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ring the latter half period of the Goryeo dynasty, due to the Mongol invasion, the residents who were living in the Ju(州) and Jin(鎭) units inside the Northern Defense perimeter region(Buk'gyae: 北界) had to evacuate their hometowns, and move t...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During the latter half period of the Goryeo dynasty, due to the Mongol invasion, the residents who were living in the Ju(州) and Jin(鎭) units inside the Northern Defense perimeter region(Buk'gyae: 北界) had to evacuate their hometowns, and move t...
During the latter half period of the Goryeo dynasty, due to the Mongol invasion, the residents who were living in the Ju(州) and Jin(鎭) units inside the Northern Defense perimeter region(Buk'gyae: 北界) had to evacuate their hometowns, and move to nearby islands of which the surrounding sea would protect them from the enemies(海島入保: not only the people but the local administrative units themselves were transferred to those islands). Yet after the battles were suspended and the dust was settled, the people had to return from the islands and administrative units had to be reestablished upon the land. Such relocation and return, and the so-called "Gyo'wu(僑寓)" process of temporary resettlement that ensued, are examined here in this article.
In the 19th year of king Gojong's reign, when the Mongol invasion began, residents who were living in the Ju·Jin units above the Cheongcheon River(淸川江), and people whose residences were positioned upon strategic traffic points along the main road line leading to the Gae'gyeong(開京) capital, had to relocate. The administrative units were transferred over to the islands as well. In the meantime, people who were living in the Ju·Jin units under the Cheongcheon River mostly moved to fortresses upon mountains(山城), yet in the 35th year of Gojong's reign they also joined the people crossing over to the islands, and the administrative units were relocated there accordingly.
After the war, the Ju·Jin units returned to the inland, yet in some cases the units had to cover a lot of distance to return to their original location, and for some of them it was simply impossible to resettle as their original villages were completely devastated and destroyed. So Ju·Jin units which faced such circumstances had to settle down in other regions, and that practice was called "Gyo'wu: 僑寓(the temporary settlement)." Some of them were later merged with surrounding regions, or assimilated by the region where they were remaining for the moment. As a result, the Ju·Jin units of the Buk'gyae region slowly transformed into administrative units with features fairly similar to those of the southern regions of the Korean peninsula.
국문 초록 (Abstract)
이 논문은 고려후기 北界 州鎭의 변화를 몽고의 침입으로 인한 海島 入保와 出陸 후에 이루어진 僑寓의 과정을 중심으로 살펴본 것이다. 이를 통해 고려후기 북계가 남도와 같은 체제로 일...
이 논문은 고려후기 北界 州鎭의 변화를 몽고의 침입으로 인한 海島 入保와 出陸 후에 이루어진 僑寓의 과정을 중심으로 살펴본 것이다. 이를 통해 고려후기 북계가 남도와 같은 체제로 일원화되어 나가는 과정을 조망하였다. 이와 함께 『高麗史』 地理志의 관련 연혁에 대한 비판과 補正도 함께 수행하였다.
『고려사』 지리지에서 북계 주진의 해도 입보는 고종 18년의 일로 정리되어 있으나 이는 몽고의 1차 침입과 해도 입보를 하나의 과정으로 인식한 결과로서 실제 입보 시점은 고종 19년이다. 이 때에는 청천강 이북의 주진과 개경으로 내려오는 간선로의 거점이 입보하였다. 청천강 이남의 주진은 주로 山城에 입보하였다. 이어 고종 35년에는 아직 해도에 입보하지 않았던 주진과 본토에 남아 있던 백성들을 모두 해도에 입보하도록 하였다.
州鎭들은 전쟁이 끝난 뒤 出陸하여 本土로 돌아가게 되었으나 본토가 멀거나 황폐해진 일부 주진은 다른 지역에 僑寓하였다. 본토로 돌아간 경우에도 읍세가 취약한 경우에는 인근 주진과 병합되었다. 일부는 본토로 환원되지 못한 채 교우하던 곳에 그대로 정착하거나 현지에서 폐합되기도 하였다. 이런 경우 조선초기에 본토 지역에 따로 군현이 신설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북계 주진은 점차 남도와 동일한 체제로 재편되어 나가게 되었다.
