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굴암 금강역사상과 관련하여 이 글에서 주목하려는 것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는 석굴암 금강역사상처럼 맨손에 웃옷을 벗고 우락부락한 모습의 금강역사상이 언제 시작되었는지 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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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애 (경주대학교)
2008
Korean
석굴암 ; 금강역사(Kŭmgang-yŏksa) ; 집금강 ; 아형(阿形) ; 훔형(吽形) ; 인왕(仁王) ; 『佛說仁王般若波羅蜜經』 ; 『仁王護國般若經』 ; vajrapani ; door-guardian ; Seokgulam Cave Tem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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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199-224(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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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석굴암 금강역사상과 관련하여 이 글에서 주목하려는 것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는 석굴암 금강역사상처럼 맨손에 웃옷을 벗고 우락부락한 모습의 금강역사상이 언제 시작되었는지 하는 ...
석굴암 금강역사상과 관련하여 이 글에서 주목하려는 것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는 석굴암 금강역사상처럼 맨손에 웃옷을 벗고 우락부락한 모습의 금강역사상이 언제 시작되었는지 하는 것이다. 둘째는 금강역사상을 흔히 인왕상이라고도 하는데, 두 개의 명칭사이에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금강역사상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인왕상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은지에 관한 것이다. 또 통상적으로 금강역사라고 하면 말 그대로 손에 금강저를 쥔 역사를 일컫는데, 금강저를 쥐지 않고 맨주먹으로 격파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경우에도 금강역사라고 부를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있다. 셋째는 석굴암에서 발견되어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있는 또 한 쌍의 석굴암 금강역사상은 도대체 어떤 연유로 남겨지게 되었는지 이다. 아울러 만든 시점은 석굴암 안의 금강역사상과 같은지, 다른지 이다. 이 글은 이러한 몇 가지 궁금증에서 출발하였다.
석굴암 금강역사상은 8세기 동아시아 금강역사상의 보편적인 특징을 지녔다. 간다라나 인도 본토의 금강역사상과는 달리 쌍으로 만들어졌고, 손에 아무것도 지니지 않은 채 격파자세를 하고 있다. 또 그 중 1구는 입을 연 아상으로, 나머지 1구는 입을 꾹 다문 훔상이다. 바로 이 세 가지 특징, 즉 아형과 훔형에, 이들이 서로 쌍을 이루며, 맨손인 금강역사상은 중국에서 6세기 전반에 이루어진 형식이다. 특히 이 시기는 중국의 불교조각이 漢化되는 때이기도 해서 그 변화원인은 중국 내에서 찾아야 한다고 보며, 이에 관한 좀 더 면밀한 검토는 후일을 기하였다. 석굴암 금강역사상 형식은 바로 이 漢化된 금강역사를 기본으로 삼았다.
아울러 금강저를 쥔 상은 금강역사라고 부르는 것이 옳지만, 맨손인 경우도 여전히 금강역사라고 부를 수 있는가하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물론 5세기경 중국 금강역사상은 본의에 충실하여 금강저를 쥔 모습으로 형상화되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대로 6세기 전반 금강역사는 중국화를 거쳐 맨손으로 등장한다. 이 시기 이미 '금강'이라는 개념은 '금강저'라는 제한된 범위를 벗어나 '모든 번뇌와 삿된 것을 깨뜨릴 수 있는 단단한 것'으로 상징되었고, 따라서 맨손의 역사 역시 넓은 의미의 금강역사로 파악하여도 무방한 것으로 보았다. 또 금강역사를 흔히 인왕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러한 현상은 20세기 일본의 영향으로 생겨난 결과로 파악하였으며, 금강역사는 인왕으로 바꾸어 부를 수 없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마지막으로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는 또 한 쌍의 석굴암 금강역사상의 파편이 있다. 이들 파편은 왜 존재하게 되었는가 역시 필자의 의문 중 하나였다. 석굴암 금강역사상은 부조이지만 입체감을 잃지 않으려 많은 노력을 기울인 조각이다. 금강역사상의 양팔을 몸에서 떼어 부조 밖으로 돌출시킨 것은 조각을 훨씬 더 입체적으로 보이게는 해주었지만, 한 쌍의 실패작을 낳았다. 금강역사상은 7세기 전반부터 유행하기 시작하여 8세기까지 집중적으로 조성되었다. 금강역사상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석굴암 금강역사상의 조영 이후 금강역사는 사천왕에게 자리를 내어준다. 금강역사가 사천왕에게 유행의 주도권을 넘겨주게 된 원인 역시 앞으로 필자가 기울여야할 과제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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