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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전쟁기 조선조정의 對明 일본재침 경보와 양국 공조 = The Warning of the Japanese Reinvasion from the Joseon Court to the Ming Court and Their Cooperation during the Imjin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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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8086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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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During the Imjin War, both the Joseon and Ming courts faced an urgent problem of repelling the Japanese invasion. Through trial and error, the roles and responsibilities for tasks on the ground, such as rations transportation, arms production, and mil...

      During the Imjin War, both the Joseon and Ming courts faced an urgent problem of repelling the Japanese invasion. Through trial and error, the roles and responsibilities for tasks on the ground, such as rations transportation, arms production, and military training, were determined. However, there were times of serious conflict between two courts when appropriate measures could not be found. Although it is true that the Joseon and Ming courts were not always on good terms, nevertheless, in the midst of the Imjin War, the Joseon court frequently warned the Ming court of the growing threat to China, convincing them to intervene. By 1597, there were so many communications received through various channels that the Ming court came to realize the huge significance of Joseon as her ally and deployed a considerable number of troops based on the information sent from the Joseon court. It is due to this historical fact that Joseon should not be regarded as a “sad,” incompetent victim, responding both militarily and diplomatically to combat the Japanese inva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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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전란을 계기로 조선, 명 양측은 군사・외교의 측면에서 전례 없이 실무를 해결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했다. 양측은 군량 운반, 무기 제조, 군사양성 등의 사안에서 시행착오를 겪고 그로부터 ...

      전란을 계기로 조선, 명 양측은 군사・외교의 측면에서 전례 없이 실무를 해결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했다. 양측은 군량 운반, 무기 제조, 군사양성 등의 사안에서 시행착오를 겪고 그로부터 파생되는 문제로 때로 상호갈등하기도 했다. 대체로 명에서는 적정한 선에서 군사지원을 마무리하고 변경의 경계를 강화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러나 재침 발발 직전까지 조선 조정에서는 명이 조선의 전쟁에 개입해야 하는 이유를 꾸준히 보여주었고, 명 조정에서는 이러한 정보에 기초하여 점차적으로 조선과의 공조가 불가결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 시기 조선은 ‘슬픈’ 피해자가 아니었다. 전란을 극복하기 위해 조선 조정에서 군사・외교적으로 적극적으로 대처한 면모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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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吏文謄錄"

      2 趙慶男, "亂中雜錄"

      3 김경태, "허세와 타협 – 임진왜란을 둘러싼 삼국의 협상" 동북아역사재단 2019

      4 김한규, "한중관계사 II" 아르케 1999

      5 李章熙, "한국사연구입문" 지식산업사 1987

      6 김영진, "중화질서의 이론과 실제 : 임진왜란 초기 조명관계를 예로" 아세아문제연구원 61 (61): 126-165, 2018

      7 오함, "주원장전" 지식산업사 2003

      8 조원래, "조선후기사 연구의 현황과 과제" 창작과비평사 2000

      9 김경록, "조선초기 吏文의 편찬과 對明 외교문서의 성격" 이화사학연구소 (34) : 221-255, 2007

      10 이정일, "조선의 對일 전략에 대한 일고찰 : 일본군의 남해안 철수 직후(1593.07~1594.02)를 중심으로" 한일관계사학회 (74) : 179-214, 2021

      1 "吏文謄錄"

      2 趙慶男, "亂中雜錄"

      3 김경태, "허세와 타협 – 임진왜란을 둘러싼 삼국의 협상" 동북아역사재단 2019

      4 김한규, "한중관계사 II" 아르케 1999

      5 李章熙, "한국사연구입문" 지식산업사 1987

      6 김영진, "중화질서의 이론과 실제 : 임진왜란 초기 조명관계를 예로" 아세아문제연구원 61 (61): 126-165, 2018

      7 오함, "주원장전" 지식산업사 2003

      8 조원래, "조선후기사 연구의 현황과 과제" 창작과비평사 2000

      9 김경록, "조선초기 吏文의 편찬과 對明 외교문서의 성격" 이화사학연구소 (34) : 221-255, 2007

      10 이정일, "조선의 對일 전략에 대한 일고찰 : 일본군의 남해안 철수 직후(1593.07~1594.02)를 중심으로" 한일관계사학회 (74) : 179-214, 2021

      11 계승범, "조선시대 해외파병과 한중관계 – 조선지배층의 중국 인식 -" 푸른역사 2009

      12 구도영, "조선 전기 朝明외교관계의 함수, ‘禮義之國’" 대동문화연구원 (89) : 159-204, 2015

      13 구도영, "조선 군사력에 대한 明의 인식" 백산학회 (118) : 409-428, 2020

      14 하우봉, "임진전쟁에 대한 재검토" 전북대학교 인문학연구소 5 : 2011

      15 차혜원, "임진전쟁기, 중국 강남지방의 通倭案 -기록과 사실 사이에서-" 역사학회 (248) : 117-147, 2020

      16 김경태, "임진전쟁기(1594년) 조선군과 일본군의 이면교섭 연구-『泰長院文書』 수록 兩軍 書狀을 중심으로-" 한일관계사학회 (61) : 125-172, 2018

      17 金漢信, "임진전쟁기 柳成龍의 군사·외교활동 연구" 고려대학교 2020

      18 김경태, "임진전쟁기 강화교섭 연구" 고려대학교 대학원 2014

      19 김한신, "임진왜란기 강화교섭과 유성룡의 외교활동(1593.4-1595.7)" 민족문화연구원 (77) : 213-255,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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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계승범, "임진왜란 중 조명관계의 실상과 조공책봉관계의 본질" 한국사학사학회 (26) : 117-145, 2012

      23 이정일, "임진왜란 전반기 조선의 남병(南兵) 인식과 활용 방안" 한국사연구회 (189) : 79-11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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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 韓㳓劤, "改訂版 韓國通史" 乙酉文化社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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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 Ray Huang, "Chinese Government in Ming Times" Columbia University Press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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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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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1.05 1.05 0.91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84 0.75 1.505 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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