하게 보여준다. 아울러 일제가 식민지 시대 이태왕 고종을 어떻게 통제, 관리하였는지에 관해서도 가장 정확한 사실을 전해주기도 한다.
      그러므로 식민지시대 일제의 이왕가 통제정책 및 이태왕 고종 개인에 대한 연구를 위해서는 덕수궁 찬시실 편찬의 본 『일기』 자료가 적극 활용될 필요가 있다. 또한 덕수궁 찬시실 편찬의 『일기』 자료는 조선시대 『승정원일기』 자료의 전통을 계승하였다는 점에서, 기왕의 『승정원일기』 전통이 식민지시기에 어떻게 왜곡, 변형되었는지를 탐구하기 위해서도 적극 연구되고 활용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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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연구에서는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된 덕수궁 찬시실 편찬의 총 10종 96책 『日記』 자료를 검토하여 『일기』 자료의 사료적 가치와 함께 식민지시대 고종의 일상을 살펴보았다...

      이 연구에서는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된 덕수궁 찬시실 편찬의 총 10종 96책 『日記』 자료를 검토하여 『일기』 자료의 사료적 가치와 함께 식민지시대 고종의 일상을 살펴보았다. 이 『일기』 자료는 덕수궁 찬시실이 업무를 개시한 1911년 2월 1일자부터 시작하여 이태왕 고종이 세상을 떠난 다음날인 1919년 1월 22일에 종료된다. 따라서 이 『일기』 자료는 식민지시대 8년간을 살았던 이태왕 고종의 생활 전반을 포괄하고 있다.
      식민지시대 덕수궁 찬시실은 이태왕 고종의 침전인 함녕전 가까이에 있었다. 식민지시대에는 환관들이 대거 도태되었기에 덕수궁 찬시실은 조선시대 承政院의 업무뿐만 아니라 內班院의 업무까지도 관장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덕수궁 찬시실 편찬의 『일기』 자료에는 조선시대의 『승정원일기』 보다도 더 내밀하게 이태왕 고종의 일거수일투족이 기록되었다.
      1911년 2월 1일자로 主任贊侍 김춘희, 贊侍 이필균, 贊侍 이은우 등 3명의 贊侍가 임명됨으로써 덕수궁 찬시실은 이날부터 공식적인 업무를 시작했다. 덕수궁 찬시실에서 편찬한 『일기』는 이태왕 고종의 동정을 중심으로 기록되어 있다. 기록 순서는 새벽의 就寢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시간대 별로 되어 있다. 사용된 문자는 한문이며 필사본이다. 특이한 사실은 고종의 就寢 시간부터 기록되기 시작한다는 사실이다. 보통의 경우라면 아침은 일어나는 시간이지만 고종은 親政 이후 새벽에 잠자리에 들었다가 아침 늦게 일어나는 생활습관이 들었기에 이런 결과가 나타났다.
      『일기』의 기록 순서 또는 기록 내용은 거의 정형화되었다. 이태왕 고종의 就寢에 관한 기록 다음으로는 이왕 순종의 起寢에 관한 기록이 이어졌다. 그 뒤를 이어 오전에는 보통 璿源殿 · 景孝殿 · 懿孝殿의 典祀補 省記, 청소 상황, 아침수라준비 상황, 이태왕 고종의 起寢, 이태왕 고종의 飮茶 등에 관한 내용이 기록되었다. 점심 수라에 이어서 오후에는 덕수궁 숙직자들의 명단인 省記, 손님 접견, 선원전 · 경효전 · 의효전을 관장하는 전사보들의 보고, 저녁 수라, 이왕 순종의 就寢 등에 관한 내용이 기록되었다. 이런 내용을 기본으로 하여 변동되는 사항들이 추가로 기록되곤 하였다.
      이태왕 고종의 일상은 1911년 7월 20일에 엄씨가 세상을 떠난 후 크게 변하였다. 그 이전에는 주로 永福堂의 엄씨와 함께 생활하던 이태왕 고종은 엄씨 사후 福寧堂 양씨, 光華堂 이씨, 寶賢堂 정씨, 三祝堂 김씨 등 수많은 궁녀들과 관계하면서 아들 두 명과 딸 한명을 보았다. 식미지시대의 고종은 일제의 의해 강제 유폐되다시피 한 덕수궁에서 후궁들과 어린 아이들을 보는 낙으로 하루하루를 살았다. 이런 내용들이 덕수궁 찬시실 편찬의 『일기』에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태왕 고종의 8년간 식민지 생활이 기록된 『일기』는 이태왕 고종의 동정을 장악한 贊侍들이 기록하였기에 식민지시대 이태왕 고종의 일상을 그 어떤 자료보다도 더욱 정확하게 보여준다. 아울러 일제가 식민지 시대 이태왕 고종을 어떻게 통제, 관리하였는지에 관해서도 가장 정확한 사실을 전해주기도 한다.
      그러므로 식민지시대 일제의 이왕가 통제정책 및 이태왕 고종 개인에 대한 연구를 위해서는 덕수궁 찬시실 편찬의 본 『일기』 자료가 적극 활용될 필요가 있다. 또한 덕수궁 찬시실 편찬의 『일기』 자료는 조선시대 『승정원일기』 자료의 전통을 계승하였다는 점에서, 기왕의 『승정원일기』 전통이 식민지시기에 어떻게 왜곡, 변형되었는지를 탐구하기 위해서도 적극 연구되고 활용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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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During the colonial period, The office of Secretariat for Grand-King of Lee ko-jon in Duk-su palace had written Daily Records for 8 years. therefore the daily life of Grand-King of Lee ko-jong during the colonial period had been recorded in these Daily Records. these Daily Records collections have been possessed by the Jangseogak, which is the library of The academy of korean studies. the volume of these Daily Records collections are 96 books.
      But these Daily Records collections has not yet introduced to the academic. in order to improve study on Grand-King of Lee ko-jon in Duk-su palace during colonial period and japanese colonial rule also, these Daily Records collections should be introduced to the academic.
      The office of Secretariat for Grand-King of Lee ko-jong in Duk-su palace was the one of branch of Lee Royal Household, which replaced Department of the Royal Household after Treaty of Annexation between Great Han Empire and Japan.
      The office of Secretariat for Grand-King of Lee ko-jong in Duk-su palace succeeded the tradition of Royal Secretariat in joseon dynasty. also, Daily Records of The office of Secretariat for Grand-King of Lee ko-jon in Duk-su palace succeeded the tradition of Daily Records of the Royal Secretariat in joseon dynasty.
      During the colonial period, The office of Secretariat for Grand-King of Lee ko-jong in Duk-su palace, Lee Royal Household positioned near the Hamnyung-jeon(咸寧殿), which was the sleeping building for Grand-King of Lee ko-jon. The office of Secretariat for Grand-King of Lee ko-jong in Duk-su palace could have recorded everything related to Grand-King of Lee ko-jong.
      In order to study on the transformation of the tradition of Daily Records of the Royal Secretariat in joseon dynasty during the colonial period and the daily life of Grand-King of Lee ko-jong during the colonial period, these Daily Records collections should be used more active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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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uring the colonial period, The office of Secretariat for Grand-King of Lee ko-jon in Duk-su palace had written Daily Records for 8 years. therefore the daily life of Grand-King of Lee ko-jong during the colonial period had been recorded in these Dail...

