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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종대 명사(明史) 진강과 명 사적의 재인식 - 『황명통기(皇明通紀)』의 진강을 중심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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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본고는 숙종 후반 처음으로 진강된 명사에 대한 인식을 『황명통기(皇明通紀)』를 매개로 살펴본 것이다. 명사가 사서(史書) 진강의 대상이 된 것은 당대사의 범주에서 벗어났음을 의미하는...

      본고는 숙종 후반 처음으로 진강된 명사에 대한 인식을 『황명통기(皇明通紀)』를 매개로 살펴본 것이다. 명사가 사서(史書) 진강의 대상이 된 것은 당대사의 범주에서 벗어났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조선 조정이 공식적으로 明이 멸망한 과거의 왕조임을 천명하는 것이었다. 『황명통기』는 명대 당대사로 편찬된 직후 조선에 유입되었는데, 이에 대한 인식은 비판적이었다. 이러한 인식은 임진왜란 후 명의 전례(典禮)가 강조되고 명 사적을 이해하는 전거로 활용되면서 변화하였고, 숙종대 진강교재로 채택되었다. 명대 사적 중에서 현안과 관련하여 논란이 되었던 것은 명 세종(嘉靖帝) 때 있었던 사친(私親) 추숭(追崇)이었다. 『황명통기』는 저자인 진건(陳建) 당대에 있었던 추숭에 대해 긍정적이었고 광해군과 인조가 명의 사적을 명분으로 사친을 추숭하여 현종대까지도 이에 대해 비판적인 기조가 이어졌다. 하지만 숙종은 역사적 전례를 매개로 원종 추숭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제기하는 신하들에게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이에 따라 인조 왕계의 시원으로 가지는 원종의 위상이 정립되고 추숭에 대한 부정적 입론이 약화되었다. 이와 함께 건국 과정에서 갈등을 빚었던 명 태조(洪武帝)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병자호란 후 북벌(北伐)과 권농(勸農) 등 긍정적인 요소가 지적되곤 하였지만 형정(刑政) 운영 등을 매개로 비판적인 인식이 유지되었다. 이러한 인식은 숙종대 들어 명 태조의 권농정책과 예제정비를 매개로 긍정적으로 변화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숙종대 당시 북벌(北伐)을 폐기하고 내수(內修)를 위한 정책을 실시하는 정책기조의 전환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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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is piece of writing examines the perception of Ming-Shi which was first introduced in the royal study sessions during the latter half of King Sukjong"s reign through 『Hwang-myeong-tong-gi(皇明通紀)』. That the history lecture in the royal stu...

      This piece of writing examines the perception of Ming-Shi which was first introduced in the royal study sessions during the latter half of King Sukjong"s reign through 『Hwang-myeong-tong-gi(皇明通紀)』. That the history lecture in the royal study sessions included Ming-Shi means the history lecture overstepped the bounds of contemporary history, and it also means the royal government in Joseon officially defined its standpoint that Ming dynasty(明) was fallen dynasty. After being compiled as contemporary history of Ming dynasty, 『Hwang-myeong-tong-gi(皇明通紀)』 came into Joseon. And in King Sukjong"s reign, it was selected as a textbook for the lecture in the royal study sessions. The most notable change in the process of lecture in the royal study sessions was raising king"s real parents" rank(私親追崇) in the reign of King Sejong of Ming(嘉靖帝). Because King Gwanghaegun and King Injo raised their real parents" rank based on precedents of Ming dynasty, there were negative opinions on the issue. However, King Sukjong stood firm against vassals who criticized the issue of raising Wonjong"s rank based on historical precedents. Thus, the status of Wonjong as the origin of King Injo"s royal genealogy was established and negative opinions on raising his rank became weakened. In addition, because of operating penal administration(刑政), the perception of King Taejo of Ming was critical. However, the perception of King Taejo of Ming have changed positively through active agriculture encouragement policies and organization of ceremony. This perception provided historical justification for abolishing expedition to conquer the north(北伐) and implementing policy for domestic demands(內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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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국문초록
      • Ⅰ. 머리말
      • Ⅱ. 숙종대 사서(史書) 진강과 명사(明史) 교재
      • Ⅲ. 명 사적의 재인식과 활용
      • Ⅳ. 맺음말
      • 국문초록
      • Ⅰ. 머리말
      • Ⅱ. 숙종대 사서(史書) 진강과 명사(明史) 교재
      • Ⅲ. 명 사적의 재인식과 활용
      • Ⅳ. 맺음말
      • 참고문헌
      •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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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列聖朝繼講冊子次第"

      2 "列聖御製"

      3 윤정, "麗末鮮初 世子 朝見의 추이와 그 의미: 昌王의 親朝 요청과 恭讓王 세자의 朝見" 규장각한국학연구원 (80) : 155-192, 2017