참고문헌 (Reference)
1 윤경진, "고려시대 西京畿의 형성과 재편 - 『고려사』 지리지 연혁의 補正을 중심으로 -" 국학연구원 (148) : 95-140, 2009
2 윤경진, "고려말 조선초 교군의 설치와 재편" 규장각한국학연구원 (40) : 179-210, 2007
3 윤경진, "고려 문종 21년 南京 설치에 대한 재검토 - 공양왕 2년 한양 천도의 합리화 -" 규장각한국학연구원 (49) : 125-149, 2010
4 윤경진, "고려 말 조선 초 서해 · 남해안 僑郡 사례의 분석 —전라도 · 충청도 · 서해도 지역의 사례—" 고려사학회 (31) : 77-110, 2008
5 尹龍爀, "高麗의 海島入保策과 蒙古의 戰略變化 : 麗蒙戰爭 전개의 一樣相" 32 : 1982
6 崔貞煥, "高麗時代 5道 兩界의 成立" 21 : 1998
7 송용덕, "高麗後期 邊境地域 변동과 鴨綠江 沿邊認識의 형성" 역사학회 (201) : 1-33, 2009
8 崔貞煥, "高麗後期 5道 兩界의 變遷" 5 : 1998
9 "高麗史, 高麗史節要, 世宗實錄"
10 송용덕, "高麗前期 國境地域의 州鎭城編制"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51 : 2005
1 윤경진, "고려시대 西京畿의 형성과 재편 - 『고려사』 지리지 연혁의 補正을 중심으로 -" 국학연구원 (148) : 95-140, 2009
2 윤경진, "고려말 조선초 교군의 설치와 재편" 규장각한국학연구원 (40) : 179-210, 2007
3 윤경진, "고려 문종 21년 南京 설치에 대한 재검토 - 공양왕 2년 한양 천도의 합리화 -" 규장각한국학연구원 (49) : 125-149, 2010
4 윤경진, "고려 말 조선 초 서해 · 남해안 僑郡 사례의 분석 —전라도 · 충청도 · 서해도 지역의 사례—" 고려사학회 (31) : 77-110, 2008
5 尹龍爀, "高麗의 海島入保策과 蒙古의 戰略變化 : 麗蒙戰爭 전개의 一樣相" 32 : 1982
6 崔貞煥, "高麗時代 5道 兩界의 成立" 21 : 1998
7 송용덕, "高麗後期 邊境地域 변동과 鴨綠江 沿邊認識의 형성" 역사학회 (201) : 1-33, 2009
8 崔貞煥, "高麗後期 5道 兩界의 變遷" 5 : 1998
9 "高麗史, 高麗史節要, 世宗實錄"
10 송용덕, "高麗前期 國境地域의 州鎭城編制"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51 : 2005
11 변태섭, "高麗兩界의 지배조직 in: 高麗政治制度史硏究" 一潮閣 1971
12 崔貞煥, "高麗兩界의 成立過程과 그 時期" 8 : 1997
13 金南奎, "高麗兩界地方史硏究" 새문사 1989
14 강재광, "蒙古의 제1차 침공과 被陷 北界 14大城의 抗戰" 한국사연구회 (146) : 31-73, 2009
15 윤경진, "朝鮮初期 郡縣體制의 개편과 運營體系의 변화" 25 : 1991
16 李樹健, "朝鮮初期 郡縣制整備와 地方統治體制 in: 韓國中世社會史硏究" 一潮閣 1984
17 "新增東國輿地勝覽"
18 강재광, "對蒙戰爭期 崔氏政權의 海圖入保策과 戰略海島"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 (66) : 27-62, 2008
19 "元高麗紀事"
20 윤경진, "『고려사』 지리지 ‘대경기’ 기사의 비판적 검토 ― 공민왕 18년 경기 탁전(度田)으로의 재해석 ―" 한국역사연구회 (69) : 193-224, 2008
韓國語 語彙 敎育을 위한 用言의 制約 活用形과 特殊 活用形 硏究
초기 한일회담에서 지식인 관료의 역할과 정체성 -예비~3차 회담을 중심으로-
학술지 이력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
2027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
201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 |
2017-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
2016-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
2015-12-01 | 평가 | 등재후보로 하락 (기타) | |
201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200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2006-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
2005-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
2004-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 |
2003-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 |
2002-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 |
1999-07-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2016 | 1.07 | 1.07 | 1.11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1.07 | 1.02 | 2.456 | 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