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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남 천왕사지 철불좌상의 출현과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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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경기도 하남시 천왕사지 철불좌상은 9세기 이후에 출현하는 철불 중에서 최대 규모의 고려 초기 불상으로 주목되어 왔다. 불상 높이가 3m에 가깝고 무게는 6.2톤에 이른다. 원래 경기도 하남시 하사창동의 절터에 방치되어 있었던 것을 1911년에 이왕가박물관으로 옮겨왔다가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하남 천왕사지 철불은 선종 사찰인 천왕사에 봉안된 주존불로 8세기 중엽의 경주 석굴암 본존불 형식을 따르면서 양식상 고려 전반에 조성되었던 것으로 보았다. 철불 조성의 후원세력에 대해서는 하남지역의 대표적인 지방호족인 왕규의 조성설이 일반적이었지만 고려 태조가 왕권 강화를 위해 추진했던 불교정책과 함께 지방호족의 후원 및 선종의 교리적 측면에서의 변화에 의해 대형의 철조석가불상이 조성된 것으로 해석하였다. 특히 도상적인 측면에서 하남 천왕사 철불이 고려 초기의 선종과의 연관성 속에서 지권인의 비로자나 불상이 아니라 전통 불상양식인 항마촉지인의 석가불상으로 형상화된 것은 고려 태조의 불교정책과 불교신앙의 시대적 추이를 반영한 것으로 파악하였다. 이러한 논지에 의해 하남 천왕사지 철불의 조성에는 선종과의 관련성이나 선승들의 역할이 크게 작용하지 않았으며 지방호족 왕규는 불상 조성과 관련된 일을 주관했으나 실제 단월이었던 고려 태조가 왕권 강화정책의 하나로 기념비적인 거불이 조성되었다는 추론이 가능하였다. 천왕사 철불의 조성시기 또한 석굴암 본존불 형식을 계승한 통일신라 후기의 불상과 양평 사나사 철불, 임실 중기사 철불과 같은 고려 전반의 불상을 양식적으로 연결시켜 비교, 고찰하는 한편 924년 천왕사에 잠시 머물렀던 원종대사 찬유와는 관련성이 적다는 점을 근거로 고려 전반인 930-940년경으로 추정하였다.
      고려 전반은 태조 왕건의 후원 아래 지방호족과 선승들에 의해 선종과 그 교법이 활발하게 전개되면서 교종을 수용하여 교선융합사상으로 발전했던 때이다. 이 시기에는 통일신라 후기의 선종사찰에 주로 봉안되었던 철조의 비로자나불상 또는 노사나불상을 거의 찾아볼 수 없지만 하남지역을 비롯한 남한강 일대에서 고려 전기의 항마촉지인 철불이 다수 조성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선종과 교종이 융합되는 불교의 시대적 흐름에 따라 불상의 도상도 변화 과정을 거치게 된 것으로 보았다. 더욱이 하남 천왕사지 철불이 양식적 면에서 통일신라 전성기의 석굴암 본존불상을 재현했다는 것은 지방호족들의 세력을 연합하고 왕권을 강화하려고 했던 고려 태조의 정치적 의도가 있었던 것이다. 3m에 가까운 대형의 철불로서 장대하고 위엄있는 조형감을 강조한 것 역시 철이 가진 투박하고 강인한 특성을 이용하여 고려 왕권의 강력한 이미지를 표현하려고 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바로 이 점에 하남 천왕사지 철불의 가장 큰 특성과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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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하남시 천왕사지 철불좌상은 9세기 이후에 출현하는 철불 중에서 최대 규모의 고려 초기 불상으로 주목되어 왔다. 불상 높이가 3m에 가깝고 무게는 6.2톤에 이른다. 원래 경기도 하남...

