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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인삼의 나라,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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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이 저술은 이상의 연구목표와 효과를 달성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책을 구성하고자 한다.
      제1장에서는 우리 생활 속의 인삼이야기를 서술하여 산삼의 채취, 심마니, 인삼재배, 약재시장, 선물 교환 그리고 일상 속 인삼 이야기들을 정리한다. 최치원이 당나라 고병(高騈)에게 보낸 글, 서거정이 강원감사 조간에게서 인삼을 선물 받고 지은 시는 물론 18~19세기 동서양 인물의 인삼 관련 글과 서간을 알기 쉽게 소개하고 스토리화 하여 인삼에 담긴 한국문화의 정서를 추출할 것이다.
      제2장에서는 고려 인삼이 광저우, 마카오에 모여 동남아시아로 퍼져간 경로를 추적하고, 베트남에서 형성된 고려 인삼 이미지를 정리한다. 고려인삼은 조선 사행로를 따라 북경에 모이고, 다시 남쪽으로 사절로(使節路)를 따라 광저우까지 퍼져나갔다. 이곳으로부터 고려 인삼은 동남아시아는 물론 서양 여러 나라에 알려졌다.
      청나라는 1757년부터 1841년까지 서양과의 무역항을 광저우항으로 제한하고 무역을 13행(行)이라는 특정 상인에게만 독점적으로 허가하는 광동무역 체제를 시행했다. 이러한 중국 중심의 무역체계로 인한 무역적자를 해소해 보려는 영국의 시도가 아편전쟁이었다. 그런데 아편전쟁 이후 고려 인삼의 브랜드는 더욱 높아졌다. 바로 이 시기 베트남의 마지막 왕조인 응우옌 왕조의 민망 황제(Minh Mang, 明命)는 인삼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많은 양의 고려인삼을 확보하고 있었다. 민망 황제는 이 인삼을 중앙 및 지방의 고위관료들에게 나누어 주어 병을 치료하거나 노부모에게 줄 선물로 하사하였다. 인삼이 충(忠)과 효(孝)를 이끌어 내고 진작시키는 재료로 사용된 것이다.
      한편 이 시기 조선 황해도 옹진 해상에서는 인삼 주인 홍병구, 거간꾼 임시형과 뱃사람들이 연루된 인삼 밀무역 사건이 적발되는 등 서해상의 인삼 밀무역이 성행했다. 인삼 밀무역을 통해 해상 무역네트워크 속에 조선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제3장에서는 개항기 조선 무역의 아이콘 ‘홍삼’을 둘러싼 조선 정부의 정책과 외국상인과의 경쟁에서 나타난 이야기를 통해, 근대화 속에 기회와 상실의 의미를 살펴본다. 개항 이전 조선의 무역은 홍삼-서양무명 교환체제로부터 홍삼-유철교환체제로 바뀌었지만, 홍삼이 주요 수출품이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1876년 강화도조약으로 조선은 세계 자본주의 시장에 편입되었다. 하지만 1870년~90년대 수입품은 역시 서양목이 주종이었고, 수출품도 여전히 홍삼이었다.
      그런데 아관파천 이후 고종은 궁내부 내장원을 통해 인삼 정책을 장악토록 했다. 내장원은 홍삼 전매, 광산 경영, 사기 제조, 직조 사업 등을 직영했다. 이에 《황성신문》은 민간이 자유롭게 홍삼을 만들어 판매하고 정부는 세금만 거두는 방식으로 홍삼을 민영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수출량 증가에 따른 가격 하락과 과잉 공급에 따른 판매 부진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았다. 이러한 대한제국기 홍삼정책에 대한 평가를 객관적인 차원에서 알기 쉽게 조명할 것이다.
      제4장에서는 타자의 눈에 비친 조선과 인삼 이미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현재 유럽에서의 한국의 위상은 20세기 초와 비교할 수 없으리만큼 좋아졌다. 하지만 유럽에서 중국이나 일본의 문화는 여전히 널리 알려져 있는 반면 그 두 나라 사이에 위치한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는 피상적인 수준을 넘지 못하는 형편이다. 그러나 고려 인삼은 달랐다. 고려 인삼이라는 주제를 통해 유럽속 조선의 이미지를 조명하려 한다. 독일 함부르크 민족학 박물관장 틸레니우스가 요청한 한국 유물의 목록, 러시아의 조선보고서 『한국지』, 폴란드계 러시아 학자 세로셰프스키, 오스트리아인 헤세바르테크, 헝가리 민속학자 버라토시, 스웨덴 슈텐 베리, 영국 칼스와 이사벨라 버드 비숍 등이 남긴 저술 속에서 조선 인식과 인삼 이미지를 추출하여 소개한다.
      제5장에서는 일제강점기 총독부의 인삼정책, 조선의 인삼상인, 도시의 발달, 마케팅의 변화 등을 조명하고 아울러 해외의 독립운동에 인삼상인의 활동을 밝혀, 현재 우리에게 남아 있는 인삼에 대한 인식의 역사 문화적 배경을 분명히 한다. 특히 일제강점기 국내 인삼 상인의 활동을 바탕으로 해외의 고려인삼 지점망이 확대되었고, 인삼 상인들이 독립운동에 가담하거나 조력을 하게 된다. 그에 대한 메카니즘도 함께 살펴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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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저술은 이상의 연구목표와 효과를 달성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책을 구성하고자 한다. 제1장에서는 우리 생활 속의 인삼이야기를 서술하여 산삼의 채취, 심마니, 인삼재배, 약...

