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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집논문] 19세기 社倉ㆍ社還制 운영과 향촌민의 진휼참여 -순천 지역의 사례를 중심으로- = Participation in Famine Relief of Villagers and the Management of Community Granary and Community Loan System in the 19th Century -with the Case of Suncheon Reg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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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777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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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e Community Granary system (Sachang; 社倉), suggested as an alternative for the Grain Loan (還穀) system, was modeled on the Zhu Xi’s Community Granary. It can be characterized as an autonomous management of grains, organization of villagers, and donation of grains by the rich villagers. This was a natural turn as the public famine relief centered with the public grain came to its limitation and as a result, more and more private relief with private grains became an important method of famine relief. Community Pact (鄕約) and the shared asset in the unit of sub-county community for funding various cost such as famine relief can be seen as an usual form in the 19th century. In 1877 famine relief of Suncheon region, among the grains procured from the residents, nearly 20 percent were in the name of ‘voluntary donation’ of rich villagers. The Community Loan system implemented after Gabo Reform assigned the amount of grain in accordance with the size of the county, and the policy was set that the management would be autonomous among the villagers. However, the official authority continued to intervene, and this became a reason for disrupting civil autonomy and resulted in the poor management of the Community Loan system. Even in the beginning of the 20th century, the Community Loan system did not diminish, and it was utilized in the establishment of local financial associations by the colonial authority. It was transformed into a new form, for example, in 1933, the farming rice loan project began, and it was considered as a resurrection of the Community Loan system. The famine relief system, which the Joseon dynasty systemized earlier, shows a unique facet that not only it stood as a universal political action beyond the ruling authority, but also it had a certain affinity with the management of the modern state. This requires further in-depth examination on its characteristics and patter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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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Community Granary system (Sachang; 社倉), suggested as an alternative for the Grain Loan (還穀) system, was modeled on the Zhu Xi’s Community Granary. It can be characterized as an autonomous management of grains, organization of villagers, ...

      The Community Granary system (Sachang; 社倉), suggested as an alternative for the Grain Loan (還穀) system, was modeled on the Zhu Xi’s Community Granary. It can be characterized as an autonomous management of grains, organization of villagers, and donation of grains by the rich villagers. This was a natural turn as the public famine relief centered with the public grain came to its limitation and as a result, more and more private relief with private grains became an important method of famine relief. Community Pact (鄕約) and the shared asset in the unit of sub-county community for funding various cost such as famine relief can be seen as an usual form in the 19th century. In 1877 famine relief of Suncheon region, among the grains procured from the residents, nearly 20 percent were in the name of ‘voluntary donation’ of rich villagers. The Community Loan system implemented after Gabo Reform assigned the amount of grain in accordance with the size of the county, and the policy was set that the management would be autonomous among the villagers. However, the official authority continued to intervene, and this became a reason for disrupting civil autonomy and resulted in the poor management of the Community Loan system. Even in the beginning of the 20th century, the Community Loan system did not diminish, and it was utilized in the establishment of local financial associations by the colonial authority. It was transformed into a new form, for example, in 1933, the farming rice loan project began, and it was considered as a resurrection of the Community Loan system. The famine relief system, which the Joseon dynasty systemized earlier, shows a unique facet that not only it stood as a universal political action beyond the ruling authority, but also it had a certain affinity with the management of the modern state. This requires further in-depth examination on its characteristics and patter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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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환곡제의 대안으로 제기된 사창제는 주자사창을 제도적 모범으로 삼았으며 민간의 자율적 곡물운영과 이를 위한 향촌조직의 편성, 그리고 부민들의 곡물출연 등을 특징으로 했다. 이는 公穀 중심의 公賑이 한계에 도달하자 점차 私穀에 의한 私賑이 중요한 진휼방식으로 떠오르면서 나타난 자연스러운 추세였다. 면 단위로 향약과 공유자산을 운용하여 진휼을 비롯한 각종 비용을 대는 방식은 19세기 일반적인 형태로 포착된다. 1877년 순천지역에 대한 진휼에서 ‘饒民’의 願納 명목으로 조달된 민간곡이 대략 2할에 육박할 정도로 향촌민의 진휼참여가 두드러졌다. 갑오개혁기 실시된 사환제는 읍의 규모에 따라 곡물을 배정하여 민의 자율적 운영에 맡기도록 방침이 정해졌고 여기에서도 ‘鄕民’은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관의 간섭은 여전했고 이는 민간의 자율성을 크게 침해하면서 사환제 운영의 부실을 가져온 요인이 되었다. 20세기에 접어들어서도 사환제는 완전히 소멸하지 않고 일제에 의한 지방금융조합 설립에 적극적으로 활용되었으며 1933년에 농량미 대부사업을 실시하면서 이를 사환미제도의 부활로 간주하는 등 새로운 형태로 전신하였다. 조선왕조가 조기적으로 제도화한 ‘진휼’시스템은 지배권력의 성격을 넘어 보편적인 정치행위로서의 위상을 가지고 있었을 뿐 아니라 근대국가의 운영과 관련하여 일정한 친연성을 가지고 있음은 매우 독특한 양상으로 그 특성과 유형에 대한 보다 깊은 검토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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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곡제의 대안으로 제기된 사창제는 주자사창을 제도적 모범으로 삼았으며 민간의 자율적 곡물운영과 이를 위한 향촌조직의 편성, 그리고 부민들의 곡물출연 등을 특징으로 했다. 이는 公...

