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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CI등재

      경산지역 삼국시대 古墳으로 본 定住와 變化에 대한 고찰 = A Study on the Domicile and the Change Aspect Using the Tombs at the Three Kingdom Period in Kyeongsan(慶山) A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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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8769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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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경산지역 삼국시대 고분 수의 증감을 이용하여, 언제부터 정주를 시작하였으며 언제 고분 수가 증가 혹은 감소하는지 알아보았다. 또 고분 수의 증감을 가지고 매장(사망)인구집단의 연평균 인구증가율을 같이 계상하여 정주자의 수가 어느 정도 변화하는지 정리하였으며, 변화에 따른 고분의 묘제 변화도 찾아보았다. 경산지역에서 새로운 묘제인 적석목곽묘와 석곽묘는 5세기에, 석실묘는 6세기에 도입되면서 축조되었고, 적석목곽묘와 석실묘가 도입되는 시기에 고분 수의 증가와 이에 따른 정주자의 연평균 인가증가율이 늘어났다.
      경산지역에 4세기 전반기 전엽에는 임당유적과 안심읍지구에만 고분이 있어서 삼국시대 경산지역의 정주는 이 2군데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4세기 전반기 후엽에 시지유적에 1기의 고분이 조성되지만 임당유적은 前 시기보다 고분 축조가 줄어든다. 임당유적은 4세기 전반기 후엽부터 후반기 후엽까지 줄어들거나 그 상태를 유지하지만 시지유적은 고분 수가 계속해서 늘어난다.
      그리고 안심읍지구는 고분 수가 변동이 없다가 사라지며, 가천동지구는 5세기 전반기 전엽의 고분 1기일 때까지 금호강에 대한 통제가 어려운 것 같다. 또 임당유적의 고분 수가 늘어날 때 북사리의 고분이 조성되다가 신상리지구에서 고분 조성과 안정화가 되면서 북사리에 고분이 사라진다. 이 신상리지구의 고분 조성 시기부터 경산지역에 신라의 직접적인 지배가 되는 것으로 보인다. 경산지역 전체에 6세기 전반기 전엽까지 고분 수가 증가하지만 6세기 전반기 후엽부터는 줄어들면서 통일기가 되면 명맥을 유지한다. 이렇게 고분 수의 증감을 이용한 연평균 인구증가율로 볼 때 인구의 자연 증가만으로 늘어날 수 없는 것으로 판단되며, 이주 등 외부로부터 유입된 것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증감은 신라의 통일전쟁에 따른 전선의 변화와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임당유적에서 4세기 고분 수의 감소는 삼국사기 신라 초기 기록 수정론의 입장에서 보면 압독의 반란과 관련되는 것으로 보이며, 임당유적의 고분 증가(힘의 확장 등)에 대한 견제 등 여러 이유로 신상리지구가 만들어진 것 같다. 임당유적과 신상리지구의 확장기 때 주변에 각각 중방동과 선화리에 고분이 조성되며, 고분 수의 증가는 공간 부족 등의 이유로 인해 새로운 정주지가 만들어졌다. 이 새로운 정주지는 경산지역에 고분이 감소하면서 소멸한다. 삼국시대 이후의 경산지역은 대표적으로 임당유적과 시지유적이며, 이 두 유적을 합쳐 한 개의 권역으로 동반 성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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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산지역 삼국시대 고분 수의 증감을 이용하여, 언제부터 정주를 시작하였으며 언제 고분 수가 증가 혹은 감소하는지 알아보았다. 또 고분 수의 증감을 가지고 매장(사망)인구집단의 연평균...

