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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CI등재

      무신란(戊申亂) 당시 남원ㆍ태인 지역 반란군의 임실 집결과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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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5245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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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전라도 지역 무신란과 관련하여 비교적 잘 알려진 다른 반란시도와 다르게, 남원·태인 지역 반란군의 임실 집결은 연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본 논문에서는 전라도 지역 무신란의 공...

      전라도 지역 무신란과 관련하여 비교적 잘 알려진 다른 반란시도와 다르게, 남원·태인 지역 반란군의 임실 집결은 연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본 논문에서는 전라도 지역 무신란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이 반란 시도를 분석하여 반란가담자와 반란 계획, 시도를 정리하였다. 남원·태인 지역 반란군이 임실에 집결해 반란을 일으키려 했던 시도는 전라도 반란을 주관한 태인현감 박필현이 전라도 관군을 장악할 기회를 만들기 위해 계획된 반란 중 하나였다. 그러나 박필현과 송하는 서로 반란을 일으키는 동기가 달랐기 때문에 계획 단계부터 송하 등은 박필현과 다르게 할거를 고려하기도 했다. 반란 준비는 박필현을 통해 무신란에 가담한 송하가 반란가담자를 포섭하면서 이루어졌다. 먼저 송하는 서얼 처남 김익정을 통해 한익명을 끌어들였다. 이후 한익명이 위협과 회유를 병행하여 남원의 지주들을 끌어들였다. 이는 반란을 일으키기 위해서 노비를 군사로 동원할 수 있고 군량도 확보할 수 있는 지주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반란을 위해 송하가 먼저 계획대로 영조 4년 3월 10일 무렵에 태인에서 임실로 이동해 그간 포섭한 반란군을 집결시키려 했으나 실패했다. 뒤늦게 3월 18일에 가담자들이 집결하기는 했으나, 미흡한 반란 준비와 반란 계획에 대한 의견 충돌 등의 문제가 있어 군사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결국, 기찰이 온다는 소식에 도망쳤다가 체포되면서 반란 시도는 실패하고 말았다. 이러한 입실 집결에 참여한 반란군의 성격을 분석해보면, 반란의 주동자들은 신분적으로 한미한 양반이거나 서얼이었으며, 경제적으로는 빈한했고 사상적으로 도술이나 도참, 풍수지리 등을 믿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반란가담자들은 주로 남원의 지주였는데, 정치적으로 당쟁과 별다른 관련이 없었고, 경제적으로 부유했으며, 사회적으로 신분은 향족으로 추정된다는 점이 공통적이다. 이상을 통해 볼 때 반란군은 양반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당쟁과는 별다른 연관이 없었으며, 서로 경제적·사회적으로 이질적인 집단으로 구성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임실 집결의 특징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전라도 지역 외부에서 온 박필현에 의해 무신란의 일부로 계획되어 일어난 반란이다. 둘째, 전라도 지역 반란군은 집단의 구성이나 사상적 측면에서 다른 지역의 반란군과 성격이 달랐다. 셋째, 일정 지역을 점령하는 성과를 거두었던 충청도와 경상도 지역 무신란과 다르게 시도에만 그치고 말았다. 이상에서 무신란 당시에 남원·태인 지역의 반란군이 임실에 집결해서 반란을 일으키려 했던 시도와 반란군의 성격 및 사건의 특징을 정리하였다. 이 연구는 기존 연구에서 다루지 않은 새로운 사건을 밝혀 전라도 지역 무신란의 공백을 메우는 데 이바지했다는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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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Unlike other well-known rebellious attempts related to the Musin Rebellion in Jeolla Province, the research on the gathering of the rebels in the areas such as Namwon and Taein was rarely conducted. In this paper, this rebellious attempt was analyzed ...

      Unlike other well-known rebellious attempts related to the Musin Rebellion in Jeolla Province, the research on the gathering of the rebels in the areas such as Namwon and Taein was rarely conducted. In this paper, this rebellious attempt was analyzed in order to fill the vacuum of Musin Rebllion in Jeolla Province, and its participants, their rebel plan and their attempts were summarized. The attempt to rise in revolt by gathering the rebels in Namwon and Taein was one of the rebellions designed to make a chance to take control of the army of Jeolla Province by Park Pil-hyeon, the governor of Taein who supervised the rebellion in Jeolla Province. However, as Park Pil-hyeon and Song Ha(宋賀) had different motives to rebel, Song Ha had considered holding his own ground from the planning stage. The rebellion was prepared when Song Ha, who participated in the Musin Rebellion via Park Pil-hyeon, won over the rebels to his side. Song Ha attracted Han Ik-myeong(韓益命) into rebellion via Kim Ik-Jeong(金益鼎), his brother-in-law. After that, Han Ik-myeon attracted the landowners in Namwon through threats and placation. It was designed to mobilize slaves as soldiers and to secure provisions. Song Ha moved to Imsil and tried to gather the rebels who he had won over around March 10th, in 1728 as planned. But he failed. Later on March 18th, the rebels gathered, but there were some problems such as insufficient preparation, and conflicts on rebel plans. Eventually they escaped on hearing that investigators were coming, but they were arrested. Their rebel attempt failed. For the rebels participating in Imsil gathering, the social status of the leaders were sons of concubines or poor yangbans(兩班), their economic status was poor, and they believed in Taoist magic(道術) or Docham(圖讖), or Feng-Shui(風水) theory. The participants in the rebels were mainly the landowners in Namwon, were not politically related with party strife(黨爭) and were economically rich, and their social status was assumed to be Hyangjok(鄕族). Like this, the rebels mainly consisted of Yangban and were not related with party strife. Also they were composed of economically and socially heterogeneous groups. This characteristics of Imsil gathering was summarized into three; First, it was the revolt which was designed as a part of Musin rebellion by Park Pil-hyeon, coming out of Jeolla Province. Second, the composition and thought of the rebels in Jeolla Province was different from that of those in other provinces. Third, unlike the Musin rebellion in Chungcheong Province and Gyeongsang Province which occupied some areas, the Musin rebellion in Jeolla Province ended up as an attempt. As above, the attempts to rise in revolt, in which the rebels in Namwon and Taein gathered in Imsil, the nature of the rebels and the characteristics of the incidents were summarized. This research has implications in that it revealed new events, which were not covered in previous studies, and contributed to filling the vacuum of Musin rebellion in Jeolla provi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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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Ⅰ. 서론
      • Ⅱ. 남원·태인 지역 반란군의 반란 시도
      • 1. 전라도 지역의 반란 계획
      • 2. 남원·태인 지역 반란군의 반란 준비
      • 3. 임실 집결과 반란 시도
      • Ⅰ. 서론
      • Ⅱ. 남원·태인 지역 반란군의 반란 시도
      • 1. 전라도 지역의 반란 계획
      • 2. 남원·태인 지역 반란군의 반란 준비
      • 3. 임실 집결과 반란 시도
      • Ⅲ. 임실 집결의 성격
      • 1. 반란군의 성격
      • 2. 임실 집결의 특징
      • Ⅳ. 결론
      • <국문초록>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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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백승종, "한국사회사연구 –15~19세기 전라도 태인현 고현내면을 중심으로" 일조각 1996

