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맥컬리는 캐나다 노바스코샤 트루로 출신으로 브라가선교회를 설립하고, 선교회의 처음 취지, 해외선교에 대한 관심을 초기부터 실현했다. 그 좋은 예가 메켄지를 조선선교사로 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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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 감리교신학대학교 대학원, 2009
학위논문(석사) -- 감리교신학대학교 대학원 , 역사신학 , 2009. 2
2009
한국어
서울
71 p. ; 26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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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맥컬리는 캐나다 노바스코샤 트루로 출신으로 브라가선교회를 설립하고, 선교회의 처음 취지, 해외선교에 대한 관심을 초기부터 실현했다. 그 좋은 예가 메켄지를 조선선교사로 파...
루이스 맥컬리는 캐나다 노바스코샤 트루로 출신으로 브라가선교회를 설립하고, 선교회의 처음 취지, 해외선교에 대한 관심을 초기부터 실현했다. 그 좋은 예가 메켄지를 조선선교사로 파송한 사건이었다.
루이스 맥컬리의 일생에서 중요한 것은 ‘하느님 나라를 위한 선교’였으며, 그의 선교활동에서 중요한 것은 ‘교육’이었다. ‘선교지’는 조선이었으며, ‘교육대상’은 조선의 토착교회여성이었다. 토착교회여성을 교육하는 일은 두 가지로 나뉜다. 신학교를 통한 토착여성지도자 양성하는 것과 여전도회를 조직하여 토착교회여성들에게 선교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인재를 양성하고 파송하는 관계성 속에서 서로 협력한다.
토착교회여성지도자를 양성하는 마르다윌슨여자신학교라는 이름은 루이스 맥컬리의 어머니를 기념하여 결혼 전의 이름을 붙인 것으로, 신학교는 1910년에 정식으로 설립하여 시작하였다. 이후 1943년 폐교될 때까지 남으로는 원산으로 시작하여 북으로는 블라디보스틱에 이르기까지 학생들을 교육하여 준비시켰고 여전도회는 준비된 선교사를 파송하였다.
루이스 맥컬리 연구는 선교라는 틀 위에서 시작되고, 그 틀에서 매켄지와 약혼; 동역자 엘리자베스 맥컬리, 전도부인 오한나, 조선교회여성지도자 김마리아, 토착교회 목회자 조희염, 중국인 선교사 데밍부인과의 연합은 그의 선교정신을 잘 보여주는 예이다. 하느님이 관계성 속에서 존재하시듯 남녀의 평등성, 선교사와 토착교회여성지도자와의 조력은 중요하게 관계한다. 본 논문은 이 관계성 속에서 루이스 맥컬리를 조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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