      4 정동훈, "초기 고려-명 관계에서 제주 문제" 한국중세사학회 (51) : 241-275, 2017

      5 우경섭, "조선후기 지식인들의 南明王朝 인식" 규장각한국학연구원 (61) : 133-155, 2013

      6 정옥자, "조선후기 중화사상 연구"

      7 윤정, "조선시대 문화사(상) : 문물의 정비와 왕실문화" 2007

      8 이원택, "유교적 공론장으로서의 경연과 유교지식인의 정체성 : 효종대 산림의 『중용』·『심경』강의를 중심으로" 태동고전연구소 33 : 109-134, 2014

      9 김인호, "여말선초 군주수신론과 『대학연의(大學衍義)』" 29 : 1998

      10 윤정, "숙종대 聖學輯要 進講의 경위와 의미- 숙종 정국 운영방식의 일단면 -" 경남문화연구원 (21) : 207-239, 2006

      1 "列聖朝繼講冊子次第"

      2 "列聖御製"

      3 윤정, "麗末鮮初 世子 朝見의 추이와 그 의미: 昌王의 親朝 요청과 恭讓王 세자의 朝見" 규장각한국학연구원 (80) : 155-192, 2017

      4 정동훈, "초기 고려-명 관계에서 제주 문제" 한국중세사학회 (51) : 241-275, 2017

      5 우경섭, "조선후기 지식인들의 南明王朝 인식" 규장각한국학연구원 (61) : 133-155, 2013

      6 정옥자, "조선후기 중화사상 연구"

      7 윤정, "조선시대 문화사(상) : 문물의 정비와 왕실문화" 2007

      8 이원택, "유교적 공론장으로서의 경연과 유교지식인의 정체성 : 효종대 산림의 『중용』·『심경』강의를 중심으로" 태동고전연구소 33 : 109-134, 2014

      9 김인호, "여말선초 군주수신론과 『대학연의(大學衍義)』" 29 : 1998

      10 윤정, "숙종대 聖學輯要 進講의 경위와 의미- 숙종 정국 운영방식의 일단면 -" 경남문화연구원 (21) : 207-239, 2006

      11 윤정, "숙종대 端宗 追復의 정치사적 의미" 한국사상사학회 (22) : 209-246, 2004

      12 윤정, "숙종대 神德王后 本宮 追祔 논의와 本宮 인식의 변화" 고려사학회 (37) : 171-202, 2009

      13 윤정, "숙종대 明史 진강과 명의 멸망에 대한 인식 - 『明紀編年』 진강을 중심으로 -" 한국학중앙연구원 (45) : 318-357, 2021

      14 윤정, "숙종대 太祖 諡號의 追上과 政界의 인식- 조선 創業과 威化島回軍에 대한 재평가 -" 국학연구원 (134) : 219-259, 2006

      15 윤정, "숙종대 『御製宮闕志』 편찬과 그 배경-갑술환국기 숙종의 궁궐경영과 지향-" 서울역사편찬원 (106) : 7-60, 2020

      16 윤정, "숙종 후반기 北道 사적 인식과 정비 논의" 부산경남사학회 (76) : 107-145,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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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退溪集"

      23 "西厓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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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 "肅宗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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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 "皇明通紀輯要"

      33 "皇明通紀"

      34 "皇明大政紀"

      35 "沙溪全書"

      36 "桐溪集"

      37 "栗谷先生全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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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 "明熹宗實錄"

      44 "明政統宗"

      45 "明崇禎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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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 "文宗實錄"

      51 "承政院日記"

      52 "成宗實錄"

      53 "宣祖實錄"

      54 "宣祖修正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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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7 "宋史"

      58 "孝宗實錄"

      59 "光海君日記"

      60 "仁祖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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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 "仁宗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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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3 Soonae Kang, "A Study of the Parting Records Related to Wolsa Yi Jung-gui’s Gwanbokjucheong Jinjujeongsa" The Institute of Korea Bibliography null (null): 15-48,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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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6 임상훈, "14世紀 麗明關係와 濟州島의 歸屬 過程" Tamla Cultural Institute null (null): 75-102,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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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5-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KCI등재
      2013-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기타) KCI등재후보
      2012-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FAIL (기타) KCI등재후보
      2011-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10-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2차) KCI등재후보
      2009-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7-06-22 학회명변경 한글명 : 무악실학회 -> 역사실학회
      영문명 : Mooak Silhakhoe : The Historical Society Of Mooak Silhak -> Yeoksa Silhakhoe: The Historical Society of Yeoksa Silh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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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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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65 0.65 0.74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74 0.69 1.438 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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