      이 저술은 이상의 연구목표와 효과를 달성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책을 구성하고자 한다.
      제1장에서는 우리 생활 속의 인삼이야기를 서술하여 산삼의 채취, 심마니, 인삼재배, 약재시장, 선물 교환 그리고 일상 속 인삼 이야기들을 정리한다. 최치원이 당나라 고병(高騈)에게 보낸 글, 서거정이 강원감사 조간에게서 인삼을 선물 받고 지은 시는 물론 18~19세기 동서양 인물의 인삼 관련 글과 서간을 알기 쉽게 소개하고 스토리화 하여 인삼에 담긴 한국문화의 정서를 추출할 것이다.
      제2장에서는 고려 인삼이 광저우, 마카오에 모여 동남아시아로 퍼져간 경로를 추적하고, 베트남에서 형성된 고려 인삼 이미지를 정리한다. 고려인삼은 조선 사행로를 따라 북경에 모이고, 다시 남쪽으로 사절로(使節路)를 따라 광저우까지 퍼져나갔다. 이곳으로부터 고려 인삼은 동남아시아는 물론 서양 여러 나라에 알려졌다.
      청나라는 1757년부터 1841년까지 서양과의 무역항을 광저우항으로 제한하고 무역을 13행(行)이라는 특정 상인에게만 독점적으로 허가하는 광동무역 체제를 시행했다. 이러한 중국 중심의 무역체계로 인한 무역적자를 해소해 보려는 영국의 시도가 아편전쟁이었다. 그런데 아편전쟁 이후 고려 인삼의 브랜드는 더욱 높아졌다. 바로 이 시기 베트남의 마지막 왕조인 응우옌 왕조의 민망 황제(Minh Mang, 明命)는 인삼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많은 양의 고려인삼을 확보하고 있었다. 민망 황제는 이 인삼을 중앙 및 지방의 고위관료들에게 나누어 주어 병을 치료하거나 노부모에게 줄 선물로 하사하였다. 인삼이 충(忠)과 효(孝)를 이끌어 내고 진작시키는 재료로 사용된 것이다.
      한편 이 시기 조선 황해도 옹진 해상에서는 인삼 주인 홍병구, 거간꾼 임시형과 뱃사람들이 연루된 인삼 밀무역 사건이 적발되는 등 서해상의 인삼 밀무역이 성행했다. 인삼 밀무역을 통해 해상 무역네트워크 속에 조선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제3장에서는 개항기 조선 무역의 아이콘 ‘홍삼’을 둘러싼 조선 정부의 정책과 외국상인과의 경쟁에서 나타난 이야기를 통해, 근대화 속에 기회와 상실의 의미를 살펴본다. 개항 이전 조선의 무역은 홍삼-서양무명 교환체제로부터 홍삼-유철교환체제로 바뀌었지만, 홍삼이 주요 수출품이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1876년 강화도조약으로 조선은 세계 자본주의 시장에 편입되었다. 하지만 1870년~90년대 수입품은 역시 서양목이 주종이었고, 수출품도 여전히 홍삼이었다.
      그런데 아관파천 이후 고종은 궁내부 내장원을 통해 인삼 정책을 장악토록 했다. 내장원은 홍삼 전매, 광산 경영, 사기 제조, 직조 사업 등을 직영했다. 이에 《황성신문》은 민간이 자유롭게 홍삼을 만들어 판매하고 정부는 세금만 거두는 방식으로 홍삼을 민영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수출량 증가에 따른 가격 하락과 과잉 공급에 따른 판매 부진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았다. 이러한 대한제국기 홍삼정책에 대한 평가를 객관적인 차원에서 알기 쉽게 조명할 것이다.
      제4장에서는 타자의 눈에 비친 조선과 인삼 이미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현재 유럽에서의 한국의 위상은 20세기 초와 비교할 수 없으리만큼 좋아졌다. 하지만 유럽에서 중국이나 일본의 문화는 여전히 널리 알려져 있는 반면 그 두 나라 사이에 위치한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는 피상적인 수준을 넘지 못하는 형편이다. 그러나 고려 인삼은 달랐다. 고려 인삼이라는 주제를 통해 유럽속 조선의 이미지를 조명하려 한다. 독일 함부르크 민족학 박물관장 틸레니우스가 요청한 한국 유물의 목록, 러시아의 조선보고서 『한국지』, 폴란드계 러시아 학자 세로셰프스키, 오스트리아인 헤세바르테크, 헝가리 민속학자 버라토시, 스웨덴 슈텐 베리, 영국 칼스와 이사벨라 버드 비숍 등이 남긴 저술 속에서 조선 인식과 인삼 이미지를 추출하여 소개한다.
      제5장에서는 일제강점기 총독부의 인삼정책, 조선의 인삼상인, 도시의 발달, 마케팅의 변화 등을 조명하고 아울러 해외의 독립운동에 인삼상인의 활동을 밝혀, 현재 우리에게 남아 있는 인삼에 대한 인식의 역사 문화적 배경을 분명히 한다. 특히 일제강점기 국내 인삼 상인의 활동을 바탕으로 해외의 고려인삼 지점망이 확대되었고, 인삼 상인들이 독립운동에 가담하거나 조력을 하게 된다. 그에 대한 메카니즘도 함께 살펴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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