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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현의 현실 인식 및 외교 논리 검토 -『익재난고』의 「사찬」과 상서(上書)를 중심으로- = Goryeo Yi Je-hyeon’s Perception of the world and Diplomatic Argu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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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e figure examined here is Yi Je-hyeon(李齊賢, 1287~1367), who was a renowned scholar and a governmental official from the 14th century. Many of his accomplishments are known to have been rooted in his Neo-Confucian expertise, but the focus of thi...

      The figure examined here is Yi Je-hyeon(李齊賢, 1287~1367), who was a renowned scholar and a governmental official from the 14th century. Many of his accomplishments are known to have been rooted in his Neo-Confucian expertise, but the focus of this article is to examine his view of the world as a politician and a diplomat. He was, as his colleagues also were, forced in a situation where he must be aware of the international order and Goryeo’s position in it, while not forgetting his own identity as a traditional Goryeo citizen. Understanding that dilemma is the primary objective of this work.
      In his letters to the Yuan Imperial government, Yi Je-hyeon always emphasized the fact that Goryeo and Yuan had enjoyed a long and close relationship. He did so to daringly urge Yuan to be aware of how Yuan as an Empire was supposed to treat Goryeo, a much smaller entity on the Korean peninsula. But he was also careful not to offend Yuan unnecessarily, and that shows in his treatment of past Goryeo records. He downsized and toned down certain remarks left by his ancestors, who believed in Goryeo’s own regional-centric nature.
      At the same time, Yi Je-hyeon also not hesitated to make some radical demands to Yuan, as shown in his communiques to the Imperial court. In order to make sure Yuan would grant Goryeo’s requests and allow Goryeo traditions remain intact, he not only cited past Emperor Qubilai’s ‘Old promises,’ with which the late Emperor expressed his will not to alter Goryeo’s past conventions, but employed other political notions as well. For example, he quoted the legacy of former Mongol leaders who preceded Qubilai, and even recalled the traditional Chinese way (from the Dang period) of regulating Northeast Asian regions (“Gimi”), to persuade Yuan authorities.
      Yi Je-hyeon’s efforts to respond to situations developing on the international stage, and to protect Goryeo traditions, interests and agendas, reveal the complicated nature of the position Goryeo was put in at the time, and Yi’s dilemma to navigate through it. Hopefully by further exploring Yi Je-hyeon’s mind, we would gain understanding of how things were for the Goryeo people in the 13th and 14th centu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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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본 논문은 고려후기의 대표적인 관료이자 문인이었던 이제현(李齊賢, 1287~1367)의 현실인식과 외교논리를 살펴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제현의 여러 업적은 그의 성리학적 면모를 반영하는 ...

      본 논문은 고려후기의 대표적인 관료이자 문인이었던 이제현(李齊賢, 1287~1367)의 현실인식과 외교논리를 살펴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제현의 여러 업적은 그의 성리학적 면모를 반영하는 것으로 평가되지만, 본 논문에서는 현실정치인이자 외교관으로서 그의 인식을 규명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이를 통해 당시 원제국 중심의 국제질서 및 고려의 위치를 인지하되 고려의 정체성도 잊지 말아야 했던 지식인의 고뇌가 현실 및 외교 현장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현은 양국의 관계가 시간에 흐름에 따라 돈독해져 갔음을 강조하는 가운데, 특히 그가 제후국 고려의 입장에서 고려의 이전 역사 기술들을 인용하며 일부 표현을 조정하는 모습이 포착된다. 이는 일종의 ‘자기검열’로써 천자-제후의 수직적 관계를 인정 및 유지하는 한편으로 그를 넘어서는 위협에 빌미를 제공하지 않으려는 현실적인 조치라 할 수 있다.
      반면 이제현은 고려의 요구사항 관철 및 토속 보전 등을 위해 매우 과감한 외교 논리를 설파하기도 했는데, 기존의 ‘세조구제론’ 인용에 그치지 않고 한반도에 대한 중국의 전통적 ‘기미지배’ 방식을 환기하거나 몽골 선황제들의 유훈을 언급하는 등 쿠빌라이를 넘어서는 권위까지 호출·소환했음이 흥미롭다.
      국제 정세에 기민하게 반응하고 그 속에서 고려의 입지를 보장, 국속을 보전하려는 이제현의 노력은 13~14세기 특수상황에서 빚어진 고려인들의 중층적이고도 양가적인 인식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이제현을 비롯해 고려후기 인물들을 검토하는 것은 당대인들의 인식 일반에 더욱 접근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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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이강한, "특집 : '친원'과 '반원'을 넘어서-13~14세기사에 대한 새로운 이해-" 한국역사연구회 (78) : 105-159, 2010

      2 김형수, "충혜왕의 폐위와 고려 유자儒者들의 공민왕 지원 배경" 한국국학진흥원 (19) : 539-569, 2011

      3 이개석, "정통론과 13-14세기 동아시아 역사서술" 대구사학회 88 : 67-96, 2007

      4 김철준, "익재 이제현의 사학에 대하여" 8 : 1967

      5 김인호, "이제현의 정치활동과 역사인식" 19·20 : 2001

      6 정구복, "이제현의 역사의식" 51 : 1981

      7 탁봉심, "이제현의 역사관:그의 ‘사찬’을 中心으로" 17·18 : 1988

      8 김인호, "원의 고려인식과 고려인의 대응" 21 : 2003

      9 도현철, "원명교체기 고려 사대부의 소중화 의식" 37 : 2000

      10 김인호, "원간섭기 이상적 인간형의 역사상 추구와 형태" 한국역사연구회 (49) : 37-69, 2003

      1 이강한, "특집 : '친원'과 '반원'을 넘어서-13~14세기사에 대한 새로운 이해-" 한국역사연구회 (78) : 105-159, 2010

      2 김형수, "충혜왕의 폐위와 고려 유자儒者들의 공민왕 지원 배경" 한국국학진흥원 (19) : 539-569, 2011

      3 이개석, "정통론과 13-14세기 동아시아 역사서술" 대구사학회 88 : 67-96,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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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정구복, "이제현의 역사의식" 51 :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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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김인호, "원의 고려인식과 고려인의 대응" 21 : 2003

      9 도현철, "원명교체기 고려 사대부의 소중화 의식" 37 : 2000

      10 김인호, "원간섭기 이상적 인간형의 역사상 추구와 형태" 한국역사연구회 (49) : 37-69, 2003

      11 채웅석, "원간섭기 성리학자들의 화이관과 국가관" 한국역사연구회 (49) : 99-124, 2003

      12 박종기, "원간섭기 사회현실과 개혁론의 전개" 한국역사연구회 (49) : 67-97, 2003

      13 마종락, "원 간섭기 익재 이제현의 유학사상" 8 : 2000

      14 박종기, "원 간섭기 역사학의 새 경향-當代史 연구" 한국중세사학회 (31) : 371-406, 2011

      15 지영재, "서정록을 찾아서" 푸른역사 2003

      16 주채혁, "몽골-고려사 연구의 재검토" 8 :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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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최연식, "공민왕의 정치적 지향과 정치운영" 15 :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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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 "高麗史節要"

      27 "高麗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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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 "詩經"

      30 "益齋亂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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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 "櫟翁稗說"

      33 "東文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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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 "孝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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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 "中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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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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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0.92 0.92 0.81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78 0.81 1.498 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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