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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제와 송의 교섭 배경과 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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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During the 5th century, Paekche maintained a relationship with the Chinese Song located in the Jiangnan region. Whereas previous studies referred to such relationship as a practical one, some recent studies have emphasized the Paekche people’s possi...

      During the 5th century, Paekche maintained a relationship with the Chinese Song located in the Jiangnan region. Whereas previous studies referred to such relationship as a practical one, some recent studies have emphasized the Paekche people’s possible intentions to put ‘Koguryŏ in check.’ Other studies seem not to be in agreement with such perspective, on the basis that frequency of negotiations that went on between Paekche and Song was rather low, yet the issue of ‘negotiation frequency’ should in fact be examined with the issue of ‘negotiation routes’ in mind as well. Whether such routes were safe or not would have been a huge variable in Paekche’s relationship with China across the Yellow sea.
      Paekche’s relationship with Song was a product of various intentions, including reinforcement of the king’s leadership, diplomatic monitoring of Koguryŏ and Wa, reception of advanced culture from China, and gathering intelligence of the Shandong peninsula which was an important traffic point. Yet the frequency of Paekche-Song negotiations was far lower than (almost half of) that of the Koguryŏ-Song negotiations in the same time frame or even the Paekche-Eastern Jin negotiations between years 372 and 386. This must have been due to limitations that existed at the time in terms of the aforementioned negotiation routes. The route that was most usually taken seems to have been the route crossing the mid-section of the Yellow sea from the southern part of the Hwang’hae-do province on the Korean peninsula to the Shandong peninsula of China, judging from circumstances surrounding Paekche and the Shandong peninsula, individuals who were sent as emissaries, and the route Paekche used in its relationship with Eastern Jin. Yet, Hwang’hae-do province’s southern part had been under Koguryŏ’s control since the end of the 4th century, and so the route originating there was far from safe.
      The Koguryŏ threat can be felt from records indicating that Koguryŏ stopped Paekche emissaries, and certain diplomatic communiques sent by Paekche King Kaero or the Japanese king. The Song edict issued in 425 also mentioned “(Paekche envoy’s) traversing the ‘Koguryŏ sea.’” The instability of the route which Paekche was using to maintain a relationship with Song across Koguryŏ sea space must have prevented Paekche from increasing its contacts with Song. Paekche could not expect military aid from Song and could only hope such relationship with Song would generate an effect of diplomatically restraining Koguryŏ. Paekche King Kaero launched a military campaign against Hwang’ hae-do province’s southern part, and communicated with Northern Wei directly, overcoming previous difficulties temporarily, but with the collapse of Hansŏng, the route problems were never fundamentally resol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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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머리말
      • 1. 백제와 송의 교섭 배경과 빈도
      • 2. 교섭 항로의 활용과 한계
      • 맺음말
      • 참고문헌
      • 머리말
      • 1. 백제와 송의 교섭 배경과 빈도
      • 2. 교섭 항로의 활용과 한계
      • 맺음말
      • 참고문헌
      •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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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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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盧重國, "백제정치사" 일조각 2018

      10 문안식, "백제의 흥망과 전쟁" 혜안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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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10-05 학술지명변경 한글명 : 역사와 현실 -> 역사와 현실
      외국어명 : 미등록 -> YŎKSA WA HYŎNS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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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1998-07-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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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91 0.91 0.87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87 0.92 1.68 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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