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아리랑이라고 하면, 흔히 정선아리랑, 진도아리랑, 밀양아리랑을 손꼽는다. 이 중 특히 밀양아리랑은 일제강점기에 다양한 창자에 의해 음반으로 발매되어 전국적으로 함께 부른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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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초록 (Abstract)
한국의 아리랑이라고 하면, 흔히 정선아리랑, 진도아리랑, 밀양아리랑을 손꼽는다. 이 중 특히 밀양아리랑은 일제강점기에 다양한 창자에 의해 음반으로 발매되어 전국적으로 함께 부른 통...
한국의 아리랑이라고 하면, 흔히 정선아리랑, 진도아리랑, 밀양아리랑을 손꼽는다. 이 중 특히 밀양아리랑은 일제강점기에 다양한 창자에 의해 음반으로 발매되어 전국적으로 함께 부른 통속민요로서의 특징을 지니지만, 무엇보다 항일운동의 노래로 불러졌다는 사실이 다른 아리랑과는 차별되는 특징이기도 하다. 즉 항일 운동의 거점지이던 만주에서는 독립군아리랑으로 개사하여 불렀고, 임시정부 수립 후 1940년에는 광복군아리랑으로 개사하여 군가로 불렀다. 뿐만 아니라 1953년 중공군 발행 군가집 <朝鮮之歌>에서도 파르티잔아리랑이 수록되어 있을 정도로 밀양아리랑의 전파력은 매우 크다.
그러나 이러한 밀양아리랑이 경기민요 예능보유자 묵계월의 음반 <경기소리 95>에서 밀양아리랑이 경기민요로 수록되면서 그 정체성이 모호해졌다. 뿐만 아니라 북한가수들의 소리가 담긴 <북한아리랑>(1999)․<북한아리랑 명창전집>(2005) 등의 음반에 나타난 밀양아리랑은 북한식 창법으로 되어 있다. 이처럼 밀양아리랑은 통속민요로서 다양하게 변용되어 불려왔지만, 근원지인 밀양지역에서의 활동은 너무도 미비하다. 즉 발원지가 오히려 불모지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2010년 현지조사로 발간된 『밀양민요집』에서는 창자가 작고하거나 현저히 줄어 조사 내용의 부족으로 인해 과거에 기록된 밀양아리랑의 가사를 모두 포함하여 책이 발간되었다. 또한 매년 개최되는 밀양아리랑대축제에서는 2011년에 이르러서야 밀양아리랑의 존재성을 부각시키기 시작했으며, 2011년 3월에는 토박이들의 노래로 구성된 밀양아리랑 음반이 최초로 발매되었고, 밀양시티투어의 일환으로 밀양관아에서 밀양아리랑 공연이 이루어지게 되었으며, 같은 해 12월 서울 남산국악당에서 개최된 아리랑한마당에서는 토박이들로 구성된 밀양아리랑 단독 공연이 공식적으로는 최초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2012년 4월 국립민속박물관 아리랑 특별전시에서 밀양아리랑의 현지조사 및 인터뷰가 영상으로 소개되고 공연되었으며, 2012년 5월 밀양아리랑 상설공연이 처음으로 만들어지는 등 지역성을 지닌 밀양아리랑이 2011년에 들어와 본격적으로 활성화되고 있다.
그러나 현지에서의 밀양아리랑은 민요로서가 아닌 민속놀이의 일부분으로서 자리 잡고 있어서 민속놀이와는 분리된 독립된 밀양아리랑 공연 프로그램 개발과 새로운 창자의 발굴이 요구된다. 또한 밀양아리랑은 유희요의 기능을 넘어 군가 및 운동가로서의 기능까지 겸비하고 있지만, 경기민요 명창들 뿐 아니라 현지인 밀양지역에서조차 유희요로만 전승하고 있어서 밀양아리랑의 가치와 의미를 재조명하고 이를 강조할 수 있는 공연방식의 개발 등 올바른 전승과 계승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Generally speaking, there are representitive Arirangs in Korea. One is Jeongseon another is Jindo Arirang, the other is Miryang Arirang. In particular, Miryang Arirang became popular among Koreans after the disks by many musicians were released under ...
Generally speaking, there are representitive Arirangs in Korea. One is Jeongseon another is Jindo Arirang, the other is Miryang Arirang. In particular, Miryang Arirang became popular among Koreans after the disks by many musicians were released under the rule of Japanese imperialism, On top of that, It is the distinct characteristic that Miryang Aririang was sung as a anti-Japanese song by the fighters for independence. In Manchuria in China which was a stronghold of anti-Japanese movement, it was sung with revised lyric lines called Independence Army Arirang. After Korean provisional government was established, it was sung as a martial song with revised words called Liberation Army Arirang. There is a surprising evident that even Chinese soldiers could sing revised version of Miryang Arirang in the collection of martial songs issued in 1953 by the Chinese military. Taking these facts into consideration, it can be said that It has a great ripple effect.