      During the colonial period, The office of Secretariat for Grand-King of Lee ko-jon in Duk-su palace had written Daily Records for 8 years. therefore the daily life of Grand-King of Lee ko-jong during the colonial period had been recorded in these Daily Records. these Daily Records collections have been possessed by the Jangseogak, which is the library of The academy of korean studies. the volume of these Daily Records collections are 96 books.
      But these Daily Records collections has not yet introduced to the academic. in order to improve study on Grand-King of Lee ko-jon in Duk-su palace during colonial period and japanese colonial rule also, these Daily Records collections should be introduced to the academic.
      The office of Secretariat for Grand-King of Lee ko-jong in Duk-su palace was the one of branch of Lee Royal Household, which replaced Department of the Royal Household after Treaty of Annexation between Great Han Empire and Japan.
      The office of Secretariat for Grand-King of Lee ko-jong in Duk-su palace succeeded the tradition of Royal Secretariat in joseon dynasty. also, Daily Records of The office of Secretariat for Grand-King of Lee ko-jon in Duk-su palace succeeded the tradition of Daily Records of the Royal Secretariat in joseon dynasty.
      During the colonial period, The office of Secretariat for Grand-King of Lee ko-jong in Duk-su palace, Lee Royal Household positioned near the Hamnyung-jeon(咸寧殿), which was the sleeping building for Grand-King of Lee ko-jon. The office of Secretariat for Grand-King of Lee ko-jong in Duk-su palace could have recorded everything related to Grand-King of Lee ko-jong.
      In order to study on the transformation of the tradition of Daily Records of the Royal Secretariat in joseon dynasty during the colonial period and the daily life of Grand-King of Lee ko-jong during the colonial period, these Daily Records collections should be used more active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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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국문요약
      • Ⅰ. 머리말
      • Ⅱ. 식민지시대의 李王職과 德壽宮 贊侍室
      • Ⅲ. 德壽宮 贊侍室 편찬의 『日記』 자료
      • Ⅳ. 『日記』 자료를 통해본 고종의 일상
      • 국문요약
      • Ⅰ. 머리말
      • Ⅱ. 식민지시대의 李王職과 德壽宮 贊侍室
      • Ⅲ. 德壽宮 贊侍室 편찬의 『日記』 자료
      • Ⅳ. 『日記』 자료를 통해본 고종의 일상
      • Ⅴ. 맺음말
      •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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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李太王王族譜"

