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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CI등재

      고려말 柳濯장군과 여수 = Late Goryeo General Yutak and Yeo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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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8769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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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유탁의 가계는 시조대부터 현 고흥지방의 지배세력이었으며, 그 기반을 바탕으로 조부인 청신의 활약에 힘입어 고려의 명문가로 진입하게 되었다. 유탁은 이러한 배경과 자신의 능력으로 인해 40대 중반에 정승에, 공민왕대에는 시중으로 재임하였다. 그런데 유탁은 공민왕의 신임을 받던 신돈이 처형되자 그 黨與로 몰려 죽임을 당하였다. 이것은 유탁이 백성들에게 신망이 두터웠으며 국왕에게도 저항할 수 있었던 만호패마저 가지고 있었던 것 등으로 인해 공민왕을 불안하게 하였기 때문이다.
      고려말 여수지역은 해양환경 등의 이점으로 해상교류·활동이 활발하였다. 이러한 여수지역에서도 장생포는 사회·경제·행정·군사적인 중심지였다. 따라서 이곳에 왜구가 수시로 침범해왔었다. 때문에 장생포와 그 일원 주민들의 고통은 매우 심하였다. 이에 따라 주민들은 그것을 해결해줄 수 있는 어떤 인물의 출현을 간절히 기원했었다. 그러던 중 유탁이 등장하여 왜구를 물리치는 등 주민들의 숙원을 해결해 주었다. 장생포가의 탄생은 그러한 유탁을 존숭하는 차원에서 군사와 주민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져 널리 회자되었다. 따라서 장생포가는 당시 여수 지역사회는 물론이고 주민들과 유탁과의 관계 그리고 주민들의 처지 등이 어떠하였는지 잘 알려주는 노래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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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탁의 가계는 시조대부터 현 고흥지방의 지배세력이었으며, 그 기반을 바탕으로 조부인 청신의 활약에 힘입어 고려의 명문가로 진입하게 되었다. 유탁은 이러한 배경과 자신의 능력으로 ...

      유탁의 가계는 시조대부터 현 고흥지방의 지배세력이었으며, 그 기반을 바탕으로 조부인 청신의 활약에 힘입어 고려의 명문가로 진입하게 되었다. 유탁은 이러한 배경과 자신의 능력으로 인해 40대 중반에 정승에, 공민왕대에는 시중으로 재임하였다. 그런데 유탁은 공민왕의 신임을 받던 신돈이 처형되자 그 黨與로 몰려 죽임을 당하였다. 이것은 유탁이 백성들에게 신망이 두터웠으며 국왕에게도 저항할 수 있었던 만호패마저 가지고 있었던 것 등으로 인해 공민왕을 불안하게 하였기 때문이다.
      고려말 여수지역은 해양환경 등의 이점으로 해상교류·활동이 활발하였다. 이러한 여수지역에서도 장생포는 사회·경제·행정·군사적인 중심지였다. 따라서 이곳에 왜구가 수시로 침범해왔었다. 때문에 장생포와 그 일원 주민들의 고통은 매우 심하였다. 이에 따라 주민들은 그것을 해결해줄 수 있는 어떤 인물의 출현을 간절히 기원했었다. 그러던 중 유탁이 등장하여 왜구를 물리치는 등 주민들의 숙원을 해결해 주었다. 장생포가의 탄생은 그러한 유탁을 존숭하는 차원에서 군사와 주민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져 널리 회자되었다. 따라서 장생포가는 당시 여수 지역사회는 물론이고 주민들과 유탁과의 관계 그리고 주민들의 처지 등이 어떠하였는지 잘 알려주는 노래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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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YuTak family has been the ruling power in the present Goheung region since the time of the founder, and based on that foundation, thanks to the activities of his grandfather, Cheongsin, he entered a prestigious family in Goryeo. Due to this background and his own abilities, YuTak served as Jeongseung in his mid-40s and as a cijung during the reign of King Gongmin. However, when Shin Don, who was trusted by King Gongmin, was executed, Yu Tak was accused of being a dangyeo(黨與) and was killed. This is because Yu Tak was highly trusted by the people and even had Manhopae, which was able to resist the king, which made King Gongmin uneasy.
      At the end of the Goryeo Dynasty, Yeosu area had active maritime exchanges and activities due to its marine environment. Even in Yeosu, Jangsaengpo was a social, economic, administrative, and military center. Therefore, waegu(倭寇) often invaded this place. Because of this, the suffering of Jangsaengpo and the residents of the area was very severe. Accordingly, the residents eagerly prayed for the appearance of a person who could solve the problem. In the meantime, Yu Tak appeared and solved the long-cherished wishes of the residents, such as defeating the waegu. The birth of Jangsaengpoga was naturally created and widely known among soldiers and residents in respect of such Yutak. Therefore, Jangsaengpoga can be said to be a song that tells the story of not only the Yeosu community at the time, but also the relationship between residents and Yutak, and the situation of the resid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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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uTak family has been the ruling power in the present Goheung region since the time of the founder, and based on that foundation, thanks to the activities of his grandfather, Cheongsin, he entered a prestigious family in Goryeo. Due to this background...

