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壬辰倭亂 直後 朝鮮의 對日講和政策 性格硏究

      한글로보기

      https://www.riss.kr/link?id=T11754247

      • 저자
      • 발행사항

        서울 : 고려대학교 대학원 , 2007

      • 학위논문사항
      • 발행연도

        2007

      • 작성언어

        한국어

      • 발행국(도시)

        서울

      • 형태사항

        49 p. : 삽도 ; 26 cm.

      • 일반주기명

        지도교수: 조광
        참고문헌 : p. 44-49

      • 소장기관
        • 고려대학교 도서관 소장기관정보
        • 고려대학교 세종학술정보원 소장기관정보
        • 국립중앙도서관 국립중앙도서관 우편복사 서비스
      • 0

        상세조회
      • 0

        다운로드
      서지정보 열기
      • 내보내기
      • 내책장담기
      • 공유하기
      • 오류접수

      부가정보

      국문 초록 (Abstract)

      壬辰倭亂期의 明ㆍ日 강화교섭은 조선에 부정적인 강화인식을 축적시켰고, 北人은 柳成龍을 강화주도자로 설정하여 탄핵했다.
      그러나 명군 철수 후 德川家康이 우호적으로 강화교섭을 요청해오자, 강화배격만으로는 이에 대응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한 宣祖는 北人을 실각시키고 이덕형에 對日정책을 맡겼다. 이덕형은 전쟁 종결을 위해 궁극적으로 일본중앙정권과의 강화가 이루어져야만 한다는 것을 인지했다. 하지만 그는 對馬를 대상으로 한 정책을 펼쳤다. 섣불리 對日강화가 거론될 수 없었던 당시 분위기와 함께, 그는 對馬를 견제ㆍ포섭하여 자강한 후, 幕府와의 교섭을 유리하게 이끌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책을 일결 짓기 위해 필요했던 明의 委官이 파견되지 않고, 선조가 강화성사를 재촉하면서 정책은 중단되었다.
      선조는 이제 勝戰의 명분을 얻은 상태에서의 조속한 강화를 원했다. 유영경은 이러한 선조의 의향에 부응했다. 그는 家康이 조선에 서계를 전하려했다는 정보와, 犯陵賊에 대한 정보를 이용하여, 이를 사절 파견명분으로 활용했다. 유영경은 명분확보에 만족하지 않고, 명분을 强化하는 과정을 거쳤다. 對馬가 보내온 가짜 犯陵賊을 진짜로 포장하여 宗廟에 바치고자 한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가짜 犯陵賊의 처형을 반대하는 여론에 의해 위기를 맞았으나, 전쟁을 승리로 마무리 지으려는 宣祖의 강력한 지원에 힘입어 처형에 이르렀고, 명분 强化과정과 별도로 준비되던 사절은 그 즉시 파견되었다.
      번역하기

      壬辰倭亂期의 明ㆍ日 강화교섭은 조선에 부정적인 강화인식을 축적시켰고, 北人은 柳成龍을 강화주도자로 설정하여 탄핵했다. 그러나 명군 철수 후 德川家康이 우호적으로 강화교섭을 요...

      壬辰倭亂期의 明ㆍ日 강화교섭은 조선에 부정적인 강화인식을 축적시켰고, 北人은 柳成龍을 강화주도자로 설정하여 탄핵했다.
      그러나 명군 철수 후 德川家康이 우호적으로 강화교섭을 요청해오자, 강화배격만으로는 이에 대응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한 宣祖는 北人을 실각시키고 이덕형에 對日정책을 맡겼다. 이덕형은 전쟁 종결을 위해 궁극적으로 일본중앙정권과의 강화가 이루어져야만 한다는 것을 인지했다. 하지만 그는 對馬를 대상으로 한 정책을 펼쳤다. 섣불리 對日강화가 거론될 수 없었던 당시 분위기와 함께, 그는 對馬를 견제ㆍ포섭하여 자강한 후, 幕府와의 교섭을 유리하게 이끌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책을 일결 짓기 위해 필요했던 明의 委官이 파견되지 않고, 선조가 강화성사를 재촉하면서 정책은 중단되었다.
      선조는 이제 勝戰의 명분을 얻은 상태에서의 조속한 강화를 원했다. 유영경은 이러한 선조의 의향에 부응했다. 그는 家康이 조선에 서계를 전하려했다는 정보와, 犯陵賊에 대한 정보를 이용하여, 이를 사절 파견명분으로 활용했다. 유영경은 명분확보에 만족하지 않고, 명분을 强化하는 과정을 거쳤다. 對馬가 보내온 가짜 犯陵賊을 진짜로 포장하여 宗廟에 바치고자 한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가짜 犯陵賊의 처형을 반대하는 여론에 의해 위기를 맞았으나, 전쟁을 승리로 마무리 지으려는 宣祖의 강력한 지원에 힘입어 처형에 이르렀고, 명분 强化과정과 별도로 준비되던 사절은 그 즉시 파견되었다.

      더보기

      목차 (Table of Contents)

      • 目 次
      • 머 리 말
      • Ⅰ. 明日 교섭과 조선 내 講和배격 양상
      • Ⅱ. 講和 준비과정으로서의 對馬 견제포섭정책
      • 1. 朝日 교섭의 시작과 對 對馬정책의 입안
      • 目 次
      • 머 리 말
      • Ⅰ. 明日 교섭과 조선 내 講和배격 양상
      • Ⅱ. 講和 준비과정으로서의 對馬 견제포섭정책
      • 1. 朝日 교섭의 시작과 對 對馬정책의 입안
      • 2. 정책의 정당화와 시행상의 한계
      • Ⅲ. 對 幕府 講和정책의 전개
      • 1. 對 幕府 講和정책으로의 전환배경
      • 2. 講和의 정당화와 講和명분의 고안
      • 3. 講和명분의 확보와 强化
      • 맺 음 말
      • 參考文獻
      더보기

      분석정보

      View

      상세정보조회

      0

      Usage

      원문다운로드

      0

      대출신청

      0

      복사신청

      0

      EDDS신청

      0

      동일 주제 내 활용도 TOP

      더보기

      주제

      연도별 연구동향

      연도별 활용동향

      연관논문

      연구자 네트워크맵

      공동연구자 (7)

      유사연구자 (20) 활용도상위20명

      이 자료와 함께 이용한 RISS 자료

      나만을 위한 추천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