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공은 중국에서 사용되던 신분 개념이 수용된 것으로 14세기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신분 용어이다. 하지만 고공에 대한 뚜렷한 신분 기준이 마련되지 않아 다양한 형태의 노동인구가 고공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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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Korean
雇工 ; 雇人 ; 고용노동 ; 雇工律 ; gogong ; go-in ; hired labor ; rate of gogong
KCI등재
학술저널
205-236(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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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공은 중국에서 사용되던 신분 개념이 수용된 것으로 14세기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신분 용어이다. 하지만 고공에 대한 뚜렷한 신분 기준이 마련되지 않아 다양한 형태의 노동인구가 고공으...
고공은 중국에서 사용되던 신분 개념이 수용된 것으로 14세기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신분 용어이다. 하지만 고공에 대한 뚜렷한 신분 기준이 마련되지 않아 다양한 형태의 노동인구가 고공으로 불렸고, 이런 경향은 고공에 대한 신분 기준이 마련된 18세기 이후에도 지속되었다.
고공이 다양한 노동인구를 가리키면서 고공을 의미하는 다양한 표현들이 이칭으로 사용되었다. 고공의 이칭은 각종 법전이나 법률 등에 사용된 법제적 표현, 고공의 사회ㆍ경제적 지위를 나타내는 표현, 타인에게 고용된 존재임을 나타내는 표현, 그리고 고공과는 전혀 성격이 다른 노동인구를 나타내는 표현 등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 가운데 고공과 전혀 다른 성격의 노동인구를 나타내는 표현을 제외한 나머지 세 가지 유형은 직ㆍ간접적으로 고공을 의미하고 있어 고공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다.
한편 고공의 기원형태는 일정 기간 타인에게 고용된다는 중국 고공의 신분적 특징과 가장 유사한 고려후기의 고용노동자에게서 찾을 수 있었다. 고려후기에는 가내잡역이나 역의 대립 등에 고용되었던 ‘傭’ㆍ‘雇傭’ㆍ‘雇人’ 등으로 불리던 고용노동자들이 존재하였는데, 이들을 고공의 기원 형태로 볼 수 있다. 특히 고인은 조선 시대에 고공의 이칭으로 널리 혼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고공과 직접 연결되는 전형적인 고공의 기원형태로 보인다.
문헌기록에서 고공이란 표현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고려후기이다. 충숙왕 복위 7년(1338)부터 추진된 불은사 중건 과정에서 고공이라고 불렸던 노동인구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더욱이 14세기 후반은 고공에 대한 법적 규범을 담고 있는 ?대명률?이 형률로 채택되고 고공의 가장 대표적 이칭인 고인이란 표현이 등장하는 시기여서, 이 무렵 고공이 처음 등장했을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따라서 고공이 처음 등장한 시기는 14세기로 설정할 수 있다.
14세기에 등장한 고공은 점차 하나의 신분층을 형성해 나갔다. 늦어도 15세기 초인 태종에서 세종 사이 시기에는 하나의 신분층으로 간주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정부 관료들이 특정인에게 ?대명률? 상의 고공률 적용을 검토하고 있는 것이나 특정한 노동인구를 직접 고공으로 지칭하고 있는 것은 이런 사실을 뒷받침한다. 즉 고공이 다른 신분층이나 노동인구와는 구분되는 존재였고, 일반인과는 다른 별도의 형률이 적용되는 존재였음을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고공은 15세기 초에 하나의 독자적인 신분층을 형성했다고 하겠다.
목차 (Table of Contents)
참고문헌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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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조선 초 『書經』 「無逸篇」과「 洪範篇」이해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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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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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1.11 | 1.11 | 1.03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1.03 | 1.05 | 2.153 | 0.4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