      YuTak family has been the ruling power in the present Goheung region since the time of the founder, and based on that foundation, thanks to the activities of his grandfather, Cheongsin, he entered a prestigious family in Goryeo. Due to this background and his own abilities, YuTak served as Jeongseung in his mid-40s and as a cijung during the reign of King Gongmin. However, when Shin Don, who was trusted by King Gongmin, was executed, Yu Tak was accused of being a dangyeo(黨與) and was killed. This is because Yu Tak was highly trusted by the people and even had Manhopae, which was able to resist the king, which made King Gongmin uneasy.
      At the end of the Goryeo Dynasty, Yeosu area had active maritime exchanges and activities due to its marine environment. Even in Yeosu, Jangsaengpo was a social, economic, administrative, and military center. Therefore, waegu(倭寇) often invaded this place. Because of this, the suffering of Jangsaengpo and the residents of the area was very severe. Accordingly, the residents eagerly prayed for the appearance of a person who could solve the problem. In the meantime, Yu Tak appeared and solved the long-cherished wishes of the residents, such as defeating the waegu. The birth of Jangsaengpoga was naturally created and widely known among soldiers and residents in respect of such Yutak. Therefore, Jangsaengpoga can be said to be a song that tells the story of not only the Yeosu community at the time, but also the relationship between residents and Yutak, and the situation of the resid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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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윤명철, "한국의 해양문화(서남해역 上)" 경인문화사 295-318, 2002

      2 이기백, "한국사학의 방향" 일조각 1986

      3 "파한집"

      4 송은일, "진성왕대 「삼대목」의 수찬" 호남사학회 27 : 100-101, 2006

      5 "증보문헌비고"

      6 김준옥, "장생포와 동동" 한국언어문학회 35 : 280-281, 1995

      7 이남복, "유청신과 그 사료에 대하여" 부산경남사학회 9 : 130-, 1985

      8 이범직, "원 간섭기 입성론과 유청신" 역사교육연구회 81 : 133-139, 2002

      9 김병근, "여수와 고려시대 마도3호선" 전남대학교 이순신해양문화연구소 10 : 149-152, 2014

      10 "양촌집"

      1 윤명철, "한국의 해양문화(서남해역 上)" 경인문화사 295-318, 2002

      2 이기백, "한국사학의 방향" 일조각 1986

      3 "파한집"

      4 송은일, "진성왕대 「삼대목」의 수찬" 호남사학회 27 : 100-101, 2006

      5 "증보문헌비고"

      6 김준옥, "장생포와 동동" 한국언어문학회 35 : 280-281, 1995

      7 이남복, "유청신과 그 사료에 대하여" 부산경남사학회 9 : 130-, 1985

      8 이범직, "원 간섭기 입성론과 유청신" 역사교육연구회 81 : 133-139, 2002

      9 김병근, "여수와 고려시대 마도3호선" 전남대학교 이순신해양문화연구소 10 : 149-152, 2014

      10 "양촌집"

      11 "신증동국여지승람"

      12 "승평지"

      13 류창규, "순천시사 (정치·사회편)" 순천시사편찬위원회 261-, 1997

      14 "세종실록"

      15 이강래, "삼국사기 전거론" 민족사 1996

      16 "동사강목"

      17 "동국통감"

      18 김갑동, "고려시대의 戶長" 고려사학회 (5) : 189-224, 1998

      19 "고려사"

      20 강은경, "고려 후기 호장층의 변동과 양반·향리호적의 정리-국보호적을 중심으로"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99 : 41-42, 1998

      21 이정신, "고려 후기 입성론과 국왕의 역할 - 입성론의 양면성을 중심으로 -" 한국사연구회 (179) : 209-240, 2017

      22 변동명, "고려 충렬왕대의 만호" 역사학회 121 : 119-134, 1989

      23 이명선, "고려 전기 향리의 위상과 기능" 한국어문화연구소 6 : 163-209, 2009

      24 김준옥, "고려 시대 가요 「장생포」의 창작 배경에 관한 연구" 한국어문학회 44 : 62-63, 2000

      25 변동명, "견훤의 출신지 재론" 진단학회 90 : 31-, 2000

      26 "강남악부"

      27 李翊會, "高麗門下侍中誠齋柳先生諱濯墓表 (1833년 9월[순조 33년]~1843년 4월[헌종 9년])"

      28 변동명, "高麗末 麗水의 長生浦歌" 고려사학회 (37) : 133-170, 2009

      29 이정신, "高麗後期의 譯官" 한국중세사학회 (38) : 373-403, 2014

      30 高興柳氏大同譜編纂委員會, "高興柳氏文獻錄(全)"

      31 高興柳氏大同譜編纂委員會, "高興柳氏大同譜(乙亥本)" 回想社 1995

      32 이혜화, "異論을 중심으로 한 ‘動動’論" 한성대학교 한성어문학회 2 : 80-81,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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