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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안국(金安國, 1478~1543)의 학문과 사상 = The study and thought of Kim An-guk(1478~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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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83838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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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im An-guk (1478–1543), a scholar and bureaucrat who was active in the first half of the 16th century, was a disciple of Kim Gong-pil and, along with Jo Gwang-jo, was classified as a Gimyo Sarim. He is evaluated as a person who has greatly contributed to the preservation and expansion of Neo-Confucianism after Gimyo-sahwa.
      After Jo Gwang-jo's political reforms failed due to the kimyo-sahwa, Kim An-guk also resigned from his post and lived in seclusion for nearly 20 years. In the period before and after this, Kim An-guk mainly worked on the social practice of Neo-Confucianism. While serving as an officer in Gyeongsang-do and in Jeolla-do, he focused on publishing various educational books such as 『Jeongsok Eonhae』, 『Iryeonhaengsildo』, and 『Yeossi Hyangyak』. In particular, 『Iryeonhaengsildo』, a book that Kim Ahn-guk personally recommended to compile, provided an opportunity to recognize that horizontal ethics beyond family and relatives were recognized as ethics necessary for rural communities. He also focused on the dissemination of 『Yeossi hyangyak eonhae』, which was led by Kim An-guk in connection with the Gimyo Sarim and the people who sympathized with it. Applying age-based standards to slaves was unprecedented at the time.
      While Kim Ahn-guk was a member of Sungkyunkwan, he influenced many people such as Jung Ji-woon, Kim In-hoo, and Yoo Hee-chun. However, his ideological achievements were focused on laying the groundwork for practice rather than on the philosophical aspect. It can be said that his role was pioneering in the practice of hyangyak in the villages as historical subjects and leading the order of the vill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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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im An-guk (1478–1543), a scholar and bureaucrat who was active in the first half of the 16th century, was a disciple of Kim Gong-pil and, along with Jo Gwang-jo, was classified as a Gimyo Sarim. He is evaluated as a person who has greatly contribut...

      Kim An-guk (1478–1543), a scholar and bureaucrat who was active in the first half of the 16th century, was a disciple of Kim Gong-pil and, along with Jo Gwang-jo, was classified as a Gimyo Sarim. He is evaluated as a person who has greatly contributed to the preservation and expansion of Neo-Confucianism after Gimyo-sahwa.
      After Jo Gwang-jo's political reforms failed due to the kimyo-sahwa, Kim An-guk also resigned from his post and lived in seclusion for nearly 20 years. In the period before and after this, Kim An-guk mainly worked on the social practice of Neo-Confucianism. While serving as an officer in Gyeongsang-do and in Jeolla-do, he focused on publishing various educational books such as 『Jeongsok Eonhae』, 『Iryeonhaengsildo』, and 『Yeossi Hyangyak』. In particular, 『Iryeonhaengsildo』, a book that Kim Ahn-guk personally recommended to compile, provided an opportunity to recognize that horizontal ethics beyond family and relatives were recognized as ethics necessary for rural communities. He also focused on the dissemination of 『Yeossi hyangyak eonhae』, which was led by Kim An-guk in connection with the Gimyo Sarim and the people who sympathized with it. Applying age-based standards to slaves was unprecedented at the time.
      While Kim Ahn-guk was a member of Sungkyunkwan, he influenced many people such as Jung Ji-woon, Kim In-hoo, and Yoo Hee-chun. However, his ideological achievements were focused on laying the groundwork for practice rather than on the philosophical aspect. It can be said that his role was pioneering in the practice of hyangyak in the villages as historical subjects and leading the order of the vill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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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16세기 전반에 활동한 학자이자 관료인 김안국(金安國, 1478~1543)은 김굉필의 문인으로서 조광조와 함께 기묘사림으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그는 기묘사화 이후 성리학을 보존하여 이를 확대하는 데에 크게 기여한 인물로 평가된다.
      기묘사화로 인해 조광조의 정치 개혁이 실패로 돌아간 후 김안국 역시 관직에서 물러나 20년 가까이 은거생활을 한다. 이를 전후로 한 시기에 김안국은 주로 성리학의 사회적 실천에 노력하였다. 경상도관찰사와 전라도관찰사를 지내며 『정속언해』, 『이륜행실도』, 『여씨향약』 등 각종 교화서의 간행에 주력하였다. 특히 『이륜행실도』는 김안국이 직접 편찬을 건의한 도서로서, 가족과 친족을 넘어 수평적인 윤리가 향촌에 필요한 윤리로 인식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또 『여씨향약언해본』의 보급에 주력하였는데, 이는 기묘사림과 그에 동조한 인물들과의 연계 속에서 김안국이 주도한 것이었다. 노비에게까지 나이에 따른 기준을 적용한 것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것이었다.
      김안국은 성균관 사성으로 있으면서 정지운이나 김인후, 유희춘 등 많은 인물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그의 사상적 성취는 철학 방면보다는 실천의 토대를 마련하는 것에 치중되었다. 사대부들이 역사적 주체로서 향촌에서 향약을 실천하고 향촌의 질서를 주도하는 데에 그의 역할은 선구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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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세기 전반에 활동한 학자이자 관료인 김안국(金安國, 1478~1543)은 김굉필의 문인으로서 조광조와 함께 기묘사림으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그는 기묘사화 이후 성리학을 보존하여 이를 확대하...