      2 신석호, "해제, In 승정원일기 제1책(탈초영인본)" 국사편찬위원회 1961

      3 김용숙, "조선조 궁중풍속연구" 일지사 443-, 2000

      4 신명호, "일제하 李王職과 李王家 족보" 11 : 1996

      5 이승우, "일제하 일본의 조선왕실에 대한 인식과 李王職의 운영" 동아대학교 2007

      6 김기훈, "일제하 在日 王公族의 형성배경과 관리체계" 부경대학교 2009

      7 이윤상, "일제하 '조선왕실'의 지위와 이왕직의 기능" 규장각한국학연구원 (40) : 315-342, 2007

      8 "매일신보 1914.1"

      9 "덕수궁 복원정비기본계획, In 덕수궁지도" 문화재청 542-543, 2005

      10 신명호, "대한제국기의 御眞 제작" 조선시대사학회 33 (33): 245-280, 2005

      1 "李太王王族譜"

      2 신석호, "해제, In 승정원일기 제1책(탈초영인본)" 국사편찬위원회 1961

      3 김용숙, "조선조 궁중풍속연구" 일지사 443-, 2000

      4 신명호, "일제하 李王職과 李王家 족보" 11 : 1996

      5 이승우, "일제하 일본의 조선왕실에 대한 인식과 李王職의 운영" 동아대학교 2007

      6 김기훈, "일제하 在日 王公族의 형성배경과 관리체계" 부경대학교 2009

      7 이윤상, "일제하 '조선왕실'의 지위와 이왕직의 기능" 규장각한국학연구원 (40) : 315-342, 2007

      8 "매일신보 1914.1"

      9 "덕수궁 복원정비기본계획, In 덕수궁지도" 문화재청 542-543, 2005

      10 신명호, "대한제국기의 御眞 제작" 조선시대사학회 33 (33): 245-280, 2005

      11 고종실록, "고종실록 권35"

      12 "近代建築圖面集, In 昌德宮全電線路圖" 한국학중앙연구원 2009

      13 이지선, "職員錄을 통해본 李王職의 직제" 26 : 2004

      14 "純宗實錄附錄"

      15 "純宗實錄附錄"

      16 伊藤博文, "皇室典範" 秘書類纂刊行會 1936

      17 金英達, "朝鮮王公族の法的地位について" 14 : 1999

      18 정욱재, "日記(장서각 2-4694), In 장서각소장 왕실도서해제 2" 한국학중앙연구원 37-39, 2007

      19 정욱재, "日記(장서각 2-4693), In 장서각소장 왕실도서해제 2" 한국학중앙연구원 34-36, 2007

      20 이왕무, "日記(장서각 2-4692), In 장서각소장 왕실도서해제 2" 한국학중앙연구원 31-33, 2007

      21 德壽宮贊侍室, "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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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KCI등재
      2020-12-01 평가 등재후보로 하락 (재인증) KCI등재후보
      2017-03-07 학회명변경 영문명 : The Academy of Korean -> The Academy of Korean Studies KCI등재
      201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KCI등재
      2016-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후보
      2015-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후보
      2013-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기타) KCI등재후보
      2011-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2011-01-01 평가 등재후보 탈락 (등재후보1차)
      2009-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FAIL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8-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7-05-15 학술지명변경 외국어명 : Jangseogak -> JANGSEOGAK KCI등재후보
      2007-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5-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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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술지 인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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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86 0.86 0.7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66 0.67 1.505 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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