      환곡제의 대안으로 제기된 사창제는 주자사창을 제도적 모범으로 삼았으며 민간의 자율적 곡물운영과 이를 위한 향촌조직의 편성, 그리고 부민들의 곡물출연 등을 특징으로 했다. 이는 公穀 중심의 公賑이 한계에 도달하자 점차 私穀에 의한 私賑이 중요한 진휼방식으로 떠오르면서 나타난 자연스러운 추세였다. 면 단위로 향약과 공유자산을 운용하여 진휼을 비롯한 각종 비용을 대는 방식은 19세기 일반적인 형태로 포착된다. 1877년 순천지역에 대한 진휼에서 ‘饒民’의 願納 명목으로 조달된 민간곡이 대략 2할에 육박할 정도로 향촌민의 진휼참여가 두드러졌다. 갑오개혁기 실시된 사환제는 읍의 규모에 따라 곡물을 배정하여 민의 자율적 운영에 맡기도록 방침이 정해졌고 여기에서도 ‘鄕民’은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관의 간섭은 여전했고 이는 민간의 자율성을 크게 침해하면서 사환제 운영의 부실을 가져온 요인이 되었다. 20세기에 접어들어서도 사환제는 완전히 소멸하지 않고 일제에 의한 지방금융조합 설립에 적극적으로 활용되었으며 1933년에 농량미 대부사업을 실시하면서 이를 사환미제도의 부활로 간주하는 등 새로운 형태로 전신하였다. 조선왕조가 조기적으로 제도화한 ‘진휼’시스템은 지배권력의 성격을 넘어 보편적인 정치행위로서의 위상을 가지고 있었을 뿐 아니라 근대국가의 운영과 관련하여 일정한 친연성을 가지고 있음은 매우 독특한 양상으로 그 특성과 유형에 대한 보다 깊은 검토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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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이경란, "한말시기 일제의 농업금융정책과 지방금융조합의 설립" 79 : 1998

