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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CI등재

      16세기 전반기의 士習과 어촌 심언광의 士習論 = Literati's Mores in the Early 16th Century and Eochon Sim Eon­gwang's theory of Literati's Mo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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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Literati's Mores(士習) refers to the customs of the Literati. Literati's Mores in the early Joseon Dynasty had a good appearance until the time of King Seongjong, but changed greatly during the reign of King Yeonsan. As for the cause, the officials ...

      Literati's Mores(士習) refers to the customs of the Literati. Literati's Mores in the early Joseon Dynasty had a good appearance until the time of King Seongjong, but changed greatly during the reign of King Yeonsan. As for the cause, the officials of the time cited Muosahwa(무오사화, Literati Purge of 1498) and Gapjasahwa(갑자사화, Literati Purge of 1504). After undergoing Literati Purges twice during the reign of King Yeonsan, in the government and the people, one's father and elder brothers did not teach their children the fundamentals of learning, but only president were trained, and only the official rank and stipend were taught the words of decorating the paragraphs(章句) and the Literature creation(詞章) were trained, and only the official rank and stipend were taught, So, if you see people who practice Confucian philosophy(道學) and Confucian scriptures(經術), they say that it is a gate that brings disaster, so they are wary and the Literati's Mores has collapsed. After King Yeonsan was dethroned and King Jungjong took the throne, Literati's Mores showed improvement, but it was not easy to replace the collapsed Literati's Mores in a short time.
      Talent is not something that can be cultivated today and used tomorrow. The people who are hired as talents in an era can be said to be those who were nurtured at least 20 to 30 years before that era. Sim Eon­gwang said that almost all the literatis produced during the reign of King Seongjong were removed due to the Muosahwa and Gapjasahwa during the reign of King Yeonsan, so the custom was shrinking because they were afraid that the Literati would repeat the same mistake. However, after King Jungjong ascended to the throne, he said that even after 20 years of progress, his morale was broken and he did not show up again. I have not heard of any place that selects talented people who rush to appoint them according to their qualifications, hire honest people and defeat greedy people.
      In the reign of King Jungjong, the period for promotion to the Sixth grade­official duties(6품 관직) was much shorter than before for those from the Muneum(門蔭, protected appointment) graduates, and in a situation where there was not enough Civil Official(文臣) to appoint for the central the Sixth grade­official duties, it quickly took up almost all of the central the Sixth grade­official duties.
      At that time, Bungyeong(奔競), the custom of asking for a position in order to obtain a position, was prevalent. One of the biggest reasons I did Bungyeong was to ask for personnel for appointment or promotion in a public office. Sim Eon­gwang said that it is really difficult to choose a person, but when appointing officials, he does not discriminate whether he is wise or not, and he consistently takes the order of first and last according to the letter of request.
      Sim Eon­gwang academically valued the Learning of Confucian Classics(經學) rather than the Literature creation(詞章). He said, “The Learning of Confucian Classics are fundamental and Literature creation are final. However, to become a master of the sentences, you must read not only the Learning of Confucian Classics, but also read everything from the Learning of Confucian Classics to Shiji(史記) and Hundred Schools(諸子百家). Only then can you become a master of the sentences and achieve a master that will brighten the cou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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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士習은 선비의 풍습을 말한다. 조선시대의 사습은 성종조까지만 해도 그런대로 바른 모습을 보였으나 연산조에 들어 크게 변하였다. 그 원인에 대해 당대의 관료들은 무오사화와 갑자사화...

      士習은 선비의 풍습을 말한다. 조선시대의 사습은 성종조까지만 해도 그런대로 바른 모습을 보였으나 연산조에 들어 크게 변하였다. 그 원인에 대해 당대의 관료들은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를 들었다. 연산군 때 두 차례에 걸쳐 사화를 겪은 이후부터 朝野에서 부형들은 그들의 자제에게 학문하는 근본을 가르치지 않고 오직 章句와 詞章만 익히게 하고 爵祿을 꾀하는 것만 가르쳤으며, 道學과 經術을 업으로 삼는 사람을 보면 재앙을 부르는 문[禍門]이라 지칭하고 경계하게 되어 사습이 무너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연산군이 폐위되고 중종이 즉위한 후에 사습은 개선되는 모습을 보였지만, 무너진 사습을 단시일 내에 바꾸기란 쉽지 않았다.
      인재는 오늘 배양하여 내일 당장 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한 시대에 인재로 등용되는 인물은 그 시대보다 적어도 20~30년 전에 양성된 자들이라 할 수 있다. 심언광은 성종 때 양성한 선비가 연산조의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로 많이 희생되자, 선비들이 그 전철을 밟을까 두려워하여 사습이 비루해졌다고 하였다. 그런데 중종이 즉위한 뒤로 20여 년 동안 사기를 진작시켜도 다시 떨치지 않아 아부하고 구차하게 살아가려는 버릇이 있고 충직하고 성실한 기풍이 없어져 인재를 선발하는 곳에서는 자격에 따라 제수하는 데에 급급하고, 청렴한 사람을 등용하고 탐욕한 자를 물리쳤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고 하였다. 한편 중종대에 들어와 문음 출신자는 6품 관직으로 승진하는 기간이 이전보다 훨씬 단축되었으며, 중앙의 6품 관직에 임명할 문신이 부족한 상황에서 빠르게 중앙의 6품 관직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당시에는 벼슬을 얻기 위해 청탁하는 풍습인 奔競이 만연하였다. 분경을 한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관직의 임용이나 승진 등을 위한 인사청탁이었다. 심언광은 인물을 銓衡하기란 참으로 어려운데, 注擬할 때 현명 여부를 분간하지 않고 한결같이 청탁 쪽지에 따라 선후의 순서로 삼는다고 하였다.
      심언광은 학문적으로 詞章보다 經學을 중시하였다. 그는 “대저 경학은 근본이고 사장은 말단이다. 그러나 문장의 大家가 되려면 경학뿐만 아니라 반드시 경학에 근본을 두고 󰡔史記󰡕와 諸子百家에 이르기까지 다 읽어야 한다. 그런 뒤에야 대가가 될 수 있음은 물론 끝내는 나라를 빛낼 문장을 이룰 수 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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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논문관계도

