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충단은 1900년에 고종의 명에 의해 원수부가 건립하였는데, 을미사변과 갑오농민운동으로 사망한 관군의 제사를 지내는 곳이었다. 장충단의 대표적 문헌자료는 『장충단영건하기책』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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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현도 (서울시립대학교)
2022
Korean
장충단 ; 대한제국 ; 원수부 ; 근대건축 ; Jangchungdan ; Korean Empire ; Board of Marshals ; Modern Architecture
KCI등재
학술저널
17-30(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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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충단은 1900년에 고종의 명에 의해 원수부가 건립하였는데, 을미사변과 갑오농민운동으로 사망한 관군의 제사를 지내는 곳이었다. 장충단의 대표적 문헌자료는 『장충단영건하기책』이 ...
장충단은 1900년에 고종의 명에 의해 원수부가 건립하였는데, 을미사변과 갑오농민운동으로 사망한 관군의 제사를 지내는 곳이었다. 장충단의 대표적 문헌자료는 『장충단영건하기책』이 있다. 『장충단영건하기책』은 장충단의 영건(營建)과 관련하여 사용된 금액을 기록한 것으로 장충단 건축과 관련하여 시설별 축조방법을 신건(新建), 중건(重建), 수리(修理), 수축(修築) 등으로 구분하여 기록하였다. 장충단 관련한 시각 자료로는 지도와 배치도, 각종 사진 자료가 있다. 해당 시각 자료들을 바탕으로 『장충단영건하기책』과 비교하여 분석하였다.
장충단은 남산의 동북쪽, 남소문동천이 흐르는 골짜기에 위치하였다. 이러한 입지 특성으로 장충단 내에는 여러 단차를 두고 건물이 조성되었으며, 이 단을 이동하기 위한 계단이 다수 설치되었다. 장충단은 가로지르는 남소문동천과 그 지류를 건너기 위한 석교와 목재로 된 판교 등이 위치한다.
장충단의 중심 건물인 단사는 3개의 단 위에 위치하였다. 단사는 조적식 건물로 전면은 3칸으로 구분하고 중국의 괘락미자 형태의 장식을 하였으며, 현판 받침 역시 중국 양식을 하고 있다. 괘락미자의 문양과 벽체 문양은 대한제국을 상징하는 이화문을 사용하였고, 건물 내부에는 태극기 등으로 장식하였다. 지붕은 금속으로 추정되는 골판재를 사용하였고, 처마 끝에는 양철로 된 물받이 홈통을 두었다.
장충단비를 보호하는 비각은 남소문동천 건너에 위치한다. 건물은 6각형으로 단순한 목구조 형태로 추정된다. 건물 주변으로는 목책을 둘렀으며 서쪽으로 문을 두었다.
양위헌과 장무당은 각 17칸 반, 10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기존 건물을 수리하여 중건한 것이다. 두 건물 모두 건물 전면에 유리창이 있는 판문을 달았으며, 건물 내부바닥은 마루이고, 벽체는 판벽 구조였다. 건물 재료로 유리, 양판문(洋板門), 붉은 벽돌, 경첩 등과 같은 개항으로 유입된 신문물이 사용되었다.
요리정은 장충단제 중 입식(立食) 장소로 계획된 공간이다. 사방이 트인 형식로 단순한 가구식 목구조로 지어졌으며, 지붕재는 단사와 같은 골판재를 이용하였다. 3방향으로 목책을 두르고 2곳에 문을 내었으며, 문 위로는 철로된 아치를 만들고 등을 달았다.
고직처소, 사졸처소는 방과 마루를 둔 건물로 기존의 건물을 수리해서 사용한 것이다. 건물에는 방과 마루를 갖추었다. 변소에는 대변기, 소변기 등을 설치하였다.
장충단은 남소문동천을 두고 남산자락에 위치하여 여러 단을 두고 건물을 배치하였고, 이 단차를 오르내리기 위한 계단이 건물을 중심으로 놓였다. 장충단의 건물들은 개항으로 유입된 서양식 건축구법과 재료가 사용되었으며, 복장과 생활 변화에 따른 부재들도 설치되었다. 단사는 중국 형식으로 건설되었으나, 조선시대 사당 평면이 여전히 반영되고 있었다. 이것은 장충단제와 같이 광무개혁의 기본이념인 구본신참이 반영된 것으로 생각된다.
참고문헌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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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김해경 ; 최현임, "일제강점기 장충단공원 변화에 관한 시계열적 연구" 한국전통조경학회 31 (31): 95-112,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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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안동교회 역사보존위원회, "1939년도 김창제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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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지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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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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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7-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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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2 | 0.2 | 0.25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3 | 0.28 | 0.744 | 0.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