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강은 오대산에서 발원하여 서해로 흘러드는 대하천으로 한반도의 중부지방을 동서로 관통하여 흐르며, 수로뿐만 아니라 연결된 육로들과 함께 한반도 교통축의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남한강은 오대산에서 발원하여 서해로 흘러드는 대하천으로 한반도의 중부지방을 동서로 관통하여 흐르며, 수로뿐만 아니라 연결된 육로들과 함께 한반도 교통축의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이렇듯 남한강 유역은 경상도 지역과 중부지역을 연결해주는 교통의 핵심축이었고, 때문에 인적 ․ 물적 자원의 집결지 역할을 하면서 경제적 여건이 풍성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이 지역은 통일신라의 변방지역으로 822년 김헌창의 난 이후 반신라적 세력들의 활동이 강했고, 그 결과 후삼국 세력의 각축장이 되었다. 특히 고려의 수도였던 개경과 수로와 육로를 통해 직접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였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남한강 유역에는 현재 많은 수의 고려시대 불교조각이 산재해 있다. 여러 지역에서 작품들이 확인되고 있어, 이 지역에서 彫像활동 역시 활발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철불을 비롯해 석불까지 현존하는 고려 불교조각의 수가 80여구에 달하지만, 조성연대나 관련기록을 통해 그 조성시기를 정확히 알 수 있는 상은 극히 드물다. 지금까지 남한강 유역의 고려 불교조각에 관한 연구는 주로 원주나 충주 등의 특정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작품들에 관한 연구들이 대부분이었다. 본 논문에서는 “남한강 유역”이라는 새로운 문화권을 설정하고, 해당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고
려전기 불교조각 작품에 관해 서술하고자 한다. 특히 이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조성되고 있는 철불과 석불에 관한 분석을 통해 고려전기 불상들의 도상적 ․ 양식적 특징을 확인하고, 이와 함께 “남한강 문화권” 의 형성과 그 배경에 관해 살펴볼 것이다. 특히 여러 구의 고려시대 철불이 조성되고 있는 점과, 조각기법이 우수한 석불들이 다수 남아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남한강 문화권의 형성과 관련해 먼저 짚어볼 것은 鐵이라는 재료와 관련한 부분이다. 금동이나 석조에 비해 그 주조가 어렵고 주원료인 철광석의 채굴과 공급이 제한된 지역에서만 이뤄졌다는 점에서 철산지는 철불조성에 있어 필수적으로확보해야 하는 요소이다. 남한강 유역에서는 충주지역에서 일찍부터 많은 양의 철이 생산되고 있음을 다인철소의 존재와 여러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고, 고고학적인 조사를 통해서도 수십 구의 철산지 유적이 확인된다.
이와 함께 역사적인 배경으로는 남한강 수운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漕運의 성립과 시행을 들 수 있다. 조운의 성립과 시행은 인적 ․ 물적 자원의 활발한 이동을 위한 중요한 수단이자 문화교통로였고, 이는 불교도상 및 양식 교류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또, 같은 시기에 남한강 유역에 많은 수의 선종 사원이 건립되고 禪僧들의 활동이 확인된다는 점에서, 조운과 관련해 이 지역의 지배권을 확보하기 위한 왕실의 의도가 엿보인다. 고려왕실에서는 이 지역에 고려에 포섭된 선승들을 주지로 파견함으로써 지배권을 확보하고자 했던 것이다. 때문
에 많은 수의 사원이 고려전기 남한강 유역에서 건립되고, 佛事를 통한 불상조성역시 활발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현존하는 남한강 유역의 고려전기 불상은 크게 통일신라 전통양식의 계승, 전통양식의 변용, 새로운 도상의 등장이라는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먼저 통일신라의 전통양식을 계승한 유형의 상들은, 석굴암 본존불로 대표되는 8세기 양식이나 9세기에 경상북도 지역에서 조성된 상들에서 그 영향관계를 확인 할 수 있다. 특히 편단우견의 착의에 항마촉지인을 결하고 있는 점에서 통일신라의 전통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외에도 편단우견의 착의 위에 한 겹의 옷을 더 걸친 유형이나 통견의 착의를 한 상들 역시 전통양식을 계승하고 있다. 전통양식을 변용한 유형의 상들은 전통양식을 계승하고 있는 상들과 착의법이나 수인 등에서는 유사하지만, 세부적으로 얼굴의 표현이나 수인의 형태 등에서 고려적인 요소가 두드러지는 상들이다. 특히 왼손을 무릎 위에서 앞으로 내민 형태의 “변형된 항마촉지인”의 수인을 결하고 있거나, “두 구가 함께 조성된 지권인 불상”의 예처럼 봉안형태가 다르다는 점에서 전통양식에 변용을 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전기에 새롭게 등장하는 유형으로는 2m 이상의 대형 석불입상을 꼽을 수 있다. 세부표현은 생략되고, 몸에 비해 손발이 크게 표현되는 등 지방색이 강한 점이 특징으로 전체적인 조각수법은 떨어진다. 또, 새로운 형태의 수인을 결한 불상들이 등장하는데, 새로운 도상의 유입에 의한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두 손을 무릎에 댄 수인”과 “오른손을 가슴까지 들어 올린 수인”은 11-12세기에 조성된 遼代불상에서 처음 확인되는 수인이다.
유형분류릍 통해 남한강 유역에서 조성된 고려전기 불상의 특징을 몇 가지 확인할 수 있다. 우선 다른 지역에 비해 유독 이 지역에 철불의 조성이 많다는 점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철산지 분포 및 철소의 운영이라는 재료적인 측면에서 확인된다. 또, 조성된 대부분의 철불이 항마촉지인을 결하고 있는 점 역시 특징으
로, 이것은 통일신라의 전통양식을 계승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원주 지역에서는 지권인을 결한 불상이 두 구씩 함께 조성되는 점이 흥미로운데, 이는 9세기 해인사와 부석사 지역에서 처음 확인되는 봉안형태이다. 해인사와 부석사, 원주 지역이 모두 의상의 제자들이 왕성하게 활동했던 지역이라는 점과, 지권인을 결한 비로자나불을 두 구씩 봉안했다는 점에서 화엄사상과의 연관성을추측해 볼 수 있다.
고려전기에 새롭게 등장하는 수인과 관련해서는 남한강 유역에 요대 도상이 유입되고 전파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와 요는 약100년 간 상시적인 사신왕래와 더불어 활발한 문화교류가 이루어졌는데, 대장경과 불교서적의 전래라는 측면 역시 주목된다. 이런 교류 속에서 “두 손을 무릎에 댄 수인”과 “오른손을 가슴까지 들어 올린 수인”은 고려에 유입된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육로를 통해 개경까지 많은 이들이 왕래하게 되는데, 개경에 유입된 요의 도상이 남한강 유역으로 전파된 것이다. 이처럼 통일신라의 전통적인 양식을 계승함과 동시에, 요의 새로운 도상을 받아들여 혼재되는 모습 역시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