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mmunity Granary system (Sachang; 社倉), suggested as an alternative for the Grain Loan (還穀) system, was modeled on the Zhu Xi’s Community Granary. It can be characterized as an autonomous management of grains, organization of villager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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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e Community Granary system (Sachang; 社倉), suggested as an alternative for the Grain Loan (還穀) system, was modeled on the Zhu Xi’s Community Granary. It can be characterized as an autonomous management of grains, organization of villagers, ...
The Community Granary system (Sachang; 社倉), suggested as an alternative for the Grain Loan (還穀) system, was modeled on the Zhu Xi’s Community Granary. It can be characterized as an autonomous management of grains, organization of villagers, and donation of grains by the rich villagers. This was a natural turn as the public famine relief centered with the public grain came to its limitation and as a result, more and more private relief with private grains became an important method of famine relief. Community Pact (鄕約) and the shared asset in the unit of sub-county community for funding various cost such as famine relief can be seen as an usual form in the 19th century. In 1877 famine relief of Suncheon region, among the grains procured from the residents, nearly 20 percent were in the name of ‘voluntary donation’ of rich villagers. The Community Loan system implemented after Gabo Reform assigned the amount of grain in accordance with the size of the county, and the policy was set that the management would be autonomous among the villagers. However, the official authority continued to intervene, and this became a reason for disrupting civil autonomy and resulted in the poor management of the Community Loan system. Even in the beginning of the 20th century, the Community Loan system did not diminish, and it was utilized in the establishment of local financial associations by the colonial authority. It was transformed into a new form, for example, in 1933, the farming rice loan project began, and it was considered as a resurrection of the Community Loan system. The famine relief system, which the Joseon dynasty systemized earlier, shows a unique facet that not only it stood as a universal political action beyond the ruling authority, but also it had a certain affinity with the management of the modern state. This requires further in-depth examination on its characteristics and patterns.
국문 초록 (Abstract)
환곡제의 대안으로 제기된 사창제는 주자사창을 제도적 모범으로 삼았으며 민간의 자율적 곡물운영과 이를 위한 향촌조직의 편성, 그리고 부민들의 곡물출연 등을 특징으로 했다. 이는 公...
환곡제의 대안으로 제기된 사창제는 주자사창을 제도적 모범으로 삼았으며 민간의 자율적 곡물운영과 이를 위한 향촌조직의 편성, 그리고 부민들의 곡물출연 등을 특징으로 했다. 이는 公穀 중심의 公賑이 한계에 도달하자 점차 私穀에 의한 私賑이 중요한 진휼방식으로 떠오르면서 나타난 자연스러운 추세였다. 면 단위로 향약과 공유자산을 운용하여 진휼을 비롯한 각종 비용을 대는 방식은 19세기 일반적인 형태로 포착된다. 1877년 순천지역에 대한 진휼에서 ‘饒民’의 願納 명목으로 조달된 민간곡이 대략 2할에 육박할 정도로 향촌민의 진휼참여가 두드러졌다. 갑오개혁기 실시된 사환제는 읍의 규모에 따라 곡물을 배정하여 민의 자율적 운영에 맡기도록 방침이 정해졌고 여기에서도 ‘鄕民’은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관의 간섭은 여전했고 이는 민간의 자율성을 크게 침해하면서 사환제 운영의 부실을 가져온 요인이 되었다. 20세기에 접어들어서도 사환제는 완전히 소멸하지 않고 일제에 의한 지방금융조합 설립에 적극적으로 활용되었으며 1933년에 농량미 대부사업을 실시하면서 이를 사환미제도의 부활로 간주하는 등 새로운 형태로 전신하였다. 조선왕조가 조기적으로 제도화한 ‘진휼’시스템은 지배권력의 성격을 넘어 보편적인 정치행위로서의 위상을 가지고 있었을 뿐 아니라 근대국가의 운영과 관련하여 일정한 친연성을 가지고 있음은 매우 독특한 양상으로 그 특성과 유형에 대한 보다 깊은 검토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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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밀양 밀성박씨 인당공파의 종계 운영과 문중 활동
학술지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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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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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200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200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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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 |
1999-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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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87 | 0.87 | 0.96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97 | 0.98 | 2.253 | 0.4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