      2 임선빈, "창해박병국 교수정년기념사학논총" 1994

      3 김용섭, "증보판 한국근대농업사연구, 상" 1988

      4 오일주, "조선후기의 재정구조의 변동과 환곡의 부세화" 3 : 1992

      5 김덕진, "조선후기경제사연구" 선인 2002

      6 김덕진, "조선후기 麗水 復邑運動의 전개와 그 배경" 조선시대사학회 (69) : 167-201, 2014

      7 원재영, "조선후기 황정연구" 연세대학교 2014

      8 송찬섭, "조선후기 환곡제 개혁 연구" 서울대출판부 2002

      9 문용식, "조선후기 진정과 환곡운영" 경인문화사 2000

      10 예지숙, "조선총독부 사회사업정책의 전개와 성격(1910년~1936년)" 서울대학교 2017

      1 이경란, "한말시기 일제의 농업금융정책과 지방금융조합의 설립" 79 : 1998

      2 임선빈, "창해박병국 교수정년기념사학논총" 1994

      3 김용섭, "증보판 한국근대농업사연구, 상" 1988

      4 오일주, "조선후기의 재정구조의 변동과 환곡의 부세화" 3 : 1992

      5 김덕진, "조선후기경제사연구" 선인 2002

      6 김덕진, "조선후기 麗水 復邑運動의 전개와 그 배경" 조선시대사학회 (69) : 167-201, 2014

      7 원재영, "조선후기 황정연구" 연세대학교 2014

      8 송찬섭, "조선후기 환곡제 개혁 연구" 서울대출판부 2002

      9 문용식, "조선후기 진정과 환곡운영" 경인문화사 2000

      10 예지숙, "조선총독부 사회사업정책의 전개와 성격(1910년~1936년)" 서울대학교 2017

      11 박광준, "조선왕조의 빈곤정책-중국ㆍ일본과는 어떻게 다른가" 문사철 2018

      12 송양섭, "임술민란기 부세문제 인식과 三政改革의 방향" 고려사학회 (49) : 7-53, 2012

      13 이경란, "일제하 금융조합연구" 혜안 2002

      14 송찬식, "이조시대 환자취모보용고" 27 : 1965

      15 오환일, "우인김용덕박사정년기념논총" 1988

      16 김준석, "외재 이단하의 시국관과 사창론" 16 : 1986

      17 송양섭, "어시재 최성환 연구" 학자원 2017

      18 오환일, "안정복의 사창에 대한 연구" 46 : 1993

      19 이영훈, "수량경제사로 다시 본 조선후기" 서울대출판부 2004

      20 송찬섭, "대원군 시기 사창제의 운영 실태 : 충청도 청산현 사창문서 분석" 16ㆍ17 : 2000

      21 송양섭, "다산 정약용의 수령 진휼론에 나타난 朱子賑法의 적용과 그 당대적 변용 — 『牧民心書』 賑荒條의 분석 —" 민족문화연구원 (68) : 175-224, 2015

      22 송찬섭, "갑오개혁기 결세제도의 개혁과 환곡제의 변화" 역사학연구소 (1) : 161-187, 1992

      23 崔星煥, "顧問備略"

      24 "順天郡各掌重記"

      25 "順天府鄕約稧案序"

      26 "順天府鄕約住巖面下道一所座目"

      27 "順天府補弊節目"

      28 "順天府各面捄弊節目"

      29 김현진, "順天 住巖面 樓亭攷" 한국시가문화학회 (44) : 33-56, 2019

      30 "鄕約節目"

      31 "賑資米錢來上及用下區別冊"

      32 "西社各里御史錢三十五兩分給成冊"

      33 "西社各里官惠灾減錢分給成冊"

      34 黃翼再, "華齋先生文集"

      35 "舊鄕約中創事蹟"

      36 "肅宗實錄"

      37 麻生武龜, "社還米制度" 朝鮮總督府中樞院 1933

      38 "社還條例"

      39 "社倉報草冊"

      40 "玉川(淳昌)趙氏大同譜"

      41 黃玹, "梅泉野錄"

      42 "東社救弊錢分給成冊"

      43 "朝鮮總督府官報"

      44 吳煥一, "朝鮮時代 社倉연구" 中央大學校 大學院 1991

      45 鄭亨芝, "朝鮮後期 賑恤政策 硏究 : 18世紀를 중심으로" 梨花女子大學校 大學院 1993

      46 "朝鮮"

      47 "日省錄"

      48 "承政院日記"

      49 "實生活新聞"

      50 "召羅浦南社倉補民案"

      51 "南社救弊錢分給成冊"

      52 "住巖面鄕約節目"

      53 柳重敎, "三政策" 아세아문화사

      54 金允植, "三政策" 아세아문화사

      55 盧德奎, "三政策" 아세아문화사

      56 이행묵, "‘壬癸凶荒’期(1832∼1833) 충청도 지역의 진휼 시행과 定山縣의 設賑 실태" 한국사연구회 (190) : 227-273, 2020

      57 이행묵, "[특집논문] 1876~1877년 順天府의 진자확보와 진휼 운영" 조선시대사학회 (97) : 69-117,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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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9 예지숙, "19세기 조선왕조와 메이지 시기 구제 비교를 위한 시론" 2020

      60 송양섭, "19세기 부세운영과 ‘향중공론’의 대두" 역사문제연구소 (116) : 148-175,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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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5 양진석, "17세기 후반 이단하의 사창제 실시론"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 : 139-178, 1997

      66 문용식, "17,18세기 사창(社倉)을 통한 지방관의 재정 보용 사례" 한국역사연구회 (72) : 69-101, 2009

      67 양진석, "17, 18세기 환곡제도의 운영과 기능변화" 서울대학교 대학원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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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87 0.87 0.96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97 0.98 2.253 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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