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복위사건은 조선 역사상 현 관직자가 가장 많이 참여한 謀反이었다. 명분이 뚜렷하고 현직자가 많았던 만큼 국가에 대한 위험성은 높았고 따라서 이에 대한 처벌을 철저했다. 그런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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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Korean
단종복위사건 ; 대명률 ; 남귀여가혼 ; 장인 ; 사위 ; 외손 ; 외조 ; 박증 ; 박호 ; 외손봉사 ; Danjong Restoration Incident ; Daemyeongnyul ; the GreatMing Code ; Namguiyeogahon ; Fathers-in-law ; Sons-inlaw ; Maternal grandfather ; Maternal grandchild ; ParkJeng ; Park Ho ; Park family
KCI등재
학술저널
139-166(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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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복위사건은 조선 역사상 현 관직자가 가장 많이 참여한 謀反이었다. 명분이 뚜렷하고 현직자가 많았던 만큼 국가에 대한 위험성은 높았고 따라서 이에 대한 처벌을 철저했다. 그런데 ...
단종복위사건은 조선 역사상 현 관직자가 가장 많이 참여한 謀反이었다. 명분이 뚜렷하고 현직자가 많았던 만큼 국가에 대한 위험성은 높았고 따라서 이에 대한 처벌을 철저했다.
그런데 처벌이 강력했다고 해도 조선이 차용했던『대명률』에 따르면 시집간 딸에 대해서는 연좌를 안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조선은 단종복위사건 처벌 시 사위들에게도 유배형을 내린다. 중국과는 다른 조치이다. 조선은 왜 이런 특별한 조치를 하고 있는 것일까? 이는 뭔가 조선의 가족제적 특성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조선은 오랫동안 남귀여가혼은 해왔다. 혼인 후 남자가 여자 집에 거주하는 비율이 높은 만큼 장인과 사위의 관계는 돈독했다. 사위와 장인뿐만 아니라 외조와 외손의 관계도 긴밀했다. 따라서 사위는 장인 때문에 관직을 더해 받기도 하고 또 장인의 죄에 연좌되기도 했다. 즉 이익을 얻기도 하고 불이익을 당하기도 했던 것이다.
단종복위사건의 주도자였던 성삼문의 외손들은 외조의 역모로 인해 불이익을 당해야 했다. 첫째 외손 박증은 과거를 포기하고 낙향하여 평생을 지냈다. 관직진출이 용이치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 관직생활에 대한 회의로 이어졌던 것이다. 그리고 그 동생 박호는 관직에 나가기는 했으나 관직생활 내내 역모자의 외손이라는 사실로 불편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이들 무안 박씨 집안은 끝내 불이익만 당하지는 않았다. 조선후기 단종복위사건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면서 오히려 혜택을 받게 된다. 외손으로서 관직을 제수 받기도 하고 박증을 배향한 서원에 사액을 받기도 했다. 시대 상황에 따라 때로는 불이익을 또 때로는 혜택의 양면 모두를 경험하게 된 것이다. 주목할 것은 박씨 집안의 이러한 변화가 모두 외조 성삼문에게서 비롯됐다는 사실이다. 조선에서 장인과 사위, 외조와 외손이 긴밀한 관계에 있기 때문에 생긴 일인 것이다.
조선은 오랫동안 혼인에서 두 집안이 함께 공조하는 시스템을 편리하게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여기에서 중국과는 다른 독특한 가족관계를 형성했던 것이다. 조선에서 처가, 외가의 비중은 높았다. 단종복위사건에는 이러한 조선 가족제의 특성이 잘 드러나 있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When punishing the conspirators of Danjong restoration incident, Joseon court extended the penalty to include the leaders" sons-in-law. The action was not stated in Daemyeongnyul, the Great Ming Code. Joseon court practiced a law outside the Great Cod...
When punishing the conspirators of Danjong restoration incident, Joseon court extended the penalty to include the leaders" sons-in-law. The action was not stated in Daemyeongnyul, the Great Ming Code. Joseon court practiced a law outside the Great Code. Why did Joseon make the special arrangement?
For a long time, people of Joseon practiced Namguiyeogahon. A newly-wed couple lived with the wife"s family for a certain period of time. Such practice gave sons-in-law and their fathers an opportunity to develop close relationship. The relationship between grandfathers and their maternal grandsons was also very intimate. Sons-in-law often benefitted from powerful fathers-in-law, but they were also associated with the fathers" crimes.
The grandchildren of Seong Sam-Moon, the leader of Danjong restoration incident, were disadvantaged because of their maternal grandfather"s crime. The first grandchild, Park Jeng, gave up on civil service examination and spent his whole life in the countryside. His younger brother Park Ho served in the court, but as a traitor"s grandson, he met many difficulties throughout his career.
And yet, the Park family of Muahn did not stay in the disadvantaged position forever. In the late Joseon, with the re-evaluation of Danjong restoration incident, Park family suddenly started to benefit from what their maternal ancestor had done. They received official posts and charters from the king. Thus, the Park family experienced both the privilege and disgrace, depending on the political situation of the time. The interesting fact is that all these impacts on the Park family, good or bad, were caused by their maternal ancestor Seong Sam-Moon. Such outcome was possible only because the fathers and sons-in-law, grandfathers and maternal grandchildren formed a close relationship in Joseon.
It seems that Joseon people thought the mutual assistance between two families linked by marriage as a convenient system. In this way, Joseon enjoyed a family relationship different from that of China. Danjong restoration incident clearly shows the unique family system of Joseon.
목차 (Table of Contents)
참고문헌 (Reference)
1 "태종실록"
2 "태종"
3 "중종"
4 "율곡선생남매분재기"
5 이춘진, "유물과 유적을 통해 본 노성 무안 박씨 in: 암천 박증의 도학정신과 유물유적" 심지 205-, 2005
6 "웹 조선왕조실록"
7 "영조"
8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암천 박증의 도학정신과 유물유적" 심지 264-, 2005
9 "숙종"
10 "세조"
1 "태종실록"
2 "태종"
3 "중종"
4 "율곡선생남매분재기"
5 이춘진, "유물과 유적을 통해 본 노성 무안 박씨 in: 암천 박증의 도학정신과 유물유적" 심지 205-, 2005
6 "웹 조선왕조실록"
7 "영조"
8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암천 박증의 도학정신과 유물유적" 심지 264-, 2005
9 "숙종"
10 "세조"
11 "성종"
12 "선조"
13 "선수"
14 전형신, "병자일기" 예전사 169-, 1991
15 김경수, "무안 박문과 호서 유림의 교유 in: 암천 박증의 도학정신과 유물유적" 심지 148-, 2005
16 이혜준, "모곡서원 창건의 역사적 의의 in: 암천 박증의 도학정신과 유물유적" 심지 124-, 2005
17 "모곡사지"
18 민족문화추진회, "국역 점필재집 부록, 연보"
19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국역 율곡전서 ⅳ"
20 "국역 연려실기술 I, <단종조 고사본말> 육신의 상왕 복위 모의"
21 "국역 연려실기술 I, <단종조 고사본말> 단종조의 상신"
22 민족문화추진회, "국역 연려실기술 I"
23 민족문화추진회, "국역 연려실기술 I"
24 "大明律直解"
학술지 이력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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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7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
201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2015-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201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200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2006-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
2005-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
2004-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 |
2003-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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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1.11 | 1.11 | 1.03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1.03 | 1.05 | 2.153 | 0.4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