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KCI등재

      논문 : 위만의 출신 종족에 대한 재고(再考) = The reconsideration of Wi-Man`s ancestry

      한글로보기

      https://www.riss.kr/link?id=A100320883

      • 0

        상세조회
      • 0

        다운로드
      서지정보 열기
      • 내보내기
      • 내책장담기
      • 공유하기
      • 오류접수

      부가정보

      국문 초록 (Abstract)

      이 논문은 위만조선을 세운 위만의 출신 종족이 어떠한지를 다루었다. 위만의 출신 종족에 대해서는 크게 중국계라는 견해와 고조선계라는 견해가 있는데, “朝鮮王滿者故燕人也”라는 ??...

      이 논문은 위만조선을 세운 위만의 출신 종족이 어떠한지를 다루었다. 위만의 출신 종족에 대해서는 크게 중국계라는 견해와 고조선계라는 견해가 있는데, “朝鮮王滿者故燕人也”라는 ??사기(史記)?? 조선열전(朝鮮列傳)의 기록으로 인해 많은 학자들이 위만을 중국계로 인식하였다. 반면 위만을 고조선계로 보는 견해에서 제기된 주장들은 논리적인 문제로 인해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나 ??사기?? 열전의 인물 소개 방식을 분석해 본 결과 조선열전의 기록은 위만의 출신 종족이 아닌 망명 전 위만의 거주지를 나타내는 것일 뿐임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런 점에서 이 기록으로 위만의 구체적인 출신 종족을 논할 수는 없음을 알 수 있다. 위만은 퇴결만이복(?結蠻夷服) 차림을 하고 고조선으로 망명하였으며, 조선이라는 국호와 왕검[왕험]이라는 도읍명을 사용하였다. 퇴결만이복 차림을 하였다는 점은 최소한 위만이 한(漢)과의 구별을 추구하였음을 보여준다. 또한 후국명(侯國名) 등 위만이 사용할 수 있는 국명이 여럿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멸망시킨 조선의 이름을 계승하였다는 점과 고조선의 시조로 알려진 단군왕검과 관련된 명칭을 도읍명으로 삼았다는 점, 위만 관련 기록에서 기자(箕子)와 관련된 내용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위만은 중국인으로 보기 어렵고 고조선계로 보는 것이 타당함을 알 수 있다. 한편, 위만은 연국왕(燕國王) 노관(盧?)이 흉노로 망명할 당시 고조선으로 망명하였다는 점에서 노관과 관련 있을 것으로 언급되어 왔다. 그런데 당시 한 중앙 정부나 북방에 위치한 제후왕국에 만이(蠻夷) 출신이 등용되어 활동하거나 호인(胡人)들로 구성된 기병 부대가 확인된다. 특히, 한 고조(高祖) 유방(劉邦)이 항우(項羽)와 천하를 놓고 다투던 시기에 북맥(北?)?연(燕) 효기(梟騎) 부대가 한을 돕기 위해 출동한 기록이 보이는데, 고조선을 예맥으로 지칭한 사례도 있다는 점에서 고조선인들도 노관 정부에서 활동하였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노관과의 관련성 문제는 위만을 중국계로 볼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없음을 확인할 수 있다.

      더보기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Viewing through the style of character introduce in Biographies(列傳) Shiji(史記), the passage, “Man(滿), the king of Chosun, was Yan(燕) man by nature.” in Traditions of the Chosun(朝鮮列傳) Shiji, meant not that Wi-Man was chinese but ...

      Viewing through the style of character introduce in Biographies(列傳) Shiji(史記), the passage, “Man(滿), the king of Chosun, was Yan(燕) man by nature.” in Traditions of the Chosun(朝鮮列傳) Shiji, meant not that Wi-Man was chinese but Wi-Man was from Yan area, a part of china. There were lived Old-Chosun and many other people as well as chinese at that time. Meanwhile, the fact that Wi-Man had used Chosun his Country name and Wanggum(王儉) his Capital name, shows that he was Old-Chosun ancestry. The word ‘Wanggum’ had stemed from Dangun-Wanggum(檀君王儉), the progenitor of Old-Chosun. The fact that Wi-Man had fled Old-Chosun when Lu-Wan(盧?) had exiled to Xiongnu(匈奴), shows that Wiman was related to Lu-Wan, but their relationship does not show what is ancestry of Wi-Man because that many foreigners had been active in Han(漢) dynasty and several principalities of Han. When Han dynasty established, North-Maek(北?)&Yan cavalry helped Liu-Bang(劉邦), Han Gaozu(高祖). This shows that the Maek people, who related to Old-Chosun, had been lived in Yan.

