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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사행기록에 대한 검토 = Review of Sahaeng records(使行記錄) in the Joseon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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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6279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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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조선은 국가안보와 정치․외교․경제․문화적 교류를 목적으로 대륙과 해양으로 적극적인 외교관계를 맺었다. 대륙의 경우, 원명교체, 명 중심 국제질서, 명청교체, 청 중심 국제질서 등 계...

      조선은 국가안보와 정치․외교․경제․문화적 교류를 목적으로 대륙과 해양으로 적극적인 외교관계를 맺었다. 대륙의 경우, 원명교체, 명 중심 국제질서, 명청교체, 청 중심 국제질서 등 계서적인 국제질서 하에서 대중국 외교관계를 맺어 조선의 국가이익을 극대화하고자 하였다. 조선의 중국 중심 외교관계를 조공체제라 할 수는 없지만, 외교형식에 있어 중국에서 제정한 외교제도를 준행함으로써 조중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외교분쟁을 방지하고자 하였다. 즉, 조선은 외교관계의 형식에 있어 명․청에서 규정한 외교절차 및 제도를 준행하였는데, 형식측면에서 사행과 사신접대로 정리할 수 있다. 조선은 왕실의 정통성과 시대상황에서 발생하는 각종 시대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중국관계를 매우 중요하게 인식하고, 적극적인 사행과 사신접대를 시행했다.
      사행이 조선의 외교목적을 달성하는 형식이었기에 외교문서 전달이라는 근본적인 사행목적 이외에 사행을 통해 외교정보를 획득하고, 문화를 소통하고, 경제적 필요를 해소하였다. 중요성 만큼이나 사행은 사행원에 의해 생산된 방대한 기록을 남겼으며, 사행기록은 조선의 역사를 연구하는 매우 중요한 사료이다.
      조선시대 대중국 관계는 국가안위와 왕실의 통치권위를 위해 매우 중요한 외교였다. 이를 반영하여 조선은 중국에서 제정한 외교제도를 준행하고, 적극적인 외교활동을 통해 조중관계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고자 했다. 조선시대 대중국 관계에서 외교제도는 사행과 사신접대를 통해 운용되었는데, 조선은 대중국 사행을 통해 방대한 사행기록을 남겼다.
      조선시대 사행기록은 작성주체, 시기별, 형식별, 노정별로 분류하여 구분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외교문서를 포함하였는가 여부에 따라 사행기록의 역사적 의미가 구분될 수 있다. 질정관이 국왕에게 보고한 『질정록』이 포함된 사행기록도 있다. 조선시대 사행기록에 대한 연구에 있어 우선적으로 사행기록 작성과정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하며, 史的 검증이 필수적이다. 또한, 사행기록 및 사행명에 대한 명칭문제가 학계의 폭넓은 논의가 필요하다.
      조선시대 사행기록은 기록물, 문학작품, 고전, 보고서의 성격이 있어 역사학의 보물창고라 할 것이다. 또한, 사행기록은 조선과 중국의 문화교류의 기록이며, 그 내용이 광범위하게 포함되어 있다. 사행기록을 통해 조선시대 저서의 전승관계 및 영향관계를 파악할 수 있고, 방대한 내용을 포괄하여 조선시대 백과사전의 의미가 있다. 이러한 사행기록의 성격과 의미에 주목하여 해외학계에서도 사행기록에 주목하여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사행기록에 대한 방대한 연구성과를 통해 사행기록의 가치 및 조선시대 대중국관계에 많은 부분이 밝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의 연구경향에 있어 노출된 문제 가운데 편중된 연구경향성이 재검토되어야 한다. 사행기록 자료의 기본 성격에 대한 이유가 전제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행기록을 기행문으로 한정하여 여정과 문학측면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이에 비하여 사행기록의 본질적인 측면, 즉, 조선시대 가장 치열한 정치, 외교분야에 집중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적다. 또한, 대외관계사 분야에 중국사신의 조선에 사행한 기록인 사조선록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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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Joseon made active diplomatic relations with the continent and the oceans for the purpose of national security and political, diplomatic, economic and cultural exchanges. In the case of the continent, Joseon tried to maximize the national interest by ...

      Joseon made active diplomatic relations with the continent and the oceans for the purpose of national security and political, diplomatic, economic and cultural exchanges. In the case of the continent, Joseon tried to maximize the national interest by establishing diplomatic relations with China under the orderly international order such as Yuan was replaced by Ming, Ming centered world order, Ming was replaced by Qing, Qing centered world order. Although it can not be said that China's central diplomatic relations are a tribute system, Joseon sought to prevent diplomatic disputes that could arise in the relations between Joseon and China by following the diplomatic system established by China in diplomatic form. In other words, Joseon has followed the diplomatic procedures and systems prescribed by China in the form of diplomatic relations, which will be called “sahaeng(使行)” and “receive envoy(使臣接待)".
      Because Joseon was a form of attaining diplomatic goals, Joseon acquired diplomatic information, communicated the culture, and solved the economic need by means of sahaeng besides the fundamental purpose of delivering diplomatic documents. The envoys of Joseon left vast records, which are very important for studying the history of Joseon. Due to the significance of the sahaeng records(使行記錄), research achievements have accumulated in various disciplines such as history, Korean literature, art history, music history, economic history, and costume history.
      Sahaeng records of the Joseon period can be classified by subject, period, type, and style. In addition, the historical significance of sahaeng records can be distinguished by whether diplomatic documents were included. There is also a sahaeng records which contains Jiljeongnok(質正錄) which Jiljeonggwan(質正官) reported to the king. It is necessary to understand the process of making a sahaeng records in the study of sahaeng records in the Joseon, and historical verification is essential. In addition, the issue of naming of sahaeng records and the name of the sahaeng need to be discussed extensively by history.
      Sahaeng records of the Joseon period are characteristic of history, literary works, classics, and reports, so it will be a treasure house of history. In addition, sahaeng records are a record of cultural exchanges between Joseon and China, and its content is extensively included. It is possible to grasp the tradition relation and the influence relation of the Joseon writings with sahaeng records, and encompassing the vast contents, it is meaning of encyclopedia of Joseon period. There are many studies in overseas history focusing on the nature and significance of this sahaeng records.
      Much has been revealed in the value of sahaeng records and in the Chinese relations of the Joseon through the extensive research results on sahaeng records. Nonetheless, biased research trends among the exposed issues should be reviewed to date. Despite the premise of the basic nature of sahaeng records, there is a tendency to focus on travel and literary aspects. On the other hand, there are relatively few studies focusing on the politics and diplomacy in the Joseon, which was the essential aspect of sahaeng records. In addition, it is necessary to study Sajoseonnok(使朝鮮錄), which is a record of Chinese env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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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1.07 1.07 1.11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1.07 1.02 2.456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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