      경산지역 삼국시대 고분 수의 증감을 이용하여, 언제부터 정주를 시작하였으며 언제 고분 수가 증가 혹은 감소하는지 알아보았다. 또 고분 수의 증감을 가지고 매장(사망)인구집단의 연평균 인구증가율을 같이 계상하여 정주자의 수가 어느 정도 변화하는지 정리하였으며, 변화에 따른 고분의 묘제 변화도 찾아보았다. 경산지역에서 새로운 묘제인 적석목곽묘와 석곽묘는 5세기에, 석실묘는 6세기에 도입되면서 축조되었고, 적석목곽묘와 석실묘가 도입되는 시기에 고분 수의 증가와 이에 따른 정주자의 연평균 인가증가율이 늘어났다.
      경산지역에 4세기 전반기 전엽에는 임당유적과 안심읍지구에만 고분이 있어서 삼국시대 경산지역의 정주는 이 2군데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4세기 전반기 후엽에 시지유적에 1기의 고분이 조성되지만 임당유적은 前 시기보다 고분 축조가 줄어든다. 임당유적은 4세기 전반기 후엽부터 후반기 후엽까지 줄어들거나 그 상태를 유지하지만 시지유적은 고분 수가 계속해서 늘어난다.
      그리고 안심읍지구는 고분 수가 변동이 없다가 사라지며, 가천동지구는 5세기 전반기 전엽의 고분 1기일 때까지 금호강에 대한 통제가 어려운 것 같다. 또 임당유적의 고분 수가 늘어날 때 북사리의 고분이 조성되다가 신상리지구에서 고분 조성과 안정화가 되면서 북사리에 고분이 사라진다. 이 신상리지구의 고분 조성 시기부터 경산지역에 신라의 직접적인 지배가 되는 것으로 보인다. 경산지역 전체에 6세기 전반기 전엽까지 고분 수가 증가하지만 6세기 전반기 후엽부터는 줄어들면서 통일기가 되면 명맥을 유지한다. 이렇게 고분 수의 증감을 이용한 연평균 인구증가율로 볼 때 인구의 자연 증가만으로 늘어날 수 없는 것으로 판단되며, 이주 등 외부로부터 유입된 것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증감은 신라의 통일전쟁에 따른 전선의 변화와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임당유적에서 4세기 고분 수의 감소는 삼국사기 신라 초기 기록 수정론의 입장에서 보면 압독의 반란과 관련되는 것으로 보이며, 임당유적의 고분 증가(힘의 확장 등)에 대한 견제 등 여러 이유로 신상리지구가 만들어진 것 같다. 임당유적과 신상리지구의 확장기 때 주변에 각각 중방동과 선화리에 고분이 조성되며, 고분 수의 증가는 공간 부족 등의 이유로 인해 새로운 정주지가 만들어졌다. 이 새로운 정주지는 경산지역에 고분이 감소하면서 소멸한다. 삼국시대 이후의 경산지역은 대표적으로 임당유적과 시지유적이며, 이 두 유적을 합쳐 한 개의 권역으로 동반 성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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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is paper make out from when to when the peoples lived using the number of tomb and the increase and decrease at three kingdom period in Kyeongsan area. And it sum up the peoples of the estimation of the annual rate of population growth according to the variation in the number of tomb, also look for changes in shape of the tomb by at this time of three kingdom period in Kyeongsan area. As a result stone compiled wooden chamber tombㆍstone lined tomb at 5 century and stone chamber tomb at 6 century introduced and built, at that time increased the number of tomb and the estimation of the annual rate of population growth.
      The number of tomb at the middle and the latter of 4 century, Yimdang(林堂) site decreased but continuously increased the number of tomb at Siji(時至) site. After 5 century the number of tomb increased in same pattern at Yimdang site, Siji site and other sites in Kyeongsan area. The number of tomb increased time, also grew the estimation of the annual rate of population growth and at that time each of stone compiled wooden chamber tombㆍstone lined tomb and stone chamber tomb was introduced and built, it was one of the transition. A decrease in the number of tomb Yimdang site at 4 century is not the result of a infectious disease, maybe it is related to the rebellion by the historical record(Samkuk sagi; 三國史記). If it was to rebellion, it is possible to interpreted from revisionism of the early record of Samkuk sagi. If it is not related to the record(Samkuk sagi) we need to reconsider the determination of the timing we used an earthenwares. After the three kingdom period in Gyeongsan area, the location of JangsanGun(獐山郡) was judged to be Yimdang and Siji site, this two site did in one metropolitan a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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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paper make out from when to when the peoples lived using the number of tomb and the increase and decrease at three kingdom period in Kyeongsan area. And it sum up the peoples of the estimation of the annual rate of population growth according to ...

      This paper make out from when to when the peoples lived using the number of tomb and the increase and decrease at three kingdom period in Kyeongsan area. And it sum up the peoples of the estimation of the annual rate of population growth according to the variation in the number of tomb, also look for changes in shape of the tomb by at this time of three kingdom period in Kyeongsan area. As a result stone compiled wooden chamber tombㆍstone lined tomb at 5 century and stone chamber tomb at 6 century introduced and built, at that time increased the number of tomb and the estimation of the annual rate of population growth.
      The number of tomb at the middle and the latter of 4 century, Yimdang(林堂) site decreased but continuously increased the number of tomb at Siji(時至) site. After 5 century the number of tomb increased in same pattern at Yimdang site, Siji site and other sites in Kyeongsan area. The number of tomb increased time, also grew the estimation of the annual rate of population growth and at that time each of stone compiled wooden chamber tombㆍstone lined tomb and stone chamber tomb was introduced and built, it was one of the transition. A decrease in the number of tomb Yimdang site at 4 century is not the result of a infectious disease, maybe it is related to the rebellion by the historical record(Samkuk sagi; 三國史記). If it was to rebellion, it is possible to interpreted from revisionism of the early record of Samkuk sagi. If it is not related to the record(Samkuk sagi) we need to reconsider the determination of the timing we used an earthenwares. After the three kingdom period in Gyeongsan area, the location of JangsanGun(獐山郡) was judged to be Yimdang and Siji site, this two site did in one metropolitan a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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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이희준, "현대 고고학의 이해" 사회평론 2006

