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urpose of this report is the reviewing the phase of the Gobu uprising in the Donghak Peasant War. First of all, I watched ‘Space expansion theory’ of the Gobu Castle defeating → Joenju surrender → directly to seoul, in the Sabaltongmu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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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효숙 (원광대학교)
2013
Korean
동학 ; 고부민란 ; 사발통문 ; 농민전쟁 ; 동학농민전쟁 기념일 ; 공간적 확대 단계론 ; 전봉준 ; Donghak ; Peasant War ; Gobu uprising ; Sabaltongmun ; Expansion of the space ; Japanese historical data ; Memorial day ; Choen Bong Jun
KCI등재
학술저널
39-72(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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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urpose of this report is the reviewing the phase of the Gobu uprising in the Donghak Peasant War. First of all, I watched ‘Space expansion theory’ of the Gobu Castle defeating → Joenju surrender → directly to seoul, in the Sabaltongmun. ...
The purpose of this report is the reviewing the phase of the Gobu uprising in the Donghak Peasant War.
First of all, I watched ‘Space expansion theory’ of the Gobu Castle defeating → Joenju surrender → directly to seoul, in the Sabaltongmun. And I compare the contents of Jeon-bongjun’s the first declaration. Successively I watched it about the Gobu uprise which occurred between two. In particular, I make sure contents about the Gobu uprise emerging in a large number of Japanese documents in those days, and rethinking relations with the Donghak Peasant War. In other words, the Gobu uprise is the first stage, when I look in light of ‘Space expansion theory’ appearing in Sabaltongmun. Naturally the Gobu uprise have the character of the people revolt.
The people revolt character of the Gobu uprise, the first stage has a character to have because it is a beginning of the Donghak Peasant War. Be confirmed from a large number of Japanese documents, Cause of the Gobu uprise.
After all, from a participant and a leader, the purpose of the revolt, the participants and the leaders, the purpose of the revolt, I understand that it is a pulse same as the Donghak Peasant War.
Separately from memorial day establishment of the Donghak Peasant War, the Gobu uprise is, a beginning of the Donghak Peasant War, and the fact called the first stage does not have a change. This is a historically should not be devalued.
본고는 동학농민전쟁에 있어 고부봉기의 위상을 살펴보는데 그 목적을 두었다. 방법론으로서는 사발통문에 나타나는 고부성 격파 → 전주영 함락 → 서울로 직행한다는 공간적 확대 단계론...
본고는 동학농민전쟁에 있어 고부봉기의 위상을 살펴보는데 그 목적을 두었다. 방법론으로서는 사발통문에 나타나는 고부성 격파 → 전주영 함락 → 서울로 직행한다는 공간적 확대 단계론 성격과 오지영의 『동학사』에서 확인되는 고부봉기의 지도자였던 전봉준이 처음으로 발한 격문 내용을 비교한 후, 그 사이에 발생한 고부봉기에 대해 살펴보았다. 특히 당시 일본 측 자료에 나타나는 고부봉기에 대한 내용을 검토하여 동학농민전쟁과의 관계를 재검토하고자 하였다.
즉, 고부봉기는, 사발통문에 나타나는 공간적 확대 단계론에 비추어 볼 때, 그 첫 단계인 고부성 격파의 단계에 해당되며, 이는 당연히 민란의 성격을 띨 수밖에 없었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고부봉기의 민란적 성격은 그 단계가 동학농민전쟁의 시작이었기 때문에 지니는 성격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많은 일본 측 자료에서 확인되듯이 고부봉기의 원인, 참여자나 지도자, 봉기 목적 등을 살펴볼 때도 역시 동학농민전쟁과 맥을 같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동학농민전쟁의 기념일 제정과는 별도로 고부봉기가 동학농민전쟁의‘시작’과 ‘첫 단계’였다는 사실에 대한 위상은 변함이 없으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역사적으로 평가 절하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참고문헌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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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강효숙, "황해‧평안도의 제2차 동학농민전쟁" 한국근현대사학회 (47) : 114-148,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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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강효숙, "청일전쟁기 일본군의 조선민중 탄압일본군의 ‘비합법성’을 중심으로, In 청일전쟁기 한중일 삼국의 상호전략"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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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강효숙, "제2차 동학농민전쟁 시기 일본군의 농민군 진압" 한국민족운동사학회 (52) : 5-52, 2007
9 박대길, "동학농민혁명의 시작, 고부봉기" 동학학회 (25) : 75-110,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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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토현 ‘갑오동학혁명기념탑’과 동학농민혁명 상징 기념탑에 대한 일고-대안적 동학농민혁명 상징물 재고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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