      2 한국학문헌연구소, "추안급국안(推案及鞫案)" 아세아문화사 1983

      3 변주승, "추안급국안" 흐름 2014

      4 이희권, "조선후기 지방통치행정 연구" 집문당 1999

      5 이종범, "조선후기 정치사의 재조명" 태학사 2003

      6 김우철, "조선후기 변란에서의 鄭氏 眞人 수용 과정 - 『鄭鑑錄』 탄생의 역사적 배경 -" 조선시대사학회 (60) : 71-104, 2012

      7 김현영, "조선시대의 양반과 향촌사회" 집문당 1999

      8 문경득, "조선 후기 심문 진술 기록의 사료비판 방법론 연구-『무신역옥추안(戊申逆獄推案)』을 중심으로-" 조선시대사학회 (83) : 281-311, 2017

      9 고수연, "조선 英祖代 戊申亂의 실패 원인" 한국사연구회 (170) : 225-261, 2015

      10 문경득, "전라도 지역 무신란(戊申亂) 연구" 전주대학교 2017

      1 백승종, "한국사회사연구 –15~19세기 전라도 태인현 고현내면을 중심으로" 일조각 1996

      2 한국학문헌연구소, "추안급국안(推案及鞫案)" 아세아문화사 1983

      3 변주승, "추안급국안" 흐름 2014

      4 이희권, "조선후기 지방통치행정 연구" 집문당 1999

      5 이종범, "조선후기 정치사의 재조명" 태학사 2003

      6 김우철, "조선후기 변란에서의 鄭氏 眞人 수용 과정 - 『鄭鑑錄』 탄생의 역사적 배경 -" 조선시대사학회 (60) : 71-104, 2012

      7 김현영, "조선시대의 양반과 향촌사회" 집문당 1999

      8 문경득, "조선 후기 심문 진술 기록의 사료비판 방법론 연구-『무신역옥추안(戊申逆獄推案)』을 중심으로-" 조선시대사학회 (83) : 281-311, 2017

      9 고수연, "조선 英祖代 戊申亂의 실패 원인" 한국사연구회 (170) : 225-261, 2015

      10 문경득, "전라도 지역 무신란(戊申亂) 연구" 전주대학교 2017

      11 고성훈, "영조의 정통성을 묻다 –무신란과 모반사건"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2013

      12 "영조실록(英祖實錄)"

      13 "영조무신별등록(英祖戊申別謄錄) 1-5"

      14 이원균, "영조 무신란에 대하여-영남의 정희량 난을 중심으로" 2 : 1971

      15 오갑균, "영조 무신란에 관한 고찰" 21 : 1977

      16 장필기, "영조 대의 무신란 –탕평의 길을 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4

      17 유한선, "영조 4년 戊申亂과 전라도 의병 -『湖南節義錄』분석을 중심으로-" 전북사학회 (39) : 139-161, 2011

      18 이종범, "여러 지역의 항쟁과 무신란" 국사편찬위원회 36 : 1997

      19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20 정석종, "벽사 이우성교수 정년퇴직기념논총 :민족사의 전개와 그 문화 하" 1990

      21 "남정일록(南征日錄)"

      22 "국역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23 이우성, "경상남도지 상" 1959

      24 "감란록(勘亂錄)"

      25 고수연, "英祖代 戊申亂 硏究의 現況과 課題" 호서사학회 (39) : 177-212, 2004

      26 고수연, "『戊申逆獄推案』에 기록된 戊申亂 叛亂軍의 성격" 호서사학회 (82) : 119-168, 2017

      27 이종범, "1728년 무신난의 성격" 연세대학교 대학원 1984

      28 고수연, "1728년 湖南 戊申亂의 전개양상과 叛亂軍의 성격" 호서사학회 (60) : 31-72,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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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3-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9-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7-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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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0.4 0.4 0.49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45 0.43 1.181 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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