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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세기 후반 서세동점 하의 상해(上海) 상황과 오페르트 도굴 사건의 국제적 배경 = The Situation of Shanghai in the Late 19th Century and International Background of Oppert’s Tomb Robbery Incid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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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By around the 1860s, Shanghai developed greatly and was nicknamed London of the East or Paris of the East, and there were many western merchants and missionaries active here. Oppert had arrived in Shanghai in the early 1850s where he engaged in commercial activities, and Jenkins also grew up in Shanghai following his father, making him fluent in Chinese. Here in Shanghai, the ‘paradise of adventurers’, they dreamed of gaining huge riches under the pretense of opening up the ports of Joseon Dynasty. Furthermore, many Catholic missionary unions opened offices to be in charge of economic activities in Shanghai that were used as their missionary representatives in Shanghai, allowing opportunities for many Catholic missionaries. Father Féron, who resided at the Shanghai office of the Society of Foreign Missions of Paris, joined in planning to rob the tomb of Nam‒Yeon Goon. This shows that the Oppert tomb robbery incident was conducted amidst the various political, social, economic and religious situations of the 19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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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around the 1860s, Shanghai developed greatly and was nicknamed London of the East or Paris of the East, and there were many western merchants and missionaries active here. Oppert had arrived in Shanghai in the early 1850s where he engaged in commer...

      By around the 1860s, Shanghai developed greatly and was nicknamed London of the East or Paris of the East, and there were many western merchants and missionaries active here. Oppert had arrived in Shanghai in the early 1850s where he engaged in commercial activities, and Jenkins also grew up in Shanghai following his father, making him fluent in Chinese. Here in Shanghai, the ‘paradise of adventurers’, they dreamed of gaining huge riches under the pretense of opening up the ports of Joseon Dynasty. Furthermore, many Catholic missionary unions opened offices to be in charge of economic activities in Shanghai that were used as their missionary representatives in Shanghai, allowing opportunities for many Catholic missionaries. Father Féron, who resided at the Shanghai office of the Society of Foreign Missions of Paris, joined in planning to rob the tomb of Nam‒Yeon Goon. This shows that the Oppert tomb robbery incident was conducted amidst the various political, social, economic and religious situations of the 19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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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오페르트 도굴 사건의 출발지라고 할 수 있는 상해는 조계지를 바탕으로 발전했는데, 특히 1860년대를 기점으로 동방의 런던, 혹은 동방의 파리로 불릴 만큼 크게 발전했기 때문에 서양 상인이나 선교사들의 활동무대였다. 오페르트는 이미 1850년대 초에 상해에 와서 상업 활동을 하고 있었으며, 젠킨스 역시 어릴 때 아버지를 따라 상해에 와서 자랐기 때문에 유창한 중국어 실력을 갖춘 사람이었다. 이들은 ‘모험가의 낙원’인 상해에서 조선의 개항을 빌미로 하여 일확천금을 꿈꾸었던 것이다. 또한 당시 상해는 강남 선교지로서 예수회의 선교 관할 지역이었지만, 많은 천주교 선교회가 상해에 경제활동을 담당하는 사무소를 차려 선교회 상해 대표부로 활용했기에 선교사들도 많이 활동하고 있었다. 당시 파리외방전교회 상해 대표부에 머물렀던 페롱 신부는 조선에서의 천주교 선교의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조선인 천주교 신자와 함께 남연군묘 도굴 사건을 기획했던 것이다. 결국 오페르트 도굴 사건은 단순히 19세기 동양으로 달려온 서양의 모험가나 상인의 사적 욕망의 표출이나 천주교 박해에 대한 복수심에 사로잡힌 한 신부의 돌출적 행동이 아닌 19세기 서세동점 하의 다양한 정치・사회・경제・종교적 상황 속에서 벌어졌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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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페르트 도굴 사건의 출발지라고 할 수 있는 상해는 조계지를 바탕으로 발전했는데, 특히 1860년대를 기점으로 동방의 런던, 혹은 동방의 파리로 불릴 만큼 크게 발전했기 때문에 서양 상인...

