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일제시기 전남 지역 실업계 학교 설립운동을 파악하고, 이와 더불어 설립운동의 주도세력, 설립 기금 조성 활동, 설립운동의 정당화 논리를 살펴봄으로써 일제시기 중등학교의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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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 2021
학위논문(석사) --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 , 사회과교육학과 역사교육전공 , 2021. 2
2021
한국어
907 판사항(22)
충청북도
The Establishment Movement of Secondary Vocational Schools in Jeonnam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ⅴ, 76 p ; 26 cm
한국교원대학교 논문은 저작권에 의해 보호받습니다.
지도교수:이용기
참고문헌 : p.66-71
I804:43012-000000038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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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일제시기 전남 지역 실업계 학교 설립운동을 파악하고, 이와 더불어 설립운동의 주도세력, 설립 기금 조성 활동, 설립운동의 정당화 논리를 살펴봄으로써 일제시기 중등학교의 위...
본 연구는 일제시기 전남 지역 실업계 학교 설립운동을 파악하고, 이와 더불어 설립운동의 주도세력, 설립 기금 조성 활동, 설립운동의 정당화 논리를 살펴봄으로써 일제시기 중등학교의 위계구조와 실업계 학교 설립의 의미를 검토한 것이다. 일제시기 교육정책은 실업교육에 방점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핵심은 간이한 형태의 실업보습학교였다. 실업계 학교 설립은 농업학교 및 농업보습학교 위주로 이루어졌다. 이에 따라 일제시기 대표적인 농업 지역으로 농업보습학교 중심의 학교 설립이 이루어진 전남 지역을 연구 대상 지역으로 선정하였다. 선행연구는 일제시기 취업률 우위에 따른 실업학교 선호 현상 및 개별 학교의 역사와 사회적 조건에 따른 서열 인식이 존재했다고 보았다. 하지만 일제시기 학력사회화가 추진되었음을 고려해본다면, 일제시기 중등교육에 인문계와 실업계의 계열 구분에 따른 서열 인식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는 선행연구에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일제시기 중등학교의 위계구조는 취업률, 입학경쟁률이라는 취학 행위만이 아니라 조선인의 설립 행위를 확인할 수 있는 학교 설립운동의 측면에서도 살펴보아야 한다. 일제시기 전남 지역 실업계 학교 설립운동을 분석하고 여기서 나타난 특징을 3가지로 유형화하였다. Ⅰ유형은 인문계인 고보를 추진하다 여의치 않아 실업계 학교 설립으로 전환된 유형으로 목포, 순천, 영광, 완도, 여수, 제주가 해당된다. Ⅱ유형은 비정규 사설교육기관인 사설학원·강습소에서 실업계 학교로 승격된 경우로 광주, 고흥, 함평 사례가 해당된다. Ⅲ유형은 총독부 방침을 활용해 설립한 유형으로 전남 지역 다수의 실업보습학교가 해당되었다. 이러한 3가지 유형을 통해 일제시기 교육 체제가 제도화되며 나타난 중등학교 내의‘고보-실업-실업보습’과 실업학교 내의‘갑종-을종’의 학력구조 위계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일제시기 학력구조 위계화의 원인을 학력에 따른 고용과 임금 차별의 제도화와 사회적 평판의 2가지 측면에서 살펴보았다.일제시기 학교 설립운동은 총독부와 지역사회의 갈등과 타협의 길항관계 속에서 이루어졌다. 실업계 학교 설립운동의 실상과 지역사회의 움직임을 규명하고자 설립운동의 주도세력, 설립 기금 조성 활동, 설립운동의 정당화 논리를 분석하였다. 이를 통해 크게 3가지 특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첫째,‘고보-실업-실업보습’의 중등학교 위계구조를 포착하였다. 실업계 학교 설립운동 주도세력 및 설립 기금 조성 활동의 지역 범위도 ‘고보-실업-실업보습’의 중등학교 위계에 따라 축소되었다. 또한 설립운동의 정당화 논리에도 인문계인 고보 지향성이 나타났다. 민족 사업이자 완전한 중등교육기관으로 지역의 위상을 상징하는 고보 설립이 좌절되고 실업계 학교로 설립운동 방향이 전환된 경우 갈등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는 실업계 학교가 주로 취업을 목표로 하는 반면 고보는 고등교육 진학을 준비하는 학교였으며, 당시 조선인들은 중등교육을 고등교육으로 이어지는 중간 교육으로 인식했음을 보여준다. 둘째, 실업보습학교의 관 주도적 경향성을 확인하였다. 실업보습학교의 설립은 특정 단체, 면장, 군청 직원이 동원되어 이루어졌으며 주로 관변적 인물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또한 실업보습학교는 총독부 방침을 활용하여 주로 설립되었다. 특히 농촌진흥운동의 중견인물 양성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다.셋째, 실업계 학교 설립운동의 정당화 논리는 현실적 차원에서 전개되었다. 고보 우위의 중등학교 위계구조 속에서 기금과 관련된 역량 문제, 총독부의 실업교육 중심의 중등교육 정책, 농촌중견인물 양성이라는 현실 문제들이 거론되었다. 특히‘보통학교 졸업 후 방황하는 학생의 구제’문제가 가장 주요한 논리로 등장했다. 실제 당시 보통학교 졸업 후 방황하는 학생들의 문제는 심각했다. 중등교육의 기회가 극히 제한된 기형적 교육체제 아래에서 보통학교 졸업 후 교육 또는 취직의 기회를 얻지 못해 방황하는 학생들이 늘어나는 현실은 실업교육을 하나의 ‘생존전략’으로 선택하게 하였다. 갑오개혁 이후 형성되기 시작한 학력의 제도화는 일제시기 더욱 구체화되었다. 일제시기 학력은 신분 대신 지위 상승의 도구가 되었으며 경제적 재화 획득을 위한 수단으로 작용하였다. 이처럼 신분사회에서 학력사회로 이행되며 중등학교도‘고보-실업-실업보습’그리고‘갑종-을종’에 따라 위계화 되었다. 하지만 마련해야 할 기금 문제 또는 총독부 정책, 보통학교 졸업 후 방황하고 있는 학생과 같은 현실의 문제들은 지역민들을 실업계 학교 설립운동에 나서게 하였다. 대신 끊임없는 승격운동을 통한 ‘완전한’ 중등교육기관 설립 노력은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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