      경기도 하남시 천왕사지 철불좌상은 9세기 이후에 출현하는 철불 중에서 최대 규모의 고려 초기 불상으로 주목되어 왔다. 불상 높이가 3m에 가깝고 무게는 6.2톤에 이른다. 원래 경기도 하남시 하사창동의 절터에 방치되어 있었던 것을 1911년에 이왕가박물관으로 옮겨왔다가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하남 천왕사지 철불은 선종 사찰인 천왕사에 봉안된 주존불로 8세기 중엽의 경주 석굴암 본존불 형식을 따르면서 양식상 고려 전반에 조성되었던 것으로 보았다. 철불 조성의 후원세력에 대해서는 하남지역의 대표적인 지방호족인 왕규의 조성설이 일반적이었지만 고려 태조가 왕권 강화를 위해 추진했던 불교정책과 함께 지방호족의 후원 및 선종의 교리적 측면에서의 변화에 의해 대형의 철조석가불상이 조성된 것으로 해석하였다. 특히 도상적인 측면에서 하남 천왕사 철불이 고려 초기의 선종과의 연관성 속에서 지권인의 비로자나 불상이 아니라 전통 불상양식인 항마촉지인의 석가불상으로 형상화된 것은 고려 태조의 불교정책과 불교신앙의 시대적 추이를 반영한 것으로 파악하였다. 이러한 논지에 의해 하남 천왕사지 철불의 조성에는 선종과의 관련성이나 선승들의 역할이 크게 작용하지 않았으며 지방호족 왕규는 불상 조성과 관련된 일을 주관했으나 실제 단월이었던 고려 태조가 왕권 강화정책의 하나로 기념비적인 거불이 조성되었다는 추론이 가능하였다. 천왕사 철불의 조성시기 또한 석굴암 본존불 형식을 계승한 통일신라 후기의 불상과 양평 사나사 철불, 임실 중기사 철불과 같은 고려 전반의 불상을 양식적으로 연결시켜 비교, 고찰하는 한편 924년 천왕사에 잠시 머물렀던 원종대사 찬유와는 관련성이 적다는 점을 근거로 고려 전반인 930-940년경으로 추정하였다.
      고려 전반은 태조 왕건의 후원 아래 지방호족과 선승들에 의해 선종과 그 교법이 활발하게 전개되면서 교종을 수용하여 교선융합사상으로 발전했던 때이다. 이 시기에는 통일신라 후기의 선종사찰에 주로 봉안되었던 철조의 비로자나불상 또는 노사나불상을 거의 찾아볼 수 없지만 하남지역을 비롯한 남한강 일대에서 고려 전기의 항마촉지인 철불이 다수 조성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선종과 교종이 융합되는 불교의 시대적 흐름에 따라 불상의 도상도 변화 과정을 거치게 된 것으로 보았다. 더욱이 하남 천왕사지 철불이 양식적 면에서 통일신라 전성기의 석굴암 본존불상을 재현했다는 것은 지방호족들의 세력을 연합하고 왕권을 강화하려고 했던 고려 태조의 정치적 의도가 있었던 것이다. 3m에 가까운 대형의 철불로서 장대하고 위엄있는 조형감을 강조한 것 역시 철이 가진 투박하고 강인한 특성을 이용하여 고려 왕권의 강력한 이미지를 표현하려고 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바로 이 점에 하남 천왕사지 철불의 가장 큰 특성과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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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e Iron seated Buddha statue of Cheonwangsa Temple(天王寺) in Hanam, Gyeonggi-do, have been noted for being the largest Buddha of the early Goryeo Dynasty among the iron Buddhas that have emerged since the 9th century. The statue is nearly 3 meters tall and weighs 6.2 tons. Originally left unattended at a temple site in Hasachang-dong, Hanam-si, Gyeonggi-do, it was moved to the Yiwanga(李王家) Museum in 1911, and is now housed in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Cheonwangsa Temple Site in Hanam is a main Buddha enshrined in Cheonwangsa Temple, a Seonjong Buddhist temple(禪宗寺刹), which was constructed in the first half of Goryeo Dynasty in the mid-8th century, following the main Buddhist style of Seokguram Grotto(石窟庵) in Gyeongju. As for the supporters of the creation of the Iron Buddha, Wang Gyu(王規), a representative local family in Hanam(河南), was generally believed to have been established, but a large-scale statue of the Stone Buddha was created due to the change in the doctrines of the local family and Seonjong, along with the Buddhist policy pursued by King Taejo(太祖) of Goryeo to strengthen the royal authority.
      Especially in the aspect of the style, the iron Buddha of Cheonwangsa Temple in Hanam, in connection with Seonjong of the early Goryeo Dynasty, was not the hand seal of the Wishdom of Vairocana, but the hand seal of the touch of the earth, or the subjugation, a traditional Buddhist style. It was found to reflect the Buddhist policies of King Taejo of Goryeo and the trend of Buddhist faith. Based on this argument, it was possible to infer that the construction of the Cheonwangsa Temple Site in Hanam did not have much influence on the relationship between Seonjong and the monks, and that Wang Gyu, a powerful local family, organized the work related to the construction of the Buddha statue, but Taejo of Goryeo, which was actually the first month of the Goryeo Dynasty, was one of the policies to strengthen the royal authority.
      The construction period of Cheonwangsa Temple"s iron Buddha was also compared and examined by connecting the Buddha statues of the late Unified Silla Dynasty, which inherited the main Buddha form of Seokguram Grotto, and the Buddha statues of the early Goryeo Dynasty, such as the Iron Buddha of Sanasa Temple(舍那寺) in Yangpyeong and the Iron Buddha of Junggisa Temple(中基寺) in Imsil. On the other hand, it was estimated to be around 930-940 in the first half of Goryeo, based on the fact that it was less related to Chanyu(瓚幽), a Buddhist monk who briefly stayed at Cheonwangsa Temple in 924.
      The first half of Goryeo was a time when under the King Taejo"s support, Seonjong and its teaching methods were actively developed by powerful local families and Seon Buddhist monks(禪僧), and it was developed into the idea of convergence of the church by accepting the Gyosong(敎宗). During this period, there were few statues of Vairocana(毘盧遮那佛像) or Vairocana(盧舍那佛像), which were enshrined in Seonjong Temple during the late Unified Silla Period, but a number of iron Buddha statues of the early Goryeo Dynasty were built in the Namhangang River area, including Hanam. This phenomenon was attributed to the process of changing the image of Buddha in accordance with the trend of Buddhism, in which Seonjong and Gyojong were merged.
      Moreover, the reproduction of the main Buddha statue of Seokguram Grotto in the heyday of the Unified Silla Dynasty was the political intention of King Taejo of the Goryeo Dynasty, who was trying to unite the powerful local family and strengthen the royal authority. The emphasis on the grand and dignified formality of the iron Buddha, which is nearly three meters tall, is also seen as an attempt to express the powerful image of the Goryeo royal authority by utilizing the rugged and strong characteristics of iron. This is why the Iron Buddha in Cheonwangsa Temple site in Hanam has the greatest characteristics and signific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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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Iron seated Buddha statue of Cheonwangsa Temple(天王寺) in Hanam, Gyeonggi-do, have been noted for being the largest Buddha of the early Goryeo Dynasty among the iron Buddhas that have emerged since the 9th century. The statue is nearly 3 meter...