      2 다할편집실, "한국사연표" 다할미디어 2002

      3 강봉원, "한국고고학 일 방향" 학연문화사 2008

      4 최경철 ; 김대욱 ; 정상수, "조영동고분군 출토 인골과 동물 뼈의 분석을 통한 고대 경산지역의 계층별 식단 복원" 한국고고학회 2022 (2022): 859-886, 2022

      5 김대욱, "임당 고총의 축조와 그 장제" 영남대학교 대학원 2014

      6 강봉원, "인구압력과 전쟁의 상관관계에 관한 연구- 신라를 중심으로 -" 신라문화연구소 (21) : 127-150, 2003

      7 영남대학교 박물관, "영남대학교박물관 소장 경산 임당유적 출토 인골연구자료집" 2013

      8 강종훈, "신라상고사연구"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1

      9 이희준, "신라고고학연구" 사회평론 2007

      10 김원중, "삼국유사" 을유문화사 2002

      1 이희준, "현대 고고학의 이해" 사회평론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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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강봉원, "한국고고학 일 방향" 학연문화사 2008

      4 최경철 ; 김대욱 ; 정상수, "조영동고분군 출토 인골과 동물 뼈의 분석을 통한 고대 경산지역의 계층별 식단 복원" 한국고고학회 2022 (2022): 859-886, 2022

      5 김대욱, "임당 고총의 축조와 그 장제" 영남대학교 대학원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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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김원중, "삼국유사" 을유문화사 2002

      11 이병도, "삼국사기 상ㆍ하" 을유문화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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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慶南文化財硏究院, "대구 욱수동 사월지구 도시계획관리부지 내 대구 욱수동 유적 上ㆍ下" 2022

      14 다온문화재연구원, "대구 괴전동 90-1번지 유적" 2019

      15 동국문화재연구원, "대구 괴전동 178-2번지 유적 ⅠㆍⅡ" 2022

      16 신석원, "대구 가천동유적 출토 인골의 재검토" 한국상고사학회 99 (99): 137-163, 2018

      17 이희준, "고고학의 방법과 실제" 사회평론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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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정상수 ; 방세현, "경산지역 청동기시대 마을 유적의 위치로 본 가시권분계와 자원가용권 범위 추론" 영남문화연구원 (82) : 111-143, 2022

      20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 "경산 한사리ㆍ대학리 25번지 유적" 2018

      21 경북문화재단 문화재연구원, "경산 평사리 550-3 유적" 2021

      22 李 熙 濬, "경산 지역 고대 정치체의 성립과 변천" 영남고고학회 (34) : 1-3, 2004

      23 한빛문화재연구원, "경산 중방동 682-10번지 유적" 2018

      24 정상수 ; 최봉인, "경산 임당지역과 김해 예안리 고분출토 인골의 평균수명" (사)한국문화유산협회 (22) : 27-52,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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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 삼한문화재연구원, "경산 임당동 402-20번지 유적" 2020

      27 한빛문화재연구원, "경산 임당 1호분" 2020

      28 한국문화재재단, "경산 선화리 1111번지 유적" 2014

      29 금오문화재연구원, "경산 부적리 379번지 유적" 2015

      30 동북아문화재연구원, "경산 대학리ㆍ교리 유적" 2019

      31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 "경산 대학리 74번지ㆍ교리 155번지 유적" 2018

      32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 "경산 대학리 51-1번지 유적" 2018

      33 진흥문화재연구원, "경산 대동 57-34번지 유적" 2015

      34 진흥문화재연구원, "경산 대동 57-1번지 유적" 2015

      35 계림문화재연구원, "경산 대동 17-8번지 유적"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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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 嶺南大學校 博物館, "慶山 林堂地域 古墳群 Ⅰ∼ⅩⅥ"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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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8 嶺南文化財硏究院, "大邱 時至地區 古墳群 Ⅰ"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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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 嶺南文化財硏究院, "大邱 旭水洞ㆍ慶山 玉山洞 遺蹟Ⅲ -墳墓Ⅰ-" 2011

      71 "大邱 旭水洞ㆍ慶山 玉山洞 遺蹟Ⅱ -土器窯址-" 2011

      72 嶺南文化財硏究院, "大邱 旭水洞ㆍ慶山 玉山洞 遺蹟 Ⅰ"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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