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1763년(영조 39) 癸未使行 가운데 발생했던 崔天宗 被殺事件을 형상화하고 있는 사행문학 작품의 서술방식을 살펴 신분 및 직위가 반영된 문학적 특성을 조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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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초록 (Abstract)
본 논문은 1763년(영조 39) 癸未使行 가운데 발생했던 崔天宗 被殺事件을 형상화하고 있는 사행문학 작품의 서술방식을 살펴 신분 및 직위가 반영된 문학적 특성을 조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본 논문은 1763년(영조 39) 癸未使行 가운데 발생했던 崔天宗 被殺事件을 형상화하고 있는 사행문학 작품의 서술방식을 살펴 신분 및 직위가 반영된 문학적 특성을 조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사건에 대한 기록의 서술양상은 兩國 간에 상당한 차이가 있는데 흥미로운 점은 조선통신사 사행원 간에도 동일한 인식과 태도를 보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최천종 피살사건은 신분 및 직위에 따라 서술 내용이 달라졌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서술 내용의 차이는 사행록 전체를 서술하는 방식과 밀접한 연관을 가진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제2장에서는 최천종 피살사건 관련 자료를 정리하였다. 조선의 자료는 당대자료와 후대자료로 구분하고 일본의 자료는 공문서와 민간 기록으로 구분하였다. 이와 같은 작업을 통하여 최천종 피살사건의 진행과정을 살펴보는 데 창작된 사실을 객관적 사실로 인용하는 것을 방지하고자 하였다.
제3장에서는 신분과 직위에 따라 실제 사행경험인 최천종 피살사건을 어떻게 보았고, 그 시각이 서술방식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비교하여 보았다. 이를 위하여 신분과 직위에 따라 최천종 피살사건을 기록한 사행문학을 세 부류로 나누었다. 첫 번째 부류는 士大夫의 사행일기에 해당하는 正使 趙?의 『海?日記』이었다. 두 번째 부류는 庶孼의 사행일기와 사행가사에 해당하는 製述官 南玉의 『日觀記』, 正使書記 成大中의 『日本錄』, 副使書記 元重擧의 『乘?錄』, 從事官書記 金仁謙의 『日東壯遊歌』와 ?退石金仁謙所著東?錄所載崔天宗事?이었다. 그 중 최천종 피살사건을 가장 상세하게 서술한 元重擧의 『乘?錄』이 대표성을 가진다고 생각하여 그를 위주로 살펴보았다. 세 번째 부류는 技術職 中人의 사행일기에 해당하는 漢學譯官 吳大齡의 『溟?錄』이었다.
신분과 직위의 특수성은 일본이 밝힌 살해동기를 받아들이는 태도에 영향을 주었다. 또한 최천종 피살사건을 통하여 조선통신사가 유사시에도 직위에 따라 효율적으로 정보 수집을 분담하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작자의 신분은 최천종 피살사건에서 특정 부류의 功過에 대한 서술에도 영향을 미쳤다. 正使 趙?은 최천종 피살사건의 해결에 首譯의 功이 크다고 보았다. 반면 製述官과 書記는 首譯이 대마도인과 영합하였다고 생각하였는데 최천종 피살사건에서도 首譯의 過가 크다고 보았다. 漢學譯官 吳大齡은 이에 대하여 가치판단을 보류하였다. 여기에는 조선통신사 사행원 간 계급인식 차이가 큰 영향을 미쳤다. 서얼 文士와 譯官의 계급적 마찰은 이 시기 이들이 가지고 있었던 신분 인식의 단초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사행록의 저술 목적에도 신분과 직위의 특수성이 반영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최천종 피살사건 형상화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먼저 趙?의 『海?日記』는 개인적인 술회를 서술하는 것 외에도 공식적인 외교업무일지로서 저술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었다. 이는 『海?日記』에 기술한 것을 狀啓에 거의 그대로 활용한 데서 드러난다. 다음으로, 元重擧의 『乘?錄』은 개인적인 술회의 서술 외에 후대 사행에 전범이 되고자 하는 저술 목적이 있었다. 이러한 저술 목적은 최천종 피살사건과 유사한 사건을 함께 기록하고 정치역학 관계 속에서 최천종 피살사건을 분석한 것으로 이어졌다. 현장감 있는 묘사 역시 특징적이다. 마지막으로, 吳大齡의 『溟?錄』은 개인적인 술회의 서술, 그 중에서도 일본 문화 체험 서술에 목적을 두었다. 이러한 목적성은 그가 논란이 될 만한 정치?외교적 사안에 대한 기술을 삼가는 서술방식으로 표출되었다. 吳大齡의 『溟?錄』은 연행 경험이 풍부한 漢學譯官의 조선통신사 사행문학 서술방식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상에서 최천종 피살사건 형상화를 중심으로 癸未通信使 使行文學을 살펴보았다. 이를 통하여 18세기 신분 인식의 단초를 조금이나마 확인하고 특정 작품에 집중되었던 조선통신사 사행문학 연구사를 일단이나마 보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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