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숙종 후반 처음으로 진강된 명사에 대한 인식을 『황명통기(皇明通紀)』를 매개로 살펴본 것이다. 명사가 사서(史書) 진강의 대상이 된 것은 당대사의 범주에서 벗어났음을 의미하는...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https://www.riss.kr/link?id=A107400650
2021
Korean
숙종(肅宗) ; 인조반정(仁祖反正) ; 명사(明史) ; 『황명통기(皇明通紀)』 ; 명 세종(世宗 ; 嘉靖帝) ; 명 태조(太祖 ; 洪武帝) ; 사친추숭(私親追崇) ; 북벌(北伐) ; 내수(內修) ; 권농(勸農) ; 예제정비(禮制整備) ; King Sukong(肅宗) ; King Injo"s Restoration(仁祖反正) ; Ming-Shi(明史) ; 『Hwang-myeong-tong-gi(皇明通紀)』 ; King Sejong of Ming(世宗 ; 嘉靖帝) ; King Taejo of Ming(太祖 ; 洪武帝) ; raising king"s real parents" rank(私親追崇) ; expedition to conquer the north(北伐) ; domestic demand(內修) ; agriculture encouragement(勸農) ; organization of ceremony(禮制整備)
KCI등재
학술저널
137-190(54쪽)
0
0
상세조회0
다운로드국문 초록 (Abstract)
본고는 숙종 후반 처음으로 진강된 명사에 대한 인식을 『황명통기(皇明通紀)』를 매개로 살펴본 것이다. 명사가 사서(史書) 진강의 대상이 된 것은 당대사의 범주에서 벗어났음을 의미하는...
본고는 숙종 후반 처음으로 진강된 명사에 대한 인식을 『황명통기(皇明通紀)』를 매개로 살펴본 것이다. 명사가 사서(史書) 진강의 대상이 된 것은 당대사의 범주에서 벗어났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조선 조정이 공식적으로 明이 멸망한 과거의 왕조임을 천명하는 것이었다. 『황명통기』는 명대 당대사로 편찬된 직후 조선에 유입되었는데, 이에 대한 인식은 비판적이었다. 이러한 인식은 임진왜란 후 명의 전례(典禮)가 강조되고 명 사적을 이해하는 전거로 활용되면서 변화하였고, 숙종대 진강교재로 채택되었다. 명대 사적 중에서 현안과 관련하여 논란이 되었던 것은 명 세종(嘉靖帝) 때 있었던 사친(私親) 추숭(追崇)이었다. 『황명통기』는 저자인 진건(陳建) 당대에 있었던 추숭에 대해 긍정적이었고 광해군과 인조가 명의 사적을 명분으로 사친을 추숭하여 현종대까지도 이에 대해 비판적인 기조가 이어졌다. 하지만 숙종은 역사적 전례를 매개로 원종 추숭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제기하는 신하들에게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이에 따라 인조 왕계의 시원으로 가지는 원종의 위상이 정립되고 추숭에 대한 부정적 입론이 약화되었다. 이와 함께 건국 과정에서 갈등을 빚었던 명 태조(洪武帝)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병자호란 후 북벌(北伐)과 권농(勸農) 등 긍정적인 요소가 지적되곤 하였지만 형정(刑政) 운영 등을 매개로 비판적인 인식이 유지되었다. 이러한 인식은 숙종대 들어 명 태조의 권농정책과 예제정비를 매개로 긍정적으로 변화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숙종대 당시 북벌(北伐)을 폐기하고 내수(內修)를 위한 정책을 실시하는 정책기조의 전환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었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is piece of writing examines the perception of Ming-Shi which was first introduced in the royal study sessions during the latter half of King Sukjong"s reign through 『Hwang-myeong-tong-gi(皇明通紀)』. That the history lecture in the royal stu...
This piece of writing examines the perception of Ming-Shi which was first introduced in the royal study sessions during the latter half of King Sukjong"s reign through 『Hwang-myeong-tong-gi(皇明通紀)』. That the history lecture in the royal study sessions included Ming-Shi means the history lecture overstepped the bounds of contemporary history, and it also means the royal government in Joseon officially defined its standpoint that Ming dynasty(明) was fallen dynasty. After being compiled as contemporary history of Ming dynasty, 『Hwang-myeong-tong-gi(皇明通紀)』 came into Joseon. And in King Sukjong"s reign, it was selected as a textbook for the lecture in the royal study sessions. The most notable change in the process of lecture in the royal study sessions was raising king"s real parents" rank(私親追崇) in the reign of King Sejong of Ming(嘉靖帝). Because King Gwanghaegun and King Injo raised their real parents" rank based on precedents of Ming dynasty, there were negative opinions on the issue. However, King Sukjong stood firm against vassals who criticized the issue of raising Wonjong"s rank based on historical precedents. Thus, the status of Wonjong as the origin of King Injo"s royal genealogy was established and negative opinions on raising his rank became weakened. In addition, because of operating penal administration(刑政), the perception of King Taejo of Ming was critical. However, the perception of King Taejo of Ming have changed positively through active agriculture encouragement policies and organization of ceremony. This perception provided historical justification for abolishing expedition to conquer the north(北伐) and implementing policy for domestic demands(內修).
