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매체의 출현은 한국 문단의 출발을 앞당겼다. 하지만 식민지로 전락한 판이라서 한국 문학은 서울 중심의 유학파들이 주도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였다. 전라북도의 문단도 예외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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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Korean
810
학술저널
105-125(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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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매체의 출현은 한국 문단의 출발을 앞당겼다. 하지만 식민지로 전락한 판이라서 한국 문학은 서울 중심의 유학파들이 주도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였다. 전라북도의 문단도 예외가 아...
근대 매체의 출현은 한국 문단의 출발을 앞당겼다. 하지만 식민지로 전락한 판이라서 한국 문학은 서울 중심의 유학파들이 주도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였다. 전라북도의 문단도 예외가 아니어서 근대 매체의 혜택을 입지 못해 문단의 발족이 늦었다. 그러다 보니 문학의 메타 차원을 서술하는 비평의 출발이 늦은 것은 당연하였다.
전북 평단은 도내 최초의 등단 작가이자 유학파였던 이익상이 선도하였다. 그는 파스큘라(PASKULA)와 카프(KAPF)의 출범에 기여하여 한국 근대문학의 기반을 닦았을 뿐만 아니라, 전라북도 문단의 근대화에도 큰 공을 남겼다. 그는 식민지 원주민들의 기층 생활에 관심을 기울이면서도 문학의 보편성을 추구하였다. 그의 영향에 힘입어 도내 비평가들은 현실에 중점을 두느냐, 문학의 예술성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논조가 달라졌다.
그러한 흐름은 예술지상주의, 계급주의 그리고 중간파 비평으로 삼분할 수 있다. 이 분류방식은 한국근대비평사의 것과 다르지 않다. 예술지상주의 비평은 문학의 자율성을 옹호하고, 문단의 구성원들을 다양하게 충원시켜주는 지점을 제공해주었다. 이 비평관은 불문학을 전공한 유엽과 영문학을 전공한 김환태의 주도로 세력을 확장하였다. 두 사람이 외국문학을 공부했다는 점은 한국 문단에 도입된 외래 사조의 위력을 보여준다.
계급주의 비평은 농도였던 전라북도의 특수한 조건과 결부되어 출현하였다. 도내 출신의 계급주의 비평가들은 대부분 사회주의 운동 경력을 소지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그들은 급진적이고 강경한 논조를 견지하고 친카프적 경향을 띠었다. 하지만 전북의 식민지적 현실을 비평에 반영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그들의 글쓰기는 훼손받지 말아야 한다.
중간파 비평은 두 진영의 사이에 위치하여 애매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김해강과 채만식으로 이어지는 중간파는 카프의 움직임을 추종하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이른바 ‘동반자 작가’들이다. 이 비평 방식은 지식인 비평가의 식민지 사회에 대한 객관적 인식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해방 후의 혼란기를 거쳐 비평이 문학 장르로 자리잡기까지에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되었다. 도내 대학에 관련 학과가 설치되고 연구자들이 배출되고 나서야 평단은 본격적으로 제도화될 수 있었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e appearance of modern media quickened the start of Korean literary circle. However, Korea degenerated into a colony so Korean literature could only be led by those living in Seoul who had studied abroad. The literary circle in Jeolla-bukdo Province...
The appearance of modern media quickened the start of Korean literary circle. However, Korea degenerated into a colony so Korean literature could only be led by those living in Seoul who had studied abroad. The literary circle in Jeolla-bukdo Province was not an exception. The region was not benefited from modern media so the launch of literary circle was slow. That made it natural for criticism that describes the meta level of literature to start late.
Jeolla-bukdo critics’ circle was led by Lee Ik-sang, the first writer that debuted in the province and one of those who studied abroad. He contributed to the launch of PASKULA and KAPF, laid the foundation of Korean modern literature, and made a big contribution to the modernization of the literary circle of Jeolla-bukdo Province. He paid attention to the daily life of the colonial residents and pursued universality of literature. Influenced by his him, critics of the province diverged between those who focused on reality and those who focused on the artistic value of literature.
Such flow can be divided into three trends—art for art’s sake, socialist criticism, and neutral criticism. This classification is not different from the classification of Korean modern criticism. Art for art’s sake supported the autonomy of literature and laid the foundation for diversifying the members of literary circle. The expansion of this critical view was led by Yoo Yeop, who majored in French literature, and Kim Hwan-tae, who majored in English literature. The fact that the two majored in foreign literature shows the influence of foreign literary trend. Socialist criticism appeared in the specific conditions of agricultural area of Jeolla-bukdo Province. Socialist critics of the province had the background of participating in socialist movement and that gave them the radical and firm tone and pro-KAPF tendency. However, their writing that was a part of the effort to reflect the colonial reality of Jeolla-bukdo Province in literary criticism should not be underestimated.
Neutral criticism took an ambiguous position between the two groups. The neutral circle centering on Kim Hae-gang and Chae Man-shik are ‘companion writers’ who pursued the movement of KAPF but could not put that into practice. This way of criticism has the significance that it lets us peep into the authors’ objective awareness about the colonial society.
It took quite a long time from the time of confusion after liberation of Korea to the time literary criticism was settled as a literary genre. It was not until a relevant department was established in a college within the province and researchers were produced that the literary circle was legitimately institutionaliz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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