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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초대 정부의 기독교적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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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이 글은 ‘종교정치’가 대단히 활발했던 이승만 정부 전반기의 종교적 성격과 국가-교회 관계를 분석하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필자는 이 글에서 (1) 이승만 정부 핵심 구성원들의 종교...

      이 글은 ‘종교정치’가 대단히 활발했던 이승만 정부 전반기의 종교적 성격과 국가-교회 관계를 분석하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필자는 이 글에서 (1) 이승만 정부 핵심 구성원들의 종교적 구성과 개신교적 색채, (2) 이승만 정부 정책의 친개신교적 성격이라는 두 가지 쟁점에 집중했다.
      먼저, 이승만 정부가 정치지형의 역동적인 재편을 통해 ‘개신교 정권’의 성격을 강화해가는 과정이 이승만이 구사한 종교적 동맹 혹은 배제 전략을 통해 분석되었다. 필자는 (1) 거국내각과 여당의 형성(1948.8∼1950.6), (2) 전시체제를 위한 야당과의 일시적 제휴 및 배제(1950.7∼1951.5), (3) 야당과의 대립, 장면과의 갈등 심화와 배제(1951.6∼1952.4), (4) 족청계와의 제휴와 배제, 이승만 일인지배체제의 확립(1952.5∼1953.12)라는 네 개의 시기로 구분하여, ‘정치지형 재편의 종교적 측면’을 추적했다. 이 시기에 이승만 정부를 중심으로 대종교-개신교-천주교의 관계, 개신교 내 흥사단계와 동지회계의 관계가 빠르게 변화되어갔다. 요컨대, 이승만 정부 전반기에 걸쳐 정권 핵심부로부터 대종교, 천주교, 불교계 인사들 그리고 흥사단계 개신교 인사들이 차례로 축출됨으로써, ‘개신교(특히 동지회계) 중심의 권력구조’가 뚜렷하게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다. 결국 이승만의 독자적 권력기반 구축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이승만 정부의 ‘개신교적’ 성격은 정부 출범 직후보다는 집권 전반기의 끝 무렵인 1953∼1954년경에 더욱 선명하게 나타났다고 말할 수 있다.
      다음으로, 이승만 정부가 내세운 다양한 정책들의 친개신교적 성격이 분석되었다. 무엇보다, 이승만 정부 전반기의 지배이데올로기였던 ‘일민주의’가 기독교적 성격을 갖고 있었다. 또 이승만은 대통령이 되기 이전과 이후에 기독교를 나라의 기초로 삼아야 한다는 확신을 거듭 표명해왔다. 이승만 대통령은 미군정기에 도입된 형목제도, 성탄절 공휴일제도, 국영방송을 통한 선교 활동을 유지함으로써 개신교에 큰 혜택을 제공했다. 국회의원 취임선서, 국회개원식, 대통령 취임식, 국가적인 장례식 등의 주요한 국가의례들이 기독교식으로 제정되거나 거행되었다. 이밖에도, 개신교 교회의 요청에 의해 국기에 대한 경례 방식을 주목례로 바꾼 점, 군종제도를 도입한 점, 교회가 한국 최초의 민영방송국을 설립하고 이후 운영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점, 이른바 ‘주일성수’를 가능하게 해준 점, 첩을 둔 자가공무원이 될 수 없도록 한 조치, 미신타파운동이나 사이비종교 추방운동 등도 이승만 정부가 교회에 제공한 특권들에 포함된다. 교회 인사에게 훈장이나 감사장 등을 수여하는 것과 같은 상징적인 도움, 그리고 재정지원이나 면세 혜택 혹은 적산불하와 같은 물질적인 도움도 물론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반민특위 피의자 중 개신교계 인사들이 다른 종교에 비해 월등하게 많았다는 점에서, 이승만에 의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무력화 조치는 교회가 공신력에 치명적 상처를 입을 수 있는 상황을 모면하도록 도와주었다.
      급격한 정치지형 변동을 거치면서 정치영역 내에서 ‘개신교의 독주체제’가 형성 되었다. 다시 말해, 정치지형 변동의 종교적 결과는 “기독교 중심 사회로의 급속한 전환”으로 나타났다. 정치지형 변동과 맞물린 종교지형의 변동은 평면적으로도, 또한 입체적으로도 진행되었다. 종교지형의 ‘평면적’ 변화는 “개신교의 급팽창” 내지 “종교시장 내 개신교의 점유율 확대”로, 종교지형의 ‘입체적’ 변화는 “개신교를 정점으로 한 종교지형의 위계적 재편”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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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is article deals with the church-state relationships in the period of 1948∼1954, the first half of Syngman Rhee’s presidency. Religious politics was highly activated in this period. More concretely, in this paper I concentrated on two issues: (1...

      This article deals with the church-state relationships in the period of 1948∼1954, the first half of Syngman Rhee’s presidency. Religious politics was highly activated in this period. More concretely, in this paper I concentrated on two issues: (1) religious composition of key members in the Rhee government and ruling party, (2) pro-Protestantism of the Rhee government policies.
      During the period of 1948∼1954, president Rhee skillfully used the strategies of religious alliance and opposition. His first cabinet was composed of members from various religions, but non-Protestant politicians belonging to Daejonggyo(대종교), Catholicism, Buddhism were gradually excluded from the cabinet and ruling party. Among the Protestant politicians, those who participated in the Young Korean Academy(Heungsadan) were also the target to be excluded. The Young Korean Academy was founded and led by Ahn Chang-Ho, who has long been the Syngman Rhee’s chief antagonist among the Korean Protestant activist groups. Instead, those who participated in Dongjihwe(동지회) founded and led by Syngman Rhee had became the key members in Rhee’s government and ruling party. By the year of 1953 or 1954, religious characteristics of Rhee’s government as a Protestant regime were even more apparent than the beginning of the his government.
      Pro-Protestantism of Rhee’s government was also displayed and strengthened by the various government policies which unfairly favored the Protestant Churches. Surely, these policies were the benefits in return for the strong support for president Rhee and his government in the part of Korean Protestant Churches. Above all, dominant ideology initiated by Syngman Rhee during the first half of his presidency, Ilminjui(일민주의), was colored by Christian ethics. Moreover Syngman Rhee himself has often said the need and hope to found new nation on the Christian ground. Besides, pro-Protestant policies of Rhee’s government includes the introduction of prison and military chaplainship, of Christmas as a national holiday, changing the way of salute to the national flag, evangelization through the national broadcasting system, etc. President Rhee’s unwillingness to punish the pro-Japanese collaborators would have been a great relief for the Protestant Churches, for there were much more pro-Japanese suspects in the Protestant Churches than in any other relig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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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1. 머리말
      • 2. 정부 핵심 구성원과 개신교: 개신교 독주체제의 점진적 형성
      • 3. 정부 정책과 개신교: 특권적 종교로의 도약
      • 4. 맺음말: 정치지형 변동의 종교적 결과
      • 참고문헌
      • 1. 머리말
      • 2. 정부 핵심 구성원과 개신교: 개신교 독주체제의 점진적 형성
      • 3. 정부 정책과 개신교: 특권적 종교로의 도약
      • 4. 맺음말: 정치지형 변동의 종교적 결과
      • 참고문헌
      • 국문초록
      • Abstract
      • “대한민국 초대 정부의 기독교적 성격” 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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