      1 "論語"

      2 "태종실록"

      3 김대홍, "청탁금지법과 관련한조선시대 奔競 금지의 시사점" 한국법사학회 (55) : 9-34, 2017

      4 "중종실록"

      5 박도식, "조선전기 守令制의 실태와 심언광의 守令觀" 인문과학연구소 (40) : 355-390, 2014

      6 車美姬, "조선시대 과거시험과 유생의 삶" 이화여대출판부 2012

      7 강제훈, "조선 초기의 朝會 의식" 조선시대사학회 (28) : 5-46, 2004

      8 車美姬, "조선 초기 문과 급제자의 6품직 승진" 이화여자대학교 한국문화연구원 3 : 2003

      9 장재천, "조선 중종 전반기 성균관 유생들의 사습(士習) 논란" 한국사상문화학회 (96) : 67-85, 2019

      10 최선혜, "조선 전기 유일 천거제의 운영과 그 의의" 조선시대사학회 (56) : 5-44, 2011

      1 "論語"

      2 "태종실록"

      3 김대홍, "청탁금지법과 관련한조선시대 奔競 금지의 시사점" 한국법사학회 (55) : 9-34, 2017

      4 "중종실록"

      5 박도식, "조선전기 守令制의 실태와 심언광의 守令觀" 인문과학연구소 (40) : 355-390, 2014

      6 車美姬, "조선시대 과거시험과 유생의 삶" 이화여대출판부 2012

      7 강제훈, "조선 초기의 朝會 의식" 조선시대사학회 (28) : 5-46, 2004

      8 車美姬, "조선 초기 문과 급제자의 6품직 승진" 이화여자대학교 한국문화연구원 3 : 2003

      9 장재천, "조선 중종 전반기 성균관 유생들의 사습(士習) 논란" 한국사상문화학회 (96) : 67-85, 2019

      10 최선혜, "조선 전기 유일 천거제의 운영과 그 의의" 조선시대사학회 (56) : 5-44, 2011

      11 "인종실록"

      12 "예종실록"

      13 "연산군일기"

      14 박도식, "어촌 심언광의 생애와 경세론" 강릉문화원 2010

      15 박도식, "어촌 심언광의 북방 경험과 국방 개선안" 한일관계사학회 (48) : 45-92, 2014

      16 박도식, "어촌 심언광의 문학과 사상 2" 강릉문화원 2018

      17 李秉烋, "신편 한국사 28" 국사편찬위원회 1996

      18 李成茂, "신편 한국사 23(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국사편찬위원회 2002

      19 "세종실록"

      20 "성종실록"

      21 박균섭, "선비의 앎과 삶" 한국학연구소 (35) : 275-301, 2010

      22 李成茂, "선비와 선비사상" 남명학연구원 17 : 2012

      23 김언종, "선비, 그 용어의 기원과 의미의 내함" 영남퇴계학연구원 (15) : 41-65, 2014

      24 "문종실록"

      25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26 "象村稿"

      27 金庠基, "讀書堂(湖堂)考" 진단학회 17 : 1955

      28 "經國大典"

      29 宋洙煥, "甲子士禍의 새 해석" 한국사학회 57 : 1999

      30 金 燉, "燕山君代의 君ㆍ臣 權力關係와 그 推移" 역사교육연구회 53 : 1993

      31 "漁村集"

      32 李成茂, "朝鮮의 社會와 思想" 일조각 1999

      33 崔承熙, "朝鮮時代 兩班의 代加制" 진단학회 60 : 1985

      34 李章熙, "朝鮮時代 선비硏究" 博英社 1989

      35 朴洪甲, "朝鮮時代 門蔭制度 硏究" 탐구당 1994

      36 車文燮, "朝鮮時代 軍制硏究" 단국대학교출판부 1973

      37 崔珍玉, "朝鮮時代 生員進士硏究" 집문당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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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 "弘齋全書"

      51 "希樂堂文稿"

      52 "孟子"

      53 "大學"

      54 "中庸"

      55 金重權, "中宗朝의 賜暇讀書에 關한 硏究賜暇讀書者를 中心으로" 書誌學會 18 : 1999

      56 박도식, "16세기 전반기의 경제상황과 어촌 심언광의 절검론" 강원사학회 (38) : 73-108, 2022

      57 박도식, "16세기 전반기의 간쟁과 어촌 심언광의 간쟁론" (사)율곡학회 48 : 55-95, 2022

      58 차미희, "16세기 전반기 문과 급제자의 6품직 승진" 조선시대사학회 (20) : 79-106, 2002

      59 車美姬, "16세기 文科及第者의 初職 규정 변화" 한국사연구회 103 : 1999

      60 申解淳, "16세기 成均館敎育의 沈滯原因에 대한 考察" 한국사연구회 106 :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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