목차 (Table of Contents)
참고문헌 (Reference)
1 "列聖朝繼講冊子次第"
2 "列聖御製"
3 윤정, "麗末鮮初 世子 朝見의 추이와 그 의미: 昌王의 親朝 요청과 恭讓王 세자의 朝見" 규장각한국학연구원 (80) : 155-192, 2017
4 정동훈, "초기 고려-명 관계에서 제주 문제" 한국중세사학회 (51) : 241-275, 2017
5 우경섭, "조선후기 지식인들의 南明王朝 인식" 규장각한국학연구원 (61) : 133-155, 2013
6 정옥자, "조선후기 중화사상 연구"
7 윤정, "조선시대 문화사(상) : 문물의 정비와 왕실문화" 2007
8 이원택, "유교적 공론장으로서의 경연과 유교지식인의 정체성 : 효종대 산림의 『중용』·『심경』강의를 중심으로" 태동고전연구소 33 : 109-134, 2014
9 김인호, "여말선초 군주수신론과 『대학연의(大學衍義)』" 29 : 1998
10 윤정, "숙종대 聖學輯要 進講의 경위와 의미- 숙종 정국 운영방식의 일단면 -" 경남문화연구원 (21) : 207-239, 2006
1 "列聖朝繼講冊子次第"
2 "列聖御製"
3 윤정, "麗末鮮初 世子 朝見의 추이와 그 의미: 昌王의 親朝 요청과 恭讓王 세자의 朝見" 규장각한국학연구원 (80) : 155-192, 2017
4 정동훈, "초기 고려-명 관계에서 제주 문제" 한국중세사학회 (51) : 241-275, 2017
5 우경섭, "조선후기 지식인들의 南明王朝 인식" 규장각한국학연구원 (61) : 133-155, 2013
6 정옥자, "조선후기 중화사상 연구"
7 윤정, "조선시대 문화사(상) : 문물의 정비와 왕실문화" 2007
8 이원택, "유교적 공론장으로서의 경연과 유교지식인의 정체성 : 효종대 산림의 『중용』·『심경』강의를 중심으로" 태동고전연구소 33 : 109-134, 2014
9 김인호, "여말선초 군주수신론과 『대학연의(大學衍義)』" 29 : 1998
10 윤정, "숙종대 聖學輯要 進講의 경위와 의미- 숙종 정국 운영방식의 일단면 -" 경남문화연구원 (21) : 207-239, 2006
11 윤정, "숙종대 端宗 追復의 정치사적 의미" 한국사상사학회 (22) : 209-246, 2004
12 윤정, "숙종대 神德王后 本宮 追祔 논의와 本宮 인식의 변화" 고려사학회 (37) : 171-202, 2009
13 윤정, "숙종대 明史 진강과 명의 멸망에 대한 인식 - 『明紀編年』 진강을 중심으로 -" 한국학중앙연구원 (45) : 318-357, 2021
14 윤정, "숙종대 太祖 諡號의 追上과 政界의 인식- 조선 創業과 威化島回軍에 대한 재평가 -" 국학연구원 (134) : 219-259, 2006
15 윤정, "숙종대 『御製宮闕志』 편찬과 그 배경-갑술환국기 숙종의 궁궐경영과 지향-" 서울역사편찬원 (106) : 7-60, 2020
16 윤정, "숙종 후반기 北道 사적 인식과 정비 논의" 부산경남사학회 (76) : 107-145, 2010
17 윤정, "숙종 14년 太祖 影幀 模寫의 경위와 政界의 인식" 한국사연구회 (141) : 157-195, 2008
18 윤정, "광해군의 太祖 影幀 모사와 漢陽 眞殿(南別殿) 수립- 永禧殿의 역사적 연원에 대한 고찰 -" 서울역사편찬원 (85) : 37-80, 2013
19 李東熙, "陳建의"學蔀通辨"과 그의 朱子學" 7 : 1994
20 박원호, "鐵嶺衛 설치에 대한 새로운 관점" 한국사연구회 (136) : 105-132, 2007
21 李俸珪, "金長生·金集의 禮學과 元宗追崇論爭의 철학사적 의미" 11 : 1998
22 "退溪集"
23 "西厓集"
24 文亨鎭, "蘭谷李銀順敎授停年記念史學論文集" 2000
25 "英祖實錄"
26 김용국, "肅宗朝 北漢築城考" 서울역사편찬원 (8) : 68-135, 1960
27 "肅宗實錄"
28 윤정, "肅宗代 明史 辨誣의 정치사적 의미- 三藩의 반란에 대한 조선 정부의 대응 -" 역사실학회 (70) : 193-238, 2019
29 윤정, "肅宗-英祖代의 세자 교육과 『小學』 : 奎章閣 소장 『소학』 관련 서적의 분석"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7) : 33-54, 2004
30 윤정, "肅宗 45년, 국왕의 耆老所 입소 경위와 그 정치적 함의 - 세자(景宗) 代理聽政의 명분적 보강 -" 역사문화연구소 (43) : 3-54, 2012
31 "續修四庫全書 357"
32 "皇明通紀輯要"
33 "皇明通紀"
34 "皇明大政紀"
35 "沙溪全書"
36 "桐溪集"
37 "栗谷先生全書"
38 韓永愚, "東國通鑑의 歷史叙述과 歷史認識(上·下)" 15 : 1979
39 杨 艳 秋, "朝鲜王朝“仁祖反正”辨诬与《明史》编纂" 역사학연구회 (69) : 191-217, 2009
40 朴元豪, "朝鮮初期의 遼東攻伐論爭" 14 : 1976
41 金暻綠, "朝鮮初期 宗系辨誣의 展開樣相과 對明關係" 108 : 2006
42 "明鑑紀事本末"
43 "明熹宗實錄"
44 "明政統宗"
45 "明崇禎實錄"
46 "明史"
47 朴元豪, "明初 朝鮮의 遼東征伐計劃과 表箋問題" 19 : 1975
48 박원호, "明初 文字獄과 朝鮮表箋問題" 25 : 1975