      더보기

      참고문헌 (Reference) 논문관계도

      1 王立新, "遼西區夏至戰國時期文化格局與經濟形態的演进" 考古學報 2004 (3), 2004

      2 金翰奎, "遼東史上의 古朝鮮" 中國史硏究 6, 1999

      3 김정배, "한국사 4" 국사편찬위원회, 1997

      4 니콜라 디코스모, "오랑캐의 탄생" 황금가지, 2005

      5 박시형, "만 조선(滿朝鮮) 왕조에 관하여" 력사과학 1963 (3), 1963

      6 박준형, "고조선의 성립과 발전에 대한 연구" 연세대학교 대학원 연세대학교 대학원, 2012

      7 윤상열, "고조선의 天下觀에 관한 試論" 사학연구 (88) : 363 ~ 410, 2007

      8 李丙燾, "韓國古代史硏究" 博英社, 1976

      9 姜維公, "關于衛滿的國籍問題" 博物館硏究 1998 (3), 1998

      10 金南中, "衛滿朝鮮의 領域과 王儉城" 韓國古代史硏究 22, 2001

      1 王立新, "遼西區夏至戰國時期文化格局與經濟形態的演进" 考古學報 2004 (3), 2004

      2 金翰奎, "遼東史上의 古朝鮮" 中國史硏究 6, 1999

      3 김정배, "한국사 4" 국사편찬위원회, 1997

      4 니콜라 디코스모, "오랑캐의 탄생" 황금가지, 2005

      5 박시형, "만 조선(滿朝鮮) 왕조에 관하여" 력사과학 1963 (3), 1963

      6 박준형, "고조선의 성립과 발전에 대한 연구" 연세대학교 대학원 연세대학교 대학원, 2012

      7 윤상열, "고조선의 天下觀에 관한 試論" 사학연구 (88) : 363 ~ 410, 2007

      8 李丙燾, "韓國古代史硏究" 博英社, 1976

      9 姜維公, "關于衛滿的國籍問題" 博物館硏究 1998 (3), 1998

      10 金南中, "衛滿朝鮮의 領域과 王儉城" 韓國古代史硏究 22, 2001

      11 盧泰敦, "衛滿朝鮮의 政治構造" 汕耘史學 8, 1998

      12 서영수, "衛滿朝鮮의 形成過程과 國家的性格" 韓國古代史硏究 9, 1996

      13 金翰奎, "衛滿朝鮮關係中國側史料에 대한 再檢討" 釜山女大論文集 8, 1980

      14 金南中, "燕秦의 遼東統治의 限界와 古朝鮮의 遼東回復" 白山學報 62, 2002

      15 박준형, "濊貊'의 形成過程과 古朝鮮" 學林 22, 2000

      16 張增祺, "滇文化" 文物出版社, 2001

      17 黃中業, "戰國盛世" 河南人民出版社, 1998

      18 李種旭, "古朝鮮史硏究" 一潮閣, 1993

      19 박경철, "古朝鮮 對外關係 進展과 衛滿朝鮮" 동북아역사논총 (44) : 13 ~ 63, 2014

      20 宋鎬晸, "古朝鮮 國家形成 過程 硏究" 서울大學校 大學院, 1999

      21 三上次男, "古代東北アジア史硏究" 古代東北, 1977

      22 송호정, "古代南滿洲地域의 種族集團과 古朝鮮" 靑藍史學 15, 2007

      23 이성규, "中國古文獻에 나타난 東北觀 동북아시아 선사 및 고대사 연구의 방향" 학연문화사, 2004

      더보기

      분석정보

      View

      상세정보조회

      0

      Usage

      원문다운로드

      0

      대출신청

      0

      복사신청

      0

      EDDS신청

      0

      동일 주제 내 활용도 TOP

      더보기

      주제

      연도별 연구동향

      연도별 활용동향

      연관논문

      연구자 네트워크맵

      공동연구자 (7)

      유사연구자 (20) 활용도상위20명

      이 자료와 함께 이용한 RISS 자료

      나만을 위한 추천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