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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재 송병선의 생애와 순국 = Life of Yeonjae Song Byeong-seon(淵齋 宋秉璿) and His Sacrifice for Cou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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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6457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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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Under this thesis, the life of Yeonjae Song Byeong-seon, his Wijeongcheoksa Movement (衛正斥邪運動) and process of his sacrifice for the country are studied as well as his servant Gong Im(恭任)'s suicide committed for one's country. Yeonjae wa...

      Under this thesis, the life of Yeonjae Song Byeong-seon, his Wijeongcheoksa Movement (衛正斥邪運動) and process of his sacrifice for the country are studied as well as his servant Gong Im(恭任)'s suicide committed for one's country. Yeonjae was born as the first son of the head family of Noron(老論) and the 9th descendent of Wuam Song Si-yeol(尤庵 宋時烈). He made concerted effort to live the life as appropriate to the reputation of his earlier generations and fully dedicated to the works to publicity of Song Si-yeol's accomplishments and teachings. Through the tour around the country and accompanied lecture sessions, he educated numerous scholars and pupils all throughout the country in a way of promoting Confucianism. In 1880, he was appointed as the Sunggyungwan(成均館) Jaeju(祭酒) to take the highest position of the sanrim (山林). He displayed his hope for reform of government by submitting ‘Sinsabongsa(辛巳封事)’ but the government did not accept his opinion at all. Therefore, he kept his position of self-purification and his silence. However, with the Eulsa Neukyak (乙巳勒約) in 1905, he submitted his last Sangso (上疏) to meet with King Gojong for the purpose of asserting the repealing of Eulsa Neukyak and impose the death penalty on to Eulsa 5-jeok (乙巳五賊), but when King Gojong refused to meet his, he sacrificed his life for his causes.. There were a number of persons who devoted their lives for the country in protesting of entering into the Eulsa Neukyak but Yeonjae Song Byeong-seon was the only person who devoted his life as a Confucian scholar and his tomb is in Sulsan-ri(戌山里), Gunsan(群山) today. Therefore, many people in Gunsan that remembered Yeonjae had special interests on his tomb and paid special attention to maintain the tomb. However, with the people who remembered Yeonjae in time diminished, the tomb management encountered difficulties. In addition, Gunsan-si(群山市) has expressed recently its passion for a beautification project for the colonization period under the name of ‘Gunsan Modern Cultural City Project’, but it did not have any interest in Yeonjae and other national movement related relics and heritages. Therefore, the tomb was deteriorated and the broad tomb-site had full of paddy fields. For Gunsan-si, it is considered as prudent to stop the project that beautifies the remains of Japanese imperial colonization and start paying attention to maintain and restore the relics and heritages related to the national independence movement now. This is the least requital by the descendents for those who sacrificed their lives for the country and its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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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본 논문에서는 연재 송병선의 생애와 위정척사운동, 순국 과정 등에 대하여 살펴보고, 또 가비(家婢) 공임의 순사(殉死)에 대하여도 알아보았다. 송병선은 우암 송시열의 9대손이자 노론종가...

