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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영산회괘불도(靈山會掛佛圖)의 청문자상(聽聞者像) 출현에 관한 연구 (-진천 영수사와 안성 청룡사 〈영산회괘불도〉를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Appearance of Cheongmunjasang (Iconography of the Listener:聽聞者像) of Yeongsanhoe Gwaebul-do (Youngsan Ritual Ceremony Buddhist Painting:靈山會掛佛圖) in the Joseon Dynasty (-Focusing on 〈Youngsan Ritual Ceremony Buddhist Painting〉 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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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영산회괘불도(靈山會掛佛圖)〉는 『법화경(法華經)』에서 서술하고 있는 석가모니불의 기사굴산(영취산) 법회 장면을 그림으로 표출해낸 것이다. 조선시대 〈영산회괘불도〉에는 이전에...

      〈영산회괘불도(靈山會掛佛圖)〉는 『법화경(法華經)』에서 서술하고 있는 석가모니불의 기사굴산(영취산) 법회 장면을 그림으로 표출해낸 것이다. 조선시대 〈영산회괘불도〉에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청문자상(聽聞者像)’이 화면에 나타나는 등 많은 변화의 모습이 보인다.
      현재까지 알려진 조선시대 괘불도는 1622년 제작된 나주 죽림사 〈세존괘불도〉를 시작으로 조선 후기에 이르기까지 독존도 형식, 군집도 형식 그리고 삼신불도, 삼세불도, 삼신삼세불도 등의 형식으로 다양하게 해석되어 그려졌다. 조선시대 청문자상이 등장하는 불화는 총 9점이며, 그중 진천 영수사 〈영산회괘불도〉(1653년)와 안성 청룡사 〈영산회괘불도〉(1658년)에는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새로운 청문자 도상이 등장한다.
      17세기〈영산회괘불도〉는 임진왜란(1592~1593년) 등의 혼란했던 시기가 지나고 점차 사회가 안정을 찾으면서 불교계에서도 불안했던 민심을 달래기 위하여 수륙재나 영산재 등의 의식이 성행하였다. 이는 이전의 왕실 혹은 귀족 중심이던 불교가 서민 대중 속으로 깊이 파고들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런 시대 상황에서 <영산회괘불도>에 청문자상이 등장하고 있음은 대중에게 불교를 쉽게 이해시키기 위한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한편, 청룡사 〈영산회괘불도〉(1658년) 제작에 참여한 박란(朴蘭)은 도화서 화원으로 추측되며, 이는 왕실에서도 불화 조성에 기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충청도 지역 화원으로 활동하던 명옥(明玉)과 법능(法能)은 영수사 〈영산회괘불도〉(1653년)를 제작했으며, 5년 후 청룡사 괘불도 제작에도 참여하였다. 이와 같은 도상이 17세기에 경기지역과 충청도 일대에 조성된 배경은 『법화경』변상판화 각수로 참여했던 명옥을 비롯한 많은 화사들이 경전간행불사에 참여하면서 승려형 불화초본을 공유하여〈영산회괘불도〉에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17세기 영수사와 청룡사〈영산회괘불도〉는 불교회화의 수준을 향상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동안 교조적(敎條的)으로 답습하던 도상 형식의 틀에서 벗어나 일반회화의 유창한 선묘와 유연한 색채를 받아드려 불교회화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었다. 화면의 구성은 이전부터 그려오던 군집도 형식을 따르고 있는데, 그중 영수사 괘불도(1653년)는 승려형의 청문자상으로 바뀌는 기점으로 표현 내용이 다양해지고 구성이 훨씬 더 복잡해진 것이 특징이다. 반면 청룡사 괘불도(1658년)는 화면에 크기에 따라 내용을 축소하거나 수인을 변화시키거나 생략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유형의 작품으로는 안심사(1652년)ㆍ화엄사(1653년)ㆍ비암사(1657년)ㆍ청룡사〈영산회괘불도〉(1658) 등이 있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해 볼 때, 영수사와 청룡사 <영산회괘불도>에 나타나고 있는 청문자상은 당시 화원 간의 교류의 소산(所産)이라 하겠다. 이는 이전 시기 불화와 이후 18세기 불교회화와의 교량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어 불교회화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놓여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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