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하남시 천왕사지 철불좌상은 9세기 이후에 출현하는 철불 중에서 최대 규모의 고려 초기 불상으로 주목되어 왔다. 불상 높이가 3m에 가깝고 무게는 6.2톤에 이른다. 원래 경기도 하남...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https://www.riss.kr/link?id=A107198863
2020
Korean
하남 천왕사 ; 철불 ; 석가불 ; 고려 태조 ; 왕규 ; Cheonwangsa Temple ; iron Buddha statue ; Sakyamuni ; King Taejo of Goryeo ; Wang Gyu
KCI등재후보
학술저널
5-40(36쪽)
0
0
상세조회0
다운로드국문 초록 (Abstract)
경기도 하남시 천왕사지 철불좌상은 9세기 이후에 출현하는 철불 중에서 최대 규모의 고려 초기 불상으로 주목되어 왔다. 불상 높이가 3m에 가깝고 무게는 6.2톤에 이른다. 원래 경기도 하남...
경기도 하남시 천왕사지 철불좌상은 9세기 이후에 출현하는 철불 중에서 최대 규모의 고려 초기 불상으로 주목되어 왔다. 불상 높이가 3m에 가깝고 무게는 6.2톤에 이른다. 원래 경기도 하남시 하사창동의 절터에 방치되어 있었던 것을 1911년에 이왕가박물관으로 옮겨왔다가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하남 천왕사지 철불은 선종 사찰인 천왕사에 봉안된 주존불로 8세기 중엽의 경주 석굴암 본존불 형식을 따르면서 양식상 고려 전반에 조성되었던 것으로 보았다. 철불 조성의 후원세력에 대해서는 하남지역의 대표적인 지방호족인 왕규의 조성설이 일반적이었지만 고려 태조가 왕권 강화를 위해 추진했던 불교정책과 함께 지방호족의 후원 및 선종의 교리적 측면에서의 변화에 의해 대형의 철조석가불상이 조성된 것으로 해석하였다. 특히 도상적인 측면에서 하남 천왕사 철불이 고려 초기의 선종과의 연관성 속에서 지권인의 비로자나 불상이 아니라 전통 불상양식인 항마촉지인의 석가불상으로 형상화된 것은 고려 태조의 불교정책과 불교신앙의 시대적 추이를 반영한 것으로 파악하였다. 이러한 논지에 의해 하남 천왕사지 철불의 조성에는 선종과의 관련성이나 선승들의 역할이 크게 작용하지 않았으며 지방호족 왕규는 불상 조성과 관련된 일을 주관했으나 실제 단월이었던 고려 태조가 왕권 강화정책의 하나로 기념비적인 거불이 조성되었다는 추론이 가능하였다. 천왕사 철불의 조성시기 또한 석굴암 본존불 형식을 계승한 통일신라 후기의 불상과 양평 사나사 철불, 임실 중기사 철불과 같은 고려 전반의 불상을 양식적으로 연결시켜 비교, 고찰하는 한편 924년 천왕사에 잠시 머물렀던 원종대사 찬유와는 관련성이 적다는 점을 근거로 고려 전반인 930-940년경으로 추정하였다.
고려 전반은 태조 왕건의 후원 아래 지방호족과 선승들에 의해 선종과 그 교법이 활발하게 전개되면서 교종을 수용하여 교선융합사상으로 발전했던 때이다. 이 시기에는 통일신라 후기의 선종사찰에 주로 봉안되었던 철조의 비로자나불상 또는 노사나불상을 거의 찾아볼 수 없지만 하남지역을 비롯한 남한강 일대에서 고려 전기의 항마촉지인 철불이 다수 조성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선종과 교종이 융합되는 불교의 시대적 흐름에 따라 불상의 도상도 변화 과정을 거치게 된 것으로 보았다. 더욱이 하남 천왕사지 철불이 양식적 면에서 통일신라 전성기의 석굴암 본존불상을 재현했다는 것은 지방호족들의 세력을 연합하고 왕권을 강화하려고 했던 고려 태조의 정치적 의도가 있었던 것이다. 3m에 가까운 대형의 철불로서 장대하고 위엄있는 조형감을 강조한 것 역시 철이 가진 투박하고 강인한 특성을 이용하여 고려 왕권의 강력한 이미지를 표현하려고 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바로 이 점에 하남 천왕사지 철불의 가장 큰 특성과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e Iron seated Buddha statue of Cheonwangsa Temple(天王寺) in Hanam, Gyeonggi-do, have been noted for being the largest Buddha of the early Goryeo Dynasty among the iron Buddhas that have emerged since the 9th century. The statue is nearly 3 meter...