      16세기 전반에 활동한 학자이자 관료인 김안국(金安國, 1478~1543)은 김굉필의 문인으로서 조광조와 함께 기묘사림으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그는 기묘사화 이후 성리학을 보존하여 이를 확대하는 데에 크게 기여한 인물로 평가된다.
      기묘사화로 인해 조광조의 정치 개혁이 실패로 돌아간 후 김안국 역시 관직에서 물러나 20년 가까이 은거생활을 한다. 이를 전후로 한 시기에 김안국은 주로 성리학의 사회적 실천에 노력하였다. 경상도관찰사와 전라도관찰사를 지내며 『정속언해』, 『이륜행실도』, 『여씨향약』 등 각종 교화서의 간행에 주력하였다. 특히 『이륜행실도』는 김안국이 직접 편찬을 건의한 도서로서, 가족과 친족을 넘어 수평적인 윤리가 향촌에 필요한 윤리로 인식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또 『여씨향약언해본』의 보급에 주력하였는데, 이는 기묘사림과 그에 동조한 인물들과의 연계 속에서 김안국이 주도한 것이었다. 노비에게까지 나이에 따른 기준을 적용한 것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것이었다.
      김안국은 성균관 사성으로 있으면서 정지운이나 김인후, 유희춘 등 많은 인물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그의 사상적 성취는 철학 방면보다는 실천의 토대를 마련하는 것에 치중되었다. 사대부들이 역사적 주체로서 향촌에서 향약을 실천하고 향촌의 질서를 주도하는 데에 그의 역할은 선구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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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논문관계도

      1 조영린, "金安國의 ‘勸小學詩’에 나타난 敎育觀 硏究" 한국한자한문교육학회 1 (1): 371-400, 2014

      2 "패동연원록(浿東淵源錄)"

      3 박홍갑, "중종조 충주사림의 진출과 활동-기묘명현을 중심으로-" 55·56 : 1998

      4 "중종실록"

      5 정재훈, "조선전기 유교정치사상 연구" 태학사 2005

      6 李秉烋, "조선전기 소외관인의 은거생활 –김안국,김정국의 경우" 31 : 2003

      7 "선조실록"

      8 이종묵, "기묘사림과 충주의 문화 공간" 한국고전문학회 (33) : 101-126, 2008

      9 최민규, "金安國의 「慕齋家訓」 편찬과 宗法的 가족윤리" 역사실학회 (66) : 243-281, 2018

      10 李秉烋, "碧史李佑成敎授停年紀念論叢: 民族史의 展開와 그 文化(下)" 창작과 비평사 1990

      1 조영린, "金安國의 ‘勸小學詩’에 나타난 敎育觀 硏究" 한국한자한문교육학회 1 (1): 371-400, 2014

      2 "패동연원록(浿東淵源錄)"

      3 박홍갑, "중종조 충주사림의 진출과 활동-기묘명현을 중심으로-" 55·56 : 1998

      4 "중종실록"

      5 정재훈, "조선전기 유교정치사상 연구" 태학사 2005

      6 李秉烋, "조선전기 소외관인의 은거생활 –김안국,김정국의 경우" 31 : 2003

      7 "선조실록"

      8 이종묵, "기묘사림과 충주의 문화 공간" 한국고전문학회 (33) : 101-126, 2008

      9 최민규, "金安國의 「慕齋家訓」 편찬과 宗法的 가족윤리" 역사실학회 (66) : 243-281, 2018

      10 李秉烋, "碧史李佑成敎授停年紀念論叢: 民族史의 展開와 그 文化(下)" 창작과 비평사 1990

      11 "燃藜室記述"

      12 "澤堂別集"

      13 김훈식, "朝鮮前期 倫理書 보급의 변화" 인문학연구소 81 : 7-35, 2017

      14 윤인숙, "朝鮮前期 鄕約의 구현을 통한 ‘士文化’의 확산 ― 金安國의 인적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대동문화연구원 (81) : 7-40, 2013

      15 文喆永, "朝鮮初期의 新儒學 수용과 그 性格" 36 : 1984

      16 "慕齋集"

      17 손유경, "慕齋 金安國의 對日認識" 한국한문고전학회 19 (19): 31-53, 2009

      18 "弘齋全書"

      19 "小學集註"

      20 "南溪集"

      21 李範鶴, "南宋 後期 理學의 普及과 官學化의 背景" 17 : 1994

      22 "二倫行實圖"

      23 "『月汀集』別集"

      24 金勳埴, "16세기 《二倫行實圖》 보급의 社會史的 考察" 107 : 1985

      25 정호훈, "16,7세기 『경민편(警民編)』 간행의 추이와 그 성격" 26 :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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