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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남지역 고려사회 형성의 역사적 특징 = The factors behind the formation of Goryeo society in Ho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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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8386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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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is paper attempts to shed light on the background to the formation of the Honam community during the Goryeo Period and its cultural characteristics. Gyeon Hwon, the founder of the Later Baekje Dynasty strived to unite the former territories of Mahan...

      This paper attempts to shed light on the background to the formation of the Honam community during the Goryeo Period and its cultural characteristics. Gyeon Hwon, the founder of the Later Baekje Dynasty strived to unite the former territories of Mahan and Baekje, which may be viewed as the birth of a community that would unite Jeonbuk and the areas along the Yeongsangang River, which had previously been controlled by Baekje and Mahan, respectively. As it happened, the various factions in Naju that had helped to establish the rival Goryeo Kingdom did not share his conviction that the two areas should be united, but with the ousting of King Hyejong of Goryeo, a son of Queen Janghwa, they eventually came to the conclusion that they should. King Hyeonjong saw the need for more effective governance of the territories of the Later Baekje Dynasty, especially as he perceived the people of Honam’s hostility toward the royal family of Goryeo during the second Khitan invasion, and consequently established the province of Jeolla-do in 1018.
      The fact that the people of Honam were culturally homogeneous during the Goryeo period can be seen in many works of Buddhist art, which generally date back to the Baekje Period. Buddhist artworks were made in areas where the locals felt a strong connection with Baekje, and it appears that the production sites gradually spread across the entire Honam area and along the Yeongsangang River. This suggests that the cultural homogeneity in the Honam area was based on a strong sense of unity between Mahan and Baekje, which was emphasized by Gyeon Hwon’s relocation of the capital to Jeon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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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이 논문은 고려시대 ‘호남지역’이라는 하나의 공동체가 형성되었던 배경과 함께 문화적 특징을 살펴보기 위한 목적으로 작성되었다. 역사적으로 백제귀소의식이 강했던 전북지역과 마한...

      이 논문은 고려시대 ‘호남지역’이라는 하나의 공동체가 형성되었던 배경과 함께 문화적 특징을 살펴보기 위한 목적으로 작성되었다. 역사적으로 백제귀소의식이 강했던 전북지역과 마한귀소의식이 강했던 영산강 유역 일대가 하나의 공동체가 될 수 있었던 것에는 마한-백제 일체의식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두 지역을 통합하고자 하였던 후백제 국왕 견훤에 의해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고려 건국에 일조한 나주세력은 견훤이 주창한 마한-백제 일체의식을 동조하지 못하다가 나주 출신 장화왕후의 아들인 혜종이 죽은 뒤 마한-백제 일체의식에 대해 점차 동조하게 되었다. 거란의 제2차 침입 시 고려 왕실에 대한 호남지역의 반감을 체감한 현종은 후백제지역을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1018년 전라도를 설치하게 된다.
      한편, 고려시대 호남지역이 문화적 동질성을 공유하였다는 점은 백제 복고양식 불교미술품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백제 복고양식 불교미술품은 백제 연고의식이 강한 지역에서 점차 영산강 유역을 포함한 호남지역 전역에서 조성되었다. 이는 후백제 국왕 견훤이 900년 전주로 천도하면서 제시한 마한-백제 일체의식을 바탕으로 형성된 호남지역 문화적 동질성이 고려시대 확산·정착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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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논문관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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