The Iron seated Buddha statue of Cheonwangsa Temple(天王寺) in Hanam, Gyeonggi-do, have been noted for being the largest Buddha of the early Goryeo Dynasty among the iron Buddhas that have emerged since the 9th century. The statue is nearly 3 meters tall and weighs 6.2 tons. Originally left unattended at a temple site in Hasachang-dong, Hanam-si, Gyeonggi-do, it was moved to the Yiwanga(李王家) Museum in 1911, and is now housed in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Cheonwangsa Temple Site in Hanam is a main Buddha enshrined in Cheonwangsa Temple, a Seonjong Buddhist temple(禪宗寺刹), which was constructed in the first half of Goryeo Dynasty in the mid-8th century, following the main Buddhist style of Seokguram Grotto(石窟庵) in Gyeongju. As for the supporters of the creation of the Iron Buddha, Wang Gyu(王規), a representative local family in Hanam(河南), was generally believed to have been established, but a large-scale statue of the Stone Buddha was created due to the change in the doctrines of the local family and Seonjong, along with the Buddhist policy pursued by King Taejo(太祖) of Goryeo to strengthen the royal authority.
Especially in the aspect of the style, the iron Buddha of Cheonwangsa Temple in Hanam, in connection with Seonjong of the early Goryeo Dynasty, was not the hand seal of the Wishdom of Vairocana, but the hand seal of the touch of the earth, or the subjugation, a traditional Buddhist style. It was found to reflect the Buddhist policies of King Taejo of Goryeo and the trend of Buddhist faith. Based on this argument, it was possible to infer that the construction of the Cheonwangsa Temple Site in Hanam did not have much influence on the relationship between Seonjong and the monks, and that Wang Gyu, a powerful local family, organized the work related to the construction of the Buddha statue, but Taejo of Goryeo, which was actually the first month of the Goryeo Dynasty, was one of the policies to strengthen the royal authority.
The construction period of Cheonwangsa Temple"s iron Buddha was also compared and examined by connecting the Buddha statues of the late Unified Silla Dynasty, which inherited the main Buddha form of Seokguram Grotto, and the Buddha statues of the early Goryeo Dynasty, such as the Iron Buddha of Sanasa Temple(舍那寺) in Yangpyeong and the Iron Buddha of Junggisa Temple(中基寺) in Imsil. On the other hand, it was estimated to be around 930-940 in the first half of Goryeo, based on the fact that it was less related to Chanyu(瓚幽), a Buddhist monk who briefly stayed at Cheonwangsa Temple in 924.
The first half of Goryeo was a time when under the King Taejo"s support, Seonjong and its teaching methods were actively developed by powerful local families and Seon Buddhist monks(禪僧), and it was developed into the idea of convergence of the church by accepting the Gyosong(敎宗). During this period, there were few statues of Vairocana(毘盧遮那佛像) or Vairocana(盧舍那佛像), which were enshrined in Seonjong Temple during the late Unified Silla Period, but a number of iron Buddha statues of the early Goryeo Dynasty were built in the Namhangang River area, including Hanam. This phenomenon was attributed to the process of changing the image of Buddha in accordance with the trend of Buddhism, in which Seonjong and Gyojong were merged.
Moreover, the reproduction of the main Buddha statue of Seokguram Grotto in the heyday of the Unified Silla Dynasty was the political intention of King Taejo of the Goryeo Dynasty, who was trying to unite the powerful local family and strengthen the royal authority. The emphasis on the grand and dignified formality of the iron Buddha, which is nearly three meters tall, is also seen as an attempt to express the powerful image of the Goryeo royal authority by utilizing the rugged and strong characteristics of iron. This is why the Iron Buddha in Cheonwangsa Temple site in Hanam has the greatest characteristics and significance.