      본 논문에서는 연재 송병선의 생애와 위정척사운동, 순국 과정 등에 대하여 살펴보고, 또 가비(家婢) 공임의 순사(殉死)에 대하여도 알아보았다. 송병선은 우암 송시열의 9대손이자 노론종가의 장남으로 태어나 선대(先代)의 명성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려고 노력하고, 또 송시열 현양 사업에 매진하였다. 그는 산수 유람과 강회(講會)를 통해 각처에 수많은 문인, 제자를 양성하며 유학을 진흥시키고자 하였다. 1880년에 성균관 좨주(祭酒)가 되어 최고 산림의 지위에 오르자, ‘신사봉사(辛巳封事)’를 올리는 등 정부의 개혁에 희망을 품었지만 정부에서 전혀 그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자 자정(自靖: 스스로 몸을 깨끗이 가지는 일)을 고수하고 침묵하였다. 그러나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그는 마지막 상소를 올리고, 고종을 대면하여 을사늑약의 폐지와 을사5적의 처단을 주장하다 고종이 거부하자 순국하였다.
      을사늑약 체결에 항거하며 순국한 사람은 여럿 있었지만 유학자로서 순국한 사람은 송병선 한 사람뿐으로, 군산 술산리에 그의 묘소가 있다. 이에 송병선을 기억하는 많은 군산 사람들은 그의 묘소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관리에 정성을 기울였다고 한다. 그러나 점차 송병선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적어지면서 묘소 관리는 부실하게 되었다. 또 군산시에서는 근래 ‘군산 근대문화도시 사업’이라는 이름하에 식민지 미화 사업에 열을 올리면서도 연재를 비롯한 민족운동 관련 유적과 유물에는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이에 묘소는 황폐화되고 넓은 묘역에는 밭들이 들어차게 되었다. 군산시에서는 이제라도 일제 식민지 유적을 미화하는 사업을 중단하고, 민족 독립 운동과 관련된 유물, 유적을 정비, 복원하는 데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희생한 분들에 대한 후손들의 최소한의 보답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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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김순영, "연재 송병선의 호남지역 명산(名山) 인식에 대한 연구" 31 : 2017

      2 박경목, "연재 송병선의 학맥과 민족운동" 39 : 2001

      3 이병찬, "연재 송병선의 유기문학 연구" 어문연구학회 68 : 333-363, 2011

      4 김종수, "식민지 미화 투어리즘 – 군산 근대문화도시 사업" 71·72 : 2018

      5 노관범, "송병선·송병순의 생애와 사상" 한남대 충청학연구소 2005

      6 최근덕, "송병선·송병순의 생애와 사상" 한남대 충청학연구소 2005

      7 "高宗實錄"

      8 宋相燾, "騎驢隨筆"

      9 朴殷植, "韓國痛史"

      10 "靑巴日記"

      1 김순영, "연재 송병선의 호남지역 명산(名山) 인식에 대한 연구" 31 : 2017

      2 박경목, "연재 송병선의 학맥과 민족운동" 39 : 2001

      3 이병찬, "연재 송병선의 유기문학 연구" 어문연구학회 68 : 333-363, 2011

      4 김종수, "식민지 미화 투어리즘 – 군산 근대문화도시 사업" 71·72 : 2018

      5 노관범, "송병선·송병순의 생애와 사상" 한남대 충청학연구소 2005

      6 최근덕, "송병선·송병순의 생애와 사상" 한남대 충청학연구소 2005

      7 "高宗實錄"

      8 宋相燾, "騎驢隨筆"

      9 朴殷植, "韓國痛史"

      10 "靑巴日記"

      11 金平默, "重菴先生文集"

      12 "續東鑑綱目"

      13 宋秉璿, "淵齋集"

      14 김상기, "淵齋學派의 사상과 민족운동"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59) : 5-44, 2017

      15 이철성, "淵齋 宋秉璿의 黃山舟遊와 문화경관 인식-「遊黃山及諸名勝記」를 중심으로-" 고려사학회 (70) : 317-345, 2018

      16 朴慶穆, "淵齋 宋秉璿의 衛正斥邪運動" 27 : 1999

      17 이영휘, "淵齋 宋秉璿의 學脈과 作品世界" 어문연구학회 43 : 419-446, 2003

      18 李沂, "海鶴遺書"

      19 "承政院日記"

      20 "太極學報"

      21 "大韓每日申報"

      22 鄭喬, "大韓季年史"

      23 崔益鉉, "勉菴先生文集"

      24 김경수, "『東鑑綱目』의 史學史的 考察" 한국사학사학회 (3) : 41-78, 2001

      25 盧官汎, "19세기 후반 湖西山林의 位相과 ‘正學’運動" 서울대 국사학과 38 : 1997

      26 이현아, "1884년 甲申衣制改革 연구" 단국대학교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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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9-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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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5 0.43 1.181 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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