49 권인용, "明中期 朝鮮의 宗系辨誣와 對明外交―權발의 『朝天錄』을 中心으로―" 명청사학회 (24) : 93-116, 2005
50 "文宗實錄"
51 "承政院日記"
52 "成宗實錄"
53 "宣祖實錄"
54 "宣祖修正實錄"
55 김경록, "宣祖代 洪純彦의 외교활동과 朝ㆍ明관계" 명청사학회 (41) : 1-35, 2014
56 "定宗實錄"
57 "宋史"
58 "孝宗實錄"
59 "光海君日記"
60 "仁祖實錄"
61 吳洙彰, "仁祖代 政治勢力의 動向" 13 : 1985
62 "仁宗實錄"
63 李成珪, "五松李公範敎授丁年記念 東洋史論叢" 1993
64 "二程全書"
65 "中宗實錄"
66 구도영, "中宗代 對明외교의 추이와 정치적 의도" 조선시대사학회 (54) : 89-127, 2010
67 "世宗實錄"
68 김민현, "『增修附註資治通鑑節要續編』의 유통과 활용에 대한 연구" 규장각한국학연구원 (52) : 161-186, 2018
69 吳恒寧, "≪宣祖實錄≫ 修正攷" 한국사연구회 (123) : 3-94, 2003
70 Jeong Yoon, "Politically historic meanings of the crown prince(Yang'nyeong)'s audience with the Emperor in the 7-8th year of King Taejong(太宗)'s reign - A study on correlation between the royal line of King Taejong and relations with Ming dynasty -" Institute of History and Culture Hankuk University of Foreign Studies 69 : 77-126, 2019
71 Tae-Sang Chung, "Ming Dynasty’s Cheollyeongwi and the border at the end of the Koryo Dynasty" Kangwon National University Humanities Institute 58 : 189-216, 2018
72 Kyung-sup Woo, "Chinese Adrift in Choseon Dynasty in 17th century - Focusing on the Case of Lin Yin-guan(林寅觀) in 1667 -" The Choson Dynasty History Association 88 : 47-76, 2019
73 Soonae Kang, "A Study of the Parting Records Related to Wolsa Yi Jung-gui’s Gwanbokjucheong Jinjujeongsa" The Institute of Korea Bibliography null (null): 15-48, 2017
74 윤정, "17세기 李舜臣 사적 정비와 宣祖대 역사의 재인식" 진단학회 (125) : 61-87, 2015
75 한명기, "17·8세기 韓中關係와 仁祖反正 : 朝鮮後期의 ‘仁祖反正 辨誣’문제" 13 : 2002
76 임상훈, "14世紀 麗明關係와 濟州島의 歸屬 過程" Tamla Cultural Institute null (null): 75-102, 2019
1910년 ‘만주 폐렴’과 두만강 유역 이주 한인 사회의 산업 변화
1945~1946년 중국 우한 지역 한인의 수용과 귀환 - 일본군 ‘위안부’를 중심으로 -
학술지 이력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
2027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
201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2015-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 |
2013-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기타) | |
2012-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FAIL (기타) | |
2011-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 |
2010-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2차) | |
2009-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
2007-06-22 | 학회명변경 | 한글명 : 무악실학회 -> 역사실학회영문명 : Mooak Silhakhoe : The Historical Society Of Mooak Silhak -> Yeoksa Silhakhoe: The Historical Society of Yeoksa Silhak | |
2007-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2016 | 0.65 | 0.65 | 0.74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74 | 0.69 | 1.438 | 0.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