목차 (Table of Contents)
참고문헌 (Reference)
1 정영호, "「양평 옥천면 불적」-사나사와 옥천리 유적을 중심하여-" 백산학회 8 : 1970
2 최인선, "한국의 철불" 단국대학교박물관 22 : 2007
3 황보경, "하남지역 불교유적에 대한 연구" 한국대학박물관협회 56 : 2000
4 황보경, "하남지역 라말려초 유적 연구" 한국고대학회 21 : 2004
5 세종대학교박물관, "하남시의 역사와 문화유적" 1999
6 최정필, "하남시 교산동일대 문화유적" 세종연구원 1996
7 김순배, "하남(河南) 지역의 지명 변천" 한국지명학회 17 : 61-104, 2011
8 화랑문화재연구원, "하남 천왕사지Ⅰ-Ⅳ" 2017
9 한국문화재보호재단, "하남 천왕사지 시굴조사보고서" 2001
10 손환일, "하남 천왕사지 2차 시굴조사보고서" 2002
1 정영호, "「양평 옥천면 불적」-사나사와 옥천리 유적을 중심하여-" 백산학회 8 : 1970
2 최인선, "한국의 철불" 단국대학교박물관 22 : 2007
3 황보경, "하남지역 불교유적에 대한 연구" 한국대학박물관협회 56 : 2000
4 황보경, "하남지역 라말려초 유적 연구" 한국고대학회 21 : 2004
5 세종대학교박물관, "하남시의 역사와 문화유적" 1999
6 최정필, "하남시 교산동일대 문화유적" 세종연구원 1996
7 김순배, "하남(河南) 지역의 지명 변천" 한국지명학회 17 : 61-104, 2011
8 화랑문화재연구원, "하남 천왕사지Ⅰ-Ⅳ" 2017
9 한국문화재보호재단, "하남 천왕사지 시굴조사보고서" 2001
10 손환일, "하남 천왕사지 2차 시굴조사보고서" 2002
11 황수영, "통일신라시대의 철불" 한국미술사학회 (154‧155) : 1982
12 강우방, "통일신라 철불과 고려 철불의 편년시론" 국립중앙박물관 31 : 1988
13 한국문화재보호재단, "천왕사지 2차 시굴조사보고서" 2002
14 이왕직, "이왕가박물관 소장품 사진첩" 1907
15 정규홍, "위기의 문화재" 학연문화사 2010
16 김갑동, "왕권의 확립과정과 호족" 국사편찬위원호 12 : 1993
17 하남시사편찬위원회, "역사도시 하남" 2001
18 최인선, "신라하대의 철불에 대한 연구" 전라남도 5 : 1992
19 최성은, "신라하대 實相寺 철조여래좌상에 대한 고찰" 고려사학회 (54) : 157-190, 2014
20 문명대, "신라철불 조성문제와 실상사 철아미타불좌상의 연구"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소 37 : 2000
21 조범환, "신라말 봉림산문과 신라왕실" 진단학회 78 : 1994
22 박정규, "신라말 고려초 사자산문과 정치세력" 진단학회 77 : 1994
23 조범환, "신라 하대 홍척선사의 실상산문 개창과 철불 조성" 신라사학회 6 : 2006
24 배재훈, "신라 하대 철불의 수용과 후원 세력" 한국고대사탐구학회 (27) : 7-56, 2017
25 정동락, "신라 하대 선종 사원과 철불" 한국고대사탐구학회 (27) : 57-102, 2017
26 권덕영, "신라 견당사의 라당간 왕복행로에 대한 고찰" 역사학회 149 : 1996
27 서울 종로구, "서울 북한산 구기동 마애여래좌상 및 승가사 석조승가대사좌상" 2018
28 김혜완, "보원사 철불의 조상-고려초 원주철불과 관련하여" 수선사학회 14 : 2000
29 세종대학교박물관, "문화유적분포지도-하남시" 2005
30 유원적, "동전과 장보고 해상무역" 위진수당사연구회 2 : 1994
31 김두진, "나말여초의 선종산문과 그 사상의 변화" 신라문화연구소 (27) : 111-131, 2006
