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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 통일기 왕경의 횡혈식석실묘 전개양상 = A Trend of Development of stone chamber tombs in the Capital of Silla in the Unification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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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8386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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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e stone chamber tombs that are intensely distributed in the mountain ridges around Wanggyeong(capital) in the late middle ancient period to early middle period of Silla have gradually declined. For the result of such decline in stone tomb constructi...

      The stone chamber tombs that are intensely distributed in the mountain ridges around Wanggyeong(capital) in the late middle ancient period to early middle period of Silla have gradually declined. For the result of such decline in stone tomb construction, it could be attributable to the facts of mutual interactions with the unification war, rearrangement of the legal system and strengthening of social strata, change of view on after-life due to the popularization of Buddhism, massive construction of royal palace and its capital and so forth.
      The stone tombs were constructed for the royal ways during the unification period, along with royal tombs, for extremely small part that was built by certain noble class due to the effect of Tang Dynasty’s emperors that King Taejong Muyeol initiated to accommodate as well as even more stringent social status of order compared to the middle ancient period. For the case of stone tombs built by the noble classes after the middle of the 7th century, the was constructed in the plane location around Daereungwon District and Yonggang-dong and Hwangseong-dong area by upholding the Confucius Ancestor Upholding Ideals led by King Muyeol and royal tombs.
      From the late 7th century to the 8th century, with the stable political situation and advanced cultural competency, the royal tombs of Silla became even more splendid with the arrangement of diverse plants and Sipejijangsang (twelve zodiac animal signs). Also, the Royal Family Tomb System of the tomb of emperors in the Tang Dynasty was actively accommodated, and because of this, the location of the royal tombs moved to the mountain ridges of the king’s way. The tombs for some noble classes that imitated such royal family tomb system of royal tombs became even more extravaganza to show the tendency to independently built in the mountainous outskirt ridges. Through this finding, the Silla society in the middle era was the noble class-oriented society with stringent personal identity sys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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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신라 중고기 후반에서 중대 초 왕경의 주변 산지에 군집하여 분포하던 횡혈식석실묘는 점차 감소한다. 왕경의 횡혈식석실묘 감소요인으로는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된 통일전쟁, 율령체제의 ...

      신라 중고기 후반에서 중대 초 왕경의 주변 산지에 군집하여 분포하던 횡혈식석실묘는 점차 감소한다. 왕경의 횡혈식석실묘 감소요인으로는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된 통일전쟁, 율령체제의 정비와 신분제의 강화, 불교의 대중화로 인한 내세관의 변화, 대대적인 왕궁과 왕경의 조성 등이 서로 맞물려 작용한 결과로 추론하였다.
      통일기가 되면서 왕도의 석실묘는 태종 무열왕이 주도적으로 수용한 당제의 영향과 중고기에 비해 한층 엄격해진 신분질서로 인해 왕릉과 일부 귀족들이 조성한 극히 일부만 축조된다. 통일 후 귀족들이 조성한 횡혈식석실묘의 경우 무열왕이 주도한 유교적 숭조사상(崇朝思想)과 왕릉의 입지를 본받아 대릉원지구와 용강동·황성동 일대 평지에 축조된다. 평지형 석실묘의 경우 대릉원지구 마립간기 마립간의 능으로 추정되고 있는 황남동 119호, 황남대총, 서봉총 등 초대형 적석목곽묘 주변에 입지하는 ‘평지 복귀형 횡혈식석실묘’와 북천 이북 황남동․용강동 일대 평지에 단독으로 입지하는 ‘평지 단독형 횡혈식석실묘’로 분류할 수 있다.
      7세기 후반에서 8세기 이후에는 안정된 정치 상황과 발전된 문화적 역량으로 신라의 왕릉은 다양한 석물과 십이지신상을 배치하는 등 더욱 화려해진다. 또 당 황제릉의 능원제도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였으며, 그로 인해 왕릉의 입지는 왕도 외곽 산지로 이동한다. 이러한 왕릉의 능원제도를 모방한 일부 귀족들의 무덤 또한 더욱 화려해지며 외곽 산지에 독립적으로 축조되는 경향이 있다.
      이와 같이 통일기 횡혈식석실묘의 감소, 입지의 변화, 내부구조와 외표시설 등의 양상은 중대 신라사회를 이해하는데 유의미한 고고학적 자료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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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논문관계도

      1 尹相悳, "한반도 고대문화속의 울릉도-토기문화" 동북아역사재단 2010

      2 홍보식, "통일신라의 장·묘제" 한국고고학회 2004

      3 尹相悳, "통일신라시대 토기의 연구현황과 과제" 한국고고학회 2004

      4 김재홍, "통일신라 고고학개론" 진인진 2019

      5 齊東方, "중국고고학 수·당" ㈜사회평론 2012

      6 유향양, "중국 당대 황제릉 연구" 서경문화사 2012

      7 김용성, "인류학 고고학논총" 학연문화사 2012

      8 홍보식, "신라의 화장묘 수용과 전개" 한국상고사학회 58 (58): 77-105, 2007

      9 하일식, "신라의 사회 구조와 신분제"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 2016

      10 이근직, "신라왕릉연구" 학연문화사 2012

      1 尹相悳, "한반도 고대문화속의 울릉도-토기문화" 동북아역사재단 2010

      2 홍보식, "통일신라의 장·묘제" 한국고고학회 2004

      3 尹相悳, "통일신라시대 토기의 연구현황과 과제" 한국고고학회 2004

      4 김재홍, "통일신라 고고학개론" 진인진 2019

      5 齊東方, "중국고고학 수·당" ㈜사회평론 2012

      6 유향양, "중국 당대 황제릉 연구" 서경문화사 2012

      7 김용성, "인류학 고고학논총" 학연문화사 2012

      8 홍보식, "신라의 화장묘 수용과 전개" 한국상고사학회 58 (58): 77-105, 2007

      9 하일식, "신라의 사회 구조와 신분제"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 2016

      10 이근직, "신라왕릉연구" 학연문화사 2012

      11 이동주, "신라왕경 형성과정 연구" 경인문화사 2019

      12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신라고분 기초학술조사연구 Ⅰ~Ⅳ" 2007

      13 황종현, "신라 횡혈식석실묘의 수용과 전개" 계명대학교대학원 2020

      14 한준수, "신라 중대 율령 정치사 연구" 서경문화사 2012

      15 김용성 ; 강재현, "신라 왕릉의 새로운 비정" (사)한국문화유산협회 (15) : 175-207, 2012

      16 주보돈, "신라 왕경의 이해" 주류성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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