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남인의 상제천관이 다산 정약용의 인간관에 끼친 영향

국문 초록 (Abstract)

정약용의 철학을 친서파(親西派)로 분류하는 많은 학자들이 드는 근거는 그의 상제천관이다. 상제의 강감(降監), 도심을 통한 명령, 기호(嗜好) 등 인격신적인 면모는 서학의 천주와 닮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대의 유학자들, 특히 성호학파 내에서 서학에 대하여 단호한 입장을 취했던 안정복이나 신후담, 또는 채제공과 같은 공서파(攻西派)들도 하늘을 호선오악(好善惡惡)의 기호를 가진 인격적인 존재로 묘사한다. 다른 한 편, 정약용의 철학을 원시 유학에로의 복귀로 보는 학자들이 드는 핵심적인 근거 역시 그가 하늘(天)을 형이상학적 리(理)가 아닌, 외경(畏敬)의 대상으로 본다는 점인데, 안정복이나 이병휴와 같이 천즉리(天卽理)를 긍정하며 수호하는 학자 역시 하늘을 ‘외경’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는 점은 흥미로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다산 철학의 구체적인 연원과 다양한 면모를 살펴보려면 우선 동시대의 학자들이 하늘에 대하여 가졌던 사상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

이 연구는 먼저 경기 남인의 영수이자 공서파였던 채제공(蔡濟恭, 1720~1799)과 성호학파의 학자들, 즉 안정복(安鼎福, 1712~1791), 신후담(愼後聃, 1702~1761), 이병휴 (李秉休, 1710~1776) 등의 상제천에 대한 사상을 살펴본 뒤, 그것이 정약용의 상제천관과 인간관에 끼친 영향을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 논문에서 분석하는 학자들은 서학을 반대하는 학자들과 성리학을 옹호하는 학자들이 섞여 있다. 그러나 이들의 천(天)에 대한 사상은 정약용의 상제천관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으며, 또한 그의 인간관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특히, 하늘의 기호(嗜好)가 선을 좋아하고 악을 싫어한다는 점, 하늘의 권형은 선을 행할 수도, 악을 행할 수도 있다는 점, 마지막으로 하늘도 기수(氣數)나 세도(世道)와 같은 ‘어쩔 수 없는’ (不得已) 이유로 인하여 자신의 본성을 실현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 등은 정약용이 설명하고 있는 인간 마음의 세 요소, 즉 성(性), 권형(權衡), 행사(行事)의 분류에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