32 김혜완, "나말려초남한강 주변의 선종사원과 선사들의 활동-정치세력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한국고대사학회 (49) : 257-292, 2008
33 최성은, "나말려초 중부지역 철불의 양식 계보" 한국불교미술사학회 8 : 1996
34 남동신, "나말려초 국왕과 불교의 관계" 한국역사연구회 (56) : 81-111, 2005
35 경기도, "기내사원지" 1988
36 이영민, "광주의 구치소 ‘고골’에 관한 역사지리적 연구" 대한지리학회 26 (26): 1991
37 광주군지편찬위원회, "광주군지" 1990
38 차순철, "관자명 명문와의 사용처 검토" 경주대 경주문화연구소 5 : 2002
39 최성은, "고려초기 광주철불좌상 연구" 불교미술사학회 2 : 1995
40 민활, "고려전기 남한강 문화권의 형성과 불상조성" 한국미술사학회 285 (285): 39-69, 2015
41 황수영, "고려시대의 철불" 한국미술사학회 (166‧167) : 1985
42 서명희, "고려시대 철소에 대한 연구" 한국사연구회 69 : 1990
43 이인영, "고려시대 철불상의 고찰" 미술사학연구회 2 : 1989
44 최성은, "고려시대 불교조각 연구" 일조각 2013
45 이재범, "고려건국기사회동향연구" 경인문화사 2010
46 강희웅, "고려 혜종조 왕위계승란의 신해석" 고려사학회 7 : 1977
47 한기문, "고려 태조의 불교정책-창건 사원을 중심으로" 대구사학회 22 : 1984
48 한정수, "고려 초 왕규의 난에 대한 재검토" 역사실학회 (62) : 5-36, 2017
49 권보경, "고려 전기 원주지역 철불의 조성" 한국미술사교육학회 39 : 105-129, 2020
50 홍종욱, "고대기와의 자연과학적 분석 연구 -경기도 하남시 천왕사지출토기와를 중심으로" 국립문화재연구소 (37) : 349-369, 2004
51 심광주, "고대 동아시아의 왕성과 풍납토성" 중부고고학회 2015
52 경기도박물관, "경기도 불적자료집" 1999
53 국립춘천박물관, "강원지역 철불의 과학적 조사․분석보고서" 2020
54 榧本龜次郞, "鳳巖寺調査復命書(筆寫本)" 朝鮮總督府 1935
55 田邊三郞助, "韓國の鐵佛について" 東京國立博物館 307 : 1976
56 中吉功, "造像銘のある新羅の鐵佛二種" 朝鮮學會 12 : 1958
57 김용선, "玄昱ㆍ審希ㆍ璨幽와 여주 고달사" 한국중세사학회 (21) : 111-139, 2006
58 노윤상, "河南 天王寺址 出土 二重蓮瓣 막새의 제작시기 檢討" 신라문화연구소 (39) : 207-238, 2012
59 關野貞, "朝鮮美術史" 朝鮮史學會 1932
60 今西龍, "新羅史硏究" 近澤書店 1933
61 中吉功, "實相寺 鐵造藥師如來像小論" 朝鮮學會 17 : 1960
62 강건우, "實相寺 鐵佛 硏究" 불교미술사학회 15 : 71-100, 2013
63 문화재청 ‧ 불교문화재연구소, "『한국의 사지』사지(폐사지) 현황조사보고서(하)-경기남부" 2010
64 이왕직, "『이왕가박물관 소장품 사진첩』 불상부" 1929
65 한양대학교박물관, "『이성산성』 3차 발굴조사보고서" 1991
66 이지관, "『교감역주 역대고승비문』 고려편 2" 1995
67 이지관, "『교감역주 역대고승비문』 고려편 1" 1994
68 한국문화재재단, "『고려가 사랑한 부처님의 나라』-천왕사지 문화재 발굴 특별전-" 2015
69 谷井濟一, "『大正6年度 古蹟調査報告書』-京畿道 廣州" 朝鮮總督府 1919
70 今西龍, "『大正5年度 古蹟調査報告書』-京畿道 및 黃海道1" 朝鮮總督府 1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