      오페르트 도굴 사건의 출발지라고 할 수 있는 상해는 조계지를 바탕으로 발전했는데, 특히 1860년대를 기점으로 동방의 런던, 혹은 동방의 파리로 불릴 만큼 크게 발전했기 때문에 서양 상인이나 선교사들의 활동무대였다. 오페르트는 이미 1850년대 초에 상해에 와서 상업 활동을 하고 있었으며, 젠킨스 역시 어릴 때 아버지를 따라 상해에 와서 자랐기 때문에 유창한 중국어 실력을 갖춘 사람이었다. 이들은 ‘모험가의 낙원’인 상해에서 조선의 개항을 빌미로 하여 일확천금을 꿈꾸었던 것이다. 또한 당시 상해는 강남 선교지로서 예수회의 선교 관할 지역이었지만, 많은 천주교 선교회가 상해에 경제활동을 담당하는 사무소를 차려 선교회 상해 대표부로 활용했기에 선교사들도 많이 활동하고 있었다. 당시 파리외방전교회 상해 대표부에 머물렀던 페롱 신부는 조선에서의 천주교 선교의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조선인 천주교 신자와 함께 남연군묘 도굴 사건을 기획했던 것이다. 결국 오페르트 도굴 사건은 단순히 19세기 동양으로 달려온 서양의 모험가나 상인의 사적 욕망의 표출이나 천주교 박해에 대한 복수심에 사로잡힌 한 신부의 돌출적 행동이 아닌 19세기 서세동점 하의 다양한 정치・사회・경제・종교적 상황 속에서 벌어졌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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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조현범, "한국천주교회사 4" 한국교회사연구소 2011

      2 방상근, "한국천주교회사 3" 한국교회사연구소 2010

      3 한국가톨릭 대사전 편찬위원회, "한국가톨릭대사전 3・11" 한국교회사연구소 2006

      4 노명식, "프랑스 혁명에서 파리코뮌까지" 까치 1994

      5 최병욱, "중국에서의 프랑스 ‘保敎權’의 기원과 성립 ―淸初 프랑스 예수회선교사의 중국파견에서 淸佛<北京條約>의 체결까지―" 명청사학회 (22) : 235-270, 2004

      6 시바 요시노부, "중국도시사" 서경문화사 2008

      7 일근, "젠킨스에 대한 駐上海美領事 裁判: 南延君 墓所盜掘 事件에 關하여" 11 (11): 257-274, 1970

      8 노계현, "오페르트의 南延君墳墓 盜掘蠻行과 韓國의 措置" 27 (27): 85-105, 1982

      9 노혜경, "오페르트(E. Oppert)의 조선 인식" 역사실학회 (55) : 201-234, 2014

      10 박일근, "미국의 개국정책과 한미외교관계" 일조각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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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시바 요시노부, "중국도시사" 서경문화사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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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노계현, "오페르트의 南延君墳墓 盜掘蠻行과 韓國의 措置" 27 (27): 85-105, 1982

      9 노혜경, "오페르트(E. Oppert)의 조선 인식" 역사실학회 (55) : 201-234, 2014

      10 박일근, "미국의 개국정책과 한미외교관계" 일조각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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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조현범, "덕산 사건과 프랑스 선교사 페롱" 한국학중앙연구원 40 (40): 61-91, 2017

      13 오페르트, "금단의 나라 조선" 집문당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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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4 姚遠, "1860年後上海公共租界的誕生: 以<美國對外關係文件集>所見" (3) : 15-18,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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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9-03-01 학술지명변경 한글명 : 정신문화연구 -> 한국학 KCI등재
      2018-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7-03-07 학회명변경 영문명 : The Academy of Korean -> The Academy of Korean Studies KCI등재
      2015-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5-07-07 학술지등록 한글명 : 정신문화연구
      외국어명 : Korean Studies Quarter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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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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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71 0.71 0.71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79 0.82 1.267 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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