      The Iron seated Buddha statue of Cheonwangsa Temple(天王寺) in Hanam, Gyeonggi-do, have been noted for being the largest Buddha of the early Goryeo Dynasty among the iron Buddhas that have emerged since the 9th century. The statue is nearly 3 meters tall and weighs 6.2 tons. Originally left unattended at a temple site in Hasachang-dong, Hanam-si, Gyeonggi-do, it was moved to the Yiwanga(李王家) Museum in 1911, and is now housed in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Cheonwangsa Temple Site in Hanam is a main Buddha enshrined in Cheonwangsa Temple, a Seonjong Buddhist temple(禪宗寺刹), which was constructed in the first half of Goryeo Dynasty in the mid-8th century, following the main Buddhist style of Seokguram Grotto(石窟庵) in Gyeongju. As for the supporters of the creation of the Iron Buddha, Wang Gyu(王規), a representative local family in Hanam(河南), was generally believed to have been established, but a large-scale statue of the Stone Buddha was created due to the change in the doctrines of the local family and Seonjong, along with the Buddhist policy pursued by King Taejo(太祖) of Goryeo to strengthen the royal authority.
      Especially in the aspect of the style, the iron Buddha of Cheonwangsa Temple in Hanam, in connection with Seonjong of the early Goryeo Dynasty, was not the hand seal of the Wishdom of Vairocana, but the hand seal of the touch of the earth, or the subjugation, a traditional Buddhist style. It was found to reflect the Buddhist policies of King Taejo of Goryeo and the trend of Buddhist faith. Based on this argument, it was possible to infer that the construction of the Cheonwangsa Temple Site in Hanam did not have much influence on the relationship between Seonjong and the monks, and that Wang Gyu, a powerful local family, organized the work related to the construction of the Buddha statue, but Taejo of Goryeo, which was actually the first month of the Goryeo Dynasty, was one of the policies to strengthen the royal authority.
      The construction period of Cheonwangsa Temple"s iron Buddha was also compared and examined by connecting the Buddha statues of the late Unified Silla Dynasty, which inherited the main Buddha form of Seokguram Grotto, and the Buddha statues of the early Goryeo Dynasty, such as the Iron Buddha of Sanasa Temple(舍那寺) in Yangpyeong and the Iron Buddha of Junggisa Temple(中基寺) in Imsil. On the other hand, it was estimated to be around 930-940 in the first half of Goryeo, based on the fact that it was less related to Chanyu(瓚幽), a Buddhist monk who briefly stayed at Cheonwangsa Temple in 924.
      The first half of Goryeo was a time when under the King Taejo"s support, Seonjong and its teaching methods were actively developed by powerful local families and Seon Buddhist monks(禪僧), and it was developed into the idea of convergence of the church by accepting the Gyosong(敎宗). During this period, there were few statues of Vairocana(毘盧遮那佛像) or Vairocana(盧舍那佛像), which were enshrined in Seonjong Temple during the late Unified Silla Period, but a number of iron Buddha statues of the early Goryeo Dynasty were built in the Namhangang River area, including Hanam. This phenomenon was attributed to the process of changing the image of Buddha in accordance with the trend of Buddhism, in which Seonjong and Gyojong were merged.
      Moreover, the reproduction of the main Buddha statue of Seokguram Grotto in the heyday of the Unified Silla Dynasty was the political intention of King Taejo of the Goryeo Dynasty, who was trying to unite the powerful local family and strengthen the royal authority. The emphasis on the grand and dignified formality of the iron Buddha, which is nearly three meters tall, is also seen as an attempt to express the powerful image of the Goryeo royal authority by utilizing the rugged and strong characteristics of iron. This is why the Iron Buddha in Cheonwangsa Temple site in Hanam has the greatest characteristics and signific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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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국문초록
      • Ⅰ. 서론
      • Ⅱ. 철불 연구의 쟁점과 문제
      • Ⅲ. 하남 천왕사지 철불좌상의 출현과 조성배경
      • Ⅳ. 하남 천왕사지 철불좌상의 도상과 존명
      • 국문초록
      • Ⅰ. 서론
      • Ⅱ. 철불 연구의 쟁점과 문제
      • Ⅲ. 하남 천왕사지 철불좌상의 출현과 조성배경
      • Ⅳ. 하남 천왕사지 철불좌상의 도상과 존명
      • Ⅴ. 맺음말
      • 참고문헌
      •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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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정영호, "「양평 옥천면 불적」-사나사와 옥천리 유적을 중심하여-" 백산학회 8 : 1970