Unfortunately, after Miyarng Arirang had been contained in the disk, ‘GyeongGi Sori 95’, sung by MuckGyeWol who holds the title of the artists of GyeongGi folk songs, its identity became vague. Besides, Miryang Arirang was included in the disk, ‘North Korea Arirang’(1999) ‘The collection of best singers of North Korea Arirang‘ (2005) sung by several singers who sang in their own way. Considering the facts mentioned above, It cannot be denied that Miryang Arirang has a great spreading power and variability.
Likewise, it has been sung in a commonplace way with various usages. It also has the local characteristics as a folk song. Strange to say, the activities of it as a folk song are not good enough in Miryang, its original place. In other words, the soil of the origin place is barren not fertile and that condition has been so up to now. but recently things have changed. Although Miryang Arirnag Festival has been held every year, it borrowed just its name from Miyrnag Arirang. that is, it has not performed Miryang Arirang. But Miryang Arirang has started to get its proper position since 2011.
‘The Collection of Miryang Folk Songs’ published through the research in the field in 2010 covered all the lyrics from the past records of Miryang Arirang because of the lack of materials on it as to the death of the song writers of Miryang Arirang. A disk on Miryang Arirang sung by the only local people was first released in March 2011. Miryang Arirang is being performed in Miryang GyanA as a part of Miryang City Tour, and was first performed officially by the team which consisted in the only local people in Arirang HanMaDang Festival held in the NanSan Korean Classical Music Institute in December of the same year.
Through the special Exhibition of Arirang sponsored by the National Folk Museum in April 2012, the presentation on Miryang Arirang sung by the local singers, which was made by the field research and interviews of the local singers of it, was introduced and performed. Miryang Arirang has being performed on the regular basis for the first time since May, 2012, through which it started to gain the adequate position as a local folk song. Namely, it has begun to be basically and earnestly activated in Miryang, the birth place of Miryang Arirang, since 2011.
but the problem is that because the folksy Miryang Arirang is being led by the Institution of Miryang Folk Art Conservation whose members are Miryang BaekJung Nori, significant intangible cultural asset NO.68, and GamNeGaeJul DangGiGi, GyeongNam intangible cultural asset NO.7, it is believed that it is necessary to find new performers and musicians who can concentrate on and specialize in Miryang Arirang. There are other things to develop and improve Miryang Arirang. For example, It’s important to make the condition and circumstance for the people in Miryang to sing and publish the collections of lyrics of Miryang Arirang.
But in reality, As Myrang Arirang is positioned as a part of folk play not as a folk son...
참고문헌 (Reference)
1 "嶺南名物 密陽아리랑"
2 "해외동포 아리랑"
3 권도희, "한국 근대음악 사회사" 민속원 2005
4 박창묵, "중국조선족과 아리랑" 한민족아리랑연합회 벤처아리랑 1999
5 "중공군 발행군가집 朝鮮之歌"
6 신호, "조선민요조식" 연변대학출판사 2003
7 "유성기음반 가사집" 1936
8 이태엽, "영화 錄音臺本 <密陽아리랑>"
9 김기현, "아리랑 노래의 형성과 전개" 퇴계연구소 1 (1): 139-177, 2004
10 "신영무의 인터뷰(남, 75세, 201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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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밀양학생회 잡지 <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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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묵계월 경기소리 95"
21 "매일신보, 1926년 10월 1일자"
22 신현구, "기생이야기 : 일제 강점기의 대중스타" 살림출판사 2007
23 "기미양의 네이버 블로그 <벤처아리랑~since 1997>"
24 "기미양의 daum 카페 <문화공정대응시민연대>"
25 "겨레의 노래 아리랑"
26 "華岳 創刊號. 밀양 : 華岳同人會"
27 "祖國光復情神 光復軍歌集"
28 김구, "屠倭實記"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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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別乾坤 통권 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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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1934년 오케음반사 음반"
35 "1931년 콜롬비아 레코드 음반"
36 "1930년 VICTOR ORTHOPHONIC RECORD 49093-B ‘流行小曲 密陽아리랑’ 獨昌 全景希/伴奏 빅타-管絃樂團"
37 "1926년 일축조션소리반 음반"
홍천군 산간지역 유희요의 세대별 존재 양상 -다리뽑기하는소리, 고무줄하는소리, 말꼬리잇는소리를 중심으로-
학술지 이력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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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8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2-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
201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
2016-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 |
2015-12-01 | 평가 | 등재후보로 하락 (기타) | |
201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200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2006-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
2005-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
2003-07-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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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36 | 0.36 | 0.4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42 | 0.48 | 0.862 | 0.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