      2 최인선, "한국의 철불" 단국대학교박물관 22 : 2007

      3 황보경, "하남지역 불교유적에 대한 연구" 한국대학박물관협회 56 : 2000

      4 황보경, "하남지역 라말려초 유적 연구" 한국고대학회 21 : 2004

      5 세종대학교박물관, "하남시의 역사와 문화유적" 1999

      6 최정필, "하남시 교산동일대 문화유적" 세종연구원 1996

      7 김순배, "하남(河南) 지역의 지명 변천" 한국지명학회 17 : 61-104, 2011

      8 화랑문화재연구원, "하남 천왕사지Ⅰ-Ⅳ" 2017

      9 한국문화재보호재단, "하남 천왕사지 시굴조사보고서" 2001

      10 손환일, "하남 천왕사지 2차 시굴조사보고서" 2002

      1 정영호, "「양평 옥천면 불적」-사나사와 옥천리 유적을 중심하여-" 백산학회 8 : 1970

      2 최인선, "한국의 철불" 단국대학교박물관 22 : 2007

      3 황보경, "하남지역 불교유적에 대한 연구" 한국대학박물관협회 56 : 2000

      4 황보경, "하남지역 라말려초 유적 연구" 한국고대학회 21 : 2004

      5 세종대학교박물관, "하남시의 역사와 문화유적" 1999

      6 최정필, "하남시 교산동일대 문화유적" 세종연구원 1996

      7 김순배, "하남(河南) 지역의 지명 변천" 한국지명학회 17 : 61-104, 2011

      8 화랑문화재연구원, "하남 천왕사지Ⅰ-Ⅳ" 2017

      9 한국문화재보호재단, "하남 천왕사지 시굴조사보고서" 2001

      10 손환일, "하남 천왕사지 2차 시굴조사보고서" 2002

      11 황수영, "통일신라시대의 철불" 한국미술사학회 (154‧155) : 1982

      12 강우방, "통일신라 철불과 고려 철불의 편년시론" 국립중앙박물관 31 : 1988

      13 한국문화재보호재단, "천왕사지 2차 시굴조사보고서"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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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정규홍, "위기의 문화재" 학연문화사 2010

      16 김갑동, "왕권의 확립과정과 호족" 국사편찬위원호 12 : 1993

      17 하남시사편찬위원회, "역사도시 하남" 2001

      18 최인선, "신라하대의 철불에 대한 연구" 전라남도 5 :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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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조범환, "신라말 봉림산문과 신라왕실" 진단학회 78 : 1994

      22 박정규, "신라말 고려초 사자산문과 정치세력" 진단학회 77 :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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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배재훈, "신라 하대 철불의 수용과 후원 세력" 한국고대사탐구학회 (27) : 7-56,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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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 今西龍, "新羅史硏究" 近澤書店 1933

      61 中吉功, "實相寺 鐵造藥師如來像小論" 朝鮮學會 17 : 1960

      62 강건우, "實相寺 鐵佛 硏究" 불교미술사학회 15 : 71-100, 2013

      63 문화재청 ‧ 불교문화재연구소, "『한국의 사지』사지(폐사지) 현황조사보고서(하)-경기남부"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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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7 이지관, "『교감역주 역대고승비문』 고려편 1" 1994

      68 한국문화재재단, "『고려가 사랑한 부처님의 나라』-천왕사지 문화재 발굴 특별전-" 2015

      69 谷井濟一, "『大正6年度 古蹟調査報告書』-京畿道 廣州" 朝鮮總督府 1919

      70 今西龍, "『大正5年度 古蹟調査報告書』-京畿道 및 黃海道1" 朝鮮總督府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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